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든의 사람들은 나이가 차면 검을 받는다.
그 검은 지금까지 썼던 목검이나 가검, 혹은 날을 무디게 만든 예식용 검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홀든의 이름 아래에서 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글 홀든이 검을 받을 때 반대했다.
이글은 아직 사람의 목숨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이글은 아직 공부가 더 필요한 젊은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위의 두 형의 반응은 판이하게 갈라졌다.
다이무스는,
‘네가 그만한 무게를 보여주지 않아서다. 어른스럽게 굴어라’
벨져는,
‘남들이 널 판단하게 하지 말고 네 손으로 선택해’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글이었지만 그때만큼은 벨져의 의견을 수용해서 한참 이글에게 검을 주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분분한 안으로 들어가서 대뜸 가장 무겁고 긴 검을 채어 나왔다.
“왜 하필 가장 길고 무거운 검이었나.”
이글은 남들이 말하는 종류의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신경써본 적 없었지만, 다이무스가 묻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 편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너답군.”
그래서 다이무스가 짧게 뱉은 마지막 말에는 상처받았었나 보다.
‘아니, 상처 같은 거창한 것 말고, 그냥 한 대 맞은 정도’
...라고 이글은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글이 방에 들어가서 본 것은 수많은 검이었다.
전부 홀든을 위해 만들어지는 고급품의 것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취향과 특기에 맞게 홈이 더 패어있다던가, 모양이 다르거나, 날이 셋 달리는 등의 차이가 있는 것들이다.
가장 이글의 눈을 끈 것은 검집에 날개가 음각되어 가죽끈과 깃으로 장식된 화려한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눈을 끈 것은 검신이 두텁고 무게감이 강한 짧은 검.
어쩌면 그것이 이글에게 더 잘 맞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글은 그 중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것을 집었다.
그는 절대로 벨져처럼 남의 시선과 상관없이 살 수 없었으니까.
그에게는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빨리 어른이 되어 한 몫을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옆에 나란히 서거나, 혹은 그 이상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길고 무거운 검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어른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 검을 쉽게 잘 다룬다면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처음에는 검이었던 것은 계속 바뀌었다.
형을 따라 영국으로 간다면, 다른 세력에서 나 자신을 증명한다면, 나 혼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처음에는 그저 잘 보이고 싶은, 이었다.
하지만 어른으로 인정받기 위한 목표가 바뀔수록 마음 역시 바뀌어갔다.
어느 날 이글의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본가로 가자.”
“...얼씨구, 그 말을 왜-애 벨져 형이 할까나...?”
벨져는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 망나니 혼자 사는 것 치고는 말끔한 집이군.
덧붙여 집 안에서 셔츠는 고사하고 속옷이나 걸칠까 싶던 녀석은 의외로 당장 외출해도 이상하지 않은 차림이었다.
“집에서 네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축하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축하? 무슨 축하? 아버지... 하암, 승진이라도 하셨어? 아니면 어머니? 아니면 삼촌들이나 뭐 문하생이 어디 나가서 훈장이라도 따 왔대...?”
태평한 척 하품을 하는 저 머릿속에서는 아마 최근 신문이나 벨져 자신, 혹은 다이무스 형의 태도에서 본가와 관련된 무언가가 없나 팽팽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이무스 형인가? 그 형 요즘 외출하고 출장이 잦더라니.”
“그래.”
“뭐, 축하는 축하고. 어차피 트와일라잇으로 돌아올 거 아냐. 난 됐어.”
벨져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글에게 어떤 말을 해야 데려갈 수 있을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훈장이라던가, 어디에서 공적을 세우거나 하는 시시한 일이 아니다.”
“하! 하하하하, 형이 그런 말을 하니 되게 웃기네!”
이 웃음은 꽤나 진심이다.
이글은 폭소를 터뜨리고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 탁탁 털었다.
“그럼 뭔데?”
“결혼이다.”
벨져는 자신의 말 한 마디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이글의 미간이 찡그려졌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내가 잘 못 들었는데 말이야, 뭐?”
“상대는 아버지 아는 분의 막내딸이다. 정치적으로 보아도 양질의 결합인데 그 상대가 형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더군.”
“...한 5분 기다려, 옷 입고 나올게.”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벨져는 바깥에 서 있는 쪽을 택했다.
이글이 들어가고, 안쪽에서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딴에는 제 귀에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저 안쪽에서 성질을 부리는 모양이지.
정확히 4분하고 45초가 지나고 이글이 뛰어나왔다.
벨져와 이글은 기차에 몸을 실었다.
“...조용하군.”
“뭐가?”
“그런 여자랑 형은 어울리지 않아, 못해도 3일이면 형에게 질려서 결혼을 후회할 걸, 형에게 결혼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야, 왜 하필 다이무스 형이랑 결혼하는 거야. ...같은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만.”
“...그건 본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형은 성실하니 마음이 없더라도 가정에 충실할 것이다, 그렇다고 집안을 떠난 너나 기사단에 뼈를 묻을 나와 결혼할 수는 없잖느냐. ...라고 할 거잖아.”
벨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다들 이글의 등장에 대해 놀라워하고 우려를 표했기에 이글은 축하만 하고 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해야 했다.
이야기를 하고, 행사를 하고, 연회를 즐기고, 그 모든 일이 끝나 쉴 즈음은 밤이었다.
이글은 방을 나섰다.
갑주도 없고, 장갑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맨손으로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구나.”
문을 열자 포도주 향이 물씬 풍겼다.
탄야의 독만큼이나 어둡고 무거운 것이 열린 문으로 흘러넘쳐서 이글은 잠시지만 익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글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물속으로 들어가듯이 다이무스의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형의 일인데, 와야지.”
다이무스는 티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간혹 도자기 찻잔이 놓이고 그보다 더 빈번하게 서류나 편지가 쌓이는 모습을 보았지만 술병이 놓인 것은 처음 본 것 같다.
잔은 없고, 술병이 몇 개 굴러다녔다.
“잔은?”
“마시다보니 필요 없어져서 씻으라고 내놓았다.”
이글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결혼.”
방이 어둡다.
이글은 방이 어두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축하해.”
“...”
“선물은 없어. 그야~ 나 형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도 오늘 처음 들었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구도 나한테 집 얘기는 해주지도 않고~”
“네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잖느냐.”
“아하하, 그랬나?”
방안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이글이 웃을 때마다, 다이무스가 입을 열 때마다 청소한지 오래된 물건을 건드리듯 무거움이 피어올랐다가 풀썩 가라앉았다.
“있잖아, 형.”
“뭐냐.”
“사람이 결혼하면, 어른스러움이 늘어나는 걸까.”
다이무스는 그 말에 고통스러운 듯한 소리로 웃었다.
“나도 내가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데, 그럴 리 없겠지.”
“형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고?”
나는?이라고 이글은 묻고 싶었다.
그 마음을 읽은 것인지, 다이무스가 이어 말했다.
“너는... 그렇게나 다 큰 것 같은데.”
“...내가, 어른 같아?”
“가장 무겁고 긴 검을 휘두르고, 혼자 힘으로 뭐든 해내고 있으니.”
다이무스는 이글 쪽으로 새 병을 내밀었다.
“마실 테냐.”
이글은 그 병을 받았다.
한참이나 아무 말 없이 마시다가.
...아니, 사실은 시덥잖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대화를 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글이 입을 열었다.
몇 년이나 망설인 말이었다.
“알고 있었지?”
내가, 형을.
다이무스는 마시려고 들었던 병을 천천히 내렸다.
눈이 느리게 깜박였다.
“만약에 내가 형한테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뭔가 바뀌었을까?”
만약에 네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했더라면.
다이무스는 몇 가지 가능했으리라고 짐작되는 일을 꺼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이 영국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같이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같이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다이무스가 말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을 것이다.”
이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나서기 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 무거운 향에 익사하고 싶었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이글의 발은 움직였고, 사용하는 방으로 돌아갔다.
열린 창문에서 맑은 바람이 꽃과 풀의 향기와 탄산수에 넣는 레몬의 향을 싣고 들어왔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공기다.
차라리 어른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이글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혼자 힘으로 뭐든 해낸다는 내가 형에게 묶여서 말조차 하지 못해.”
차라리 어리다고 해줘.
결혼하지 말라고 울면서 떼쓰게 해줘.
숨을 쉴 때마다 폐 속의 무거운 공기가 사라진다.
이글은 코와 입을 눌러 숨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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