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도는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 거처로 향하다가 익숙한 사람과 마주쳤다.
새하얀 가운에 하얀 양 같은 곱슬머리.
쯧, 혀를 차고 지나치는데 그 쪽에서 히카르도의 손목을 잡아챘다.
“리키.”
이제는 차라리 천국처럼 느껴지는 어릴적부터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가 달콤하게 울렸다.
“나 봤잖아, 그런데 그렇게 지나가기야?”
“...여기엔 웬일이지?”
남들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인데도 잘도 ‘믿음직한 의사’ 같은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인사는 했어야지.”
좁은 골목.
힘 없는 의사라지만 마음먹고 한 번 밀자 히카르도의 등이 벽에 부딪혔다.
“너랑 내가 이제 인사나 주고받을 사이는 아닐텐데.”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도 했어야 했어.”
왜냐하면 너는 내 리키고, 나는 네 데샹이니까.
빙그레 웃는 입매가 선량해 보였다.
히카르도는 손목을 탁 털어 까미유의 손아귀에서 빼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미유는 그 좁은 골목에서 다시 또 한 걸음 다가와 고개를 바싹 들이민다.
“안녕, 리키.”
갈색 눈동자 위로 녹색빛이 일렁여서 일견 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눈에 홀리면 안 돼.
히카르도는 입술을 꽉 물었다.
일렁일렁 물들어가는 눈동자를 노려보다가, 그를 밀쳐내는 대신 옆으로 몸을 빼었다.
으르릉 목 울리는 소리를 내며.
까미유는 순순히 비켜주었고 이내 발걸음은 탁탁탁 빠른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잘 가, 리키.”
내 손에 잡힌, 네 목에 감긴 이 빨간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아.
제아무리 네가 몸부림친다 하더라도, 이렇게 내가 다가와서 줄을 당기면 끊어질 듯 하다가도 다시 이어지지.
-아, 이런 더러운 골목에 있으려니 하얀 옷이 더러워지겠어.
빨리 나가야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까미유는 히카르도가 뛰어간 방향과는 반대로 걸어갔다.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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