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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랑 페드랑'에 해당되는 글 11

  1. 2024.12.03 얘들이 벌써 7주년이라고요??? -페드가 혼자 주점에 가다 1
  2. 2022.06.28 호괏에유
  3. 2020.09.10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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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8.10.17 해시태그 이후의 일
  9. 2018.03.22 아마도 싸웠던 어느 날
  10. 2018.01.30 해시태그들
  11. 2017.09.20 새끼힐러가 되었다

 

퀸타페드는 사방이 뚫린 것이나 다름없는 돌고래 주점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을 골라 앉았다.

 

돌고래 주점은 창문을 제외하고도 계단에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네 개나 있었으므로 어느 쪽으로 앉는다 한들 등이나 사각 중 한 곳은 드러나게 되어 있었기에 굳이 오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이 곳에서 제작 의뢰나 채집 의뢰를 받던 미숙한 모험자 시절에도 의뢰만 받으면 주점을 뛰쳐나가 어디든 구석진 곳에 쭈그려 앉아 제작을 했었지.

 

새삼스럽게 옛 생각을 하며 퀸타페드는 음식 몇 가지를 시켰다.

 

라노시아 특산품인 시트러스 류 과일이 듬뿍 들어간 과일 샐러드, 달걀이 올라간 피자, 그리고 품종 좋은 포도로 만들어진 포도주.

 

햇볕을 듬뿍 받고 자란 오렌지는 갓 껍질을 깐 것인지 온 샐러드 위에 단 향기를 뿌렸다.

 

레몬조차도 상큼하고 새큼한 향이 나기는 했지만 이걸 베어물면 단 맛이 날 테고.

 

씨만 솜씨 좋게 빼낸 올리브는 과즙이 들어차서 반질반질하게 빛났고 새까맣게 잘 익었다.

 

거기 섞인 포도는 까맣게 익어서 올리브와 헷갈릴 정도였는데 조금도 물러진 곳 없이 향긋하다.

 

퀸타페드는 준비된 식기를 밀어내고 손만 가볍게 씻은 뒤 냅킨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외지인을 위해 포크가 준비되긴 했지만 깨무는 순간 얇은 껍질이 툭 터지면서 과즙이 온통 줄줄 샐 테니 라노시아가 익숙한 모험가들은-혹은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하나씩 손으로 집어먹는 것이니까.

 

하나씩 집어 입에 넣고 살짝 깨물면 얼핏 질긴 듯한 껍질이 갈라지고 혀 위로 새콤하고 단 즙이 주르르 흘러서 입 앞을 손으로 가린 뒤에 씹어 삼켜야 했다.

 

다음은 술.

 

한 잔을 주문했더니 이 해적 가득한 도시의 점원은 한 잔만요?’라는 눈빛을 하고는 유리잔 가득히 짙은 색 포도주를 따랐다.

 

퀸타페드는 배운대로 조심스럽게 림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고는 향을 한 번 맡았다.

 

다음으로는 혀 끝만 적실 정도로 조금 물고, 굴려야 했지.

 

하지만 역시 탄닌 향이 나고, 그 달고 맛있는 과일로 만들었다고는 생각도 못 할 만큼 쓰고... 이게 대체 무슨 맛이람.

 

이슈가르드에 처음 입성했을 때나 커르다스에서 헤매야 했을 때 감각을 둔하게 할 목적으로 술을 몇 번 마시기는 했지만 그 역시 필요에 의해 마셨을 뿐이라 역시 즐길 수 없었다.

 

라레타가 이런 걸 좋아하니 어떻게 취미라도 붙여보려고 했지만 수십여가지의 술을 마셔 보고도 자신이 구분할 줄 아는 것은 쓴 맛, 신 맛, 바각바각 맛 정도일까.

 

몇 달에 걸친 대장정이 끝난 뒤 라레타가 낸 술 알아맞히기 퀴즈에서 점수판을 받아든 퀸타페드는 대단하게 절망한 적도 있었다.

 

...이것도 맛은... 신 맛인가...? 거기에 쓴 맛이 있는...

 

일단 라레타가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저번에도 비슷한 맛이 나는 술을 한 병 가져갔는데 이게 아냐!’를 듣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전번에 마신 거랑 비슷하지 않나...?

 

끙끙거리던 퀸타페드는 어차피 자신의 감각으로 고민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는 다시 점원을 불러 건포도가 있는지 물어보고 치즈와 같이 한움큼 내어 달라고 부탁했다.

 

라레타가 좋아할만한 것을 찾으러 온 것이니 역시 제 혀는 믿지 말아야 겠습니다.

 

아무래도 전문가일테니 점원에게 추천 레시피가 있냐고 물어보는 수밖에.

 

그렇게 먹다 보면 비스마르크 레스토랑의 특기인 비스마르크 피자가 배달되었고 퀸타페드는 나이프를 들고 반숙 상태인 계란을 노려보았다.

 

이걸... 터뜨리지 않고 먹어야 할 텐데.

 

피자 조각을 사다리꼴로 자르면서 먹다 보면 가운데에 노른자만 남으려나.

 

여태껏 미동도 없던 꼬리가 스르륵, 뱀처럼 좌우로 한 번 물결쳤다.

 

뿔과 같은 재질의 뾰족한 비늘 끝이 나무로 된 주점 벽을 긁었다.

 

드득, , 단단한 케라틴이 몇 번이고 스치는데 근처에서 나무굽이 바닥 스치는 소리가 났다.

 

비늘 끝이 미세하게 일어서면서 움직임이 느려지고, 퀸타페드는 조용히 나이프를 들어 피자에 대었다.

 

반질반질하게 닦인 면으로 근처의 사람이 한 번씩 비추어지고 은색 날은 덜 익어 흐물거리는 흰자 속으로 파묻힌다.

 

걸음소리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면 그제야 퀸타페드는 꼬리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

 

상대는 미코테 둘이었다.

 

하나는 라랑 헤어스타일이 닮았고, 하나는 머리카락 색이 비슷하네.

 

의도하지 않았지만 페드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저기요~”

 

우리 저기서 마시고 있는데, 같이 마실래요?”

 

...?

 

“...저 말입니까?”

 

!”

 

, 라 같은 소리 냈어.

 

혼자인 것 같아서요. 그 비술서를 보니 비술사 길드 사람이죠? 카벙클 부를 수 있어요?”

 

그제야 시선을 내리니 한 사람은 낚싯대를 허벅지에 매어 두었고 한 사람은 쌍검을 달아 놓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림사 로민사를 모체로 둔 길드끼리 친목이나 다져보자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한 손으로는 비술서를 펴고 다른 손으로 보지도 않고 수식을 적어내려가는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이 굴러갔다.

 

마지막 등호를 적어 답을 연산해내면 허공에서 빛이 갈라지며 노란색 카벙클이 데굴데굴 굴러나왔다.

 

, 파란색이 아니잖아? 노란색은 처음 봐. 진짜 불러줄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를 듣던 어느 때에, 비상한 퀸타페드의 두뇌가 한 가지 가설을 꺼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만.”

 

까딱?

 

그들이 의문스럽다는 듯 귀를 까딱 움직였다.

 

라 닮았어.

 

라 보고싶다.

 

저는 결혼을 이미 했습니다.”

 

!?”

 

! 그렇게 안보인다냐!”

 

제법 공용어를 쓰던 쪽 역시 놀랐는지 냐투리가 튀어나왔다.

 

라는 냐투리 안 쓰지.

 

얼굴도 몸도 말투도 잘 삶은 달걀처럼 매끈매끈...

 

이미 애도 둘 있습니다.”

 

뭐다냐!”

 

, 조용히 해라냐... ...실례했습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그렇지만 냐투리를 쓰면 그건 그것대로 귀여울 것 같... 아니, 틀림없이 귀여워.

 

보통은 놀라거나 해야 냐 소리를 내는 것 같은데 라는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으니까.

 

그리고 굳이 놀래키고 싶지도 않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거나 하면 날 볼 때마다 긴장할 거잖아? 안 되지.

 

하지만 라가 침대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다던가... 그런데 보들보들한 꼬리를 살랑거린다던가... 그런데 졸린 듯이 눈을 깜박깜박 한다던가...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다던가... 하품을 한다던가, 고롱거리면서 배를 위로 하고 눕는다던가... 그러다가 냐- 한다던가...

 

어느샌가 미코테 둘은 떠나고 없었지만 퀸타페드는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꼬리가 무의식의 발로처럼 물결쳤다.

 

그 무의식은 꼬리와 뾰족한 끝을 무디게 할 생각도 않고 마룻바닥을 탕, 내리치기까지 했다.

 

저 사람 한 잔도 다 안 마시고 취했네!라며 점원이 뛰어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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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괏에유

2022. 6. 28. 00:15 | Posted by 호랑이!!!

주것나?’

 

올해 신입생인 퀸타페드는 호수 산책을 하다 며칠째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책을 얼굴에 덮고 누운, 같은 사람을 보았다.

 

혹시 이 사람, 처음부터 여기 시체로 방치되었던 건 아닐까?

 

까만 교복망토 아래로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다 페드는 손수건을 깔고 그 옆 벤치에 앉았다.

 

과제를 위해 가지고 나온 버섯 백과만 팔랑팔랑 넘어갔다.

 

 

 

 

 

역시 주근거다

 

손수건을 깔고 앉아 버섯 백과를 폈다.

 

과제는 어제 다 끝냈지만 래번클로의 고질병인지 도무지 한 번 시작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옆 벤치는 바람이 불면 툭 튀어나온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지만 그 외 미동도 기척도 없어 집중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호그와트에서 누가 죽을 수도 있나?’

 

수십년 전인가 한 명 죽었다고 선배들이 알음알음 말해주기는 했고, 기숙사 유령들도 다 죽은 사람이니까 호그와트에서도 누가 죽을 수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누가 죽었다더라 사고가 있었다더라 하고 듣는 것과, 화창한 날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서 몇 날 며칠 미동도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 건 또 달랐다.

 

결국 퀸타페드는 래번클로의 정체성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살아있다면 보이는 징후로는 호흡, 맥박, 심박... 그리고 또 기타등등.

 

아직 짤막한 꼬리가 망토를 들어올렸다.

 

얼굴을 덮은 책 위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던 손은 바랜 밀짚 같은 머리를 뜯어놓았다가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버섯 백과를 쥐고 원래 자리에 앉았다.

 

희멀겋고 때로는 모래같기도 한 자신의 비늘과는 달리 색이 아주 진한 꼬리가 바로 앞에서 흔들렸다.

 

퀸타페드는 그 꼬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았다.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역시, 그는 래번클로지 그리핀도르가 아니었다.

 

 

 

 

 

주것슬지도 몰라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조용히 와서 책을 읽고 갈 때까지 안 일어나는 건 그럴 수도 있다.

 

바스락 바스락 걸어와서 책을 읽고 갈 때까지 안 일어나는 것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제는 머리맡에서 바스락 바스락 했고 벤치에 돌아와 앉았을 때 털썩도 했는데 안 일어나는 건 그럴 수 없다.

 

퀸타페드는 책갈피를 꽂고 책을 밀어놓았다.

 

오늘은 반드시 맥이라도 짚어 보리라.

 

이걸 위해서 어제 동양의 머글 의술에 관한 책도 빌려왔다고!

 

퀸타페드는 잘 보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 같은 책을 비장하게 노려보았다.

 

이제는 책 제목도 외웠다.

 

애머릭 스위치의 입문자를 위한 변환 마법.

 

그렇다는 건 이 사람도 나랑 같은 신입생이라는 거겠지?

 

비록 거의 일 년 내내 어느 수업에서도 못 본 것 같지만 애당초 퀸타페드는 남의 얼굴을 기억할 필요성을 거의 못 느꼈다.

 

어찌되었든 동학년이면 의도하지 않아도 이름과 얼굴 정도는 외우게 될 터.

 

퀸타페드는 하얗고 말랑한 사람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뭐 해?”

 

쉬잇.”

 

5학년 O.W.L. 책을 끌어안은 아우라가 입 앞에 손가락을 대었다.

 

덤불 뒤로 숨을 수 있는 키였기에 휴런인 친구를 잡아 억지로 바닥에 앉혔다.

 

저기, 래번클로 신입생이 우리 기숙사 애 자는 데에 매일매일 오더라고.”

 

자는 데에? 뭐하러?”

 

글쎄... 깨우고 싶은 모양인데?”

 

둘은 덤불 틈의 사이를 슬쩍 벌렸다.

 

파란 색 깃을 단 아우라가 교재를 얼굴에 덮은 미코테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손을 건드리고 싶은 듯 가까이 다가갔다가 멈추고, 책을 치우고 싶은 듯 손을 뻗었지만 거기에서 더 가까워지지는 못 했다.

 

제길, 가까이 가란 말이야.”

 

“...모두가 그리핀도르 같지는 않아.”

 

모래색 비늘이 돋은 꼬리가 불만스럽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저기에 뭔가 물건이 있었다면 탁탁 소리가 날 터였다.

 

한참이나 꼬리를 움직이던 아우라가 마음을 정했는지, 가까이 다가갔다.

 

목표는 늘어진 손()!

 

발이 쪼끔쪼끔씩 다가간다.

 

팔이 바들바들 떨리며 가까워진다!

 

좋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하면...... 조금... 조금만 더..........

 

-”

 

, 잠깐...!”

 

흐윗취이이이!!!!!”

 

그리핀도르 아우라는 급히 휴런 친구의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결국 후플푸프 휴런은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고, 아우라는 그의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덤불 너머에서 흔들리던 꼬리는 밤송이처럼 비늘이 뻗쳤기에!

 

그리핀도르 아우라와 후플푸프 휴런은 슬금슬금 일어나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퀸타페드는 삐죽삐죽하게 비늘이 솟은 꼬리를 꽉 잡아 강제로 비늘을 눕혔다.

 

“...”

 

“...? 신입생?”

 

마악 잠에서 깼는데도 눈이 동그란 미코테의 귀가 삐죽 섰다.

 

... 쪽도, 신입생이 아닙니까?”

 

네가 냐 잘 때 잎 떼준거야?”

 

“...”

 

끄덕끄덕.

 

라레타는 어느 순간 안락해진 자신의 낮잠 장소를 돌아보았다.

 

얇은 담요가 생겼고 작은 베개도 있다.

 

나무 그늘은 적절하고 때로 옷 위에 떨어지던 잎은 흔적도 없다.

 

쾌적하다.

 

또 올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에 아우라가 도망쳐버렸다.

 

라레타는 부를까 생각했다가 길게 하품을 했다.

 

아무래도 한잠 더 자야겠다.

 

그리하여 이 미코테는 솜사탕 같은 꼬리를 갈무리한 뒤, 1~2학년 공통교재 입문자를 위한 변환 마법서를 얼굴 위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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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2020. 9. 10. 01:43 | Posted by 호랑이!!!

 

 

이것 봐요!”

 

보송보송한 노란 머리카락에 사탕 같은 눈을 한 미코테가 손톱을 세워 페드의 옷소매를 긁었다.

 

가죽옷인데 괜찮은지 손을 잡아 이리저리 살피자 손은 그대로 맡겨놓고 라레타는 반지르르 예쁜 꼬리를 페드의 눈 앞에 흔들었다.

 

손톱이 어느 한 군데 까지거나 더럽혀지지 않고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 페드는 눈동자를 가운데로 움직여 제 코 앞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다가-

 

.

 

라레타의 손바닥에 이마를 막혔다.

 

동그랗게 뜬 눈에서는 보이지 않는 물음표가 보글거렸고 라레타는 페드를 막아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져서 어깨를 쭈욱 폈다.

 

이거 봐! 또 물려고 했어!”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인 눈동자가 라레타의 모아진 눈썹으로 향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봐요, 여기! 매일 무니까 여기 털이 납작해졌어!”

 

“...그렇씁, 니까?”

 

페드는 라레타의 꼬리를 받았다.

 

미세하게, 꼬리털이 납작 누워 있었다.

 

자주 입에 물기는 하지만!

 

털이 조금 납작해진 것도 알지만!

 

그렇지만 그러니까 매일매일 빗질해줬는데? 털결에 좋다는 것도 발라 주고?

 

페드는 급하게 빗을 꺼내다가 털을 빗질했다.

 

털이 보소송 일어났다.

 

하지만 그 털은 라레타가 훅! 불자 다시 챡! 누워버린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페드는 꼬리를 내려다보았다.

 

라레타의 심기를 알려주듯 꼬리는 비늘 돋힌 손 안에서 바스락 바스락 꾸물거렸지만 아까 페드의 움직임을 막아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덕분에 그렇게 움직임이 크지 않았고.

 

그것은 달리 말해.

 

캬아앙!!!”

 

페드가 꼬리를 물 틈을 주었다는 말이 된다.

 

가만 안 둬!”

 

, 그러다 다칩니다.”

 

가만 안 둬!!!”

 

말랑말랑한 몸이 페드의 어깨 위로 훅 뛰어올랐다.

 

페드는 몸을 숙이며 보들보들한 피부가 비늘에 긁히거나 바닥에 넘어지지 않도록 허리를 껴안았고 라레타는 그것을 방해로 여겼는지 바둥거리면서 페드의 등에 거꾸로 엎어져서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기 위해 등을 긁었다.

 

장식 겸으로 붙인 가죽 조각이 바닥을 뒹굴고 등비늘에 손톱이 긁히자 페드는 냉큼 몸을 놓아주었다.

 

이때다! 하며 라레타는 그 특유의 유연함으로 거의 물구나무서다시피 다리로만 매달린 채 앞으로 손을 뻗었고, 비늘로 덮인 꼬리를 손에 넣었다!

 

페드는 라레타가 주저없이 그 꼬리를 입에 물자 화들짝 놀랐다.

 

라레타는 페드가 당황하자 더 신이 나서 꼬리를 물고 뜯고 온 몸으로 붙들었고 페드는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최대한 꼬리의 가시를 눕혀두려고 애쓰면서 고뇌했다.

 

꼬리.

 

전혀 아프지 않은데,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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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친구 냐쨩

2020. 7. 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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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나트랑 율리안이랑

2020. 5. 25. 01:17 | Posted by 호랑이!!!

아침 6.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푹신한 침대 안에서 퀸타페드가 눈을 떴다.

 

이불 안쪽에는 언약자가 저에게 등을 붙인 채 동그랗게 말려 새근새근 자고 있고 이불 위며 발치, 머리맡에는 언약자를 닮은 꼬마친구들이 마찬가지로 동그랗게 파묻혀있다.

 

진한 감동을 받은 것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던 퀸타페드는 몸을 부르르 떨고,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아침부터 가벼운 운동을 한 후 더운 울다하임을 감안해서 찬물로 몸을 씻었다.

 

7.

 

목욕물은 조금 뜨겁다 싶을 정도로 데워둔다. 아침을 준비하다보면 식을 테니까.

 

과일은 씻어 자르고 계란은 반숙으로, 베이컨을 굽고 잘게 자르다보면 시간이 훅 사라졌다.

 

신선한 우유까지 준비하면 맛있는 냄새에 침대 쪽이 부스럭부스럭 잠 깨는 소리가 들렸다.

 

깼습니까?”

 

으으으응.”

 

, .”

 

-.”

 

입에 조그만 별사탕을 물려주자 눈은 여전히 감겨 있지만 입은 오물오물 움직여서 까작까작 씹는 소리가 난다.

 

목욕하면서 아침 먹을까요?”

 

으응...”

 

잠투정을 하는지 끼잉 소리를 내는 라레타를 안아들자 조그만 인형들도 꼬물락꼬물락 움직이더니 한데 모여 다시 잔다.

 

귀여워.

 

이 심장 멎는 귀여움을 계속 보고도 싶었으나 퀸타페드의 품 안에는 먹이고 씻기고 입혀야 할 라레타가 있었기에 비정한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고,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김이 오르는 따끈따끈한 물에 옷을 벗겨 라레타를 내려놓자 라레타는 편안하게 몸을 늘어뜨렸다.

 

.”

 

-.”

 

수란을 자르자 노른자가 흘러내렸다.

 

베이컨과 함께 입에 넣어주자 다시 다물려고 하지 않길래 볼을 콕 찔렀더니 귀가 파득파득 움직이고 입이 다물어져 우물거린다.

 

만지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지 않고 살짝 아랫입술을 건드리자 입을 벌리라고 알아들은 것인지 아-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이번에는 녹색 포도알을 물려 주었고 차갑게 식혀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이 삐죽 찡그려졌지만 아작아작 잘 깨문다.

 

그렇게 계란, 채소, 베이컨, 과일을 먹이다 이제 되었겠지 싶은 마음에 마실 것을 권했다.

 

우유 마시겠습니까?”

 

.”

 

이것만큼은 누워서 마실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졸린 기색이었지만 따뜻한 물로 얼굴을 씻으며 일어나 앉는다.

 

나만큼 라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반응에 퀸타페드는 꿀을 섞은 우유잔을 내밀었다.

 

한 모금, 두 모금.

 

달걀? 아니면 베이컨?”

 

둘 다 먹을래.”

 

- 하고 입을 벌리면 다시 달걀과 베이컨이 들어간다.

 

또 샐러드, 그리고 과일 순서로 입에 넣어주자 얼만큼 먹고 질렸는지 고개를 저었다.

 

몇 시예요?”

 

이제... 9시군요.”

 

어쩐지 졸리더라... 하암.”

 

오늘은 외출하기로 했잖습니까. 기억나지요?”

 

안 나요.”

 

이제 몸 닦을까요?”

 

쪼끔만 더 있다가.”

 

그러면서 다시 눈을 감는다.

 

 

 

 

 

 

 

 

아침 6.

 

크나트는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전날 꽤 오래 뭘 했더니 몸이 운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이래저래 체위를 바꿔가면서 했는데 말이야, 그 정도로는 부족하구만.

 

바닥에 떨어뜨린 속옷을 주워 입고 하우스 메이트 비슷한 사람의 정신건강을 위해 추리닝 바지도 입어준 채 운동기구가 가득한 지하실로 갔다.

 

창고를 얼른 하나 지어야 할 텐데.

 

크나트에게는 이 지하실을 어메이징한 플레이룸으로 바꾸겠다는 원대한 야망이 있었으나 율리안이 쓰는 손님방에 운동기구를 놓기에는 그 방이 너무 작기 때문에 현재 무기한 연기 중이었다.

 

널찍하게 운동기구를 놓으려면 일단 땅부터 다지고, 그 위에 시멘트를 붓고, 벽을 쌓고... 저 쪽 마당에 뭘 묻어둔 게 있었던가? 없었겠지?

 

그나마 마당 넓은 집이라서 다행이다.

 

어릴 때는 방이라고는 둘밖에 없는 집에 무슨 마당이 쓸데없이 넓으냐고 불만이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조금은 쓸모가 있군.

 

잠깐 러닝머신을 뛰고 땀을 닦아낸 뒤 첫 번째 근육운동기구에 앉았더니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당연하다지만 율리안이다.

 

몇 모금 정도가 빈 페트병을 들고 달랑달랑 걸어내려온 율리안은 우선 스트레칭부터 했고 몸이 쑤시지도 않는지 쭉쭉 뻗는 것에 크나트는 말을 걸었다.

 

굿 모닝. 도와줄까?”

 

“...됐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뻐근해 보이는데.”

 

그렇기는 합니다만, 하고 율리안의 표정이 말했다.

 

당신 손이 닿는 건 밤이면 충분합니다.”

 

“...호오.”

 

율리안은 자신의 말이 또 저 인간에게 뭔가 상상할 거리를 주었다는 것을 깨닫고 시선을 피하며 재빨리 러닝 머신에 올랐다.

 

별달리 말을 걸지는 않고, 크나트는 자기 운동이나 하다가 이제 뭉친 근육이 다 풀렸다 싶어지자 운동기구에서 내려와 남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 좀 떠다 줄까, 달링?”

 

저는... .. 달링이... ...”

 

어쩐지 저 가 한숨처럼 들린다.

 

개의치 않고 크나트는 대답을 기다렸다.

 

“...부탁드립니다.”

 

크나트는 계단을 올라가 일단 물병에 물을 가득 따라놓았다.

 

털썩, 하고 마당에 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얼른 나갔더니 옆집 사람도 신문을 가지러 나온 것인지 신문을 줍다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지요?”

 

그렇군요, 이제 봄이 오려는가 봅니다.”

 

이탈리아는 대개 따뜻하니 특별히 봄이 온다고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렇게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면 다시 일년이 시작하는구나 싶어져요. 이제 좀 있으면 아이들도 다시 방학을 맞아 돌아올 거고, 또 새로 학기 시작하는 데에 필요하다면서 연필이며 옷이며를 실어 나르겠지요. 우리 애는 지금 영국에 있는데 저번에 왔을 때는...”

 

크나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만 가보고 싶다는 무언의 표시를 했음에도 이웃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고 크나트는 시계 대신 옆집 사람의 인적사항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그리고 그 때 가게에 갔더니 점원이 애 옷을 보고 그러는 거예요, ‘아주 스코틀랜드 인이 다 됐네!’ 그러더니...”

 

내가 신문을 왜 가지러 나왔지.

 

10분이 지나고 인내심에 한계가 온 크나트는 옆집 사람의 말을 끊었다.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애 물을 줘야 해서요.”

 

다음에는 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도 나오지 말아야겠다.

 

다시 고양이를 들였나요? 옛날에는 있었다고 어머님이 그러던데, 아주 예쁜 황갈색 고양이랑 까맣고 하얀 고양이랑 회색 고양이 말이에요. 아침마다 우유나 버터 조각을 주면 아주 행복하게 핥다 가더라고 얼마나 그러는지! 제가 말이에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데 항상 저만 보면 아주-”

 

아니지, 아예 신문 구독을 취소해버리자.

 

좋은 하루 되십시오.”

 

신문사를 태워버리자.

 

집 안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크나트는 거칠게 신문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아니 물론 사람과 교류하는 건 좋아하지만 지금은 바쁘다니까!

 

우리 애 물 줘야 한다고! ..., !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으려던 크나트는 일어나 물병으로 달려갔다.

 

미지근한 물이 찰랑찰랑한 물병을 쥐고 내려갔더니 율리안이 아까 그대로의 상태로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놔두고 갔던 물병 안 물의 수위 정도일까.

 

여기 물.”

 

감사- 하아, 합니다.”

 

거의 빈 물병을 들고 다시 올라가서 씻어놓고 크나트는 자기 몸도 씻어두러 갔다.

 

 

 

 

 

 

 

 

 

 

아침 11.

 

오늘은 뭘 입힌다.

 

퀸타페드는 라레타의 몸을 말려주고 머리도 말려주고 빗질도 꼬리 끝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속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한바탕 일이 있기는 했지만 어찌저찌 잘 넘어갔고(비록 라레타의 몸을 한 번 더 씻겨야 했지만) 이제 난제는 라레타에게 어떤 옷을 입히느냐다.

 

우선은 부드럽고 편한 재질의 옷을 안에 입혀야겠지, 울다하 만큼은 아니어도 제법 따뜻한 동네라고 하였으니까 얇아야 할 거고... 그렇지만 비공정을 탄다면 서늘할 테니 톡톡한 옷이 좋겠다.

 

가장자리에 하얀 털도 대고... 그러면 몽글몽글하니 미코테가 더 귀엽게 보일 터.

 

아니면 아예 안은 얇은 옷을 입혀서- ...하지만 비공정을 타고 가는 동안 의자에 눕기라도 하면 옷이 다 구겨질 텐데.

 

옷을 벗겨놓고 맨 위에 코트만 두르게 할까.

 

아니면 역시 초승달 옷?

 

안에 입을 옷을... 저번에 멜빵바지도 참 귀여웠었지.

 

이것도 귀엽고 저것도 귀엽고.

 

뭐든 다 잘 입으니 뭐가 편한지 알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입히기에는 퀸타페드의 장인정신이 용납지 않았으니.

 

삼십분을 더 고민하던 것은 등 뒤로 가볍고 부드러운 것이 닿으면서 사라졌다.

 

뭐야, 뭐 해요?”

 

등에 냉큼 매달리는 미코테가 다치지 않도록 팔을 잡아 목 쪽으로 가까이 당기면서 일어서자 달랑달랑 흔들리는 발이 제 종아리나 허벅지를 건드렸다.

 

옷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동을 해야 하니 이 트렌치 코트와 아오자이...”

 

나 가운 입을래요.”

 

라레타가 옷 사이에서 상앗빛으로 보드라운 알라미고 가운을 꺼냈다.

 

“...중에서 역시 그 가운이 제일 라랑 잘 어울립니다. 역시 고르는 건 라한테 맡겨야겠어요. 제일 좋은 선택입니다.”

 

보지 않아도 보송보송하게 빗질을 끝낸 꼬리가 신나서 치켜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요? 역시 내가 고르는 게 제일이지?”

 

이래봬도 좋은 물건은 많이 봤으니까요! 뭐가 좋고 나쁜지는 한눈에도 알아본다구!

 

우쭐우쭐 즐거워하는 모습에 페드는 여름용 색안경이라도 구해서 쓰고 다닐까 생각했다.

 

아니면 가면이라던가, 뭐든지 가릴 수 있는 걸로.

 

보석이라던가 좋은 비단을 쓰면 좀 좋은 사람으로 보일까?

 

 

 

 

 

 

 

 

 

 

아침 10.

 

크나트는 씻고, 머리를 말린 채 뒤집개로 프라이팬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발랄한 멜로디의 민요나 흥얼거리면서 넓적한 접시 위에 말랑말랑하게 익힌 프렌치 토스트와 통통한 소시지와 반숙으로 익힌 달걀을 얹고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한데 놓았다.

 

치즈를 좀 넣을까 말까.

 

미간을 찡그리면서까지 고민하며 크나트는 한 접시의 프렌치 토스트에만 설탕을 한 숟갈 얹었다.

 

이봐 달링! 예쁜 신부님? 섹시한 신부님-!”

 

지금쯤이면 씻고 있으려나? 아니면 옷을 입고 있나.

 

어느 쪽이든 잘 안 들릴 테니 세레나데를 부르는 목소리를 높였는데 의외의 곳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크나트는 펄쩍 뛰어올랐다.

 

‘-렇게 부르지- -십시오-’

 

허니? 아직 운동하고 있는 거야? 대체 언제까지 하려고?”

 

후다닥 계단을 뛰어내려오자 아직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게 보인다.

 

조금만 더.... 하아, 하고 가겠습니다.”

 

조금만이 얼마나 조금만일까.

 

지하실 벽에 못을 박기 싫어서 시계 거는 것도 미뤄뒀는데 아무래도 조만간에 하나 걸어놔야 할 것 같다.

 

런던 시계탑에 걸린 것만큼 큰 걸 러닝머신 바로 앞에다 걸어두면 저번처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몇 시간이나...

 

잠시 크나트는 음란한 상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겉모양만은 멀쩡해서 율리안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크나트에게 힐끗 눈길을 던졌다.

 

손목시계를 가져왔습니다. 정말 조금만 더 하다가 올라가겠습니다.”

 

그렇다면야.

 

크나트는 다시 계단을 올라와 한 사람 몫의 음식에 덮개를 씌워두고 먼저 사용한 접시를 씻고 양치질을 하고 옷장 문을 열어 옷을 골랐다.

 

짙은 회색 수트에 반짝이는 금속 단추를 달고 넥타이는 남색... 아니면 초록색? 이 노란색은 사 놓고 한 번도 안 썼군.

 

모처럼 격식을 내려놔도 좋을 자리이니 무늬가 들어간 것도 좋겠지.

 

하얀 줄무늬가 하나, 둘 들어간 것은 무난하게 잘 어울리고.

 

체크 무늬는 대체 어쩌다가 이 옷장에 들어온 거람?

 

이 가로 줄무늬는 누구 선물을 주려고 샀던 것 같은데 결국 주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했군.

 

조만간에 대대적으로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넥타이를 죄 꺼내자 생각보다 많았고, 왜 골고루 안 썼는지 고민하기에는 바리에이션이 지나쳤다.

 

은색 줄이 들어간 것과 치즈 무늬가 들어간 것 중 어느 것으로 할 지 고민하다 잠시 정지한 크나트는 회중시계부터 단추에 달았다.

 

...그러고 보니 선인장도 꽤 괜찮은 것 같은데.

 

고양이 무늬는 나중에 율리안에게 주자.

 

결국 결정하지 못하고 넥타이 몇 개를 골라들고 시계를 보니 깜짝 놀랄 만큼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 후다닥 율리안의 문을 두드렸으나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씻고 있나? 하지만 화장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 문을 두드렸지만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벌써 나간 거야!?

 

내가 너무 늦어서!?

 

! 차 열쇠!

 

차 열쇠 어디있지!?

 

카운터에 올려둔 바구니를 뒤적였지만 열쇠 대신 동전이나 명함, 클립이나 쿠폰 같은 것들이 손가락에 달그락거렸다.

 

옷장 서랍 위? 없고!

 

침대 옆에!? 없어!

 

어제 입었던 재킷... ! 여기! 이거!

 

주머니를 뜯어내다시피 벌리고 열쇠를 끄집어내 집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찰나 크나트의 귀에 기계소리가 걸렸다.

 

설마 하는 마음에 크나트는 고르던 넥타이를 그대로 움켜쥐고 계단 아래로 뛰어내려갔다.

 

달링 슈거?”

 

“..., 하아... 그것도... 접니까.....?”

 

왜 아직도 이러고 있어!?”

 

 

 

 

 

 

 

 

 

12.

 

퀸타페드는 비공정에 올랐다.

 

다리 아프지 않습니까? 목이 마르지는 않아요? 별사탕을 좀... 아니, 안 가져왔구나.”

 

별사탕은 나오는 길에 꼬마친구 라레타들에게 전부 주어버렸다.

 

조르르륵 붙어 서서 어디가? 데려가? 언제 와? 빨리 와? 하면서 종알거리는 것에 발이 묶여서 늦어지자 가면서 먹이려고 했던 별사탕 봉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많아! 반짝반짝해! 올록볼록해! 데굴데굴해! 하는 것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미간에 힘이 꽉 들어간다.

 

그리고 그 새 자리를 찾아낸 라레타는 으쓱거리며 퀸타페드를 당겨 자리에 앉혔다.

 

역시 형이 있어야겠지? 라는 것을 잔뜩 뽐내면서.

 

멋지다 내가 정신을 딴 데 팔아도 형이 다 챙겨준다!고 했더니 꼬리털이 한껏 보들보들해졌다.

 

멋진 미코테 꼬리털을 빗어줘도 됩니까?”

 

어쩔 수 없지! 퀴니니까 허락해주는 거예요!”

 

빗을 착 꺼내들고 그새 헝클어진 털을 빗어주자 반질반질해진다.

 

너무 좋아.

 

퀸타페드는 이왕 빗을 꺼낸 김에 머리털까지 빗어주기로 결심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부드러운 털이 사르르 벌어졌다가 가지런하게 내려앉는다.

 

머리에 쓴 모자부터 목의 리본, 반지, 가운, 반지르르한 머리털과 꼬리털.

 

집에 놔둔 꽃향기가 배어서 은은하게 향이 난다.

 

너무 예뻐 내 미코테.

 

여기서 무릎 꿇으면 안 되겠지.

 

그러면 눈에 띌 텐데 누가 봤다가 반해버리면 안 되잖아.

 

왜 비공정에는 개인실이 없는 거야.

 

빛의 전사의 이름으로 개인 비공정을 만들고 싶다.

 

마법 종류만도 네 가지나 되면서 왜 투명해지는 망토는 안 만드는 건지.

 

모든 사람을 위해서 하나 필요할 거란 말이야.

 

퀸타페드는 알 수 없는 원망을 하며 라레타의 목에 팔을 감아 끌어당겼다.

 

뭐야? 추워요? 하는 게 너무너무 귀엽다.

 

꽉 끌어안아 버리고 싶다.

 

라레타는 왜 작고 가녀리고 연약한 사람이라서...

 

퀸타페드는 슬펐다.

 

그리고 비늘 달린 꼬리가 라레타의 허리에 감기자 라레타는 퀴니가 추운가!? 라며 장갑을 꼬리 끝에 씌워 주었다.

 

계속 이렇게 있고 싶다.

 

약속이고 뭐고 같이 커르다스 서부고지의 오로라나 보러 갈까.

 

-”

 

하고 입을 떼는 순간, 우렁차게 방송이 흘러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두고 가시는 물건이 없는지 잘 확인을-”

 

도착했대요!”

 

라레타는 퀸타페드의 소매를 당겼다.

 

조금만 더 일찍 말할 걸.

 

퀸타페드는 겉옷이며 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공정에서 내려 걷고, 작은 기차를 타자 라레타는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았다.

 

퀴니 이것봐요, 금속으로 만든 뱀 같아! 이거, 이거 뭐라고 불러요? 기차? 타 본 적 있어요?”

 

한 번 있습니다. 이것은 좀 작군요.”

 

그리고 유령도 없고, 뚜껑도 있군.

 

저번에는 어디에 이동하기 위해 기차에 탔다기보다는 다른 일 때문에 탔었기 때문에 퀸타페드도 창문에 딱 달라붙었다.

 

평화로운 들판과 산이 보이고 강과 꽃이 지나가고 양떼도 있다.

 

내린 역도 자그마해서 역무원이 한 명, 매점에 한 명 있을 뿐.

 

그리다니아예요?”

 

그런가 봅니다.”

 

라레타에게 젤리를 한 봉지 들려주고 퀸타페드는 노란 튤립과 프리지아를 샀다.

 

이건 못 본 꽃인데 씨앗을 얻을 수 있을까.

 

얻어 간다면 아마 푸푸차님이 기특해하시겠지.

 

역에서 나와 걷다가 레스토랑으로 보이는 하얀 건물을 발견했다.

 

둘은 안으로 들어갔고, 방으로 안내받아 가자 두 사람이 있었다.

 

잘 찾아오네? 여기야 여기.”

 

잘 계셨습니까.”

 

두 분은 잘 지냈습니까 리비오 씨, 스호르 씨.”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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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2019. 6. 6. 19:10 | Posted by 호랑이!!!

에췻!”

 

따뜻한 울다하에 집이 있기는 하지만 페드와 라레타는 종종 커르다스에 방문하고는 했고, 급격한 온도차를 겪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페드 역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불과 이틀 전까지 기침을 하고 열이 올라 있던 라레타를 간호한 것 때문에 옮은 모양.

 

라레타가 아프다고 했을 때는 어렵잖게 했던 각종 죽이나 수프에서부터 사탕, 초콜릿, 약을 만드는 것은 물론 청소를 하거나 환기를 하거나 하는 일조차도 다 귀찮다.

 

하지만 페드는 몸을 일으켰다.

 

아픈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자신의 재채기에 귀가 쫑긋한 라레타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 주고 저녁으로 먹을 양배추말이 소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방금 기침 한 거야?”

 

재채기입니다.”

 

이 작은 미코테가 나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얼굴 빨간데.”

 

사막의 독뿔 도마뱀도, 바다의 해적도, 숲의 멧돼지도, 사람도 위험한데.

 

“...요리 불이 세서.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데일 수도 있습니다.”

 

아닌데, 아닌 거 같은데, 라고 하면서도 라레타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서 페드를 지켜보았는데 꼬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보아하니 영 수상쩍게 여기는 모양이다.

 

얼굴을 씻고 온다는 핑계로 화장실로 빠져 거울을 보니 정말로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원래 피부색이 진하니까 별로 티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다보니 알 수 있는가.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라레타에게 먹이고 남았던 약병을 꺼냈다.

 

쓴 약을 마시고 물을 몇 모금 마신 뒤 약 냄새를 없애기 위해 양치질을 한 번 더.

 

찬물로 몸을 식히고 나갔더니 요리는 마악 완성되었다.

 

“...역시 얼굴이 빨간데.”

 

, 접시 좀 꺼내주겠습니까? 예쁜 걸로. 수저도 좀 놓아 주고. 꽃도 꽂을까요? 무슨 꽃이 좋습니까?”

 

! ...숟가락 먼저? 접시...”

 

어느 걸 먼저 하느냐 안절부절 하다가 라레타는 접시부터 꺼내러 우다다 달려갔다.

 

휴우.

 

식사 도중에 또 기침을 하기는 했지만 사레 들린 것 뿐이라며 훌륭하게 넘긴 페드는 뿌듯한 마음으로 디저트를 듬뿍 꺼냈다.

 

타닥타닥 백색 소음처럼 타오르는 벽난로는 따뜻한 온기를 집 안에 퍼뜨렸고 장작과 함께 넣은 라벤더 줄기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향기를 뿜어냈다.

 

다녀왔습니다-”

 

문이 벌컥 열렸다.

 

평소라면 조심히 다니라고 벌컥 성을 냈겠지만, 자칫했으면 잠에 빠졌을 뻔 한 페드로서는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

 

거대한 집사 바리톤은 페드와 눈이 마주치자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는 시늉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 덩치가 작아지거나, 정말로 조용해지지는 않을 거 아닌가.

 

“...되었으니 문만 좀 열어놓으십시오. 환기를 하게.”

 

저 주인이 웬일로 유하게 굴지?

 

어리둥절해진 바리톤은 보송보송 건강한 모습으로 과자를 입에 문 라레타를 보자 오늘은 기분이 좀 좋은가보다- 정도로 납득하며 페드 앞에 오늘의 획득물을 꺼냈다.

 

이거는 바다초롱이고-”

 

그렇군.”

 

이거는 알라그 금화고-”

 

그렇군.”

 

주인님은 아프고-”

 

그렇지. ...?”

 

감기 걸린 거 아닙니까? 얼굴도 빨갛고 숨소리도 다르고-”

 

페드는 집사 급료로 바리톤을 걷어차 쫓아냈다.

 

역시 아픈 거지!”

 

“...아닙니다.”

 

축 늘어진 눈가로 라레타를 올려다보자 라레타는 페드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걱정 마, 내가 끝내주게 보살펴 줄테니까!”

 

“...라가요...?”

 

라레타는 페드를 침대에 밀쳐 눕혔다.

 

아니, 잠깐. 아프지 않습-”

 

그리고 요란하게 재채기 한 번.

 

마실 거 가지고 올게! 약은? 밥은? 맞아, 밥은 먹었지?”

 

그러니까 수프 끓여 올게! 이거 먼저 먹어!

 

라며 입에 꽂아 준 것은 감기약이었다.

 

뭣도 모르고 삼켜버린 덕분에 머리가 핑 돌았다.

 

“...이런 것은 괜찮으니까, 신경을...”

 

옮기면 안되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급격하게 잠이 온다.

 

밀어내는 것인지 이리 오라는 것인지, 허우적거리던 손에 옷깃이 잡혔다.

 

정신을 차려야...

 

...차려야 하는데...

 

라가 나가지 않게 하려면.

 

“...정신을...”

 

차려야, 까지 생각하자 불이 꺼지듯 의식이 사라졌다.

 

 

 

 

 

 

 

꿈을 꾸었다면 악몽이었겠지만, 페드는 눈을 떴다.

 

희미한 의식이 잡히는 순간 벌떡 몸을 일으키자 방금 전까지 잠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의식이 또렷했다.

 

몸을 침대 밖으로 꺼내자 고용했던 상인들이 허리를 숙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에 익은 금발은 보이지 않았기에 페드는 자신의 차림도, 표정도 가다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난간을 넘어 한 번에 두세칸씩 훌쩍 뛰어넘으면서.

 

그리고 위층은 아주 조용했다.

 

넓은 옷자락에 걸린 촛대가 쓰러지거나 꼬리가 바닥을 건드리거나, 나무나 천에 걸린 귀가 퍼득퍼득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리톤이 열어둔 그대로 문이 열려있어서.

 

....!”

 

페드는 당장에 문을 박차고 나갈 뻔 했다.

 

등 뒤에서 아주 작게 바스락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뛰쳐나갈 뻔 했지만.

 

부스럭 소리에 발이 멈추었고 페드의 몸이 마법서만 뒤적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홱 돌았다.

 

몇 권인가 고른 책 더미 옆에 하얗고 동그란 천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올리자 그 아래에서는 눈에 익은 금색 머리카락이 정전기로 천에 붙어 흔들거렸다.

 

“...”

 

손을 내리자 다시 얇은 이불이 라레타를 덮었다.

 

페드는 자신의 손이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언제부터 쥐고 있었던 걸까.

 

얇은 가운이 구겨질 정도로 손에 꽉 쥐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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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AU] 짧게짧게

2019. 1. 15. 06:45 | Posted by 호랑이!!!

바닷가 한적한 곳, 한밤중에 물가로 가면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돌았다.

 

그러나 어른들은 밤중에도 잘 다녔으며, 늦게까지 놀아도 마을의 아이들은 매일 다시 만나 놀 수 있었기에 말 안 듣는 아이를 겁주기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장난이나 하고 놀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누군가 그 소문의 진상을 파악해 보자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제비뽑기로 뽑힌 것은 귀한 집 도련님인 라레타였는데 뽑힌 것이 누구인지 확인하자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라레타는 굳이 자기가 가보겠다고 나섰고 어른들 눈을 피해 작은 등불 하나만 들고 바닷가로 나왔다.

 

뭐야, 역시 별 거 없잖아!”

 

등불이 없어도 물결이 얇게 밀려와 부서지는 것이 훤히 보였다.

 

짭짤한 바다 내음에, 발가락 사이로 닿는 하얀 모래는 부드럽게 눌려 자국을 남기고 미끄러운 해초는 달빛에 반들거린다.

 

따뜻한 공기 사이로 이따끔 바닷바람이 귓가를 스쳐 서늘하게 만들어서 라레타는 살짝 발을 물에 담갔다.

 

수영 하고 싶다!”

 

그리고 이어 들리는 소리에 파드드드득 놀랐다.

 

하면 되잖아요?”

 

누구야?! 어디 있어!”

 

라레타는 팔짝 뛰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을 아이들 중에 자기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확인하는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마을 아이일 줄 알았다.

 

그러나 바위 뒤에서 나온 손은 매일 놀아서 부드러운 아이들의 것과는 전혀 달라서 라레타는 그리로 갔다.

 

바위 뒤에는 머리를 종종 땋은, 라레타 나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허리 아래로는 회색 지느러미가 쭉 뻗어 있는 정도.

 

너는 누구야?”

 

인어예요.”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 모를 애매한 빛깔의 눈이 깜박였다.

 

라레타가 조금이라도 덜 흥분했다면 여기서 이상한 점을 느꼈을 것이다.

 

바다가 반짝이는 것은 보이지만 어떤 색인지 알 수 없는 이 곳에서 초록색 눈이라니.

 

그러나 라레타는 책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인어를 만나고 있었고, 인어는 나쁜 사람들을 피해 도망쳤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있어 주어서 나쁜 사람들이 도망갔어요.”

 

정말로? 내가 다 쫓아 보냈어?”

 

그러니까 보답을 하고 싶어요. 내일도 여기 와 주지 않겠어요?”

 

그럴래! 그럴래!”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정말정말 비밀이라고 하고 라레타는 인어와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마을 아이들한테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라레타는 매일 밤마다 바다로 갔다.

 

인어가 산다는 멋진 동굴도 보고 진주조개를 받기도 하고 어른들은 위험하니까 안된다고 했던 밤바다에서 수영도 즐겼다.

 

 

 

 

 

 

매일같이 낮에 졸고,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는 놀지도 못 하던 라레타였지만 어느 날엔가는 낮에 나와야 했다.

 

성대하게 결혼식이 열리는 것 때문이었고 신부는 이웃 마을에서 온 사람이다.

 

신부는 하얗게 옷을 입고 꽃에 둘러싸여서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어른들은 신부가 곱다느니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도 몰래몰래 다가가서 꽃잎이나 하얀 옷을 살금 만지고 나왔다.

 

신기하니?”

 

!”

 

아이들은 신부가 손짓하자 조르르 모여들었다.

 

손을 깨끗하게 닦기로 약속하고 과자를 하나씩 쥔 아이들은 모여앉아서 아이 돌보는 일을 하다 왔다는 신부와 이야기를 했다.

 

누구네 양이 제일 털이 많이 나온다던가, 누가 사냥했는데 이만한 뱀이 나왔다던가, 그런 이야기들은 어느샌가 누가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경쟁이 되었다.

 

그래서 그 때 할머니가 말했는데, 밤중에 몰래 부두로 나간 애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 했다고!”

 

그거 저번에 라레타가 보러 간 거잖아, 그 땐 아무것도 없었거든?”

 

달라, 이건 부둣가로 간 거니까!”

 

그러자 신부는 갑자기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밤에 나가면 안 돼.”

 

계속 듣기만 하던 신부가 입을 열자 아이들이 다 쳐다보았다.

 

정말로 봤어. 밤에 끌고 가는 건 무서운 사람들이야. 쾅 하고 기절시키면 그대로 끌려 간다.”

 

보았는데, 금발이 해초처럼 흔들려서 질질 끌려 간다.

 

듣고 있던 라레타는 금발이라는 말에 신부의 옷자락을 당겼다.

 

그럼 인어는?”

 

인어?”

 

인어도 사람을 끌고 가?”

 

신부는 아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라서 애매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어...는 사람을 안 끌고 가지 않을까?”

 

그리고 어젯밤에도 밤새 놀았던 라레타는 꾸벅꾸벅 졸다가 신부 의상에 요리 그릇을 엎질렀고 아주 크게 혼이 나, 며칠이나 일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날 밤 라레타는 바닷가로 갔다.

 

인어는 얼굴에 남은 소금물 자국을 가리켰고 라레타는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신부며, 있었던 이야기며, 요리를 조금 엎질렀다던가, 그래서 내일부터는 무서운 어른들이랑 있어야 한다던가.

 

그 말을 들은 인어는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나랑 같이 물 속으로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물 속으로?”

 

인어로 만들어 줄게요.”

 

인어로 만들어 주고, 매일 예쁜 것을 보러 다니고, 그러다 어른들 화가 풀리면 몰래 올라오는 일.

 

라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바위 위에서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면 손이 꼭 붙들렸다.

 

꽃잎이 빽빽하게 라레타의 지느러미에서 돋아나고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말한 인어는.

 

퀸타페드는.

 

라레타의 손을 잡고 아주 먼 곳으로 헤엄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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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7. 16:55 | Posted by 호랑이!!!

.

 

페드는 파란 꽃병에 가져온 꽃을 꽂았다.

 

꼬마가 내민 너덜거리는 꽃과는 달리 활짝 피어 생생한 것은 향도 좋고, 다발로 있으니 짙다.

 

열어둔 창문에서 들어온 밤바람이 방 안을 한바퀴 돌자 구석구석에까지 향기가 퍼져서 만족스러웠다.

 

바람 때문인지 라레타의 귀가 파닥거렸는데, 그 일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페드는 가서 창문을 닫았다.

 

먼저 잠든 미코테는 따뜻해진 것이 만족스러운지 동그랗게 몸을 말고 파묻혔다.

 

이불을 조금 더 위로 끌어올려 덮어주고 페드는 라레타를 내려다보았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기계가 작동하듯 손이 라레타의 발목으로 내려가 쥐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아프지 않게 조이지 않게 감싼 손아귀는 풀리지도 않을 만큼 단단하게 쥐었는데.

 

그런데도 라레타는 가만히 잠들어 있어서.

 

페드는 라레타를 내려다보다가 한참이 지나 손을 떼었다.

 

그제서야 눈이 한 번 깜박였다.

 

잊고 있었다는 듯 그쳤던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자다 깨어난 듯이 부스스한 움직임으로 페드는 파란 꽃병을 침대 옆으로 옮겼다.

 

유리창 너머의 달빛에 꽃 위로 그림자가 졌다.

 

그물무늬가 꽃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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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싸웠던 어느 날

2018. 3. 22. 03:47 | Posted by 호랑이!!!

 

“....”

 

“....”

 

“...”

 

“......”

 

집사 바리톤은 주인인 페드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놀다가 아무거나 주워가더라도 화를 내지 않았고 무리하게 일을 맡기거나 장비도 그럭저럭 괜찮고 보기에도 좋은 것으로 맞춰주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은 잘 모르지만 흑와단의 나름 높으신 분이라고 하는데다 비술서만 들면 어디 가서 죽어 오지도 않았고 과묵하니 보기 멋있는 사람이었다.

 

었다라고 말하느냐면, 커르다스산 게 두 마리가 든 양동이를 들고 하늘잔마루의 아파트 문을 여는 순간 페드가 보였기 때문이다.

 

커다란 이불 뭉치에 말을 거는 페드가.

 

“...주인님?”

 

그러나 페드는 자신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대답은커녕 시선도 주지 않는다.

 

“..., 왜 화가 났습니까?”

 

너는 왜 이불에 말을 거는 건데?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낀다지만 이불까지 언약자분으로 보이는 정도의 콩깍지는 어디서 끼어 오는 걸까.

 

왜 이러는 걸까.

 

주인님.”

 

무례하지만 어깨를 잡았는데 페드는 그제야 저를 한 번 보더니 저리 가라는 듯 손을 젓는다.

 

아니, !?

 

바리톤은 이불에 대고 말을 거는 주인을 쳐다보다 양동이를 방 한구석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오늘이 내가 은퇴하는 날인가보다.

 

바리톤은 두 사람 분 식사라고 하기에는 과하게 차려진 식탁 위의 음식을 보았다.

 

전채로는 완두콩 수프에 파리풀 샐러드, 에메랄드 수프가 있고 메인으로는 피피라 피라 찜, 코카트리스 미트볼, 미코테식 꼬지도 몇 개나 있는데다 디저트로는 마도사 모양 쿠키, 초콜릿, 바바루아, 마롱글라세, 사과가 들어간 플로냐르드에 마실 것으로는 차가운 과실주와 얼린 칵테일에 요리사가 본직이라는 주인님이 만들기 귀찮다고 딱 한 번 만들어보았다는 코코아까지 있다.

 

차갑게 식은 것을 보아하니 만들어진지 몇 시간은 된 것 같은데 손을 댄 흔적조차 없잖아? ?

 

방 안을 둘러다보던 바리톤은 더 심상찮은 것을 보았다.

 

먼지 앉는다고 뚜껑도 못 열게 하던 피아노는 뚜껑이 열려 있고 악보도 펼쳐져 있다!

 

잘 보니까 라님이 좋아하던 물건이랑 음식이 온 방안에 있잖아!? 게다가 꽃병의 꽃들도 신선하고 갓 채집한 것들로 새로 싹 바뀌어있고!?

 

“...,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

 

바리톤은 대답 없는 이불뭉치에 대고 말을 거는 주인을 보다가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틀림없다.

 

저 몹쓸 주인이 즐거운 던전이니 뭐니 하면서 꾀어내어서 최소 네 명이서 가야 하는 곳에 또 두 명이서 갔거나 둘이서 공격적인 마물을 잡았을 거다.

 

비술서만 들면 무적이라는 저 주인이야 아무 문제 없었겠지.

 

하지만 이제 겨우 갈론드제 옷을 모으기 시작하는 라님은... 라님은 아마.....

 

키 크고 험상궂게 생겼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아우라, 바리톤은 왈칵 치밀어오르는 눈가를 닦을 생각도 않고 주저앉아 바닥을 내리쳤다.

 

라님!!!!”

 

깜짝이야! 뭔데요?”

 

라님!?”

 

치지 마십시오, 아랫집에서 올라옵니다.”

 

아니, 라님이 어째서 여기에?”

 

왜긴요, 난 원래 여기 있었는걸?”

 

라님이 어째서 여기에!?”

 

소리 지르면 옆집에서 항의가....”

 

난 계속 여기에...”

 

바리톤은 진정하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함성을 내질렀다.

 

라님이 어째서 여기에!!!!!!!!”

 

 

 

 

 

 

페드는 옆집과 아랫집, 윗집 사람들이 몰려온 것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죄송합니다, 집사 소리였습니다, 집사가 전사냐고요? 아니오, 어부입니다, 그래요 놀랍지요, 타이탄 심핵을 뽑아올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아마 그 쪽으로 재능이 있는가봅니다 등의 소리가 들리고 바리톤은 라가 건네는 차가운 과실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두 분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퀴니가, 내가 싫대.”

 

그리고 페드는 다시 방 안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싫대.”

 

누가요?”

 

퀴니가.”

 

누구를?”

 

나를.”

 

바리톤은 일단 진정을 위해 접시를 찾아 식탁 위에 가득한 코카트리스 미트볼을 덜었다.

 

질긴 고기를 먹기 쉽도록 으깨서 한 입 크기로 동그랗고 솜씨 좋게 빚은 미트볼은 토마토소스와 놀랍도록 잘 어울렸고 맛도 좋다.

 

차가운 과실주나 이제는 녹은 칵테일을 번갈아 마시며 배를 채운 바리톤은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시무룩해 보이기도 하고 화가 나 보이기도 하는 주인의 언약자를 바라보았다.

 

모험하러 나왔지만 위험도 고난도 싫어하는 미코테를 위해 방 안에 양 깔개와 털실바구니를 놔주고 벽난로를 설치해주었는데? 음악이나 연주라면 쥐뿔만큼도 몰라서 다른 거 다 하는 동안 음유시인에는 손도 안 댄 아우라가 방 안에 하프시코드와 악보대를 놨는데? 마물 잡으러 가자는 말도 던전에 가자는 말도 다 무시하고 미코테 옆에 붙어있기도 하고? 둘이 만난 초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풀을 캐거나 캔 풀로 천을 대량생산하던 아우라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좋아라 하는데?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새벽에서 보내는 연락도 전부 차단해버리고 어디 간다 싶으면 쪼르르 따라가는 저 아우라가?

 

그게 싫어하는 거면 이 세상에 사랑은 없고 이 에오르제아의 발렌티온 이벤트도 분홍색 염료를 팔기 위한 상술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당사자가 아니지.

 

바리톤은 무슨 일이냐고 다시 라에게 물어보았다.

 

퀴니가.”

 

주인님이.

 

내가.”

 

라님이.

 

안 예쁘대.”

 

?”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장터게시판 앞에서 어느 옷을 입혀줄까 어느 염료가 예쁠까 하던 저 인간이?

 

설마 커플끼리 장난으로 못나니~하는 그걸 오해한 건 아니겠지.

 

페드가 들었다면 나는 장난으로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겠지만 아쉽게도 페드는 아직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중이었다.

 

어젯밤에 뭐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야-”

 

어젯밤이라면 어부 집사인 자신과 소환사 집사인 테너가 각기 먼 곳으로 집사수행을 떠났던 때다.

 

“....해서 퀴니가 라는 섹시하다기보단 귀엽죠라고 했어요!”

 

그게 왜...?”

 

내가 안 섹시하대! 안 예쁘대!”

 

아니 그게 그 얘기가 아닌데.

 

장난으로 커플끼리 아기멧돼지니 하는 별명을 붙이는 수준까지도 못 간다.

 

왠지 눈앞이 흐릿하다.

 

바리톤.”

 

, 주인님.”

 

이거 갖고 어디 수행이라도 다녀오십시오.”

 

페드는 집사 급료 두 닢을 내밀었고 바리톤은 마롱글라세 몇 개를 들고 후다닥 방에서 나갔다.

 

.”

 

“...”

 

라는 팩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에 떨어졌던 이불도 얼굴까지 돌돌 감아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쪽으로 쫑긋 세운 귀랑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 정도.

 

저 보지 않을 겁니까?”

 

“...”

 

페드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 정말 이것까지는 되도록 안 꺼내려고 했는데.

 

“....”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귀는 더 쫑긋하게 서고 이불이 단박에 내려가서 반짝거리는 눈이 나타났다가 자신과 마주치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안 돼, 안 돼, 못 올려요. 안 돼.”

 

싫어, 올릴래!”

 

안 돼와 돼만 반복되는 한차례의 다툼이 끝나고 라는 귀 끝까지 이불을 올려 덮었다.

 

페드는 의자를 끌어당기고, 손톱과 비늘에 마구 긁혀 아까보다 후줄근해진 이불에 대고 말을 했다.

 

아까 집사랑 이야기하는 거 다 들었습니다.

 

라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이불이 조금 내려갔다.

 

제일 섹시하고.”

 

이불이 조금 더 내려갔다.

 

제일 실력 좋은 모험가! 제일가는 음유시인! 희망의 빛! 최고의 미코테!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라를 휘감은 이불이 조금씩 내려갔다.

 

조금씩 내려가던 이불이 마침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페드는 팔을 활짝 벌렸다.

 

이제는 저를 봐 줄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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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들

2018. 1. 30. 13:37 | Posted by 호랑이!!!

요즘은 이런 활동사진 같은 것이 아주 유행입니다! 한 번 보세요!”

 

...라며 집사가 건네준 것에는 손으로 쓴 듯한 라벨이 붙어 있었다.

 

“...활동사진이라.”

 

요즘에는 그거, 영화라고 한다?”

 

지나가는 다른 집사가 말하는 것을 보니 이걸 활동사진이라고 부르는 건 이 집에서는 저 집사, 바리톤밖에 없나보다.

 

퀸타페드는 더치스라고 쓰여진 것을 내려다보다가 어쨌든 재생을 해 보았다.

 

벽 한 면에 가득 차는 영상은 귀족의 로맨스 영화인 것 같았다.


주인공인 듯 한 귀족 아가씨는 삼십분 동안 어떤 못된 망나니에게 빠져서 사랑도 맹세하고 결혼도 맹세하고 귀한 보석도 주어버리는 일을 하고 마침내는 결혼도 하기 전인데 침대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에 빨간색 표시가 있었던 것 같기도.


재료가 남았다며 대량으로 만든 마도사 모양 쿠키에서 모자만 떼어 먹던 라는 얌전히 있던 꼬리를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흔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아무리 전체이용가래도! 저렇게 대충 하다니,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페드는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끓여놓은 향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매일 애정을 담뿍 담은 일들을 하다보니 저 정도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어쨌거나, 나중에 다 보면 테이프에 달려있던 빨간 스티커는 떼 둬야지.


이 집에서는 라가 생각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드디어 말!"


"축하합니다."


잘했으니까 오늘 저녁에 칵테일을 살짝 얼려 드리지요.


안주는 미코테식 고기산적이랑 버섯산적이랑... 단 것으로는 무화과 바바루아를...


재료목록을 생각하느라고 입으로 중얼중얼 말하고 있는데 손이 꼬옥 잡혔다.


페드의 손이 아니고 라의 손이.


마치 자기 손이 잡힌 것마냥 펄쩍 뛰고 페드는 라의 손을 불타는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라의 손을 잡은 것은 림사 로민사의 작은 꼬마아이.


어디서 구르다가 왔는지 바짓단에는 풀물이 들어 있고 넘어져 구른 상처 따위가 있고 손바닥에는 꽃이 있다.


꽃.


하얀색, 급하게 왔는지 꽃잎이 몇 장 떨어져 있고 손에 너무 꽉 쥐였던 탓에 줄기가 곧 구부러질 것 같은, 꽃.


꼬마는 그 꽃을 내밀고 있었다.


"라!...씨!"


"..."


이 꼬마는 뭘 하려고 하는 걸까.


내려다보는 눈빛이 흉흉해지는데도 꼬마는 여전히 라만 쳐다보고 있다.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예쁘고, 천사같아! 요! 결혼! 해주세요!"


뭐라고.


노려보는 눈빛이 더 살벌해지더니, 페드는 어디론가 성큼성큼 가서 꽃다발 커다란 것을 가지고 왔다.


똑같은 하얀 꽃이지만 훨씬 송이도 크고, 급하게 다듬어온 가지를 직접 짠 베로 한 바퀴 묶은 것을.


"그거, 숨은 자원 아닌가요?"


"나는 전부, 다 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얼핏 점잔 빼는 듯한 목소리로 꽃을 내밀자 라는 꼬마 앞에 허리를 숙였다.


"나는 이미 저 사람이랑 살고 있거든, 그러니까 결혼은 할 수 없어."


페드는 그것 보라는 듯한 표정을 아이 쪽으로 한껏 지었다가 라 쪽으로 돌아서며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지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라의 꼬리는 기분좋게 살랑였다.


"기분 좋아 보이네요."


"역시 나는 예쁘고 섹시해"


그런 말이라면 이미 하루에 다섯 번씩 해주고 있는데.


역시 좀 더 자주 해야겠지.


'그리고 역시'


페드는 마악 아파트 문을 열려고 하는 라 쪽으로 허리를 숙여서 안아들었다.


"새벽 쪽으로 말 해두십시오. 내일부터 당분간은 또 못 나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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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힐러가 되었다

2017. 9. 20. 15:36 | Posted by 호랑이!!!

오늘도인가.

 

페드는 천구의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겨우 다섯 마리 정도의 몹을 데려와 놓고 피가 찰랑거리는 게 말이 되느냐.

 

어제 라랑 취해서 휘두른 술잔이 이것보다는 덜 찰랑거렸겠다.

 

비술서 후벼팔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구의를 집어들자 보이기 시작한다.

 

시점의 변화란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들어 왔지만.

 

아니었다.

 

페드는 끊임없이 마법을 캐스팅하면서도 길잡이를 빤히 살펴보았다.

 

머리... 상의... 허리띠... 허리띠!!! 바지... 신발... 신발... 뭐 좋아... 귀걸이... 귀걸이!? 목걸이!? 목걸이!!! 팔찌! ...... 반지....!!!!’

 

저게 허리띠인가.

 

지나가던 새끼 커얼이 발톱갈이하는 곳에도 못 써먹을 너덜너덜한 저게 무슨 몸을 지켜주는가.

 

저게 목걸이인가.

 

괴물새가 깃털로 스치기만 해도 박살나서 목에 박힐 것 같은 저게 무슨 방어구인가.

 

저게 귀걸이인가.

 

덜렁덜렁 뛰어가다가 귀째로 끊어먹을 것 같은 저건 대체 왜 달고 있는가.

 

끊임없이 다쳐서 내가 힐을 끊임없이 퍼부어도 원래 체력 이상으로 회복되지도 않는데 왜 저 새새끼는 나를 보고 있나.

 

목숨줄만 붙여놓으면 된다는 의미인가?

 

할 수만 있으면 그 줄.

 

끊어먹고 싶다.

 

집에 가서... 얼린 칵테일 만들어야지... 무화과는 있고. 야크 우유도 냉장고에 있는 거 봤으니까 가는 길에 바나나만 사 가면 되겠다

 

길잡이님 혹시 악세서리 말입니다...”

 

?”

 

말 하고 있잖아!!! 말 하고 있잖아!!!

 

말 하는 도중에 중간보스한테 뭐 던지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바나나 한 송이 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봉투에 바나나를 소중하게 담아서 안고, 페드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 오늘 뭐 먹고 싶습니까? 안주 종류로 고르라면.”

 

도도 통구이! 라노시아 버전으로~”

 

그럼 가는 길에 도도 고기랑 속재료를 사서 가야겠구나.

 

오늘 던전 갔다 왔잖아요. 활 쓰는 건 좀 손에 익나요?”

 

! 조금 더 강해진 것 같아.”

 

웃는 모습을 보며 페드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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