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이 있나 보네요.”
마틴은 팔랑팔랑 책 한 권을 끼고 복도를 지나가는 하랑이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생일이야!”
“아, 그랬었죠.”
그러고보니 제가 누구 생일이라 선물을 준비했는데~
라던 마틴은 하랑이의 기대감이 높게 치솟자 냉큼 한 마디 찬물을 끼얹었다.
“저녁에 가져다 줄게요.”
“그게 뭐야! 사실 아무 준비 안 했지!?”
“진짜거든요!”
아, 아침부터 하랑군이랑 웃고 떠드니까 좋네.
좋아, 이 좋은 기분으로 티엔에게도 한 마디 말을 건네 줄까.
마틴은 웃느라 가빠진 숨을 골랐다.
잠시 브루스가 하랑을 부르는 것이 보여서, 후우 숨을 마저 고르고는 티엔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티엔 정, 그래도 선생님인데 하랑군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해 줬어요?”
그러자 이 티엔이라는 작자는 더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생일이 뭐가 대수라고.”
뭐라고요!!!
마틴은 그 말에 입을 쫙 벌려서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봐요 티엔 정!”
“오늘은 10월 21일이다. 365일 중 단 하나. 그리고 그 때 이하랑이 태어난 것 뿐이다.”
마틴은 냉큼 이하랑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아직도 브루스씨와 얘기하느라 이쪽은 보지 않고 있다.
티엔이 뭐라고 하는지도 아직 못 들었겠지, 아마!
마틴은 한껏 목소리를 죽여 소근거렸다.
“당신 제정신이예요? 아니, 인간은 맞아요?”
“자네가 사람에게 이렇게 막 말하는 것은 또 희귀한 일이군.”
“남의 태도보고 ‘오오 희귀하다~’하면서 감상할 때가 아니거든요! 이 목석!”
불쑥, 하랑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둘이 또 싸워?”
“싸우는 게 아니다. 마틴이 일방적으로 시비를 거는 거지.”
이... 이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마틴은 으득,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 하랑군한테 일러바치고 싶지만 그랬다간 상처받을지도 모르니까 참아주는 거예요!
아 정말, 티엔 정은 평생 나한테 감사한다고 외쳐야 해.
“헹, 우리 마틴 형씨는 그런 짓 안 하거든!”
하랑이 마틴에게 냅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편을 들자, 마틴은 자연스럽게 하랑이를 끌어안으면서 티엔에게만 보이도록 혀를 내밀었다.
“...이하랑, 내 말은 안 믿나.”
“평소에 착하게, 바르고 고운 옳은 말만 하면서 사셨어야죠.”
마틴이 우쭐해진 표정으로 쳐다보자 티엔은 어딘지 심통이 나 보이더니, 손목시계를 툭툭 건드렸다.
“이하랑, 지금 뛰어가도 시간에 늦을 텐데. 그리고 마틴 챌피, 회의는 30분부터 일 텐데 지금은 20분이다.”
“헉 늦었다! 싸부, 마틴 형 이따 봐!”
“아 정말! 이따 봐요 하랑군!”
그래도 오늘 저녁시간에는 다같이 식사도 하기로 했고, 하랑군한테는 비밀로 케이크도 샀고!
선물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샀으니 내가 제일 나으렷다.
마틴은 한껏 기분 좋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들어갔다.
그 기분은 저녁시간까지 이어졌지만,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한 손에는 케이크 상자, 다른 쪽 손에는 커다란 인형을 안고 모이기로 한 하랑의 방문 앞에서 티엔을 마주쳤으니까.
심지어, 빈손이다!!!
“티엔 정! 아까 그런 말을 했어도 이렇게 먼 이국까지 따라온 제자한테 줄 작은 무언가라도 준비했을 줄 알았는데!”
“마틴,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하랑은 내기에 졌기 때문에 온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기특함도 무엇도 없어.”
이...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마음만 읽혔더라면 당장 기억을 뒤져서... 아니면 최면을 걸어서 잊지 못할 흑역사를 헤집어 주고 싶네요!
으르렁거리는데 저만치에서 브루스 보이틀러가 이하랑의 눈을 곰 앞발로 가리고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 이럴때가 아니지! 빨리 선물을 방에다가...!
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더니.
상 위에는 이하랑이 말하던 조선 음식이 가득.
방 안에는 풍선과 촛불과 장미가 그득한 것이다.
“이 사기꾼.”
이런 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으니.
마틴이 티엔을 돌아보자, 티엔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만면에 띄웠다.
“아무 준비도 안 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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