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는 서랍을 열었다.
서랍의 가장 아래쪽에는 노랗게 바랜 구두상자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으레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보물상자'에는 조개껍데기나 오랜 편지 따위가 자질구레하게 들어있기 마련이었으나 피터의 상자에는 낡은 옷 한벌 뿐이었다.
몸이 자라서 옷을 입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옷을 넣어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낡아 색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솔기 하나 뜯어지지 않고 고이 모셔진 옷은 가슴팍의 검은 얼룩 외에는 아무 흠도 없었다.
검은 얼룩.
얼핏 잉크처럼 보이는 그것은 사실은 피로.
그 주인은... 이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생김새나 목소리도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지만 안겼을 때 포근했던 품이나 다정하던 말투, 자신을 끊임없이 보살펴주던...
파란 머리였다.
음, 이건 확실해.
눈도 파란색... 이었나? 그랬겠지.
그리고 하얀색 넥워머...가 있었다.
얼음벽이 둘 사이에 서 있었고... 그 얼음벽 너머로 형이 있었고.
그리고 정말 투명하던 벽에 극장의 커튼이 막이 내리듯 피가 흘러내렸다.
피터는 옷을 집어들었다.
이제는 옷이 마치 인형의 옷처럼 작게 보였다.
옷에다 코를 묻고 한 번 숨을 들이쉰 뒤 다시 차곡차곡 개어 상자에 넣었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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