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호랑이!!!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제님... ...”

 

“...형제님...”

 

어딘가 곤란한 듯, 망설이는 듯이 부르는 소리에 크나트는 길게 하품했다.

 

“...으응... 달링...?”

 

“...이 새벽에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으으음...”

 

크나트는 제대로 눈뜨지도 않고 얇은 허리를 더듬었다.

 

그러나 율리안은 넓적한 손이 닿자 조금 움찔했을 뿐, 피하지도 야단치지도 않아서 크나트는 손등으로 눈가를 꾹꾹 문지르다 슬며시 한쪽 눈을 떴다.

 

야한 상황인가?”

 

“...아닙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에 곤란해보이는 얼굴 윤곽이 드러난다.

 

이런데 왜 야한 상황이 아니지? 크나트는 반쯤 몸을 일으킨 율리안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 시계를 확인하였더니 새벽 네 시.

 

네 시에 율리안이 자신을 깨울 일이 있나?

 

역시 야한 상황 아니야?

 

섰어?”

 

“...아닙니다. 그게... 이 시간에 정말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갑자기 폰 프라이모에서 파는 칠리 프라이즈가 너무 먹고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안 될까요?”

 

칠리 프라이즈 맛있지.

 

감자튀김에 새콤달콤한 칠리 소스를 듬뿍 뿌리고 두 가지 치즈를 쌓아서 오븐에 녹여 준다고.

 

율리안은 거기에 다진 고기를 추가하는 걸 좋아하지.

 

몇 유로 더 내면 나초도 먹을 수 있고.

 

세트로 된 것을 시키면 맥주나 탄산음료도 마실 수 있었다.

 

이 새벽에 갑자기 먹고 싶어서 눈을 뜨다니, 건강하기도 하지.

 

그보다 율리안이 뭔가 먹고 싶다고 자신을 깨우다니 기특도 하고,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그 율리안이 이 시간에 심지어 자신을 깨워서 말을 하겠어.

 

크나트는 대충 바지를 꿰어 입고는 자동차 열쇠를 꺼냈다.

 

폰 프라이모가 24시간 영업이라 다행이다.

 

차로 30분만 가면 되니 전화로 주문만이라도 먼저 해 둘까.

 

이전번에도 잘 먹는다 싶더라니 역시 마음에 든 모양이지.

 

슬쩍 돌아보았더니 율리안은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율리안은 큰 손이 덥썩, 제 뺨을 잡고 이마에 입맞추는 것을 가만 두었다.

 

잘 관리된 자동차는 이 새벽에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 볼륨으로 시동이 걸리더니 스르르 떠났다.

 

이 새벽에 갑자기 그런 게 너무 먹고 싶어지다니.

 

면목이 없는 걸.

 

율리안은 멋쩍은 얼굴로 몸을 일으킨 채 헝클어진 침대를 정리했다.

 

다녀오는 데에는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지금은 일어나서 방 정리도 조금 하고 식탁도 미리 차려 놔야-

 

하암, 율리안은 하품을 했다.

 

테이블 매트만 미리 깔아 두고...

 

삼십분만 자고 일어나자 역시.

 

율리안은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다시 푹신한 베개 위로 쓰러졌다.

 

 

 

 

 

한 손에는 폰 프라이모의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를 든 채, 크나트는 불 꺼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율리안이 자신을 내보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혹시 필요한 것이 음식 같은 게 아니라 자신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일 그 자체였나?

 

크나트의 손이 품 속의 너클로 향했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게 칠리 프라이즈를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놓고, 크나트는 안방 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리 하나 없이 열린 문 안은 자신이 나가기 전과 거의 같았다.

 

잘 닫힌 커튼.

 

천장에 잘 매달린 커다란 텔레비전, 마찬가지로 잘 닫힌 욕실 문.

 

조금 더 문을 열면 멀쩡한 침대가 보이고, 그 위에 엎어진 율리안이-

 

달링?”

 

급히 다가가면 숨을 쉬고 있다.

 

덧붙여서 그저 잠든 것 뿐인 것 같고.

 

한동안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크나트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냉큼 율리안을 바르게 눕혔다.

 

그 서슬에 깬 율리안은 길게 하품을 하다가 자신이 사람을 새벽에 내보내놓고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들었다는 것에 화다닥 일어나 앉았다.

 

, 죄송합니다. 얼른 식탁이라도 차리겠습-”

 

누워있도록 해. 당장.”

 

아닙니다. 혼자 잠들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율리안은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뜨뜻한 손이 자신을 눕히자 반쯤 뜬 눈으로 진지해 보이는 크나트를 올려다보았다.

 

프라이모는 데워 줄테니 내일... 자고 일어나서 먹도록 해.”

 

“...그렇다면 정말 죄송하지만 먼저 수면을... 하아암. 저도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임신 초기에는 잠도 많이 오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니까. 걱정 말고 자.”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뭐라고요?”

 

 

'율리케랑 율리안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양이  (0) 2023.04.11
비슷한 사람의 후속편 2  (0) 2023.02.15
[크더건/율리안] 비슷한 사람의 후속편  (0) 2022.11.05
[크더건/율리안] 비슷한 사람  (1) 2022.10.30
호괏au  (0) 2022.08.10

고양이

2023. 4. 11. 02:36 | Posted by 호랑이!!!

애오오옹-’

 

율리안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올렸다가 검은 털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로군.

 

고양이는 꽤 유익한 동물이다.

 

쥐도 잡고 벌레도 잡고 병도 막아준다.

 

개인적으로 따로 알고 지내는 고양이는 없지만 과거 성당의 어느 형제님은 따로 밥을 챙겨준다던가 대화를 나눈다던가 한다는 소문이 있었지.

 

동물의 생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왜 이런 사람 많은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들어올리고 흐물텅하게 있는 걸까?

 

율리안은 읽던 책을 덮어 테이블에 얹고 담벼락 위의 고양이를 빤히 보았다.

 

에스프레소 한 잔...”

 

노천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은 으레 손님이 주문한 음료에 대해서는 주문이 나왔다고 알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

 

그러나 종만 다를 뿐 닮은 둘이 눈싸움을 하는 것을 알아차린 주위의 손님들이 입 앞에 손가락을 대었고 결국 아르바이트생은 테이블 위에 조용히 잔만 내려놓았다.

 

달그락.’

 

한편 율리안은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도 그 녹색 눈으로 율리안을 보았다.

 

율리안은 고양이를 보며 의도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자세라는 평을 내렸다.

 

어쩌면 고양이도 율리안을 보며 인간 치고는 희한하게 고양이 같은 부동세로 자신을 보고 있다고 평을 하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만 발바닥에 분홍색 부분이 다 드러나도록 발가락을 쫙 편 채 저렇게나 오래 있었는데 쥐가 나지 않는단 말인가?

 

게다가 여기는 다시 말하지만, 인간 천지다.

 

고양이보다 스무 배는 커다란 생물들이 득시글한 곳인데 왜 저렇게 무방비한 태도로 이 곳을 돌아다니는지.

 

그렇다고 저 고양이가 굳이 여기까지 올 정도로 배가 고파 보인다던가 졸려 보인다던가 하지는 않는다.

 

행동을 보고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아는 동물이 없기도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이다.

 

그리고 저렇게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계속 이 쪽을 쳐다보니 희미한 어색함이... .

 

율리안은 깨달았다.

 

이렇게나 쳐다보다니 사람이 상대였다면 무례한 일이다.

 

동물도 눈을 오래 쳐다보면 적대적이라 생각한다고 했지.

 

모르는 고양이를 이렇게 무례하게 쳐다보다니.

 

율리안은 급히 시선을 내렸다.

 

언제 왔던 것일까 마악 커피를 가져다준 알바생이 돌아섰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 나 인상이 나쁘지.

 

율리안은 급히 쥐고 있던 책의 아무 데나 펴서 얼굴을 가리도록 들어올렸다.

 

‘져버렸네

 

고양이들 눈싸움을...’

 

‘졌어!

 

사람들은 그제야 각기 핸드폰이나 서류,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고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비슷한 사람의 후속편 2

2023. 2. 15. 00:28 | Posted by 호랑이!!!

도플갱어 크나트는 햇볕을 쬐었다. 오리지널이 말하기를, 그는 원래 피부가 희었다는데 야외활동을 오래 하다보니 그을렸다나. 도플갱어 크나트는(편의상, 크나트는) 날 때부터 태닝한 상태였던 손등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낮의 공기는 따뜻했다. 지는 낙엽과 마른 나무껍질 향이 햇볕 아래 퍼졌다. 저만치서 꼬리가 통통한 청설모가 길을 가로질러 뛰어간다. 꼬리털이 폴짝거리는 것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결쳤다. 청설모는 나무 위로 힘차게 올라갔고 시선이 따라 올라가며 크나트는 그 동그랗고 하얀 배를 구경했다. 이왕 누군가의 도플갱어로 태어날 거였다면 저런 청설모는 어땠을까. 연못 속의 물고기는, 나무 위의 흰 새는? 저기 바람에 흔들리는 잎 넓은 커다란 식물은? 저런 동물이나 식물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질투하거나 원망하는 일 없이 마음이 평화로웠을까.

 

형제님-”

 

네에- 스호르씨.”

 

“...”

 

발랄하게 손을 흔들었더니 저쪽이 눈을 질끈 감는다. 왜일까, 나는 이렇게나 무해하고 다정한 도플갱어인데.

 

일단 오늘 할 만한 일을 스케줄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까만 옷에 물에 젖은 잎을 연상시키는 사람은 쪽지를 들어올렸다.

 

이제부터는 베니스로 갑시다. 베니스로 가서 건축물을 구경하고 젤라토를 먹을 겁니다. 그 사람이 단 것을 좋아하니 당신도 좋아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 다음은 곤돌라를 타고 오 솔레미오를 들으며 한 바퀴 돌고, 가면극 구경도 하고, 여유가 되면 가죽 제품도 구경하고... 하는 식으로 읊는 것을 들어 주었다.

 

딱딱하고 비협조적으로 생겨서 자신에게 밖을 구경시켜 주라는 얘기가 나오자 이렇게 스케줄도 짜오고 바지런히 종종거린다니 참 귀엽지. 미간도 찡그리고 인상도 날카로워서 별로 내키는 얼굴도 아닌데. 크나트는 손을 뻗어 그의 미간을 살살 문질렀다. 잠시 매끈하게 펴지는가 싶더니 손을 떼자 다시 깊게 골이 파인다.

 

“...”

 

어쩐지 표정으로 욕을 하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크나트는 몇 번 더 꾸준하게 문질렀고 미간이 빨갛게 되었는데도 골이 파이자 고개를 기우뚱했다.

 

이상하다, 이런 거 생길 나이는 아니라던데.”

 

당신 때문이지 않습니까!”

 

캬악, 그가 소리질렀다. 그러다 앞에 놓인 것이 겉늙어 보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채 한 살도 안 된 갓난아기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마른세수를 하여 마음을 가다듬었다.

 

알아두십시오. 다른 사람의 몸에 허락 없이 손을 대는 것은 범죄입니다.”

 

하면 안 된다는 말이지? 알겠어.”

 

율리안은 순순히 손을 떼는 것을 보고 가벼운 전율을 느꼈다. 마피아한테 범죄가 뭐 어떻냐느니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안 된다면 안 된다는 걸 이해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인간의 도덕과 양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가 갑자기 그런 남자한테 던져지고 나서는 이런 것 하나하나까지 자기 맘대로여서 자신의 도덕성까지 고장날 것 같았는데! 정상적인 반응이다!

 

울어?”

 

내가 울린 거야? 라면서 손을 뻗다가 허락이 없으니 대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손을 보니 진짜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율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저만치 먼 곳을 가리켰다.

 

갑시다.”

 

도착한 곳에서 크나트는 가면을 먼저 구해 썼다. 미색 바탕에 금색, 빨간색, 초록색 물감을 더한 평범한 카니발 용 가면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그에게 내려온 직업병... 아니지, 유전병인가? 율리안도 반강제로 고양이귀 가면을 썼다. 아마 이걸로는 모자라겠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크나트는 먼저 배에서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다 위라고 들었는데도 물비린내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바다에서 으레 나고는 하는 소금 냄새 같은 것도 없어 이 안에 빠진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게 바다 위에 만든 인공 섬이구나.

 

율리안은 뒤따라 내리고 거리 노점에서 젤라토 두 컵을 샀다. 아이스크림보다 조금 더 쫀득한 질감이라 크나트는 이로 스푼 째 긁어먹었다. 그의 안내인은 성실한 성격인지 메모지까지 확인해가며 근처의 유명한 건물이나 장소에 대해 설명을 했다.

 

“...특히 이런 곳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로비가 물에 잠긴다고 합니다. 아마 대대적으로 보수하지 않는 한은 계속 그러할 겁니다.”

 

장마가 오면 어떻게 해?”

 

물이 오래 있으면 썩으니 모래주머니 같은 것을 두거나... 방수 대책이 있지 않겠습니까.”

 

따개비 같은 게 자랄지도 몰라.”

 

“...그렇습니까.”

 

일부러 바닷물을 끌어들였다가 양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율리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저것이 보이는대로 오래 묵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건 애다. 그러니 이런 대응은 그의 동심을 지켜주는 것일 테다.

 

이후로는 평탄했다. 날은 따뜻했고, 바람은 선선했으며, 곤돌라는 한 번 휘청이지도 않고 물 위를 미끄러졌다. 반쯤 녹은 젤라토를 떠먹었고 흔하지만 비싼 식당에 들어가서 별 것 아닌 음식도 먹었으며 사치스러운 정원과 오래된 건물을 구경하고 거리 악단이 공연하는 것도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율리안은 심란했다.

 

얼굴이며 행동이며 사소한 습관 같은 것이 닮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생물-생물은 맞겠지?-이니까. 하지만 모습이라던가 행동 외의 어딘가에서 동일인이라고 판단하게 하는 무언가가 거듭 인지능력에 영향을 끼치려 해 자칫하면 헷갈려 버릴 것 같아.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보다 보니 크나트와 다른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발견해서, 자꾸만 본래의 크나트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이래서야 양쪽에 실례일 테지.

 

나 잠시만 저기 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려. 어디 가지 말고, 누가 따라가자고 해도 가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그 말은 제가 당신에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율리안은 미묘하게 눈가를 찡그리며 크나트를 보냈다. 관광객 대상으로 자질구레한 잡화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 물건을 구경하는 것을 보다 율리안은 핸드폰을 꺼냈다. 또 다른 당신과 곤돌라를 타고 젤라토를 먹었습니다. 전송.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걸었습니다. 그리고 전송을 누르려는 찰나 등 뒤에서 단단한 것이 찌르듯이 닿았다.

 

조용히 핸드폰 집어넣어. 네가 저 녀석 동행인이지?”

 

저 녀석이라면...?”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

 

“...저 사람은 엄밀히 말하자면 크나트 당사자가 아닙니다.”

 

팔이 아프게 잡혔다.

 

숨기려고 해봐야 소용없다. 우리가 한두 달 따라다닌 줄 알아? 닥치고 따라와.”

 

크나트는 잡화점에서 이것저것을 사서 나왔다. 이런저런 미니어쳐, 엽서, 스노우볼, 포장지에 곤돌라가 인쇄된 과자며 초콜릿 등. 그러나 멋없는 가게 상호가 찍힌 갈색 봉지를 안고 나왔을 때 가게 건너편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쪽인가?”

 

예민한 기감으로 걸리는 곳이 있다. 겨우 전화나 하러 갈 만한 곳은 아니고. 저 블록의 가게들은 낮에나 장사가 될 만한 것들이니까 이제 슬슬 문 닫을 때지. 가정집들과도 거리가 떨어졌으니 이제 저 근처로는 일부러 순찰을 도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가지 않을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기척이 잡힌다. 하나, , , 그리고 여기에는 없지만 저쪽에 한 패로 보이는 인간이 하나 더. 가까이 가자 점점 소리가 커졌다.

 

그 놈만 죽이면 돼. 계급이 올라갈 거야.”

 

얼마 전에 미카한테 한 짓 들었어? 미친 자식이야.”

 

아하, 이게 본체의 직업에 따르는 부산물이군. 크나트는 모퉁이를 돌았다.

 

날 찾은 거로군.”

 

제길, 어떻게 왔지? 안내인이 간지는 얼마 안 됐는데!”

 

그건 네놈들 알 바가 아니고.”

 

불그스름하게 노을이 골목 안으로 파고들었다. 크나트가 손을 뻗자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근거리에서 쏜 것이 안 맞을 리 없었고, 몸은 총알이 관통할 때의 충격으로 뒤로 밀려나다가 쓰러졌다. 율리안이 기겁해서 일어나려고 했다가 강제로 앉혀졌다.

 

형제님!”

 

어휴 끝났다~”

 

이건 어떡하지?”

 

그 쪽에 얘기가 들어가면 성가셔져. 역시 죽여야겠지.”

 

다시금 장전하는 소리가 났다. 이렇게 죽는다고? 골목이 어두워졌다. 율리안은 그것이 마치 자신의 삶이 어두워지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기다려줘.”

 

누워있던 몸이 일어났다. 스스로 땅을 짚고 몸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몸에 실을 달아 당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양에 마피아들은 다시 총을 뽑아 그 몸에 갈겼다. 연달아 총성이 울려퍼지고 총알이 떨어진 것인지 찰칵거리는 소리만 이어졌다.

 

이게 총에 맞는 느낌이군. 새로운데...”

 

길쭉한 손톱이 살을 파고 들더니 구겨진 총알을 꺼냈다. 금속 조각이 땅에 떨어지자 캉 소리가 났다. 손바닥에 총알이 하나 둘 올라가더니 까드득 소리를 내며 뭉쳐졌다가 땅을 굴렀다.

 

눈을 감아, 스호르 씨.”

 

두 번째 크나트의 마음 속에는 본체가 가진 것보다 몇 배쯤 더 많은 비틀린 감정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어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며, 그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두 번째는 쭉 늘어난 팔로 첫 번째를 흉내내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나 율리안이 제대로 눈을 가렸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손톱을 휘둘렀다.

 

얼마 안 가 상황은 정리되었고 두 번째가 율리안을 불렀을 때 율리안은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은 골목에서 눈을 떴다. 해가 져서 붉었던 길이 이제는 완전히 어두웠기에. 가로등이 켜지기 전까지 율리안은 두 번째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두 번째는 하얀 빛 아래에서 검은 역광을 드리운 채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갈까?”

 

피에 젖었던 손은 손수건으로 대강 닦여 있었다. 그러니 잡으면 틀림없이 끈적하게 손을 더럽힐 것이다. 그러나 율리안이 스스로 일어서기에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손을 잡으려는 찰나, 품 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여보세요?”

 

[달링, 나랑도 안 간 베니스를 그 녀석이랑 가서 그렇게 알콩달콩...?]

 

“...상상하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나 닮은 녀석이라면 이미 달링이랑 이런 거 저런 거 하는 상상을...]

 

두 번째가 다음 배 시간을 가리키자 율리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소 급한 발걸음으로 선착장으로 향하며 율리안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확인되셨습니다.”

 

둘은 배에 올랐다. 어느샌가 별이 떠오른 밤하늘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 웃는 소리가 났다. 율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배에서 제공하는 마실거리를 가져다주었다. 따뜻한 것을 한 모금씩 홀짝이다보면 배가 땅에 닿았다.

 

율리안은 멋대로 에스코트하려 내미는 손을 생각했지만 두 번째는 그 대신 엉망으로 구겨진 갈색 종이 봉투를 뒤적였고 그 안에서 금색 리본으로 띠를 두른 상자를 꺼냈다.

 

가져가.”

 

이게 뭡니까?”

 

다음에 또 봐.”

 

다음에? ? 율리안은 은근하게 찡그려진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가십시오.”

 

택시를 잡아야 하나. 율리안은 큰길가로 나왔고 낯익은 차 옆에서 손을 흔드는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나 빼고 즐겁게 다녀왔어?”

 

당신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아냐. 없었어.”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며 크나트는 그에게 안전벨트를 채워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율리안은 두 번째가 준 상자를 꺼냈다. 리본을 끌러내고, 뚜껑을 들어 올리면. 그 아래에는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도는 초콜릿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그 녀석이 줬어?”

 

그렇습니다.”

 

지금 안 먹을 거지? 집에 좋은 걸 가져다 놨거든?”

 

당신이 말하니 수상쩍기 짝이 없다고 율리안이 눈을 치떴다. 크나트는 껄껄 웃었고 율리안은 편안하게 의자에 기댔다. 오렌지색 가로등이 몇 개 지나고, 낯익은 집이 보이자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문이 열리면 과연 크나트의 말대로 초콜릿 케이크와 과일들이 보였고, 옆에는 퐁듀 냄비에 초콜릿이 그득하게 녹아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율리안이 가져온 초콜릿 상자를 내려놓자, 크나트는 그 안에 빈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딸기 조각에 초콜릿을 묻혀 입 앞까지 가져다주었다. 율리안은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조금씩 베어 물었고, 오렌지 조각을 초콜릿에 푸욱 담갔다가 꺼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키는 남자에게 주었다.

 

“...그러고 보니 떠오른 겁니다만.”

 

응음?”

 

미카라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미카가 누군데?”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크더건/율리안] 비슷한 사람

2022. 10. 30. 23:48 | Posted by 호랑이!!!

여어.”

 

율리안은 보조가방 가득 책을 담아서 걷다가 집주인과 마주쳤다. 바깥에서 마주쳐서 좋을 것 없는 인간이지만 인사를 받은 이상 무시할 배짱은 없었기에 가볍게 목례 했다.

 

어디 가시나요?”

 

마악 온 거야.”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하지만 이 사람은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대신 그대로 가 버렸다. 또 무언가 질척거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단 말이야. 율리안은 저 사람도 바쁜 일이 있겠거니 하며 일과를 보내고 밤에 다시 크나트와 마주쳤다.

 

일은 잘 끝났습니까?”

 

무슨 일?”

 

아까 바쁘게 갔잖습니까.”

 

“...?”

 

크나트는 드물게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다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 얼굴이 둘은 아닐 텐데. 헷갈릴 만한 얼굴도 아니고...”

 

“?”

 

오늘 우리는 계속 건물 안에서 대기였거든. 점심도 누가 사온 맛대가리 없는 도넛으로 때웠어.”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율리안은 크나트가 자발적으로 사 먹을 리 없는 음식을 역겨워하면서 즐겁게 먹는 것도 보았고 어제 샀던 넥타이를 같은 상점에서 사서 나오는 것도 보았다. 심지어 오늘은-

 

스호르 씨, 만난 김에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스호르... ? 저 양반이 성으로 부르는 것만도 놀랄 일인데 라고?

 

어디 아픈 거 아닙니까?”

 

평소에 이렇게 안 불렀나.”

 

언제 그렇게 불렀습니까? 또 이런 것으로 저를 놀릴 셈이라면-”

 

평소에 뭐라고 불렀는데? 불러줘, 뭐 그런 식으로 놀릴 셈이었겠지. 이런 개방적인 장소가 뭐 어떠하냐면서. 율리안의 눈이 세모꼴로 날카로워지자 크나트는 아무래도 좋지 않냐며 어물쩍 손을 내밀었다.

 

드디어 당신이 바깥에서의 체면을 챙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러자 뭐가 좋은지 또 웃어젖힌다.

 

이 쪽이 좋구나.”

 

당연합니다.”

 

설마 당신, 지금까지 계속 거부했는데도 바깥에서 달링이니 자기니 하고 불러댔던 건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하고 다시 입을 딱 다물자 그럴 리가 있냐며 손을 내젓는다.

 

아무튼 스호르씨는 내가 좋다는 거지? 그래 그래, 그럼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게 또 왜 그렇게 연결된다는 말입니까! 하고 왈칵 성을 내면서도 율리안은 멋진 호텔 레스토랑으로 끌려갔다.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고 미리 예약해둔 듯한 음식이 차례로 나온다. 심지어 디저트까지 끝내고 나니 직원이 한아름이나 되는 꽃다발을 가져다주기까지 했다.

 

“...감사, 합니다...?”

 

이 사람이 이런 거 좋아하긴 하지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렇게 유치한 짓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당연한 수순으로 이 위에 딸린 호텔방을 예약했다는 말을 하겠지. 율리안은 품에 안은 책을 추슬렀다.

 

차 몰고 나왔지요? 트렁크에 책을 먼저 뒀으면 합니다.”

 

- ..., 오늘은 안 가지고 왔어.”

 

율리안은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크나트를 쳐다보았다.

 

뭐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무겁지 않으니까요. 잠깐 드는 정도라면-”

 

그래? 튼튼하네. 그럼 이따 집에서 봐.”

 

?”

 

율리안은 크나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랑 비슷한 웃는 얼굴인데... 뭔가 수상쩍게 다르다. 그러나 크나트는 율리안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았고, 다음 코스를 짜놨다던가, 방으로 가자던가, 사실 차를 가져왔다던가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랑 호텔까지 와서 이렇게 돌아간다고? 사실 어디 아프다던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크나트와 눈이 마주치자 크나트는 싱긋 웃었지만 그 눈에는 언뜻언뜻 비틀린 그늘 같은 것이 비쳤다.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율리안에게조차 숨길 수 없이 강렬했다. 말해달라고 해서 말해줄 사람도 아니고. 망설이다가 꽃다발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어필해 보았다.

 

“...향이 좋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먼저 실례한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피했지만 뒤에서 자신을 잡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 율리안은 어쩐지 걱정이 되어 얼른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나, 어떻게 티나지 않게 물어보나 이래저래 생각하다보니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에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건 책 때문만은 아니겠지. 발만큼이나 무거운 손으로 문을 열었다.

 

달링!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모처럼 옥수수 넣고 감자도 으깼는데 다 식었겠어.”

 

야식...? 입니까?”

 

무슨 소리야. 저녁이지. 세상에 이 무거운 걸 들고 이때까지 돌아다닌 거야? 가서 손부터 씻고 와. 마실 건 뭘로 할래? 레드? 화이트? 샴페인? 아니면 핫 초콜릿?”

 

물이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아까 저녁은 먹었잖습니까.”

 

누구랑?”

 

뭔가 말이 안 통하는데. 크나트는 식탁에 앉아 감자 샐러드를 듬뿍 떠 접시에 얹었다.

 

그보다 지금은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뭐가...?”

 

어쩐지 말이 안 맞는다고 느낀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인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이어 비밀번호를 누르고 열쇠를 꽂는 것까지도. 크나트는 조용히 식기를 내려놓고 손짓으로 집 안쪽을 가리켰다. 다른 손은 품속으로 조용히 들어갔는데 율리안은 그 안에 있을 권총을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었다.

 

여어.”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바깥쪽에서 흘러나왔다. 안으로 피신하려던 율리안은 그 목소리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발을 멈추었고 문은 스르륵 열렸다.

 

또 만나네, 스호르 씨.”

 

크나트가 현관에 서 있었다. 집 안에 있던 크나트는 주저없이 소음기가 달린 총을 꺼내 두어 발 연달아 갈겼다. 현관의 크나트는 어디로 쏠지 알고 있었다는 듯 총알을 피했고 아슬아슬하게 스친 것이 정장을 그슬리고 사라졌다.

 

저런, 한 벌밖에 없는 건데.”

 

웬 놈이냐.”

 

현관의 크나트는 고개를 들었다. 실내의 불빛 아래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얼굴이 아니었더라도 그 미묘한 습관이며 행동, 목소리, 체격, 자세, 그 외 무엇이라고 집어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그 둘이 동일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어딘가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가 옅게 덮였는데 마치 인간 아닌 것이 인간 흉내라도 내는 듯 했다. 집 안의 크나트는 한 걸음 옆으로 옮겨 율리안을 완전히 그의 시야에서 가렸고 현관의 크나트의 눈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크나트 L. 율리케.”

 

그는 집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는 기묘하고 오싹한 느낌이 있었는데 더 밝은 곳으로 나오자 그런 느낌이 적어졌다.

 

이젠 내가 크나트 율리케야.”

 

과연 그럴까?”

 

이 쪽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자, 현관 쪽의 사람은 이를 드러냈다.

 

내 흉내를 내는 놈이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들었지. 마치 인간 흉내를 내는 게 처음이라는 듯이 다녔다고?”

 

“...내가 크나트 율리케야.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네 행동 도식을 가지고 있어.”

 

비웃는 표정으로 크나트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그러자 상대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잇새로 그르륵 소리를 냈다.

 

이제 널 없애면 내가 진짜가 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감각을 느껴보는 거지.”

 

그 마지막 감각이 무엇입니까?”

 

율리안이 툭 질문하자 두 쌍의 청록색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 . 있잖아. 둘이 맨날 하는...”

 

그거요?”

 

, 설마 이거?”

 

크나트가 난잡한 은유를 했다. 그러자 현관 쪽의 크나트가 쉭- 위협하는 소리를 내고는 율리안 쪽 크나트를 깔아뭉갰다가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아래에 깔린 크나트는 너클을 낀 손으로 희미하게 붉은 기가 비치는 팔을 문질렀다. 그 잠깐 사이에 소매가 찢어져 안쪽 피부가 보였다.

 

잠깐! 잠깐만요.”

 

나가떨어져 놓고서도 다시 달려들려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율리안은 큰 소리를 냈다.

 

, 감각이 목적이라면 굳이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누군가의 손톱이 서서히 줄어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럴지도 모르지.”

 

잠깐, 허니? 내가 설마 저 정체모를 이상한거랑 홀딱 벗긴 채로 단둘이 둘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뭐 셋이서 하기라도 하려고 그러는 겁니까.”

 

무심코 말했던 율리안은 정말로 크나트의 침실로 끌려가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섰다. 뒤통수로 익숙한 가슴근육을 느끼며 앞으로도 같은 것이 보이자 반항은 숫제 발버둥이 되었다.

 

, 무립니다. 두개씩이나 들어가지 않아요!”

 

당연하지, 이걸 어떻게 둘이나 넣어?”

 

음란하긴.”

 

율리안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옷이 벗겨지고 양 팔을 등 뒤 사람에게 잡힌 채 몸 위로 다른 쪽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번갈아서 그 눈들을 보다보니 알 것 같았다.

 

자신을 볼 때마다 드러나는 기묘한 비틀림.

 

제 뒤의 사람을 볼 때면 분노라고 생각할 만큼 강한 것.

 

바다 같은 색 눈을 그늘지게 하는 감정.

 

질투-’

 

 

'율리케랑 율리안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슷한 사람의 후속편 2  (0) 2023.02.15
[크더건/율리안] 비슷한 사람의 후속편  (0) 2022.11.05
호괏au  (0) 2022.08.10
1차 완성  (0) 2022.04.21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  (0) 2022.03.11

호괏au

2022. 8. 10. 00:20 | Posted by 호랑이!!!

“오.”

후플푸프 학생은 사람들이 점점 모이길래 고개를 들었다가 그 학생들이 녹색이나 붉은 색 장식을 단 것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내렸다.

저놈들 또 시작이네.

불구경 싸움 구경이 재미있다는 것도 어디 한 두 번 이어야 말이지.

잠깐 설명을 좀 하자면-

볼드모트의 몰락 이후 슬리데린은 대개 기가 죽어있었다.

살아남은 소년의 부모 양쪽이 그리핀도르라는 것 때문에 그리핀도르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리핀도르는 그리핀도르대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신입생까지도 ‘살아남은 소년’이 이미 그리핀도르에 들어오기라도 한 양, 이미 같은 기숙사생인 것처럼도 얘기하곤 했다. 마는.

이것은 무언가.

지금 슬리데린은 가을날 독 오른 독사처럼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무리 그리핀도르라고 하더라도, 우리 좀 그만 괴롭히지 그래!”

“...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이 나온 기숙사 주제에!”

어라? 그렇게 외치는 그리핀도르의 기세는 오히려 어딘가 꺾여있지 않은가.

후플푸프는 그 그리핀도르 녀석들 가장 앞에 훤칠하니 눈에 띄는 퀴디치 선수를 발견했다.

사람 괴롭히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역대 최고의 몰이꾼을.

눈에 띄게 잘생긴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저 못돼먹은 성격 때문에라도)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기에 후플푸프 학생은 대체 싸움박질하는 데 가장 앞장서기까지 하는 저 사람이 왜 인기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솔직히는, 졸업해서 뭐가 될까도 궁금했다.

그리고 반대로,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에게서 감추듯이 가장 뒤로 밀어낸 학생은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이었지만 오히려 그 표정이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미남이었다.

그리핀도르 무리 중 가장 앞에 선 그 망나니가 가슴에 손을 얹었다.

“억울한데. 내가 뭘 했다고 그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이 뻔뻔한 자식아!”

“뭐 임마?”

너 다음 연습경기 때 두고보자고 하는 말에 어쩐지 슬리데린 선수의 기세가 꺾어졌다.

“아니, 졸업 학년이면 공부나 진로 고민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양아치!”

“적어도 죽음을 먹는 자들 무리에는 가입하지 않을 테니까!”

“그게 돈을 주기는 하냐!”

“너희가 해줄 고민은 아니거든!”

왁왁거리며 쏟아내는 고함들을 기꺼이 누리며 크나트는 슬리데린들을 노골적으로 내려다보았다.

“칭찬 고오-맙다.”

마치 이래도 덤빌래? 라고 하듯.

무리를 거느리는 사자새끼같이.

“이봐, 거기 키티. 네 입으로 말해보지 그래. 내가 널 괴롭혔냐? 패기라도 했어?”

“그건...”

율리안은 망설였다.

저 얼굴만 멀끔한 선배가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손을 대기는 하지만, 가끔은 남이 있건 없건 아랑곳 않거나 목욕탕에도 따라들어오거나 하는데다 그 손이 자신을... 으음, 괴롭힌 적도 있기는 있었지만...

아무튼 때리거나 아프게 한 적은 없었다.

아마도.

“그건... 아닙니다만...”

슬리데린들은 머리를 감쌌다.

애당초 율리안에게 괴롭힘이라는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고! 특히나 자신에게 가해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아니이 근데 당사자가 저렇게 말해버리면 안되는 거 아냐! 특히나 이런 상황에선!

어물어물 부정해버리는 율리안을 한 번, 그리고 (저 자식이랑 율리안을 두고 가면 안 될 것 같은데)크나트를 한 번 쳐다보고, 슬리데린은 조용히 해산했다.

그러면 그리핀도르들은 어깨에 힘 한 번 주고 대장 사자의 어깨를 툭 툭 치고는 또 시끌벅적하게 가버리는 것이다.

“우리도 갈까?”

“가기는 어딜 간다는 말입니까, 우리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하고 싶단 말이야? 저렇게 사람도 많은데?”

“이- 입! 입입입! 입!”

차마 손을 대지는 못하고 손가락으로 필사적으로 입 누르는 시늉을 하자 심술궂은 표정으로 히죽 웃는다.

“누누가 뭘 할 거라고 그런- 그런-”

“혀 씹은 거 아파 보이는데, 내가 낫게 해 줄까-?”

율리안은 그 비상한 머리로 저 말이 곧 학생에게 부적절한 소리로 이어질 것임을 깨달았다.

“그먀, 만! ...하십시오. 학생은 그런 소리 하면 안 됩니다.”

“왜 안 돼? 슬리데린 녀석들은 이런 소리 안 해? 아니던데?”

뭘?! 누가? 왜? 언제!?

아 왜는 왜야, 어차피 저 인간이 원인이고 범인이겠지!

“어차피 선배 때문일 거 아닙니까!!!”

원래부터 차가운 인상으로 노려보기까지 했더니 항복이라는 듯 양손을 든다.

“그래서 저를 부른 용건이 뭡니까?”

이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보니 부르기만 해도 슬리데린들이 지켜줄 거라고 우우 몰려들었기에, 겨우 이것을 묻는데만도 이만큼이나 시간이 걸린다.

“자, 이거.”

끝이 불그스름하게 물든 검은 장미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웬... 꽃입니까?”

가시가 없는 줄기를 받아들었다.

이 삭막한 곳에서 꽃이라니.

식물이야 스프라우트 교수의 온실에서 가지각색 자라고 할로윈이면 호박등, 크리스마스면 사냥터지기가 거대한 전나무를 가져와주지만 이런 꽃은 보기가 어렵다.

율리안이 묘한 감동을 느끼는 사이 크나트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꽃 같은 게 꽃을 들고 있네.

다발로 가져올 걸.

“변신술 수업에서 만든 거야. 줄게.”

“원래는 뭐였는데요?”

“저저번 주에는 튤립이었다가 이번 주에는 민들레.”

아 그래서 가시도 없고 잎도 없구나.

“이제 졸업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번 주말에 같이 호그스미드 갈래?”

“...다 좋지만, 그거 저저번주에도 한 얘기 아닙니까?”

크나트가 웃었다.

율리안은 한숨을 쉬고 장미를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 시간이면 기숙사가 비어 있겠지.

그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크나트가 생각했다.

이 애는 내가 졸업하면 아쉽겠다고 생각해주지는 않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로 굳어진 자신의 진로를 말해 줄 생각은 없지만.

1차 완성

2022. 4. 21. 01:10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

2022. 3. 11. 10:05 | Posted by 호랑이!!!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마피아/TM]


2017. 7. 10. 2:21 ・




" 이해해, 그렇지만 내 입장이라는 것도 있어서 어쩔 수 없구나 "






인장
  

(@qkfnqkfn95님 커미션입니다)

이름 :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 (Knaut Livio Ulrike)
나이 : 47
키 / 체중 : 185cm/과체중



외관
피부는 여름의 이탈리아에 어울리게 잘 태운 연한 갈색이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짙은 갈색. 머리는 단정하게 보이도록 깎아 왁스 등으로 정리한다. 눈썹은 머리카락과 같은 색이고 짙은 편이라 정기적으로 보기 좋게 다듬는다. 속눈썹은 긴 편이고 속눈썹 아래 눈은 초록색과 파란색 사이의 밝은 색이며 다소 바랜 듯한 색의 녹색에 가깝다. 눈 자체는 큰 편이나 꼬리가 처져 있고 날이 밝을 동안은 반쯤 감고 있어서 졸려 보일 것이다. 턱은 다소 각져있고 왼편에 흉이 한 가닥 있는 입술은 얇은 편인데 웃는 상이다. 수염은 입 주위에서 귀 아래까지 연하게 나 있다. 몸은 얼핏 보았을 때는 그렇게까지 중량이 나갈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 옷을 벗으면, 혹은 몸을 만져보면, 제법 단단한 근육이 보일 것이다. 보기 좋은 역삼각형 몸매는 하얀색 셔츠, 연한 녹색(간혹 파란색) 손수건을 포함한 검은 쓰리피스 정장으로 감싸고 있고 옷은 전부 주문품이다. 어깨나 다른 부분에 맞춰 일반 셔츠를 입으면 가슴쪽 단추가 벌어지거나, 끼기 때문에. 구두 역시 검은색이고 양말은 회색, 벨트는 가죽 제품이라 비를 맞는 것을 싫어한다. 그 외 시계나 반지 같은 악세서리는 하지 않는다. 손은 제법 큰 편이고 화상 자국이 부분부분 남아있다.



성격
키워드1 : 다정
되도록 남에게 다정하게 해주려고 한다. 소설 대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 중에 하나라 어린 여자아이가 꽃을 팔면 한 다발은 반드시 사주고 노인이 길을 걷고 있다면 반드시 함께 길을 건너 준다.

키워드2 : 깐깐함
그런 다정함도 만난 사람이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을 때만이다. 어떤 관계로든 깊게 얽히게 되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을 것인지 하나하나 다 재어본다. 비단 이런 것은 사람에게만 통하는 것은 아니라 융통성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적어도 조직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기준을 가지고 움직인다. 결벽증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같은 기준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뿐.

키워드3 : 자부심과 충성심의 혼합물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맡겨진다면 끝까지 해낸다. 어쩌면 깐깐함이나 완벽주의 같은 단어가 더 어울릴 수 있으나 크나트에게 조직에 관한 것은, 조직에서 맡겨지는 일은 자부심을 준다. 덕분에 자신이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도,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조직에 누를 끼치는 일이라며 싫어한다.

키워드4 : 냉정함
가장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칼같이 다른 것을 버릴 수 있다. 현재 가장 원하는 것이 조직의 안녕일 뿐. 길 잃은 아이를 만나 한참이나 예뻐하다가도 조직에 관련되어 일이 생기거나, 그 아이가 조직 쪽으로 나쁘게 관련된 아이라면 그 자리에서 총을 꺼내 쏠 수 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소속
마피아



기타
한때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식사 전, 취침 전에도 꼬박꼬박 기도를 올리고 십계와 말씀에 따라 선량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그러나 물건의 유통경로 중간에 성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곧바로 성경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착실하게 조직에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마피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자경단 소속이었다. 할아버지 아래에서 총을 쏘는 법이라던가 암묵적인 규칙 등을 배웠으며 할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현재 조직에 몸담게 되었다.
술도 담배도 좋아하지 않는다. 약도 좋아하지 않는다. 총은 잘 쏘지만 사격도 안 좋아하고 좋아하는 거라고는 운동 뿐이라 주머니에는 여차할 때 사용할 주문제작한 너클이 있다. 너클에는 꽃 없이 잎사귀만 자란 가지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맞으면 많이 아프다. 너클로 때리면 뼈 정도는 부러뜨리지만 너클 없이 맞아도 아프다. 되도록 총을 사용하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너클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자라난 마을은 포도밭이 있는 바닷가 작은 마을. 어릴 때는 매일같이 수영했다.
가끔 놀라면 욕을 사용할지도 모른다.
주머니 안에 희석한 플레이용 미약이 있다.


선관: X



선관 동시 합격 여부
O / X



성향
TM


캐릭터 선호 / 기피 플레이
선호 : 약물, 착의 상태의 애무
기피 : 스캇 골든 더티플 고어 피어싱 롤플레이 스팽킹

오너 선호 / 기피 플레이
선호 : 약물 도구 본디지 요도플 산란
기피 : 스캇, 골든, 더티플, 고어, 피어싱, 스팽킹, 강간시키기 전에 합의해 주세요,




'율리케랑 율리안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괏au  (0) 2022.08.10
1차 완성  (0) 2022.04.21
11월 19일 (금) 율리안을 재워놓고 크나트가  (0) 2021.11.19
문자  (0) 2021.06.23
율리안이 고통받는 세계관  (0) 2021.05.22

아이고 내 뼈 다 삭네.

 

크나트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옆자리에 누운 사람이 놀라 잠에서 깰 만큼 섬세하지 못한 동작이었으나 옆자리의 사람이 내일까지 잠에서 깰 일은 없을 것이다.

 

그야.

 

씻기고 닦아 침대로 옮기고 잠든 몸으로 한 발 더 뺀 다음에도 눈을 뜨지 않았는걸.

 

얇은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빛은 없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율리안의 윤곽 정도는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기절하다시피 늘어진 몸통, 테이블을 짚고 버티던 팔, 아직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

 

쉬었을 것이 분명한 목, 불그스름하게 물러진 눈가, 벌어진 입술.

 

손이 저도 모르게 그 목으로 간다.

 

아직 한 번도 둘러 본 적은 없지만 이 창백하리만치 하얀 목에는 붉은 색이 잘 어울릴 텐데.

 

말이나 한 번 꺼내 볼까.

 

제 말이라면 전부 농담인 줄 아는 저 신부님은 펄쩍 뛰면서 그런 농담은 하지도 말라고 하겠지.

 

그 모습을 상상한 크나트는 기분좋게 웃었다.

 

아 정말이지 이 신부님은 자신이 얼마나 참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마음같아서야 경제력도 취미생활도 다 빼앗아 저에게만 기대게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풀이 죽어 버릴테고.

 

크나트는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곳이 필요하다는 걸 알만큼은 나이를 먹었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은 무서운 줄 알면서도 덤비려드는 신부님임도 알고 있고.

 

그러니 그 낮 내내 바깥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일거리도 이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아닌가.

 

손끝이 목을 따라 살갗을 간질이자 희미하게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다.

 

못 자게하고 싶다.

 

잠시라도 다른 일은 못 하게 하고 싶다.

 

항시 살갗을 닿게 하고 말에 반응하게 하고 곤란하게 만들고 나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못 하게하고 싶어.

 

...아이고 생각만 했을 뿐인데 손에 힘이 들어간다.

 

청년처럼 회복이 빠르지도 않는데 나이도 들만큼 들어서 이 무슨 체력 낭비하는 생각들이냔 말이다.

 

크나트는 율리안의 베개를 뺏을까 하다 잠에서 깰 것 같자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대신 팔을 두르고.

 

빠져나갈 수 없도록 옆의 이불을 꽉 쥐었다.

 

손톱이 이불에 긁히며 드드득 소리가 났지만.

 

이번에는 율리안도 깨는 기색이 없었다.

 

 

'율리케랑 율리안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차 완성  (0) 2022.04.21
크나트 리비오 율리케  (0) 2022.03.11
문자  (0) 2021.06.23
율리안이 고통받는 세계관  (0) 2021.05.22
[크더건/율리안] 크리스마스  (0) 2020.12.25

문자

2021. 6. 23. 17:17 | Posted by 호랑이!!!

핸드폰의 LED가 조용히 반짝였다.

 

놀랄 만큼 빠르게 손에서 너클이 벗겨지더니, 크나트는 얼른 물에 손을 씻었다.

 

아니, 꼭 지금 그래야겠어요?! 정말로?!”

 

뭐 묻은 손으로 액정을 만질 수는 없잖아.”

 

그런 말은 과자 구울 때나 하세요!”

 

녀석 참.

 

크나트는 상자 뒤로 몸을 웅크린 어린... 젊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무스가 손에 묻어 질겁하고 다시 씻었다.

 

그런거 쓰지 말랬지. 오존에 구멍이 뚫린단 말이야.”

 

잰체하며 우아하게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자 조직원은 크악, 소리질렀다.

 

나이든 티 나요!”

 

뭐 임마. 아저씨 손에 죽어 볼래? 엄호나 잘 해봐. 얼른 보내고 다시 할 테니까.”

 

근무 태만!!!”

 

놀랍게도, 크나트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언제 옵니까?

 

나도 빨리 보고 싶어. 달링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문자가 돌아왔다.

 

저녁을 만들어야 하니 물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달링이 아니니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크나트는 얼른 너클을 끼고 근접한 사람의 머리를 세차게 가격했다.

 

퍽 퍽 치면서도 한 손으로 열심히 타자를 치는 도중, 갑자기, 피가 액정에 튀었다.

 

아 이것도 쇠라고 피가 튀네...”

 

크나트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손수건에 물을 적셔 액정을 닦아냈다.

 

그럼 달링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얘기야?

 

이제야 다시 잘 쳐진다.

 

보지도 않고 발로 총을 든 손을 힘주어 밟으며 연달아 문자를 보냈다.

 

내 사랑스러운 작은 딸기라고 부르는 건 괜찮다는 소리군

 

 

보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답장이 돌아왔다.

 

좋아,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딸기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크나트는 웃음을 터뜨리며 밟고 있던 팔을 콱 내리찍었다.

 

대체. 설마 싸우면서 인스타라도 보고 있어요?”

 

신부님이 느낌표를 보냈어.”

 

젊은 마피아는 그래서요? 라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다른 설명이 더 나오지는 않았다.

 

그는 신이 나서 손을 씻었다가 핸드폰을 만졌다가 닦았다가 하는 율리케 씨를 보았다.

 

대체 신부가 느낌표를 쓴 게 뭐 어떻단 말인가.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거지?

 

 

율리안이 고통받는 세계관

2021. 5. 22. 01:17 | Posted by 호랑이!!!

어이, 거기 까만 아기고양이.”

 

이 사람이 정말.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길, 율리안은 두꺼운 서류철에 가방을 꽉 쥐고 눈을 있는 힘껏 사납게 떴다.

 

이제 하다하다!!!?”

 

후후, 제법 앙칼진걸?”

 

율리안은 자신의 길을 막은 청년을 보고, 서류철을 더 꽉 쥐었다.

 

이탈리안은 다 이런가?’

 

나는, 인상이 제법 나쁘지 않은가?

 

..., 혹시 이것은 기선제압? 돈을 뜯는 행위 이전에 일부러 내 기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구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율리안은 안심해서 가방을 뒤적였다.

 

원만하게 넘어가려면 차라리 돈을 줘 버리는 게 좋으니.

 

저도 시간강사라 그렇게 돈이 있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봐주십시오.”

 

커피 한 잔으로 까만 아기고양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

 

????

 

??????????????????

 

“...케이크? 쿠키? ?”

 

율리안은 스스로는 놀란 상태지만 타인에게는 더 무시무시해 보일 표정을 수습하지도 못 했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

 

지금 작업 거는 겁니까?”

 

!”

 

이 치안 좋은 동네에 이런 게 돌아다니다니.

 

마피아가 산다는 시점에서 질 나쁜 농담 같은 생각을 하며 율리안은 자기 학생 또래의 청년 앞에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저는 동거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기고양이의 기사는 지금 없잖아? 즐겁게 놀고, 안전하게 잘 바래다줄게. 내가 아는 좋은 가게가 있는데~”

 

율리안은 상냥하고 친절하게 동거인의 신상정보를 말해주었고, 그 사람은 예의바르게 도망쳤다.

 

하다하다 별 일이 다 있어.

 

하지만 커피는 좋은 생각이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 잔 하면서 학생들 숙제나 채점해 볼까.

 

동거인에게는 카페에서 한 잔 하고 들어간다는 문자를 남긴 뒤 근처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키고 해 안 드는 자리에서 빨간 색연필을 들었다.

 

이 부분 해석은 다르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이 학생은 아주 이해를 완전히 잘못했군.

 

이건 심지어 교재 예문 그대로인데? 이걸?

 

커피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두통이 생길 즈음 때마침 커피가 나왔다.

 

시선은 학생들 시험지에 두고 컵을 들어 한 모금, 홀짝-

 

으윽!?”

 

웬일로 그렇게 단 걸 먹어?”

 

연분홍 음료 위에 듬뿍 올라간 휘핑 크림과 색색으로 반짝이는 설탕 조각과 깜찍하기 짝이 없는 별 모양 쿠키에 당연하다는 듯 올라간 아이싱까지...

 

사랑스러운 모양의 유리컵을 내려놓으며 율리안은 차마 뱉지 못한 것을 삼키고 학생들의 숙제를 정리해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걸 시키진 않았습니다만 가게 측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여기, 묻었어.”

 

입술이 닿았지만 퍼득거릴 기력이 없다.

 

생기없는 눈으로 율리안은 크나트의 손에서 거칠게 도기 잔을 뺏었다.

 

하얀 잔 안에 진한 갈색 액체가 뜨끈뜨끈한 하얀 김을 내뿜는다.

 

그래, 이런 걸 원했어.

 

, 잠깐, 그건-”

 

달아!!!!!!!!!!

 

율리안은 눈을 질끈 감고 잔을 내려놓았다.

 

여기 메뉴 잘못 나왔습니다.”

 

율리안이 손을 들자 머릿수건을 한 종업원이 깜짝 놀랐다.

 

에스프레소 두 잔 주십시오.”

 

“...달링, 나는 코코아 맞는...”

 

에스프레소 두 잔 주십시오.”

 

크나트에게 자기 앞으로 나온 기가 막힌 음료를 밀어주고 기다리고 있으니 새로 음료가 나왔다.

 

주문하신 멜론 소다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애플 사이다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카라멜 더블 라떼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스트로베리 초콜릿 프라푸치노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바닐라 라떼 엑스트라 휘핑크림&시럽 나왔습니다.”

 

주문하신 인어공주와 바닷속 친구들 버블티 파르페나왔습니다.”

 

주문하신 러블리큐티바니바니 달걀 초콜릿 아이스크림나왔습니다... 어라?”

 

우리 가게에 이런 메뉴가 있었나?

 

초콜릿 토끼와 당근 모양 과자가 듬뿍 올라간 기기묘묘한 것을 보다 율리안은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애플 사이다를 찔끔 마시고 크나트가 나머지를 해치우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크더건/율리안] 크리스마스

2020. 12. 25. 02:24 | Posted by 호랑이!!!

“...”

 

이 사람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낭비가 심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또 새롭군.

 

율리안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느낌의 무표정을 지었다.

 

둘밖에 없는 집에 커다란 햄 같은 거야 예상범위 내였다.

 

마시는 건 한 사람밖에 없는데도 샴페인이니 와인이니 하는 걸 들여놓는 것도.

 

...잠깐, 물병 가득하게 담긴 이건 수제 에그노그잖아? 이 사람은 자신을 중독자로 만들 생각인가?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맛있게 만드는 거야.

 

여하간 노골적일 정도로 크리스마스 전용으로 만들어진 스웨터조차도 예상 범위 내였지만.

 

“이건 대체 왜 틀어둔 거지...?”

 

율리안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스피커에서는 경쾌하게 타닥타닥 소리가 났다.

 

어느 영화 회사 로고였나 N이 커다랗게 화면에 스치우길래 저 사람이 또 무슨 어울리지 않는 걸 틀었는가 기다리고 있었더니-

 

“앉아서 기다리지 그랬어.”

 

쟁반을 들고 크나트가 거실로 왔다.

 

“앉을 겁니다.”

 

커다란 전나무는 금색 공과 꼬마전구와 끈으로 장식되었다.

 

나뭇가지에는 또 이런저런 것들이 걸려있고, 아래에는 선물상자도 있어 제법 그럴싸하다.

 

작년에도... 그랬었지...

 

문득 떠오르는 종소리의 추억에 율리안은 크기가 들쭉날쭉한 선물상자를 노려보았다.

 

“빨리 선물부터 뜯어보고 싶어?”

 

“그런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또 수상쩍은 짓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태연하게 매시 포테이토와 두툼하게 자른 햄을 접시에 덜어놓을 뿐이다.

 

“잠깐, 립도 산 겁니까?”

 

“만들어두면 며칠 먹겠지 싶어서.”

 

다다익선 같은 소리나 하는 저 사람에게 검소의 미덕을 말하려다가 율리안은 오늘이 자애와 자비와 관대의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상기하고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고...

 

“역시 아깝습니다.”

 

뜯지도 않은 팩에 든 칠면조를 애써 무시하고, 율리안은 자기도 뭔가 준비했다며 부엌으로 가서 몇 시간이나 붙어 있었던 커다란 냄비를 가져왔다.

 

“뭔데?”

 

“이탈리아 전통 신년 음식입니다.”

 

이건 좀 잘난 체 하는 것 같았나? 율리안은 머뭇거리다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훅, 더운 김이 얼굴에 끼쳤다.

 

습하고 따뜻한 수증기에서는 비릿하고 달짝지근한 바다 냄새가 났다.

 

슬쩍 냄비 안을 들여다본 크나트는 아, 그랬었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화이트 와인? 아니면 보드카?”

 

“괜찮습니다.”

 

이미 이 식탁 위에 나와있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역시 저 형제님은 나를 알코올 중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닐까?

 

율리안은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가위로 게를 썩둑 잘라 흰 살을 드러냈다.

 

“해산물 요리를 하는 건 처음 봤는데.”

 

“오랜만에 한 요리이기는 합니다.”

 

갑각류는 손이 많이 가지만 맛있지.

 

살을 들어내 접시에 담자 크나트는 즐겁게 게 접시를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손수 만든 절임 채소도 작은 그릇에 덜어 올려두자 제법 호사스러운 식탁이 되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오디오 스피커에서는 징글벨 노래가 흘러나오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화려하다.

 

깔끔하고 단정한 집 안이 초록과 빨강과 반짝이는 포장지로 발랄해진 것도, 조금 무리해서 좋은 게를 산 것도 기분을 명랑하게 만들어서 율리안은 얼른 게 다리를 뜯어냈다.

 

그야말로 가정적이고 완벽한 크리스-

 

“-마앗?!”

 

게를 입에 넣자마자 몸이 우뚝 굳었다.

 

“왜?”

 

팩, 소리가 날 정도로 재빠르게 움직인 율리안의 눈이 크나트의 접시를 향했다.

 

상대의 수상쩍음을 느낀 거의 동시에 의자를 쓰러뜨리며 율리안과 크나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나트는 율리안을, 율리안은 크나트의 손에 들린 접시에 눈길을 두고.

 

원하는 건 오직 당신뿐이라는 낭만적인 곡을 배경으로 둘 사이에 고요한 대치상황이 있었다.

 

“...”

 

“...”

 

잠시의 탐색전.

 

율리안은 눈을 굴려 싸움질로 다져진 팔과 근육으로 짜인 두툼한 가슴을 보았다.

 

“...그 접시를 이리로 주시기 바랍니다.”

 

신체적이고 경험적인 불리함을 인지한 율리안은 우선 대화를 청했다.

 

율리안은 건전한 현대인이었고,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며, 또한 훌륭한 청년이었기에.

 

“그런 것을 식탁에 올릴 수 없습니다.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분하게 말하며 접시를 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런 것이라니, 어째서?”

 

다행히 저 야만적인 남자도 대화를 해볼 모양이다.

 

약간의 희망을 느끼며 율리안은 접시를 이리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접시를 먼저 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나트는 눈을 굴려 율리안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순순한 모습에 잠깐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율리안은 기대했던 단단한 접시가 아니라 무언가 말랑한 것이 닿자 펄쩍 뛰어올랐고, 그대로 크나트에게 잡혀 의자에 강제로 묶이고 말았다!

 

“이거 풀어주십시오!”

 

트리에 단 것과 같은 반짝이는 은색 금색 줄이 율리안의 몸을 칭칭 감았다.

 

이 남자가!!!

 

율리안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크나트에게 소리쳤고, 크나트는 그런 율리안을 보다가 콧노래나 부르며 그의 몸에다 주섬주섬 오너먼트를 달았다.

 

“사, 사람을 뭘로 아는 겁니까!”

 

심지어 파티용 종이 모자까지 머리에 씌워주자 정신을 차리십시오 형제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외의 말은 간신히 목 뒤로 넘기는데 크나트는 율리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아, 설마.

 

포크가 껍질 안의 살을 긁어냈다.

 

안돼, 설마...! 안돼...!!!!

 

포크는 길쭉한 살을 과도하게 우아한 몸짓으로 운반하였고 그 수령지는 아직도 율리안을 빤히 쳐다보는 크나트의 입이었다.

 

“흐음, 이것 보게. 찔 때 물을 너무 적게 넣고 찐 거 아냐?”

 

“소금을 좀 많이 넣었을지도?”

 

“이 부분은 살이 졸아들었는걸.”

 

한 마리를 끝내면 다음 한 마리를, 또 다음 한 마리를, 또 다음 한 마리를.

 

크나트는 한 마리에 한 마디씩 밉살스러운 말이나 하면서 냄비 안의 게를 전부 끝장냈다.

 

짜면 먹지 마십시오! 로 시작한 율리안의 말은 결국 의자째로 펄떡이는 육체적 반항이 되었고 율리안의 괴로움을 향신료삼아 크나트는 마지막 게까지 박박 긁어 먹었다.

 

그 즈음에는 율리안도 지쳐버려서 축 늘어졌는데 싱글싱글 웃는 남자가 눈이 마주치자 찡긋, 윙크를 날렸다.

 

“...그래도, 잘 먹었어 달링.”

 

기척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뺨에 입술이 닿았다.

 

율리안은 펄쩍 뛰어 몸을 일으켰지만 크나트는 게 껍데기를 들고 부엌으로 가 버린 후였다.

 

하여간 이상한 사람이야.

 

율리안은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그 화면에는 타닥 타닥 타오르는 난로가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율리케랑 율리안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자  (0) 2021.06.23
율리안이 고통받는 세계관  (0) 2021.05.22
[크더건/율리안] 쪼꼬미 율리안  (0) 2020.06.18
[크더건/율리안] 젊나트+교수님 율리안  (0) 2020.01.25
[크더건/율리안] 휴가  (0) 2019.12.23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크나트는 젤라토를 들고 교정을 어슬렁거렸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은 퍽 낯설고 그 사람들이 죄다 제 또래라는 것은 더더욱 낯이 설다.

 

단정한 체크무늬 셔츠에 안경을 낀 사람이 제 앞으로 지나가자 크나트는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것 같아 인상을 콱 찌푸렸다.

 

염병.”

 

그 늙-만 아니면!

 

그리고 크나트는 무심코 생각한 늙다리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떠올렸다.

 

분명 자기 취향은 자기 또래 사람이거나 한두 살 어린 쪽인데.

 

아니 그런데 왜 그 사람을 야하다고 생각한 거야? ?

 

절대로 내 취향이 아닌데!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젤라토가 담긴 과자 콘이 바삭바삭 부서졌다.

 

뭐라고 불러야 하지?

 

영감탱? 영감? 아저씨? 아무튼 늙 어쩌구 저쩌구는 빼고.

 

이름을 듣기는 한 거 같은데 뭐였지.

 

“-스호르 교수님.”

 

움찔.

 

크나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후다닥 대리석 기둥 뒤에 숨었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움직임이었다.

 

교수님, 이걸 해석해봤는데요 문법이-”

 

이 부분은-”

 

질문 같은 거 하지 마라.

 

빨리 꺼져.

 

크나트는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을 진지하게 노려보았다.

 

빨리 꺼져라 빨리 꺼져, 꺼져꺼져꺼져꺼져.

 

그 진지한 사념에 손에 들린 젤라토가(어린아이에게 빼앗은 것이다) 줄줄 흘러내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크나트는 성실하게 공부를 하는 사람을 째려보았다.

 

그 사람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잠시 고개를 들었고, 크나트랑 눈이 따악 마주쳤다.

 

그 사람은 생각했다.

 

저 사람은 왜 나를 노려보지?’

 

그다지 필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 사람은 라틴어 수업은 물론 대다수 수업에서 1등을 차지하는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 똑똑한 학생은 교수님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녹음하면서도 저 노려보는 사람과 자신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곧 결론을 내렸다.

 

모르는 사람이 날 노려볼 이유가 없지

 

와작.

 

크나트의 손에서 젤라토가 찌그러지며 바짓단을 더럽혔다.

 

, 차가!”

 

상처 있는 손을 거칠게 탁 털자 핑크색 깜찍한 덩어리들은 풀숲에서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녹아내렸다.

 

그리고 똑똑한 학생은 문득 떠오르는 그럴싸한 가설에 교수님의 말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스호르 교수님, 저 사람과는 아는 사이인가요?”

 

율리안은 돌아보았으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질척질척하게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외에는.

 

그리고 얼굴과 이름을 겨우 외운 학생들 몇 명 외에도.

 

누구랑 말입니까?”

 

어라? 어디 갔지?”

 

학생은 별 일 아닌가보다 하고 자리를 비켰다.

 

그리고 한편, 저 먼 곳의 기둥 뒤에서는 운동량에 비해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크나트가 있었다.

 

가뜩이나 불량스럽게 차려입은 정장이라 매었다기보다는 걸쳤다는 말이 올바를 넥타이임에도 잡아당기자 손 안에서 구깃구깃 구겨진다.

 

달짝한 냄새가 나는 손을 재질에 비해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옷에다 마구 문지르자 처음에는 그래도 제법 비쌌을 옷의 품격이 한 단계는 더 내려갔다.

 

에잇, !”

 

애당초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라고 시작하는 불평을 하려는 찰나 크나트는 몸이 굳었다.

 

짙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녹색빛이 자신을 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

 

멈춰버린 것 같은 사람들을 두고 시간이 또 흐르고.

 

마침내 크나트가 움직였다.

 

안 따라왔어!”

 

율리안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달짝지근한 딸기 냄새가 풍겼다.

 

안 물어봤습니다.”

 

덩치 크고, 목소리 크고, 성격도 나빠 보이고.

 

게다가 힘도 세어서 어디에서든 무엇이든 무서워해 본 적 없을 것 같이 생긴 젊은이인데.

 

자신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때에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나고 있다.

 

“...하지만 따라온 것 같군요.”

 

, 아니라니까!”

 

율리안은 일부러 힘을 주어 한 발짝 탁, 소리 나게 발을 디뎠다.

 

움찔, 하고 큰 덩치가 놀란다.

 

미끄러진 안경을 손가락으로 추어 올리면서 다시 발을 세게 콱, 디디려고 하는데 발 아래 단단한 구두가 밟혔다.

 

"...이봐 스호르 교수님."

 

실수인 척 뒤로 발을 빼려던 율리안은 흉흉한 녹색 눈을 보고서 직감했다.

 

잡아먹힌다고.

 

 

 

[크더건/율리안] 휴가

2019. 12. 23. 14:33 | Posted by 호랑이!!!

율리안은 팔을 더욱 길게 뻗었다.

 

손 끝이 잠긴 바닷물은 따뜻해서 나른한 기분이 도무지 가시질 않았다.

 

어딘가에서는 하얀 눈도 내리고 길도 얼고 사람들은 두꺼운 코트의 목 깃을 세우고도 한없이 웅크려 다닐 텐데.

 

이렇게 따뜻한 곳에서 보내는 12월이라니.

 

눈도 뜨지 않고 손을 뻗자 쟁반 위의 푹 익은 과일과 치즈가 닿았고 샴페인이 담긴 글라스의 단단한 다리가 만져진다.

 

파도가 아래를 지나갈 때마다 몸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타원형으로 둥그스름한 포도알은 이리로 데굴데굴 굴러갔다가 또 저리로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를 냈다.

 

심지어는 저 음흉한 남자까지도 느긋한 기분인지, 평소라면 몇 번쯤 손을 댔을 법도 한데 오늘은 겨우 태닝 오일만 제 몸에 문지르고 갔다.

 

율리안은 포도알을 입에 물었다.

 

자신의 입에는 지나치게 달고 무른 것이 향긋하게 터지며 태양빛에 데워진 열기를 퍼뜨린다.

 

배 위에서 나른하게 엎드려 있자, 크나트는 챙 넓은 여름용 모자를 얼굴에 덮어주고 갔다.

 

끊임없이 나직한 파도 소리가 들리고 향긋한 과일 향을 맡으며 있자니 이 곳이 지상낙원일까 싶어진다.

 

이미 이대로 몇 시간이나 지나버렸는데... 일어나서 뭐든 해야 하는데... 책이라도 읽거나...

 

하지만 머릿속이 평온하게 잠들어버려서 도무지... 도무지 일어날수가... 아아아..... 이것도 다 저 흉악한 자의 농간임이 분명...

 

물고기가 툭툭 건드리고 가는지 손가락이 간질거린다.

 

살살 저어서 쫓았지만 잠시 사라질 뿐 이내 다시 다가와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웃음이라도 나올 것 같다.

 

손가락을 물고기들한테 잠시 맡겼다가 잠을 애매하게 쫓는 것처럼 느껴지자 아예 물 밖으로 뺐다.

 

바닷물에 젖은 손가락은 약하게 당기는 느낌을 주며 말랐다.

 

아마 소금기 때문일 테지, 아니면 물 때문이거나.

 

율리안은 무심코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가 느껴지는 짠맛에 몸을 일으키고 샴페인을 마셨다.

 

샴페인에서는 약하게 단맛이 났는데 입안의 소금기와 합쳐지니 얼마라도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손끝을 물에 참방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가면 입가를 타고 작은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다시 샴페인.

 

소금물.

 

샴페인.

 

달링, 이상한 거 먹지 마.”

 

지지야 지지.

 

크나트는 어린 아이에게 하듯 얼렀다.

 

그 목소리조차 반쯤 잠든 채 하는 것 같아서 율리안은 눈도 뜨지 않고 손을 내저었다.

 

그 의미가 알았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아닌지 알지 못한 채.

 

크나트의 손이 율리안의 안주 접시를 더듬다가 치즈와 포도 한 움큼을 가져갔다.

 

팽팽하게 부푼 포도 껍질이 툭 툭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처럼 따뜻한 바람이 잎 넓은 나무를 흔들었다.

 

크나트는 눈을 떴다가 어느샌가 해가 지고 있자 몸을 일으켰다.

 

한 상자 가져왔던 술은 벌써 한 켠이 다 비어 있었고, 그래서 크나트는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두 상자는 더 보내달라고 했다.

 

샴페인-은 이미 충분히 마셨으니 부드러운 맛의 와인으로.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으니 맛을 모르니까 적당히 추천을 받거나-

 

이런 때 할아버지가 그랬었지.

 

여차하면 제일 비싼 것으로 사면 된다고.

 

먼저 일어난다? 달링은?”

 

조금만 더 있다가...”

 

먼저 갈테니 이따 부르면 와야 해.”

 

다시 율리안의 손이 흔들렸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크나트는 알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섬으로 발을 딛자 푹신하고 깨끗한 모래에 발이 푹 들어갔다.

 

잘 말린 나무 토막이 안으로 굴러들어간다.

 

둥글둥글하고 커다란 덩어리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쌓이고 크나트는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3

 

2

 

1

 

Fire!

 

자그마한 성냥개비가 안으로 떨어지는 동시에 불이 후루루 일어나며 그릴을 벌겋게 데우고 크나트는 미리 준비한 고깃 덩어리를 불 위에 척 척 얹었다.

 

큼지막한 것이 익으며 육즙을 뚝 뚝 떨어뜨렸고 그 때마다 아래에서는 치이익 소리가 났지만 이내 물기는 증발하여 소리 역시 사라진다.

 

고기 외에는 옥수수, 감자, 고구마, 무엇이든 얹고 잘 손질한 흰 살 생선 한 토막도 위에 얹혔다.

 

껍질이 파삭하게 오그라들며 생선 냄새가 난다.

 

그 옆에 아스파라거스, 피망, 양파 썬 것도 얹고 마늘도 후두둑 올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느새인가 어두워진 하늘에 연기가 어른어른 올라간다.

 

바람도 없는 고요한 공기 속에 고기 굽는 냄새가 퍼지고.

 

크나트는 율리안을 불렀다.

 

 

[크더건/율리안] 주말

2019. 8. 18. 00:02 | Posted by 호랑이!!!

“-하는 일이 있었어. 거기 바다가 꽤 괜찮던데 휴가나 갈까?”

 

이제 슬슬 휴가철이잖아, 라고 하는 것에 율리안은 마악 입에 밀어 넣었던 피자를 꼭꼭 씹어 삼켰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아서 안 됩니다.”

 

그럼 주말은?”

 

율리안이 잔을 들자 크나트가 병을 기울였다.

 

이 남자는 술도 안 하는 주제에 꽤 괜찮은 술을 골라온단 말이야.

 

언제든 저장고에서 좋아하는 것을 고르라는 말을 들었지만 굳이 자신이 고르지 않아도 그 날의 식사에는 제법 어울리는 술이 따라오고는 했다.

 

한 모금 마셔 입 안을 가신 다음에야 율리안이 입을 열었다.

 

선약이 있습니다.”

 

선약?”

 

이 안에 베리류를 담그면 맛이 더 좋아지겠지, 라고 가볍게 생각하는데 문득 거슬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어느샌가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짓는 남자가 와인병에 뚜껑을 닫는다.

 

누구랑?”

 

저 사람 목소리가 원래 이랬던가.

 

유달리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어딘가 귀에 거슬렸다.

 

학생이 잠시 만나자고 해서요. 토요일 오후 즈음 나가서 과제랑 수업 이야기를 하고 저녁까지 먹고 올 예정입니다.”

 

교수가 수업시간 외에 학생을 만나도 되나?”

 

남자니까 괜찮습니다. 그리고 교수도 아니고.”

 

불만스러운 시선이 율리안에게 닿았으나 율리안이 고개를 드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후 주말이 되기까지 크나트는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어쩌면 혼란인지도 몰랐지만 크나트도 율리안도 표정에 그렇게 세심한 편이 아니었다.

 

좀 알아차릴 것 같은 사람들은 일부 조직에 적대적인 사람들이었는데 그나마도 크나트의 너클에 실린 힘으로 가늠이나 할 정도일까.

 

“...아 찜찜하네.”

 

한바탕 육체노동을 마치고 크나트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던졌다.

 

뭐가 말입니까?”

 

어제 저녁에 머리를 비울 거라며 잔뜩 구웠던 쿠키 바구니를 내밀면서도 크나트는 부루퉁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모르겠어.”

 

뭐 이런 게 다 있담, 하는 눈빛을 받으면서도 크나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째깍, 째깍, 시계가 움직이고 한참이나 지나서 다시 입이 열렸다.

 

“...저녁 먹으러 갈래?”

 

사주는 겁니까?”

 

“...아냐 안 갈래.”

 

“...”

 

!니지 갈까!”

 

“...제가 살까요.”

 

아아아냐 안 가. 안 가.”

 

미친 영감.

 

어느 조직원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결국 크나트는 저녁때가 될 때까지 사무실 소파에서 엎어져 있었다.

 

다른 조직원들이 배달시킨 중국 음식을 깨작거리면서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일이 더 없을 거 같은데 먼저 집에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럴까?”

 

고개가 번쩍 들렸다.

 

무슨 일 있어도 연락 안 드리겠습니다.”

 

그럴까.”

 

몸을 일으키는 것에서 그래, 내일 보자!며 문을 박차고 나갈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어린 조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애용하는 검은 차를 타고 크나트는 어느 식당 앞까지 갔다.

 

식당 앞에는 주차할 곳이 없었으므로 한참 빙글빙글 돌다가 문간에 보이는 사람에 차는 갓길에 멈추었다.

 

익숙한 검은 머리카락은 익숙하지 않은 흰 셔츠 차림을 하고 멀끔한 얼굴로 종이를 보며 이야기한다.

 

자연히 시선은 맞은편에 닿았다.

 

반짝이는 금발은 멋을 부려 넘기고 저런 식당에 가는 것 치고는 옷도 제법 번쩍거린다.

 

맘에 안 들어.

 

크나트의 손에 들린 쿠키가 우득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졌다.

 

마악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인지 둘은 자전거를 묶어놓은 곳으로 향했고 크나트는 창문을 내렸다.

 

- 아니, 스호르.”

 

또 보는군요.”

 

마침 지나가는 길이었거든. 타겠어?”

 

금발은 검게 선팅된 검은 차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학생이지? 학생도 태워줄까?”

 

...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수업시간에 뵙겠습니다 교수님!”

 

인사를 받을 틈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뒷모습에 크나트는 자그마치 닷새 만에 흥, 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율리안은 크나트의 차 시트며 옷에 과자 부스러기가 쏟아진 것을 보고 경악했고 청소를 돕겠노라며 크나트를 쫓아냈다.

 

시키는 대로 청소기를 가지고 나온 크나트는 운전석에 고개를 숙인 율리안 쪽으로 걸었다.

 

발걸음 소리는 죽이고, 인기척도 없애고.

 

바로 뒤까지 와서도 조용히 등을 내려다보다가.

 

그러다 손이 다가갔다.

 

목을 조를 듯 벌어진 손에 눈은 깜박임도 없이 멈췄다.

 

이대로.

 

쥐기만 해도.

 

이제야 만들어진 안온한 이 관계는 깨어지겠지.

 

하지만 그것이 미워하는 것이라고 해도.

 

언제나 머릿속을 차지하는 첫 번째가 나라면.

 

생각하는 것이 나라면-.

 

쿠키를 부스러뜨릴 때처럼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목을 잡아챌 것 같았던 손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주먹을 간신히 움직여 유리에 닿으면 노크처럼 그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나 왔어.”

 

깔개는 털어 두었습니다. 여기에 과자 부스러기가 남아서-”

 

.”

 

뭡니까?”

 

크나트는 웃었다.

 

내가 좋아, 아까 그 학생이 좋아?”

 

율리안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청소기나 주십시오.”

 

내가 더 좋다고 하면 주지.”

 

또 이런다.

 

당신이 더 좋습니다. 됐습니까? 빨리 청소기나 내놓으십시오.”

 

율리안은 킬킬거리고 웃는 크나트의 손에서 청소기를 잡아채듯 빼앗고는 바로 스위치를 켰다.

 

하여간 이 사람은, 진지해지는 때가 없다고 율리안이 생각했다.

 

 

[크더건/율리안] 평화로운 오후

2019. 6. 11. 21:34 | Posted by 호랑이!!!

에잇.”

 

!”

 

크나트는 소파에 앉아있다가 율리안이 제 앞을 지나갈 때를 노려 팔을 뻗어 낚아챘다.

 

남의 무릎 위에 주저앉게 된 율리안은 움찔하면서 고개를 팩 돌렸다.

 

뭡니까? 대낮부터!”

 

뭐긴, 모처럼 주말인데 좀 친해져볼까 해서지.”

 

율리안은 눈을 날카롭게 떴다.

 

대부분 저 인간이 호감을 표현하는 끝은 몸으로였고, 절반 정도는 침대에서였으니까.

 

나머지 절반의 절반 정도는 소파에서나 차에서이고.

 

어제 그렇게 해 놓고 말입니까? 당신 정말-”

 

친해지자는 데에서 섹스부터 떠올리다니 역시 내 몸만 보는 거지? 흑흑.

 

거구의 남자가 애처로운 척 우는 시늉을 하니 눈에 힘이 들어간다.

 

저 남자의 전적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영화라도 볼까?”

 

됐습니다.”

 

그럼 음악을 틀까?”

 

됐습니다.”

 

뭘 했으면 좋겠어?”

 

지금은 당신이 절 놔주는 겁니다.”

 

그러나 몸에 두른 팔은 풀리지 않는다.

 

그럼 이대로 있을까? 수다도 좋지.”

 

율리안은 체념의 한숨을 쉬었고 몸에 두른 팔에는 힘이 조금 빠졌다.

 

그리고 그렇게 수십년과도 같은 5분이 지났다.

 

율리안은 저쪽 방에 둔 운동기구나 책상 위의 책을 떠올렸다.

 

뭔가 집중할 것이 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자신이 깔고 앉은 것이 남의 허벅지라는 것이고, 운동복과 면바지 너머로 무언가가 하나 더 느껴지기 때문인(것이 더 컸다) 일이다.

 

보고 느끼고 맛본-율리안은 그런 천박한 표현을 떠올린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다-것이 한참이니 크기나 촉감에 있어서는 잘 기억하고 있었고 비록 off상태더라도 자신의 몸 아래에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율리안은 크나트를 흘끔 보았다가 은근슬쩍 몸을 빼려 했지만 감긴 팔이 막았다.

 

놔주십시오.”

 

-잃어.”

 

이 젊은 신부님은 참 모르겠단 말이야.

 

라고 크나트가 생각했다.

 

분명 지금은 긴장을 했는데, 겁을 먹었나 싶다가도 그의 평소 행실을 떠올리면 그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참내 내가 뭘 어쨌다고.

 

평소에 얼마나 젠틀하게 대했는데 이렇게나 긴장을 한담.

 

목덜미에 입김을 훅 불자 파드득 몸이 떤다.

 

무어라고 하기 전에 이마를 그의 등에 기댔더니 얼굴 아래에서 근육이 긴장해 서는 것이 느껴졌다.

 

뭘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러니까 처음에는 말이다, 적어도.

 

하지만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나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그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다.

 

아마 이것은 자신이 다분히 사회적인 사람이고 상냥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겠지.

 

크나트는 이마를 기댄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을 벌리고.

 

이가 드러났다.

 

 

'율리케랑 율리안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더건/율리안] 휴가  (0) 2019.12.23
[크더건/율리안] 주말  (0) 2019.08.18
[크더건/율리안] 촉수산란플에서 이어지는 그거  (0) 2019.03.26
[크더건/율리안] 시장  (0) 2019.03.07
[]  (0) 2019.01.1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크더건/율리안] 시장

2019. 3. 7. 23:49 | Posted by 호랑이!!!

차도 있는데 굳이 기차라니.

 

꽃무늬 장바구니를 든 크나트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는 객실은 나름의 운치가 있기는 하겠으나 여행도 아니고 이동수단으로서는 그다지 선호할만한 물건이 되지 못 했다.

 

그 와중에 율리안은 종이와 펜을 꺼내 리스트를 확인하려해서 크나트는 그의 눈을 가렸다.

 

이런 곳에서 글 읽으면 눈 나빠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하고 넣을 겁니다.”

 

아까 두 번이나 확인했잖아 자기야.”

 

누가 당신 자기입니까, 눈 가리지 말고 치우십시오.

 

누가 우리 자기긴 정원의 밤에 핀-.

 

장미라고 했다가는 화낼 겁니다.

 

등의 말을 하다 보니 두 정거정이 지나 내릴 곳이었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았음에도 타기 전에는 말끔한 거리이던 장소가 내리고 나서는 포장된 도로에조차 풀이 건강하게 자랐다.

 

천 바구니에 손가락을 끼워 달랑거리며 내리자 율리안은 우선 리스트부터 확인했다.

 

우선 버터 파는 곳부터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집 것은 인기가 많아 금방 떨어질 거라고 하니 좀 뛰어야 할 겁니다.”

 

꽤 커다란 장이지만 시골이었기에 잘생기고 낯선 젊은이는 시선이 가는 모양이다.

 

종이로 싼 버터만 겨우 한 덩이 고른 율리안은 마셔보라며 받은 신선한 우유에 양젖까지 들고 찡그린 듯 난감한 표정으로 크나트에게 시선을 보냈다.

 

, 키스해줄까?”

 

그거 아닙니다!”

 

이 사람은 정말!

 

크나트는 율리안이 짐을 건넬 때마다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노려보는 율리안과 눈이 마주칠 때면 윙크를 날렸다.

 

본능적으로 피하고 율리안은 손에 든 우유를 벌컥 마셨다.

 

“...”

 

맛있나보군

 

생각보다 맛있었기에 할 말을 잃다니 황당한 일이다.

 

율리안이 빈 종이컵만 쳐다보자 크나트가 고개를 기울였다.

 

“...달링?”

 

이건...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아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꾸하고 율리안은 양젖이 담긴 컵에도 입술을 대었다.

 

그다지 익숙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맛이 있다.

 

풍미가 진하고 고소하고 단맛도 나는데다 가공하지 않아서 젓기 전의 크림처럼 무게감까지 있다.

 

양젖, 우유는 원래 이런 맛인가.

 

리스트에는 없었지만 때마침 집에 있는 우유도 다 마셔가니 한 병 정도는... 하고 돌아 본 순간 율리안은 커다란 병으로 두 개나 산 크나트를 보고야 말았다.

 

그만큼이나?!”

 

제정신이냐는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표정을 짓는데도 이 뻔뻔한 남자는 기어이 우유 꾸러미와 돈을 교환하고야 만다.

 

자기가 이거 맛있다며.”

 

그렇, 아니, 자기라고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더군다나 이렇게 밖에서!

 

파르륵 떨자 크나트는 우리 자기랑 작은 다툼이 있었어요같은 표정으로 상인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우유와 버터를 판 그 사람은 저쪽에 꽃을 길러 파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었고 크나트는 율리안의 말은 듣지도 않고 휭하니 꽃을 사러 갔다.

 

황급히 말리러 가기 전에 애써 잘 마셨다고 인사를 건네니 상인의 눈이 반짝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뭘 숨기려 들고 그랴. 둘이 여행 왔어?”

 

말리러 가야 하는데.

 

뿌리치고 가기에는 상인의 눈이 반짝인다.

 

율리안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희가... 여행은 아닙니다. 이제 여기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는데 여기 장터가 선다고 추천을 받아서...”

 

전 직장에서 만난거라 만난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오래 만나서 떠날 때도 놓쳐버렸다고 속으로 생각하던 율리안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자신이 또 떠날 때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대한 흥미를 느끼지 않을 만한 말을 하고 떠나려고 했건만 마음과는 달리 입을 열수록 질문과 청중이 늘어나서 벌써 다섯 명, 이제 여섯명, 일곱... 의자까지 끌고 귀를 기울이는 저 영감님까지 세면 여덟 명...

 

율리안은 도망이 가고 싶어졌다.

 

 

 

 

 

 

 

이후 크나트가 튤립과 프리지아 다발을 가지고 돌아왔다.

 

한 번 보는 것으로 율리안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아차린 그는 율리안을 구하는 것보다는 청중 사이에 들어가서 듣는 것을 택했고 얼마 안 가 율리안과 눈이 마주쳤다.

 

율리안이 기가 막혀하자 크나트는 숙련된 솜씨로, 납치라고밖에 못 할 짓으로 율리안을 빼내더니 먹이고 시장을 구경시켜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탄 것은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집에 가자마자 뭐든 해먹어야겠어.”

 

계란하며 우유는 상하기도 쉬운데 그러게 이 남자는 왜 이 시간까지 자길 끌고 다녔냔 말이다.

 

빨갛고 노란 꽃다발을 안은 자신은 또 얼마나 시선을 끌었는지.

 

덜컹거리는 기차에 타니 몸은 둘째치고 마음이 편해졌다.

 

저녁때라 그런가 사람도 없어서 율리안은 조심스럽게 다리를 뻗었다.

 

크나트는 율리안을 빤히 보다가 따라 다리를 쭉 뻗더니 마주보는 건너편 의자에 발을 올렸다.

 

그러면 안됩니다.”

 

잔소리는.”

 

“”공중도덕이라는 게 있습니다.

 

크나트는 납득이 어렵다는 표정으로 율리안을 내려다보았다.

 

누구한테 그 소리를 하는지는 알고 있어?”

 

당신 아닙니까.”

 

가끔은 어겨도 될 텐데 말이야.”

 

그런 게 어디있습니까, 그런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하고 딱딱거리던 율리안은 30분 뒤 좁은 기차안 화장실에서 크나트와 함께 나왔다.

 

“...공중 도덕?”

 

“...”

 

 

[]

2019. 1. 15. 05:19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