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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마틴] 베이커리

2014. 9. 5. 04:38 | Posted by 호랑이!!!



마틴 챌피는 작은 베이커리의 종업원이다.

 

분홍빛 벽돌이 깔린 거리에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의 아가씨들은 설탕 같은 목소리를 가진 금발 종업원을 만나기 위해 찾아와 케이크와 홍차를 시키곤 했다.

 

마틴은 오늘도 생크림과 딸기를 듬뿍 얹은 타르트에 향 좋은 홍차를 끓여 티 테이블로 가져갔다.

 

“딸기 타르트와 홍차입니다.”

 

세팅을 마치면 아가씨들은 저에게도 한 자리 내어준다.

 

마틴은 이러한 호의가 이성으로서의 호감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호감은 호감이지만, 그것은 목소리 때문에 얻은 것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유달리 민감했던 그라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감사히 여기고 있었다.

 

“...아, 향 좋다.”

 

“음- 딸기에 설탕이라니, 달콤해~”

 

마틴은 아가씨들이 행복해하자 방긋 웃었다.

 

이 설탕 케이크와 홍차가 이 아가씨들이 하루에 누리는 것 중 가장 사치스럽겠지.

 

이런 귀여운 아가씨들의 이번 대화 주제는 낯선 이.

 

외부인이 적은 마을이다 보니 다들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한듯 싶었다.

 

“어투가 미국식이었어, 진짜 미국인일지도 몰라.”

 

“그 옷 봤어? 코트는 점잖지만 안에 입은 건 이상해.”

 

“맞아, 셔츠도 타이도 없고 색깔은 밝은 파랑색이잖아!”

 

“쇼 하는 사람일까? 노래나 마술 같은 거.”

 

“쇼 하는 사람의 옷 치곤 수수하던걸, 정말 정체가 뭘까?”

 

홍차잔을 꼭 쥔 채 아가씨들의 대화는 이제 특유의 로맨틱한 상상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경박하지만 다들 축제처럼 들떠있다고 하던 걸. ...어쩌면 있지, 미국의 왕자 같은 거 아닐까?”

 

“미국은 왕자 같은 거 없어, 바보.”

 

“아무렴 어때, 미국의 젊은 사업가가 영국 여행을 왔을 수도 있지.”

 

아가씨들은 꿈꾸는 것처럼 손을 모으고 상상이라도 하듯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는거야.”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왔어’... 꺄악!”

 

첫눈에 반한다던가, 운명이라던가, 그런 얘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둘 다 믿지 않으니까.

 

뭐, 금슬 좋은 부모님을 보자면 운명의 붉은 실이라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이고, 흔히 볼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홍차 잔이 비워지면 아가씨들은 돌아가 버렸다.

 

귀족 집 아가씨들처럼 즐기고 싶어 하지만 결국 집안일을 도우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바라는 소박한 아가씨들이니까.

 

이제 빵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더 없으려나, 마틴은 주방을 정리하고 쓰레기 봉지를 꽉 묶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낮에 아가씨들이 말하던 이방인이 가게 안에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블론디.”

 

그리고 그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여태껏 느껴본 감정 중 가장 특별한 것이 느껴졌다.

 

마치 깃털로 스치듯 간질거리고 한겨울 벽난로보다 따뜻하며 새로 만든 솜털 이불처럼 폭신폭신하고 새끼고양이의 가슴털만큼 보드라웠다.

 

짧은 말이었지만 미국식 억양임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는데, 그 미국인은 성큼성큼 걸어와 자신을 꼭 끌어안았다.

 

“보고싶었소.”

 

마틴은 잠시 고민했다.

 

빵 반죽을 펼 때 쓰는 밀대로 때려야 할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는 몸을 떨어뜨렸다.

 

“...당신은 날 처음 보는 거겠군, 나는 릭 톰슨이라 하오.”

 

178센티미터에 70킬로그램의 나이스 바디에 33살, 코드명 타키온.

 

“사랑스러운 어트랙티브,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만큼이나 먼 곳으로 왔소이다.”

 

릭은 아직 얼떨떨해하는 마틴의 입술 앞에 아직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처음은 아주 사소했지,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보자 싶었소.”

 

어릴 때의 나는... 그러니까 20대까지의 나는 몹시 겁이 없었거든.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야.

 

그래서 목숨 내놓고 한계를 시험해보자 한 거지.

 

그러니까 또 다른 당신을 만날 수 있게 되었어.

 

마틴은 감정 저편에서 처음으로 무언가 영상을 보았다.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 쪽에서의 저는 죽었나요?”

 

그러자 다른 모습들이 어두운 밤 강에 등을 띄우듯 나타났다.

 

모두 자신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방법이나 상황은 달랐지만 전부 죽어가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째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보고서도 다음, 다음의 나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나 무리하는 것일까.

 

마틴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릭을 만져 보았다.

 

따뜻하고 간질거리고 폭신한 느낌 너머로 아주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아주 무겁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아직 어린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것이라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힘들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만약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요. 아프니까.”

 

그러자 깃 세운 코트에 파란 옷을 입은 그 사람은 과장된 몸짓으로 제 앞에 무릎을 꿇으며 종내엔 고개를 들고 밝게 웃어 보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전 다시, 수천번이라도 다시 그랬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