intro
마녀의 이동 도구는 기본적으로 ‘가사일에 도움이 되는’ 도구이다. 악마와 거래하는 것이 예로부터 ‘여자’로 한정되었고, 옛날에는 사람이 몸을 실을만한 가사도구가 청소용구인 빗자루(때로 흰염소, 솥단지)였기 때문에 아직도 이동수단은 청소용구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빗자루를 잘 쓰지 않으니까 모임에 참가하여 확인해도 진공청소기 투성이다. 가끔 로봇 청소기도 보이기는 하지만 타기 힘들기 때문에 위험한 것을 좋아하는 젊은 마녀들 사이에서 익스트림 스포츠 대용인 것 같다.
이렇듯, 마녀들도 현대 사회에 발맞추어 변화하는데, 이는 이동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몇백년 전까지는 십대 초반에 독립하고는 했지만 현대에는 성인이 되면서 독립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Prol
토마스 스티븐슨의 특기 분야는 ‘눈’내지는 ‘얼음’ 마법이다.
본디 마녀의 독립은 마녀의 특기 분야로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인데 이래서야 큰일이다.
요즘은 누구라도 쉽게 얼음을 구할 수 있고 인공눈까지도 만들고 있으니까.
인건비와 기계의 비용을 비교해도 자신이 더 싸다고는 할 수 없을뿐더러 기계 대신 써달라고 말하기에도 영 마뜩찮다.
자신이 내리는 눈으로 사람들이 기뻐해주는 것이야 좋지만 영 충족감이 생기지 않으니까.
물론 따질 입장은 아니지만.
“야, 토마스!”
익숙한 목소리다 했더니 같은 동아리 선배인 이글 홀든이었다.
이글은 척척 다가와 토마스의 어깨에 스스럼없이 팔을 걸쳤다.
“너 방 남냐?”
“네?”
“나, 그동안 큰형이랑 살고 있었는데 말이지. 형이 자꾸 구박하잖아! 확 나와버리려고.”
“네에?!”
그런 이유로 집을 나온단 말이야?
토마스는 입을 딱 벌렸다.
“그래서, 방 없어? 컴퓨터랑 TV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데. 일주일만... 아니, 사흘도 좋으니까 재워줘!”
“제 방이라도 좋다면야...”
토마스는 수락했다.
그리고 토마스의 방에 들어와서 이글은 필터 없는 감상을 첫 마디로 삼았다.
“폐가?”
“무슨 말이예요! 이래봬도 제가 2년째 살고 있는 방이라구요.”
춥고, 좁고, 어둡다.
듣자하니 부엌의 스토브도 영 시원찮은 모양인데, 지금까지 자신이 살던 방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객관적으로 이 집은 못 살 집이다.
‘야아아옹’
이글은 고양이 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눈동자에 검은자위가 없는 듯한 검은 고양이가 그들을 보고 있었다.
“안녕, 피터. 집 잘 보고 있었어?”
토마스가 손을 내밀자 고양이는 코를 살짝 가져다 대어 코인사를 하고는 이글 쪽으로 다가갔다.
“피터, 그 쪽은 이글 선배야. 몇 번 얘기했지? 선배, 그 쪽은 피터예요.”
“안녕 야옹아~”
피터를 두어번 쓰다듬어 주고 이글은 핸드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형? 내가 저번에 얘기했던... 아니, 걔 말고. 토마스 스티븐슨. 응, 걔. 걔네 집에 와 봤는데 집이 끝내주는 폐가거든?”
여기까지만 해도 토마스는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했고, 당장 항의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형아, 얘랑 살아.”
“이글 선배!?”
그런 걸 맘대로 정하면 어떡해요!
토마스가 외쳤지만 이글은 태평하게 그 형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마치고서야 느긋하게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형이 너 만나보자는데?”
야, 생각해봐.
형이 사는 저쪽 동네는 네가 다니는 단과대학과도 가깝고, 집 근처에 장보기 좋은 마트도 하나 있어. 방은 넓고 깨끗하고 동네 치안도 좋고, 관리도 잘 해준다고? 그야 여기보단 비싸지만, 둘이서 나눠 내는 거잖아. 지금 내는 거랑 크게 차이나지 않을 거야...
...에 기초한 이글의 설득에, 토마스는 자기도 모르게 ‘만나는 보겠다’고 해 버렸다.
토마스의 대답을 듣자 이글은 만족했다는 듯 욕실로 들어갔고, 요란스레 씻기 시작했다.
‘어쩔 생각이야?’
피터가 토마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꼬리는 책상 아래로 늘어졌고, 불쾌하다는 듯 탁탁 서랍을 쳤다.
“뭐가?”
‘룸메이트를 구한다니, 말도 안 돼’
그것도 나 외에.
피터는 책상을 꼬리로 찰싹 때렸다.
‘진짜 할 생각이야?’
“일단 나쁜 얘기는 아니잖아.”
피터는 불만스럽다는 듯 낮게 우우- 소리를 냈다.
토마스는 무어라 하려다 이글이 수건 한 장만 걸치고 나오자 드라이어를 찾아 내밀었다.
다음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이글은 ‘일어나기 싫다’고 중얼거리면서 이불에 돌돌 말려 있었다.
“토요일인걸요, 더 주무세요.”
여느 때와 같은 시각에 일어난 토마스는 피터 밥을 챙긴다, 고양이 화장실을 치운지 오래였고 분주하게 움직인 다음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수업 교재를 펼쳤다.
“안돼, 벌써 열한 시 반인걸.”
“그렇네요.”
벌써 점심때구나.
꼭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말하더니 이글은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형이 열두시에 나 데리러 오겠다고 했어.”
“그걸 왜 지금 말해요!”
토마스는 창문을 활짝 열고는 원래도 아무것도 없던 방안을 청소하겠다며 청소기를 들었다.
“...그런데 선배, 선배네 형이라는 분은 어떤 분이예요?”
“너랑 살기에는 나쁘지 않을 거야.”
잔소리를 빼면 조용한 편인데 형이 너한테 잔소리를 할 리도 없고. 배려심? 있는 편이지. 책임감도 강하고...
“무엇보다! 맨날 야근하니까 술 마시고 놀다가 느지막느지막 들어와도 돼! 말이 룸메이트지 주말에나 만나는 주말부부나 다름없다고~”
나름 객관적인 정보니까 믿어도 돼!라며 이글은 팽개쳐둔 옷을 입었다.
오른쪽 양말까지 다 신은 순간,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네, 누구세요-”
문을 열자, 거기에는 더없이 이글과 닮았으면서도 닮지 않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서 있었다.
“이글이 여기 있다 들었다만.”
“형아~ 나 보고 싶었어?”
하나도 안 닮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닮았지만 안 닮았다!
이글이 토마스의 어깨를 누르며 고개를 내밀었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 않았고, 이글은 그게 또 익숙하다는 듯 소개를 시작해서 토마스를 당황시켰다.
“토마스, 이 쪽은 우리 잔소리쟁이에 구박쟁이 다이무스 형이야. 절대 안 웃어.”
“내가 잔소리를 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글.”
이글은 못 들은체 하고 토마스의 뺨을 꾸욱 찔렀다.
“얘는 토마스 스티븐슨. 어때, 귀엽지? 나만큼은 아니지만!”
목례로 인사를 마치고 그는 고양이용 간식 캔을 내밀었다.
“고양이를 키운다기에 사 봤다. 좋아할지는 모르겠군.”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이무스 형.”
“뭐냐.”
“나 피자 먹고싶어.”
“가서 먹을거냐 주문할거냐.”
역시 형은 상냥해.
양손으로 손가락 총 빵야빵야에 윙크라니, 막내는 정말 애교가 많구나.
토마스는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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