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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덩] 위그님 리퀘

2023. 8. 9. 02:21 | Posted by 호랑이!!!

@: 저는 그냥.. 슬덩/호열이 나오는 걸로../알바처에서 알바하는데 농구부애들와서 매상 올려주고 일찍 칼퇴하면서 같이 퇴근하는 그런 연성이 보고싶어요.. 캐해석은.. 양키가 성실하네.. 이런 느낌으로..

 

 

 

 

 

 

 

여기 라면 하나~ 계란 추가해서!”

 

카레하고 가라아게 정식! 햄까스도!”

 

! 돈까스 덮밥! 이 몸은 곱빼기로! 그리고 만두!”

 

이야아,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데? 나도 라면!”

 

사람 적은 가게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퇴근 후 한 잔을 즐기던 사람들마저 돌아간 늦은 시간, 닭꼬치며 우동에 맥주 같은 것을 앞에 놓고 빈둥거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밀도가 높아진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백호 군단이다!”

 

강백호랑... 기타 등등!”

 

작은 소리였는데도 기타 등등으로 칭해진 세 사람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어이어이-”

 

-기타 등등이라고?”

 

손에서 우드득 소리가 난다.

 

팰 거면 나가서 하라니까-”

 

말리는 것을 포기한 양호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 한편으로 백호가 예의바르게 사장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쇼.”

 

어서 오렴, 돈까스 덮밥이라고 했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앞치마를 맨 사장님은 1인분이라기엔 너무 커다란 돈까스를 기름에 넣었다.

 

촤아아 소리가 나고 저만치에서 폭력이 끝났는지 주섬주섬 사람들이 일어나자 사장님은 면을 끓는 물에 담갔다.

 

호열 군, 계산~”

 

-”

 

순식간에 사람이 적어졌다.

 

계산하고, 백호 군단이 앉을 테이블을 닦고, 물수건과 물컵을 가져온 양호열은 망나니들이 싸우느라 엉망이 되었던 안쪽 테이블과 의자가 반듯하게 놓여진 것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저걸 치우는 건 결국 양호열 자신이니 이왕이면 가게 밖에서 싸워 줬으면 했지만, 사장님이 백호 군단의 난장판을 두고...

 

덕분에 요즘은 가게를 일찍 닫을 수 있어 좋더구나.”

 

...라고 한 뒤로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게 되었다.

 

반찬 한 가지에 술 한 잔 놓고 몇 시간씩 있다가 패악질이나 부리던 사람들이 백호 군단이 푸닥거리를 한 판 하면 스르륵 사라지니 사장님도 오히려 반기는 느낌이랄까(다만, 저녁시간 그릇은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곧 음식이 나왔다.

 

묵직하게 담긴 라면, 바삭바삭하게 튀긴 돈까스에 밥이 정량보다 확연히 많은 덮밥, 그릇에 넘치도록 담긴 카레, 산처럼 쌓은 가라아게와 두 배는 될 법한 햄까스, 철판에 구워낸 만두도 접시 가득히.

 

, 나왔다!”

 

각자 가져가면 안 되나?”

 

괜찮으니 앉아 있어.”

 

이 천재의 계산으로는 한 사람이 하나씩 쟁반을 가져가면 훨씬 빨리-”

 

깰 것 같으니까 앉아. 있어.”

 

양호열도 힘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이번만은 몇 번이나 카운터와 테이블을 왕복하며 그릇을 날라야 했다.

 

사장님, 요리 하나가 더 나왔어요.”

 

그건 호열 군 거야. 친구들이 온 김에 같이 먹도록 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의젓하게 대답한 양호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테이블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순간 그 나잇대 아이들처럼 와하하 웃었다.

 

만두랑 햄까스 하나랑 바꾸자.”

 

만두 몇 개 줄 건데?”

 

하나! 인심 썼다!”

 

뭐어? 두개 더 줘!”

 

라면 위에 고기랑 만두랑 바꾸자.”

 

왁자지껄하게 나눠 먹는 모습에 입가에 점이 있는 사장님은 후후 웃으며 카운터 안쪽 정리를 했다.

 

많은 양이었는데도 음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호열 군, 다 먹었니?"

 

"넵-!"

 

"미안하지만 저기 포대 좀 내려줄래?"

 

양호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고의 묵직한 쌀포대를 꺼내어 어깨에 턱 메면 사장님이 호열 군이 있어서 다행이야- 라며 기뻐했다.

 

평소라면 감사합니다, 라던가 별 것 아닌걸요, 라던가 무어라고 했을 법도 하지만 어째 가게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가 신경을 거슬렸다.

 

또 무슨 수상쩍은 짓을 하는 걸까, 하는 눈초리로 가게로 돌아오면, 앞서 걸어가던 사장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이게 뭐야?!"

 

"짜잔!"

 

"라면카레덮밥 봇이다!"

 

"이건 만두까쓰정식 봇!"

 

남은 그릇과 젓가락으로 멋지게 로봇을 만들어낸 네 사람은 방해하지 않겠다며 가게 밖으로 우르르 나갔다.

 

“...설거지랑 청소는 제가 마저 할게요.”

 

그래줄래?”

 

사장님이 매출을 계산하고 물건의 재고를 확인하는 동안 양호열은 그릇 로봇들을 조심조심 개수대로 옮겨 닦고 화구 아래까지 구석구석 말끔하게 청소했다.

 

“..., 사장님.”

 

?”

 

잔머리가 나오지 않도록 가지런하게 묶은 머리에서 머리수건을 벗으며 사장님은 땀까지 흘리는 아르바이트생을 흘긋 보았다.

 

잘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그렇게 많이 주셔도 괜찮나요?”

 

후후.”

 

들리는 소문이며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아서 걱정했지만, 일해 보니 성실하고 친구들도 나쁜 아이들은 아니었지.

 

사장님은 어쩐지 우물쭈물하는 모습에 작게 웃었다.

 

호열 군 친구들인데 뭘. 운동하는 애들은 많이 먹어야지.”

 

“...감사합니다.”

 

이제 청소도 다 되었고, 매출도 맞네, 이제 퇴근할까? 가방 가지고 나오렴.”

 

가게 밖으로 나오니 압도적인 포스를 흘리는 덩치 넷이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그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최근에는 사장님도 익숙해진 장면이다.

 

가게 문을 잠그면 양호열이 손을 뻗어 셔터를 내렸다.

 

한때 셔터를 내릴 때 썼던 막대는 먼지가 앉아 쓸쓸하게 놓인 것이 눈에 밟혔다.

 

저것도 나중에 치워 놔야지.

 

그럼 잘 가, 호열 군. 친구들도.”

 

내일 뵙겠습니다!”

 

양호열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자 주위 친구들도 나름나름 성실함을 가미해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누님!”

 

안녕히 가세요~”

 

바이바이!”

 

방향은 반대인데도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문득 돌아보았을 때.

 

의젓하고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은, 어느샌가 평범하고 놀기 좋아하는 학생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빨간 머리 학생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이좋은 아이들이라니까.

 

사장님은 웃었다.

[bns] 탈론을 위한 괴담 3

2023. 3. 2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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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틱 파크] 카우보이가 스크래치를 이해할 때

2022. 6. 20. 22:49 | Posted by 호랑이!!!

스포일러 있음

선동과 날조

캐해 망함

기타 등등

 

 

 

 

 

 

 

더보기

모든 연기자들이 다 돌아간 후, 워린은 스크래치에게 커다란 양 다리를 던져주었다.

 

스크래치는 양 다리를 향해 달려가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신나 보이지는 않았다.

 

그야 스크래치는 요즈음 충분히 노는 중이었으니까.

 

낮 동안 스크래치가 노는 것은 이렇다.

 

1. 관람객들에게 신나게 달려가기.

 

2. 리아에게 적절한 때 제압당하기.

 

3. 리아가 음산한 목소리로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걸... 하고 경고하는 것 듣기.

 

리아는 스크래치가 놀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요즈음 워린이 보기에 스크래치는 충분히 노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 2번은 뭐란 말인가?

 

제압당하는 게 대체 왜 좋은지 워린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모양을 만들 때 하필 마스코트 인형 같은 걸 참고해서 그런가?

 

스크래치는 다른 야생의 것들과는 달리 남을 해치는 것을 썩 즐기지 않았다(물론 그렇다고 안 해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그 외에는 답이 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 모스를 앉혀놓고 물어보려 했지만 모스는 대략적인 얘기를 듣자마자 뭐 그딴 걸 생각하느냐는 눈빛을 보냈었다.

 

그래, 거의 경멸에 가까웠지.

 

워린은 부하직원에게 일 못한다고 눈치받은 상사처럼 한숨을 쉬었다.

 

 

 

 

 

 

현관문 앞에서 리아는 주머니를 뒤졌다.

 

집 열쇠가 없다.

 

아까 옷을 갈아입으면서 주머니에 있던 열쇠를 책상 위에 올려놨고...

 

제기랄, 그대로 까먹었구나.

 

가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리니 이 근처 친구 집으로 가거나 이웃집으로 가도 되겠지만 요즈음은 한창 더워지고 있었고, 이 옷을 입은 채 땀을 잔뜩 흘렸었다.

 

외박했느냐는 시선을 받는 거야 별 것 아니지만 땀 흘린 이 옷을 또 입는다는 게 신경이 쓰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차에 올랐다.

 

어쩌겠어, 오늘 저녁에는 드라마 보면서 야식 못 먹는거지.

 

그 대신으로 먹을 레몬 사탕을 한 봉지 사서 한 개 포장을 벗겼다.

 

그리고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네들을 다룰 연기자들도 없는 야간에 비연기자들이 있는 직장에 가라고?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

 

딱딱한 사탕이 어금니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섯개째 사탕이 작살나는 소리였다.

 

이게 부디 자신의 목에서 나는 소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리아는 남은 사탕을 한움큼 집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얇고 부드러운 운동복 바지 주머니라 그 안의 사탕 봉지가 이따끔 허벅지를 찌르는 걸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어쩐지 이 직장에 온 후로는 빨리 걷거나 뛰는 일이 많은 것 같아.

 

게다가 음악소리며 사람 소리가 사라져 기괴할만큼 고요한 곳이라 그런지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커다랗게...

 

어디 가?!!”

 

으아악 깜짝이야!”

 

내 발걸음이 아니었구나!

 

!!! 시간에!!!!!!”

 

흉폭한 마차에서 마차꾼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 무실!!!! 열쇠!!! 두고 와서!!!!!!”

 

여기 탈래!?!?!?!? 밧줄!!!!! 던져!!!!! 줄게!!!!”

 

리아는 양 팔로 머리 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리며 펄쩍펄쩍 뛰고 마차가 오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날뛰는 말 때문에 땅이 거칠게 떨렸다.

 

밧줄이 날아오자 리아는 그 끝을 가볍게 잡아챘고 육중한 몸체가 달리는 그 사나운 힘에 딸려갔다.

 

이거 제법 놀이기구 같은걸.

 

리아는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인지 온 몸의 근육이 굳지만 않았어도 그랬겠지.

 

덧붙여서 발이 땅에 닿아 있었다면.

 

밧줄이 당겨지고 네이선이 리아를 마부석으로 끌어올려주었다.

 

고마워요. 캔디 좀 먹을래요?”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

 

안전벨트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기에 리아는 마부석 등받이를 꽉 잡았다.

 

네이선은 레몬사탕을 받아 내려다보았다.

 

그가 단 것을 먹은지도 꽤 되었다고 했지.

 

어차피 제 것은 차에도 남았으니 주머니에서 잡히는대로 꺼내 내밀었다.

 

네이선은 가벼운 눈짓으로 감사를 표했는데, 그 순간 마차 바퀴가 덜컹 튀어올랐다.

 

작고 가벼운 레몬사탕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흩어졌다.

 

어어!?”

 

네이선은 슬픈 표정으로 사탕이 떨어진 곳을 쳐다보았다.

 

“...난 괜찮아.”

 

그런 표정으로 말해봤자 설득력이 없는데요!?

 

정말이야. 내일 청소할 데일이나 불쌍하지.”

 

리아는 서둘러 주머니를 뒤졌으나 네이선이 그 손등을 눌렀다.

 

됐어, 이제 내려야지.”

 

이 괴물 마차가 언제 이렇게 온 건지.

 

리아는 뛰어내릴만한 푹신한 잔디를 눈여겨보고는 마차가 그 옆을 지나가는 틈을 타 몸을 던졌다.

 

고마워요!!!”

 

별 말씀을!!!”

 

내일 봐요오오오오오옷!!!!!!”

 

저 멀리서 네이선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말이 발을 굴러대는 소리 때문에 어떤 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문을 열자 긴 복도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곳의 특성상 유난스러운 보안은 필요하지 않았기에 문은 그저 열렸다.

 

리아는 휴대폰 불빛만 켰다.

 

객관적으로는 물론 어리석은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그간 겪었던 일로 인해 제법 담력이 세진 터다.

 

안으로 들어서서 휴게실 겸 사무실 문을 열었다.

 

여기 어디 있을텐데.

 

이제 물건을 찾아야 하니까 아무래도 불을 켜야겠지?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동시에 하얗게 빛이 들어오며 사무실 내부가 또렷해졌다.

 

커튼을 걷고 간 덕분에 전면의 유리창은 새까매서 거기 비친 리아가 입은 셔츠 색까지 구분이 될 정도였다.

 

어우 사람 하나 더 있는 거 같네.

 

캐비닛 쪽으로 가며 리아가 중얼거렸다.

 

빨리빨리 열쇠를 찾아서 나가야지...를 생각하다가 의자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다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공포와 짜증과 기타등등에 의자를 발로 세게 밀어내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마 이걸 데일이 확인...할 지도 모르지만.

 

알 게 뭐야, 하라지!

 

발로 몇 번 의자를 밀어내자 제법 널찍하게 공간이 생긴다.

 

이제 발에 걸리거나 넘어지지는 않겠다.

 

의자가 밀리는 요란한 소리가 사라지자 이제 다시 완전한 정적이 찾아왔다.

 

어째 마차가 달리는 소리도 안 들리네.

 

빨리 열쇠를 찾아야지.

 

나갈 때도 네이선이 태워줄까? 거리야 얼마 안되지만 재미있-

 

주차장 근처에 몸을 던질만한 곳이 있던가?

 

어쨌거나 거기 타려면 네이선이 근처에 있을 때 나가야 할 텐데.

 

네이선은 핸드폰 없지? 없겠지.

 

비록 불필요하다지만 식사나 화장실로 마차에 내려오는 것도 통증을 동반한다고 했다.

 

그들이 핸드폰 충전이나 수리 등을 필요한 것으로 쳐줬을지는 의문이다.

 

핸드폰이라도 갖다줘야 하나.

 

물론 낮에는 못 하겠지만 보조배터리와 핸드폰이 있다면 밤이 제법 즐거워지지 않을까.

 

...여기 와이파이가 있던가?

 

별별 생각을 하며 캐비닛 숫자를 읽었다.

 

마악 몸을 돌리려는 순간, 뒤에서 손이 뻗어왔다.

 

학생 때 배워두었지만 제대로 익혀두지 않았던 호신술이 쥐어짠 천에서 흐른 마지막 물방울처럼 스며나와 뒤에서 덮친 인영을 몸 위로 넘겨 바닥에 메다꽂았다.

 

아주 운이 좋게 있는줄도 몰랐던 기술이 나왔다는 의미이다.

 

뭐냐! ...카우보이?”

 

동그랗게 뜬 눈이 리아를 올려다보았다.

 

검은 침이 새어나오는 갈라진 입술은 반쯤 벌어져 이 비연기자에게 일말의 인간성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다쳤어? 괜찮아?!”

 

강도도 도둑도 아닌 뜻밖의 인물에 리아도 잠시 상황을 파악하느라 굳어있었다가 이내 누구인지 확인하고는 후다닥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세상에, 이런 곳에 어떤 멍청한 강도가 들어오겠어.

 

물론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카우보이는 폴짝폴짝 뛰며 한 바퀴 돌아서 자신이 무사함을 알렸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딘가 헤벌어져 있었다.

 

그야.

 

워린은 그 찰나의 표정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눈을 뎅그렇게 뜨고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딴에는 진지하게 여기저기 쑤석거리는 거야 많이 봐왔다.

 

웃거나 뛰거나 힘들다며 투덜거릴때의 표정도 많이 봐왔다.

 

그런데 자신을 뭘로 오인했는지는 몰라도- 잡아서 냅다 던져버릴 때의 얼굴이라니!

 

일순 리아가 자신이나 이 공원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나 헷갈리기까지 할 뻔했다!

 

아아 이러니까 스크래치놈이 리아와 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마스코트에서 원형을 따 왔지만, 나도 제법 닮았나본데.

 

안 다쳤어? 다행이다. 그게, 오늘 열쇠를 두고 가서 찾아보고 있었어.”

 

리아가 작은 열쇠고리가 붙은 것을 흔들었지만 워린은 도저히 거기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걱정을 잔뜩 하고 괜찮냐고 두 번은 더 묻고, 거기에 사탕까지 손에 쥐어주고서야 리아는 이제 가봐야 한다며 카우보이와 함께 나갔고, 워린은 조용히 마차를 가까운 곳으로 불렀지만 도저히 정신이 돌아오질 않았다.

 

평소 스크래치와 같이 있을 때는 좀 더 장난스럽고 과장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는데...

 

앗 하는 순간에 바닥에 처박힌 것이나.

 

그 바닥에서 리아를 올려다봐야 했던 것이나.

 

그 올려다본 얼굴이 엄청나게 엄했던 것이라던가...

 

리아는 마차를 타고 떠났고 올 때와는 달리 얌전해진 마차가 멈추기까지 하자 저 멀리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났다.

 

워린의 입은 다시 흉폭해진 마차를 탄 네이선이 세 번째로 그 앞을 지나칠 때까지도 여전히 헤벌어져 있었다.

 

한 손에는 끈적끈적하게 녹아가는 레몬 사탕을 쥐고.

 

그걸 본 네이선이 혀를 찰 정도로.

 

[롷] 고대au

2022. 3. 29. 23:56 | Posted by 호랑이!!!

이 곳이 아발론이구려.”

 

신기한 듯, 즈라한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후후, 정확히는 아발론 기숙사예요. 학교는 저 쪽으로 나가면 있답니다.”

 

라이레이는 부채로 저 쪽 정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발론의 기숙사에는 출신이나 성적에 관계없이 다양한 학생을 받곤 했기 때문에 건물 밖임에도 시끌벅적함이 묻어났다.

 

이런 시끌벅적한 사람 소리는 얼마만에 듣는 것이던가.

 

즈라한은 어쩐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장난을 치는 사람들, 웃음 소리, 날아다니는 물건... 날아다니는 사람...

 

사람?

 

내가 먹은 게 아니다!”

 

투구에 붙은 부스러기나 떼고 말하시지, 이 악당!”

 

계단 위에서 사람이 날아왔다.

 

와장창, 까앙, 콰그작- 하는.

 

사람이 내는 것이라기에는 다소 의문을 남기는 소리와 함께.

 

어머, 샬롯.”

 

안녕! 나중에 또 봐!”

 

격조의 인사와 이별의 인사를 한 마디 안에 쑤셔넣다시피하며 샬롯은 계속 뛰어갔고,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도망갔다.

 

고철이 우그러지고 뒤틀린 기묘한 소리,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비명.

 

코 끝에는 혈액의 향이 감지되고 시각적으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인식되었다.

 

“...라이레이...”

 

널찍한 소매를 꼬옥 쥐며 즈라한은 넋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너무나도 무섭쏘...”

 

 

 

 

 

 

 

돌려받았어!”

 

즈라한은 강렬한 기억을 남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샬롯은 타르트를 들어올렸다.

 

앞에서 기뻐하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사람과 은색 머리카락의 사람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지만, 즈라한은 묻고 싶었다.

 

어디에서!?

 

대체 어디에서 그걸 돌려받았다는 거지!? 뱃속? 역시 뱃속인가!?

 

바스락거리는 기름종이며 투명하게 반짝이는 포장지를 보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이성이라는 것은 늘 본의 아니게 잃어버리는 법이다.

 

경악하는 중, 손이 팔에 닿자 즈라한은 깃털이 뒤집어질 정도로 놀라버렸다.

 

“...”

 

“....”

 

샬롯 앞에 있던 은색 머리카락의 사람이다.

 

즈라한은 부풀어오른 검은 깃털을 꾹꾹 눌러 가라앉히며 자세를 낮추었다.

 

처음뵙겠소이다. 즈라한이라 하오. 오늘부로 기숙사에 들어오게 되었소이다.”

 

 

[장르: 영문법] to 부정사를 목적어로 취하는 동사

2021. 11. 11. 01:15 | Posted by 호랑이!!!

A가 좋아(like).

 

A랑 집에 같이 가고 싶다(want).

 

A랑 바다에 놀러간다면...(hope)

 

A랑 대학생 되어서도 오래오래 얼굴 보고 지냈으면... 아니 아예 사귀게 되면...(wish)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하늘에서는 벚꽃잎이 쏟아져 머리카락이며 어깨에 봄이 묻는다.

 

아 기분 좋아.

 

생각밖에 안 했는데도, 순간순간마다 다시 사랑에 빠져.

 

그래, 이러고만 있지 말고 친해지자!

 

결심했어, 집에 같이 갈 만한 사이가! 되자!(decide)

 

그럼 계획을 짜볼까! 아씨 벌써부터 기대가 돼!(plan, expect)

 

집 가면서 같이 떡볶이 먹자고 해야지.

 

마라탕? 마라탕 먹자고 할까?

 

아니면 타코야끼 같은 거.

 

...할 수 있을까? 그런 거 싫어하면 어떡하지...?(afford)

 

아니아니지. 아니아니야.

 

A, 우리, 꼭 하자! 약속이야! (promise)

 

너도 동의하지! 그치! , 나도 알고 있어. 남자애들도 마라탕 좋아하는 거!!! (agree)

 

“...어디 산다고?”

 

, 나 그 동네에... , 잘 모르겠구나? 학교 나가서 문구사랑 카페 있는 길에서 카페 쪽으로 쭉 가면 돼.”

 

B는 문구사 쪽이었다.

 

완전히 실패였다.(fail)

 

A의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필사적으로 평범하게 미소를 지었다.(pretend)

 

물론 포기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파크라이4/페이건 민x아제이] 단빙님 리퀘

2021. 9. 23. 00:53 | Posted by 호랑이!!!

아제이는 밀주 한 병을 들고 언덕에 앉았다.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DJ 라비의 방송이 유쾌하고 발 아래로는 양귀비밭이라 바람이 불 때면 짙은 색 꽃송이들이 차르르 흔들리며 짙은 향기가 코와 입을 막았다.

 

낮 동안 데워진 땅은 선선한 바람에 식어가고 목조 울타리로 구분된 길은 하얗게 정돈된 데다 산 너머로 저물어가는 해에 지상의 것은 실루엣만이 보인다.

 

이 곳에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해치우는 중임에도 일견 머릿속이 빌 정도로... 비워도 좋을 정도로, 안전하게 느껴졌다.

 

혹자는 이것을 평화로운 광경이라고 하겠지.

 

저 아래에서는 불침번을 서는 아미타의 사람들이 낄낄거렸다.

 

다시 말해 페이건 민보다 세이벌을 더 싫어하는 것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주사위 하나와 총알 몇 알 가지고도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어떤 과학 실험 같은 것에 빠져서 불침번용 오두막 근처로 가면 불쾌할만큼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그 아래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모한의 아들!”

 

듣자하니 누군가 야크 육포를 가져온 모양이다.

 

육류라면 제일 싼 통조림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사냥을 성공하기도 하지만 그건 꽤 드문 일인데다 아제이는 물건을 소비하기보다는 날라 주는 쪽이었기에(그리고 술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근래 아미타의 일을 몇 가지 처리해주었더니 그들은 아제이가 그들과 함께 한다고 믿는 눈치였다.

 

그들 게임에 끼워줄 생각은 없는지 그 중 하나가 일어나더니 꽉 찬 술 한 병, 육포 몇 조각, 동글동글한 뭔가를 몇 개 건네주고 돌아갔다.

 

종이에 그린 낡은 게임판이 보였지만- , 누가 그들을 나무라겠는가.

 

이 밭까지 오려면 거쳐야 할 관문이 몇 개인데.

 

그러니 아제이도 모처럼 술이니 경치니 하면서 여유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술 한 병에 크기가 들쭉날쭉한 육포를 깨물다가 건네받은 물건 중 둥글둥글한 것에 시선이 갔다.

 

본의로 약물을 이것저것 접하다보니 이게 뭔지 직감적으로 알 것 같다.

 

파이프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아래에서 쨍그랑,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연기를 깊이 들이쉬었다가 악기를 연주하듯 훅 불었다.

 

검게 저물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재가 부유하고 아제이는 이런 순간이라면 멈춰도 좋으리라는 생각을-

 

아제이.”

 

할 뻔 했는데요 이...

 

너도 이제 성인이니 잔소리는 많이 하진 않겠지만, 몸을 망치고 싶다면 이것보다 더 건전한 방법이 많이 있단다. 정 궁금하면 나랑 한 번 알아보지 않겠니?”

 

눈을 뜨자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다.

 

파이프는 이미 땅을 구르고 있었고 이 몸뚱어리도 땅에 뒹굴고 있군.

 

시선을 위로 돌리자 이 척박한 키라트에서는 보기 드문 깨끗한 옷과 잘 정돈된 머리가 보였다.

 

팔이 들렸다.

 

힘을 아주 조금 주었을 뿐인데 마치 나무토막의 아래를 밀어올린 것처럼 올라가서 페이건의 멱살을 잡았다.

 

“...이건 촉감도 느껴지는군...”

 

세상에, 아제이! 얼마나 한 거야? 애가 정신을 못 차리네!”

 

약 효과 죽여주네.

 

아제이는 페이건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왁스를 발라 빗어넘긴 머리카락을 손톱으로 쿡 찔러 망가뜨리고 얼굴도 쭈욱 잡아당기자 뒤에서 당황하는 것 같은 발소리가 났다.

 

앉은 것이 무색하게 뒤로 몸을 기울여 고개를 꺾자 군화를 신은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군인?”

 

페이건은 아제이를 내려다보다 이쉬와리의 눈 위에 손을 덮었다.

 

속옷 한 장까지 빠짐없이 벗고 망이나 보러 꺼져

 

달빛이 대낮처럼 환했다.

 

페이건은 군인이 옷을 벗는 것을 기다리다 짜증을 내며 그 머리에다 속옷을 내던졌다.

 

손바닥 아래에서는 아제이가 눈을 떠 보려고 하는 것인지 속눈썹이 간지러웠다.

 

방금 군인이 총을 들고...”

 

군인? 무슨 군인?”

 

손이 치워지자 아제이는 눈을 깜박거리더니 페이건 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옆을 더듬어 파이프를 찾았다.

 

그런 건 하등 좋을 바 없어.”

 

그럼-”

 

자신이 내는 목소리가 너무 높거나 낮게 들렸다.

 

“...알려 줘, 건전하게 몸을 망치는 방법...”

 

말이야, 하고 더 잇기도 전에 아직도 잡힌 멱살이 가까이로 당겨졌다.

 

성급하게 당긴 손인데도 페이건은 거기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끌려왔다.

 

 

 

 

 

 

더보기

그렇게 입술이 닿았다.

 

페이건이 키스도 안 하고 살았냐며 핀잔 주는 말로 미루어 보아서는 이가 닿았을수도 있겠다.

 

감각이 이렇게나 둔해졌나, 하는데 입술에 손가락이 닿았다.

 

서늘한 바람에 식은 체온하며.

 

지문의 요철까지 간질간질하게 입술을 긁었다.

 

그것을 자극하자 목덜미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페이건은 커다랗게 뜨인 눈을 보고는 짧고도 기묘하게 웃었다.

 

그 미소에 대해 묻기도 전에 손이 아제이의 옷 위를 긁어내렸다.

 

보지 않아도 촉감이 느껴지나? 어떻게?

 

아제이의 눈이 필사적으로 아래를 향해, 손을 감지하려고 했다.

 

페이건은 손톱을 세웠다.

 

아, 하고 짧은 탄성이 튀어나갔다.

 

어느 순간에인가 아제이는 자신이 숨을 헐떡이고 있음을 알았다.

 

옷이 끌려내려가자, 아제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골 깨지겠네.

 

아제이는 찌르는 것처럼 강한 햇살에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덮고는 커튼을 치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이 곳이 양귀비밭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새빨갛게 피어난 양귀비.

 

하늘은 새파랗고.

 

굴러다니는 갈색 병을 제외하면 짙은 녹색 풀과, 길은 하얀색...?

 

아제이는 제 밑에 깔린 것을 내려다보았다.

 

“...이 군복은 대체 뭐야?”

 

 

[이쿼프레] 아기수박

2021. 5. 5. 00:39 | Posted by 호랑이!!!

“.....”

 

프레이는 이쿼녹스의 꼬리를... 정확히는 꼬리에 달린... 덩어리... 열매... 아기...를 쳐다보았다.

 

동그랗게 구르는 모습에 수박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기 아우라는 이쿼녹스의 꼬리 끝에 야무지게 매달려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움직여도 떨어질 기색이 없었다.

 

“당신...”

 

“프레이, 왔어?”

 

...무엇이 문제인가.

 

1. 삐졌다는 티를 온몸으로 내뿜고 있는 저 아기 아우라

2. 어린이가 꼬리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있는데도 떼어내지 않는 어른 아우라

3. 떼어내기는커녕 뭐가 문제냐는 듯한 저 태평한 표정의 어른 아우라

 

 

4. 저 아우라.

 

“...이라는 사람은!”

 

찰싹!

 

손바닥이 등에 작렬했다.

 

“아기가 꼬리에 달려 있잖아요! 비늘이랑 가시도 있는데! 찔리거나 베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니 그치만-”

 

그치만이고 저치만이고!

 

프레이는 수박이를 덥석 잡아 들어올렸다.

 

그러나 수박이는 팔다리를 놓지 않아 꼬리까지 덜렁 들렸다.

 

수박이를 이렇게 위로 들어 보고.

 

“...꼬리 당겨, 프레이...”

 

수박이를 이렇게 옆으로 들어 보고.

 

“프레이이, 나 꼬리-”

 

수박이를 이렇게 탈탈탈탈탈.

 

“으아아아아아!!!”

 

“...힘이 좋은걸...”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힘이 좋았던가? 프레이는 아기 수박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무슨 일인지 얘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이잉!”

 

그제야 수박이가 꼬리에서 고개를 뗐다.

 

베인 곳도 긁힌 곳도 없군, 좋아.

 

이쿼녹스는 무심결에 꼬리를 움직이지 않도록 꾸욱 비늘을 눕히며 등 뒤에서 일어나는 대화에 뿔을 기울였다.

 

“그래요 그래요.”

 

“저 사람이.”

 

“꼬리를 줬는데.”

 

“잡고 걸어서...”

 

꼬리를 잡고 걸었는데 저 사람이 몸을 돌리는 순간.

 

날았다고.

 

불길한 기운에 이쿼녹스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흉흉하게 번뜩이는 붉은 안광이 있었다.

 

 

 

 

 

약간의 마찰음과 약간의 소음과 약간의 대화 후, 프레이는 다시 아기 수박에게 말을 걸었다.

 

“이젠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아마도.”

 

자아 다시 잡아 보세요.

 

프레이의 손길에 아기 수박은 다시 땅을 디디고 서서 이쿼녹스의 꼬리 끝을 잡았다.

 

시험삼아 이쿼녹스가 텁 텁 텁 걸음을 옮기자, 아기 수박은 톡토톡톡톡 뒤를 따랐다.

 

그 흐뭇한 광경을 지켜보다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기 수박이는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네에, 이리 와서... 잡으라구요?”

 

끄덕끄덕.

 

프레이는 망설이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랑말랑한 꼬리를 손가락 끝으로 잡았다.

 

텁 텁 텁.

 

톡톡톡톡톡.

 

그 뒤를 무릎걸음으로 슬슬 따라가는데 아기 수박이 이쿼녹스의 꼬리를 톡 톡 잡아당겼다.

 

“이제 부-웅 안 해?”

 

“안 할 겁니다.”

 

그렇죠? 라고, 이쿼녹스를 올려다본 프레이가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쿼녹스는 말하지 못했다.

 

또! 를 외치는 아기 수박을 놀아주고 놀아주고 또 놀아주다가 그만두는 바람에 삐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bns]탈론을 위한 괴담2

2021. 3. 17. 18:22 | Posted by 호랑이!!!



"운동회!"

폭죽이 팡팡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말따마다 상인처럼 보이는 하티아 문파장은 대상들이나 쓸 법한 금장식에 녹색 비단을 두르고 악당의 손에 들려있을 법한 점화장치를 덜렁덜렁 들고 다녔다.
그 폭죽 소리에 잠을 깬 문파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오거나 베개를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했다.
전자의 예시로는 꼬마와 청이가 있고.
의외로 후자의 예시는 새암이었다.

"졸려... 죽여...."
"암살자가 그런 농담 하면 못 써"

청이가 새암이에게 한마디를 하자 새암이는 앓는 소리를 내며 베개를 쥐어뜯었다.
대부분 사람들의 활동 시간이 아침(혹은 새벽)부터 저녁까지라면 암살자인 그는 오후부터 새벽까지인 탓이다.

"다들 일어나. 모처럼 다른 문파와 연합해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더니 잠만 자고! 우리 문파 사람이라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활동을 해야 할 거 아냐. 자꾸 그렇게 늦잠을 자면 머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되고 매일 피곤하고 가정이 무너지고..."

이상하다. 왜 안 조용해지지.
새암이는 인상을 썼다.
이 문파에 암살자는 자신만 있는게 아닌데. 이미 진작에 잡아서 조용히 시켜야 할 사람이 대체 어디로 갔담.
당분간 조용해질 것 같지 않아 억지로 눈을 뜨고 밖으로 나오자 이미 뭔가 했는지 거대한 공이 굴러다니고 준비성 좋게 마련된 응원 도구와 돗자리도 있었다.
팬더 옷을 입은 린족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한 손에 하나씩 들고 마구 휘두르며 다녔고, 그 뒤를 따라 응원 도구를 하나 든 붉은 눈 곤족이 뛰어다녔다.
종목은 평범했고 각 문파에서 뽑힌 사람들은 산을 뛰어다니며 바통을 넘기거나 서로의 몸을 붙들고 씨름을 하거나 줄에 매달려 힘을 겨루었다.
마지막 주자로 뛰다가 온 새암이는 꼬마가 넘겨준 물을 벌컥 마시다가 졸린 눈을 비볐다.

"꼬마"
"뭡니까 낭자"
"탈론 사형 못 봤어?"

꼬마는 고개를 저었다.
청이도 고개를 저었고.
아는 사람마다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몰라서 임무라도 나갔나보다 하는데 하티아가 다가왔다.

"새암!"
"네!"
"박 터뜨리기 하고 와!"
"네?"

하티아는 금종이를 붙인 부채를 촤악 펼치더니 비밀 얘기라도 하는 마냥 입 가까이에 대었다.
사실 이 운동회에는 상금(문파에서 각출한)이 걸려있고, 이번 박 터뜨리기에서 결과가 정해진다고.
새암이를 뽑은 것은 암살자가 쓰는 무기 중에서는 표창도 있으니 콩주머니 던지는 것도 잘 하리라는 하티아의 계산이었다.

"탈론 사형은 어디 갔어요? 사형한테 시켜도 될 텐데"
"자 자 어서 나가 어서"

곧 보게 될거라며 떠밀린 새암이는 콩이 들어간 하얀 주머니를 잔뜩 받았다.
오늘도 문파장이 영 수상쩍었다.
그리고 곧 와아아 요란한 함성 속에 박이 등장했고, 그 박을 본 새암이는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장대 위에 묶인 것은 커다란 종이 박이 아니었기에.

그것은 탈론이었다.


[전오수] 치트, 패치, 퍼블리와 다른 동료들

2020. 9. 30. 03:04 | Posted by 호랑이!!!

... 건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치트는 짐을 앞뒤로 주렁주렁 끌어안고 무게에 낑낑거리며 발을 옮겼다.

 

직급만 따지면 제가 제일 위라구요?”

 

그러자 앞에서 퍼블리가 돌아보았다.

 

짐 하나 없이 가뿐해서인지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업보라고 생각하세요.”

 

치트는 활짝 웃는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감당할 수 없어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패치랑 눈을 마주쳤지만 그 파란 눈은 별다른 말 없이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히잉...”

 

빨리 걷게. 주인공님의 다음 전투가 곧이다.”

 

다음 장소에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던 거 같으니 앞으로 세 번의 전투 동안 아이템을 잘 배분해서 써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제가 살짝 도와드리면-”

 

치트가 말하자 앞서가던 두 사람이 홱 뒤를 돌아보았다.

 

아 농담이에요 농담! 퍼블리씨 패치 선배님이랑 눈빛 똑같아진 거 알아요?!”

 

농담할 기운이 있다니 짐이 좀 늘어도 되겠군?”

 

예에? 여기서 더요?”

 

나빴어 나빴어! 심술쟁이!

 

퍼블리는 그 앙탈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전서구가 힘들다고 하던데 돌아오면 위에 얹어 볼까요?”

 

!?”

 

패치가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길이 오르막이 되자,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다가 돌길로 변하기까지 하자 퍼블리가 치트에게 다가왔다.

 

.”

 

퍼블리님...!”

 

이번만이에요.”

 

역시 제 깜찍한 애교가 먹혔던-”

 

치트는 퍼블리의 눈빛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다, 원래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

 

선배님? 역시 선배님 때문인가?

 

주인공이 전투에 돌입하면서 그들의 전진에는 휴식이 생겼고 치트는 짐을 내려놓은 뒤 풀밭 위에 쭉 뻗었다.

 

퍼블리, 자네 저기 좀 보게.”

 

? 어떤 부분을요?”

 

주인공님이 한 패턴밖에 안 쓰시는데 이번 루트에서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는 걸 알려드렸나?”

 

, 알려드렸어요. 아마 원 패턴으로 깨는 주인공님 같아요.”

 

하긴 멀쩡한 총이랑 무기 다 두고 쇠파이프나 노루발로만 깨는 주인공님도 있지.

 

패치와 퍼블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치트는 어마어마한 짐을 발로 툭 건드렸다가 주인공이고 나발이고... 싶어졌다.

 

하늘은 오늘도 파랗구나... 각져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데 무언가가 팔에 닿았다.

 

차가워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병.

 

풀잎이 붙어 있는 수통.

 

병이 굴러온 방향은...

 

고개를 들었더니 패치가 가방 지퍼를 꽉 닫고 있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 말은 못 들은 것처럼 패치는 갑자기 퍼블리 쪽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전서구는 언제쯤 돌아온다고 했나? 지금쯤이면 연락이 와도 세 번은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제때제때 연락을 했어야지!”

 

그리고 들개들도! 곤충들 오는 건 돌려보냈나? ? 일처리를 따박따박 해야 할 것 아니야!

 

대리님, 들키겠어요...”

 

이게 무슨 소란이지~?라며 주인공이 돌아보자 슉 몸을 낮추며 퍼블리가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렇게나 못난 후배이건만 선배님은 저를 걱정해주셨군요.”

 

그리고 뒤에서 저런 소리나 하는 치트 옆구리를 콱 찔렀다.

 

“...에잇, 이러니까 아직도 내가 현장을 못 벗어나는 거 아닌가. 이제 쉴만큼 쉬었으면 다시 일어나게!”

 

아직 주인공님 전투 안 끝났는데-”

 

당신 승진해도 현장일 텐데 갑자기 남 때문에 못 가는 것처럼 말해봤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주인공은 전투를 끝냈으며 캠핑장에 모닥불을 피우고 잠드는 것까지 확인했다.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 일 없겠지.

 

퍼블리가 땅을 고르고 패치는 모닥불을 피웠다.

 

치트는 이제 익숙하게 커다란 텐트를 쳤지만 오늘도 이 텐트에는 퍼블리만 들어가서 잠들겠지.

 

저 아래에서 흑기사 투구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자 치트는 그렇게 확신했다.

 

잘들 있었나?! 어때, 오늘은 좀 할만했나!”

 

흑기사가 우렁우렁하게 커다란 목소리로 웃으며 치트 옆으로 다가오자 치트는 자연스럽게 잔을 꺼냈다.

 

, 그건 아직 꺼내지 않아도 된다네! 오늘은 술이 없거든!”

 

만세!

 

치트는 자연스럽게 주먹을 꽉 쥐려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로 손을 내렸다.

 

그것 참 아쉽군요, 매일매일 파티라니 저는 즐거웠는데요.”

 

아무래도 술 궤짝을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말일세!”

 

너무 기쁘다.

 

이런 사소한 것을 기뻐하게 될 줄이야.

 

치트는 허물어지려는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빈 잔을 흔들면서 여유를 부렸다.

 

그동안 버릇이 되어버렸는지 오늘 술이 없다고 하니 너무너무 아쉬워서~”

 

쿠웅.

 

땅이 진동했다.

 

동시에 목덜미부터 온 몸을 가로지르는 섬찟함에 치트는 말을 멈추었다.

 

돌아보면 안돼.

 

하지만 돌아보고 싶다.

 

...역시 돌아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돌아보지 않는다고 그 결과가 미뤄지진 않아...

 

와핫핫! 전서구 이 친구 타이밍 딱 좋게 왔어! 마침 여기 이 친구가 술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뭔가!”

 

이보다 빨리 못 오니 그러려니 하쇼.”

 

전력으로 온 모양인데? 자네 매일 빼더니 역시 우리랑 술 마시는 게 좋았던 모양이지!”

 

치트는 돌아보았다.

 

천으로 덮은 커다란 상자.

 

자신이 예전에 퍼블리에게 술집에서 건넸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상자.

 

제발... 제발.....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살짝 천을 들추자.

 

상자 안 빼곡하게 찰랑이는 술병들이 달빛을 반사했다.

 

절망은... 기쁨만큼 쉽게 찾아오는군요...”

 

? 방금 뭐라고 했나?”

 

퍼블리의 접시에 안주 겸 먹을 것을 잔뜩 얹어주고 패치는 치트와 흑기사와 전서구의 잔을 채워주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잔을 채우는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급기야는 각기 병을 하나씩 들고 마신다.

 

무어라고 속삭인 건지 치트는 전서구에게 다가와 낑낑거리면서 들어보려고 애쓰고 몇 걸음 걷다 못해 전서구 밑에 깔려버렸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나고 패치와 흑기사는 어깨동무를 하고 주정을 부리고 있었으며... 아니, 들개 대장도 거기 끼었잖아?

 

들개 한 마리가 치트 위의 전서구 위로 올라오고 다른 들개가 치트 위의 전서구 위의 들개 위로 기어올라왔다.

 

... 아악...”

 

어휴! 다들 뭐 하는 거예요. 내려오지 못 해요!”

 

들개 한 마리 한 마리씩이 내려오고 전서구가 일어났음에도 치트는 그대로 쭉 뻗은 상태였다.

 

다들 취했으니까 이 김에 얼른 들어가요.”

 

퍼블리가 텐트 쪽으로 손짓했다.

 

뺨에 강아지 발자국이 생긴 치트가 빌빌대며 퍼블리가 벌린 안으로 기어들어갔고 깨끗한 바닥과 베개를 껴안으면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흐아아...”

 

하하, 오늘 힘드셨죠. 이런 때 잘 듣는 약이 있어요. 아니카가 혹시 모른다고 챙겨준 약인데 이런 때 쓰게 되네요.”

 

다리며 팔, 어깨, 허리에 고약을 치덕치덕 바르고 엎드리자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퍼블리도 그 옆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쭉 폈다.

 

으드득 소리가 났다.

 

예전에 술집에서요.”

 

, 술집에서요.”

 

상사가 있으면 산통을 깬다는 게 뭔지 말했잖아요.”

 

아 그랬었지.

 

치트는 그 때를 떠올리며 허허 웃었다.

 

술자리를 보다 보니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패치의 웃음에서 더욱 힘이 없어졌다.

 

그 웃음소리를 듣다 퍼블리가 엎드렸다.

 

그래도, 대리님이 팀장님을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지요?”

 

자기 직전이라 벗은 두건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들이 어깨며 팔 위로 흘러내렸다.

 

예전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싫어한다는 말과는 다른 거니까.”

 

어두운 텐트 안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치트씨.”

 

 

 

 

 

 

 

“...방금 뭐였지?”

 

치트는 머리에 쓴 헬멧을 벗었다.

 

내장된 스피커에서 뭐라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지만 치트는 충격으로 다시 쓰지 못하고 있었다.

 

텐트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하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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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림]트친이 주는 한문장으로 글쓰기 해시

2020. 7. 20. 08:42 | Posted by 호랑이!!!

떠난 이들을 위해 건배!

 

음유시인의 북이 울렸다.

 

화이트런 여관의 주인 이솔다는 카운터에서 불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았다.

 

새로 보이는 얼굴은 없어진 사람들의 자리를 메우고, 마치 어제 보았고 그제 보았던 사람들처럼 누구는 노래하고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들은 주먹다짐을-

 

잠깐, 가게 안에서 싸우지 말아요!”

 

여기저기에서 마을이며 성곽을 수리하느라 물자가 팽팽 돌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돌고 돈다.

 

제국은 떨어졌고 스톰클락이 일어서며 온 스카이림에 만연했던 차별도 한풀 꺾였다.

 

그러니 그동안 성곽 안으로 발도 들여놓을 수 없었던 카짓 상인들은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물건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댔고 화이트런에 이르러서는 그간 친분을 쌓았던 이솔다의 여관에서 제일 좋은 방을 예약해두고 다녔다.

 

이솔다.”

 

고양이를 닮은 인간, 카짓 상인인 사아드가 카운터 앞에 앉았다.

 

뭘 드릴까요, 사아드?”

 

우선 벌꿀주를 한 병 부탁합니다, 그리고 쇠고기 구이도.”

 

사아드는 희끗한 털을 가지고 있어서 이솔다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노인인 줄 알았었다.

 

그 말을 했더니 리사아드는 아주 크게 웃었었지.

 

술 마실 나이는 되었나요?”

 

이솔다.”

 

특유의 발음이 타박하는 듯 한 소리를 내놓고 이솔다는 깔깔 웃으면서 벌꿀주와 구운 쇠고기, 훈제한 물고기를 접시 위에 담았다.

 

물고기는 제가 사는 걸로 하죠.”

 

당신의 제안에서 따뜻한 모래 냄새가 납니다.”

 

사아드는 손짓하여 이솔다의 귀를 가까이 했다.

 

팔크리스에서는 마을의 피해가 적으니 목재를 좀 싸게 내놓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와 우호적인 친분을 나누어준 그대가 여관을 수리하겠다고 한다면 이 카짓은 기꺼이 목재를 날라오리라.”

 

이솔다는 여관을 둘러보았다.

 

루시아는 그의 재산을 가로챈 삼촌네가 전쟁통에 죽어서 농장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였다.

 

여관에서 일감을 찾던 용병들도 당분간은 트롤이나 늑대, 거인 토벌로 떠났다가 더 많은 돈을 들고 돌아오겠지.

 

일손을 좀 고용하면...”

 

은 파는 할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당분간은 병사들을 요역에 동원했다가 점차 수를 줄인다고 하였으니 돌아올 사람은 더 많아지겠지.

 

윈드헬름의 여관처럼 요리사를 따로 두고, 청소할 사람도 하나 두고.

 

이솔다는 더 넓은 여관을 떠올렸다.

 

커다란 벽난로가 공기를 덥히고 말끔하게 빛나는 바닥과 벽.

 

기둥에는 돋을새김, 문고리에는 오목새김.

 

해머펠에서 들여온 향긋한 술과 맛있는 음식.

 

지나간 날들이여.

 

음유시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람들은 잔을 들어올렸다.

 

다가올 날들을 위하여!”

 

이솔다는 맥주병을 들어 리사아드의 벌꿀주 병과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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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해리] 클리셰 범벅

2020. 2. 29. 00:26 | Posted by 호랑이!!!

해리는 눈을 떴다.

 

콧잔등에 익숙하게 얹히는 무게는 자신이 아직 안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무언가 어색한 감각이 들지만 어두운 것은 익숙한 일이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가 머리를 박아서 터무니없이 작은 곳에 갇혔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손을 휘저어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았더니 어마어마하게 좁은 공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좁고, 어두운 공간.

 

체념한 듯 눈을 감은 해리는 갑자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

 

버논 이모부일까? 해리는 여전히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모부가 할 만한 짓이라고 해 봐야 자신의 벽장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두들리가 계단 위에서 펄쩍펄쩍 뛰게 두는 정도일 거니까.

 

무언가 둔탁하고 큰 소리가 났다.

 

해리는 손에 걸리는 작은 막대를 달각달각 흔들었다.

 

할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

 

봄바르다!”

 

알 수 없는 고함과 함께 쾅,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밝아진 시야와 갑작스레 흩날리는 먼지에, 해리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깨끗하게 깎인 잔디밭.

 

새하얀 대리석 파편이 날리고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빛에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스카치테이프로 고정시킨 안경을 옷자락으로 문질러 닦자 너무나도 놀란 것 같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고 단정한 모습은 마치 버논 이모부를 떠올리게 했지만 무언가가 다르단 말이지.

 

그 사람은 구덩이 위에서 해리를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진 눈과 떨리는 눈.

 

저 사람도 저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군.

 

아마도 자신이 뭔가를 또 잘못했겠지.

 

이상한 마법을 썼다던가,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던가.

 

그렇기에 애써 일어설 생각도 안 했는데 그 사람은 손수 이 구덩이 안까지 내려와서 해리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뒤돌아 살펴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듯... 그러니까 자신이 본 것 중에서는 드물게 긍정적인 의도처럼 살펴보더니 떨리는 손으로 들어올렸다.

 

포터.”

 

, 선생님(sir).”

 

해리 포터?”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버논 이모부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에 허연 먼지가 묻었다.

 

어색하게 안겨 있다가 고개를 든 해리는 이 사람의 얼굴이 원래 이렇게 창백한지 아니면 놀라서 이렇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꽉 잡으렴.”

 

해리는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그 사람은 입술을 잘근 깨물다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널찍하게 잘 깎인 잔디밭.

 

꽃향기.

 

새하얗게 조각된 대리석.

 

그 모든 것이 있는 공동묘지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탈론을 위한 괴담

2019. 4. 29. 23:24 | Posted by 호랑이!!!

‘또 왔군.’

 

탈론은 나뭇잎 밟는 소리에 인상을 썼다.

 

후배 중 뛰어나 후기지수에 몸 담은 길은 암살이니 경공이야 미약하더라도 원한다면 기척 정도는 지울 만한 인물임에도 굳이 가까운 곳에서 발소리를 낸다.

 

저것이 예의인지 놀림인지는 모르겠으나, 성정을 생각해보면 후자가 가까우리라.

 

같은 문파가 아니면 어느 밤 조용히 명줄을 끊었어도 진작 끊었을 것인데.

 

어지간한 일로는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저 어린 후생이 자신에게 들러붙는 이유가 첫 만남 때 닿는 손길을 피해 뒤로 굴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좀 참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문파장인 주제에 무인보다는 상인이라고 했으면 더 믿음이 갔을 이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을 때를 떠올리면....

 

녹색 비단도포에 빨간 머리통으로 반질반질 웃는 낯을 생각했더니 머리에 열이 오른다.

 

“대협! 여기서 뭐 해요? 일 해요? 왜 기척을 숨기고 있어요?”

 

“저리 가.”

 

그나마 한 가지 좋은 점을 짚으라면 처음에는 오라버니! 했다가 대협이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꼬박꼬박 부른다는 점이다.

 

그나마 한 가지 꼽으라면 말이다.

 

“헉, 정말 일하고 있어요? 왜? 탈론 대협 일 중독이예요?”

 

“저리 가.”

 

“문파장 오라버니가 준 일이에요? 아니면 개인적인 일? 왜 항상 볼 때마다 일하고 있어요? 새암이가 도와줄까요?”

 

“저리 가.”

 

심지어 노란빛에 꽃빛에 화려한 옷이다.

 

어느 제정신 아닌 암살자가 저런 걸 입나.

 

심지어 머리에는 꽃까지 꽂았군.

 

쟤네 문파는 대체 뭘 가르친 거야.

 

“쫓아 보내려고 해도 소용 없어요! 다른 분들은 다 바빠서 탈론 대협을 쫓아다니기로 했거든요.”

 

기세가 자못 당당하다.

 

저게 문파에 오고 몇 명이랑 인사를 나눴더라? 흑막이랑 인사를 했더라고 문파장이 그랬지.

 

빨간 머리 린족이랑은 인사를 했나? 비슷한 연배이니 말도 통하련만 혹시 둘이 친구가 되면 날 그만 쫓아다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탈론은 바삐 발을 움직였다.

 

노골적인 기척을 내며 끈덕지게 쫓아오는 것에 걸음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러고 보니 저 꼬마는 경공이 달리지.

 

탈론은 뿌듯한 마음으로 여간해서는 오르기 힘들 나무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 흐뭇함은 어린 암살자가 쫓아오기 전까지 탈론의 마음을 만족으로 채웠으나 커다란 나무기둥을 착착 오르는 발소리가 들리기 전까지였다.

 

“대협은 높이까지도 잘 올라가네요!”

 

그리고 들리는 높은 목소리에 탈론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납게 말했다.

 

“저리 가!”

 

그리고.

 

탈론은 또 후회했다.

 

자신이 뒤로 몸을 날렸을 때처럼 반짝 빛이 나는 새빨간 눈이.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섀헌/말렉] 요즘 핫하다는 대학AU

2018. 9. 27. 23:56 | Posted by 호랑이!!!

스윗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보는 건 너무나도 기쁜 일이겠지만. 나한테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을 텐데?”

 

매그너스는 핸드폰을 열어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그렇지만 매그너스가 모델 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지금 다 바빠졌잖아요.”

 

클라리사, 클레리는 매그너스의 손가락이 리스트의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굳이 보고 그릴 필요도 없어. 눈 감고도 그들의 육체라면 고스란히 옮길 수 있으니까.”

 

게다가 요즘 세상에는 핸드폰이 너무나도 잘 되어 있어서 동영상을 찍던 사진을 찍던 할 수도 있다고.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로 손가락은 리스트의 아래로 쭉쭉 내려갔다.

 

이번에는 좀 더 근육질인 사람이 좋겠다면서요?”

 

“...뭐 그렇긴 한데. 요즘 권태기라서...”

 

무슨 권태기요?”

 

굳이 새로운 사람을 쓸 필요도 못 느끼겠고... 근육질이 아니어도 뭐 괜찮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모델과 캔버스를 두고 느껴져야 할 아모-르가 느껴지지 않아.”

 

S에서 사이먼의 이름이 나오자 손가락은 가차없이 핸드폰을 튕겨 아래로 내렸다.

 

눈으로 쫓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이름이 주르르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매그너스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클레리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채팅 앱이라면 여러개나 있는데도 알렉이 클레리에게 보내는 것은 언제나 문자.

 

“...알렉? 둘이 애칭 부르는 사이야?”

 

“...그런 건 아니구요.”

 

무슨 끔찍한 소리를, 이라는 표정이 클레리의 얼굴에 스쳐지나갔고 그 찰나의 표정을 읽은 매그너스는 소리내 웃었다.

 

이름을 물어봤더니 안 가르쳐 주겠다고 고집을 부리길래. 제이스가 부르는 걸 들어서 알렉이라고 했더니 그거면 됐다고 막 그러더라구요.”

 

이후에 이지... 이자벨한테 알렉산더라고 듣기는 했지만 이제는 클레리가 오기로 알렉이라고 저장해뒀다.

 

모델 일 잠깐 한다고 하길래 소개시켜 줬더니 갑자기 제가 소개해준 일이라고 다른 일 한다고 하고.”

 

어지간히도 미움을 샀나 보구나 클레리.”

 

“......여기 오는 길이라고 하네요.”

 

됐어, 가라고 해.”

 

우리 스윗피한테 그렇게 무례한 사람이라면 나도 별로야, 라고 매그너스가 싱긋 웃자 클레리도 활짝 미소를 지었다.

 

“..., 알렉도 모델 때문에 오는 건 아니래요. 제이스가 뭘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라는데요.”

 

그래, 그럼 더 볼 일 없네.”

 

잘 됐다 잘 됐어.

 

매그너스는 양 팔을 들어 기지개를 쭉 켰다.

 

그 때 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다.

 

클레리는 핸드폰을 쓰고 있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꽤 강렬하게.

 

잠시 침묵이 흐르고.

 

창가에 늘어선 줄리앙과 브루투스처럼 굳어진 두 남자를 보던 클레리는 알렉이 가지러 왔다는 종이가방을 건네러 일어섰다.

 

알렉, 이거 가지러....”

 

매그너스는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않고 몸을 일으켰다.

 

“...알렉산더라고 했지? 모델 한 번 해보지 않을래?”

 

“...면접 보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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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엑/시로메피] 짧글

2018. 9. 10. 01:36 | Posted by 호랑이!!!

“...뭡니까, 정말?”

 

메피스토는 우산을 휘둘러 마악 자신의 소파에 떨어진 베개를 들어올렸다.

 

땡땡이 칠 때 쓸 거니까 그냥 거기 둬.”

 

후지모토 시로는 지저분한 코트를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 ! 시로! 그런 걸 제 방에다 벗지 말란 말입니다! 던지지도 말고! 입고 들어오지도 말아요!”

 

그러면 홀딱 벗어야 하는데?”

 

역시 내 벗은 몸이 보고 싶었던 거지? 라는 시로 신부의 오만방자한 말에.

 

메피스토는 한 마디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언을 외치며 우산으로 시로의 머리를 내리쳤다.

 

좀 겸손하라구요!”

 

메피스토가 눈살을 찌푸리자 시로는 과장스럽게 머리를 문지르면서 웃었다.

 

다녀온지 얼마 안 됐고, 또 나가봐야 하니까 봐줘.”

 

“...어쩔 수 없지요

 

메피스토가 손가락을 튕기자 코트걸이가 다가와 시로의 코트를 받았다.

 

가기 전에 뭐라도 마시겠습니까?”

 

좋아.”

 

진한 핑크색 다기 세트는 색만 제외하면 보기부터 고급스럽고 차와 함께 먹는 과자들도 제법 맛있어 보인다.

 

마법을 부릴 수 있음에도 메피스토는 손수 주전자를 들어 그의 잔에 따라 주었다.

 

콜라를.

 

이런 악취미도 이제는 익숙해지는군.

 

눈썹을 꿈틀 올렸다가 시로의 시선을 느낀 악마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어딜 가는데요?”

 

전에 부탁했던 거기.”

 

거기, 라면 마검을 가지고 있는 무슨 절을 알아봐달라고 했던 그거?

 

그러니까 사탄의 사생아가 어쩌구 했던 그 중요한 그거.

 

심지어 고작 며칠 전에 심부름꾼을 시켜 쪽지로 낼름 전달한 그거!

 

잠깐, 오늘까지라고 말한 적 없잖아요!”

 

이 망할 신부! 메피스토는 이를 으득, 갈았다.

 

그러면 이 건강에 나쁘다고.”

 

지금은 당신이 내 정신건강에 제일 나빠요!”

 

 

[심바스카] 오후

2018. 8. 25. 07:11 | Posted by 호랑이!!!

삼촌!”

 

유쾌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스카는 누군지 알겠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뭐냐.”

 

삼촌이! 보고 싶어서.”

 

삼촌이!라고 힘차게 대답해놓고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깐다.

 

스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눈을 떴다.

 

아침에 보았잖니. 심바.”

 

오늘 나랑 저녁 먹으러 갈래?”

 

삼촌은 바빠요.”

 

스카는 보란 듯이 서류더미를 밀었다.

 

그래봐야 제일 한가한 직위에 일부러 앉았으면서.

 

게다가 방금 전까지 제일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썬베드를 놓고 졸고 있었잖아.

 

심바는 부루퉁하게 스카의 서류를 뺏었다.

 

“...호랑이들과 함께하는 그거네?”

 

나름대로 중요한 자리란다.”

 

스카는 몇 번 눈을 감았지만 더 이상 자기 힘들 거라는 생각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고, 심바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스카에게 향했다.

 

기지개를 켜려고 팔을 들 때에는 단추 사이가 벌어지는데 미간이 찡그려지면 천이 팽팽하게 늘어나 당겨진다.

 

어라, 저 단추만 조금 헐렁하지 않은가.

 

저 단추가 조금 떨어질 것 같은데.

 

그러니까 저 단추 말이야.

 

삼촌. 거기 단추.”

 

어디, 이거?”

 

하품을 하느라 스카의 입이 벌어졌다.

 

손이 가슴팍을 더듬다가 헐거운 단추를 건드리자 그 단추는 힘없이 툭 떨어졌다.

 

, 이것 참, 이라고 스카의 입이 중얼거렸다.

 

이거 곤란해졌구나.”

 

스카는 입으려고 했던 겉옷을 다시 의자에 걸쳤다.

 

뜯어진 단추가 있던 부분에 손가락을 걸고 양쪽으로 당기자 서서히 셔츠가 벌어졌는데.

 

진한 맛이 날 것 같은 가슴이 그대로 드러났다.

 

“...”

 

“...저녁에 시간을 쪼개서 셔츠를 사러 가는 수밖에.”

 

저녁.

 

심바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냐, 아냐, 그대로 앉아 있어! 내가 갔다 올 테니까!”

 

그리고 스카가 대답하기도 전에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자주는 오늘도 심바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사라비는 점심 이후 보지 못했다고 했고, 오늘은 날라도 얌전한데.

 

이 곳 저 곳을 다 다녀보았지만 이 왕자님은 어디에도 없어서 갈수록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안고 가장 가기 싫은 곳, 스카의 사무실로 발을 향했다.

 

실례합니다.”

 

들어오라고 한 주제에 스카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셔츠도 벗는 중이었는지 단추를 풀고 있어서 자주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던 손을 멈추었다.

 

심바 못 봤습니까?”

 

글쎄, 어떨까.”

 

하얀 옷이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며 짙은 색 마호가니 책상 위에 떨어졌다.

 

또 심바한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 건 아니겠지요?”

 

그 질문에도 이를 드러내는 웃음 뿐이다.

 

못돼먹은 한량 같으니.

 

자주는 문을 닫고 뱉듯이 중얼거렸다.

 

심바한테 못된 물이 안 들게 떨어트려 놔야 할 텐데.

 

그런 말이 들리는 문 뒤에서 스카는 다시 썬베드에 누웠다.

 

팔을 위로 들면 썬베드의 기둥에 손목이 걸렸고 몸에 햇살이 쏟아져 뜨뜻하다.

 

아까에 비하면 명백하게 흐트러진 자세로 누운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그르릉 소리가 흘러나왔고, 다시 스카는 눈을 감았다.

 

 

[섀도우 헌터스/알렉X매그/"AU"] 요리 배우는 말렉

2018. 8. 19. 09:25 | Posted by 호랑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매그너스 베인은 웃는 얼굴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 딱딱한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매그너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힘을 줄 필요는 없어.”

 

, 가볍게, 가볍게, 라고 속삭이는 입가가 웃고 있다.

 

귓가에만 속삭이지 않아도 좀 더 나을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거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매그너스가 생각하기에 그건 정말로 어쩌다가, 라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어쩌다 보니 저 사람이랑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어쩌다 보니 저 사람이 집에 놀러오는 일이 생겼다.

 

어쩌다 보니 식사 이야기가 나왔고, 어쩌다 보니까.

 

정말로 어쩌다 보니 이 사람과 함께 요리를 하게 되었다.

 

알렉산더랑 자주 만나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무언가가 진전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이게 싫다는 건 아니고.

 

매그너스는 칼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늘고 길게 잘린 당근이 일정한 크기로 다시 잘리는 모양은 자기 손으로 하는 것 치고는 예쁘게 잘 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말이지 이런 건 언제 얼마나 겪던 적응이 안 된다니까.

 

이 소리를 래그노어가 들었다간 겪어봤자 얼마나 겪었다고?’라는 소리를 호탕한 웃음과 함께 들려주었겠지만.

 

매그너스.”

 

이런 일을 사귀지 않는 사람하고는 안 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냥 요리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이런 자세로 가르쳐 주나?

 

양 손목을 잡고, 귓가에 속삭이는 것도 하고.

 

방금 손목 안쪽을 만진 거야!? 착각인가!?’

 

이제는 잘게 썰린 야채 조각을 섞기 시작했지만 매그너스는 그런 세심한 작업보다 등 뒤에 신경이 잔뜩 쏠려 있었는데, 그러다 후욱, 입김이 목덜미에 닿자 몸을 홱 틀었다.

 

알렉, 산더!”

 

?”

 

그게, 그러니까...”

 

 

 

 

 

 

 

 

알렉산더는 움찔하고 돌아선 매그너스를 내려다보았다.

 

휴일이라고 집에서 쉬는 중이었다는 이 사람은 자신의 방문에 머리를 손으로라도 쓱쓱 빗은 티가 났지만 뒤에서 보는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고양이털이 붙은 하얀 티셔츠는 구겨졌고, 지문 자국이 남은 까만 뿔테안경은 커다래서.

 

그 너머에서 당황해 이리저리 굴러가는 눈동자도 볼 수 있다.

 

으음... 그게, 그러니까요, 말이지요, 하고 이어지는 것을 들어 주던 알렉산더는 웃음기 어린 눈으로 매그너스를 돌려세웠다.

 

그래요, 이제 덜 할게요.”

 

그러자 가만히 있더니, 시간차를 두고 알렉산더의 손 안에서 어깨가 움찔한다.

 

안 하는 게 아니고 덜 한다고!? 라고 생각하는 것이 표정을 보지 않아도 읽혔다.

 

달걀 껍데기가 들어간 것 같다며 고개를 숙이자 목덜미가 드러났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숙여 그 목덜미에 입을 맞추려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은 안 할 테니까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돼요.”

 

, 안 먹었어요...!”

 

 

 


[파판14/모험가와 토르당이 나옴] 스포 조심

2018. 7. 20. 04:37 | Posted by 호랑이!!!

, 이슈가르드의 급격한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몇 번이나 들었지만... 직접 겪는 것은 역시 다르군... 정마, , ... 먓취!!!!”

 

괜찮으신가용!?”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 말조차 코맹맹이 소리다.

 

그럼 저 쪽은 내가 갈 테니까 알피노는 쉬고 있어.”

 

저는 주점에 가보겠습니당, 알피노님을 잘 부탁드려용!”

 

자네들이 고생하는데 나 혼자 따뜻한 곳에... 에에, 에취이!”

 

고집을 부리던 알피노였지만 날씨가 눈보라로 바뀌기 시작하자 결국에는 울상으로 포르탕 저택에 들어갔다.

 

걱정 말게 맹우여! 잘 다녀오게!”

 

오르슈팡의 배웅을 뒤로하며 단단한 빙하는 길을 걸었다.

 

일단 볼일이 신학원이라고 했지.

 

포르탕 가에서 위쪽으로 쭉 올라가면 열두 기사상이 있고, 웅장하고 커다란 그 사이를 걸어가면 방패 모양 광장이 나온다.

 

눈보라가 치는 날씨에도 흐르는 물은 얼지 않아서 혹시 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단단한 빙하는 장갑을 벗고 물에 손을 풍덩 담갔다.

 

으앗, 차거!”

 

그렇지만 역시 물이고, 물은 젖는다.

 

단단한 빙하는 습관적으로 손을 옷에 문질러서 물기를 닦아내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빙하가 입은 것은 갑주였고, 그것도 눈보라에 몹시 차가워진 갑주였다.

 

그 차가운 갑주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느냐.

 

!!!! 손이 안 떨어지잖아!!!!”

 

이렇게 된다.

 

손을 잡아서 떼어내려고 했다가 손이 아파서 실패.

 

입김을 호호 불었다가 손이 엄청나게 시려워져서 실패.

 

이렇게 저렇게 손을 당겨보았지만 자칫하다가 손바닥 가죽이 날아갈 거 같아서 실패.

 

젠장 어떡한다, 포르탕 가로 돌아가서 손이 붙었으니 떼달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이런 일로 돌아가기에는 단단한 빙하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다시금 낑낑거리고, 당기고, 불고, 온갖 난리법석을 피우다가.

 

마침내 지쳐서 헥헥거리고 숨을 몰아쉬는데.

 

어디에서인가 똑똑 소리가 났다.

 

뭐야?”

 

손바닥만한 유리창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창문.

 

누군가가 들었으면 그건 스테인드 글라스라는 거라고 뒷목을 잡을 생각을 태연하게 하면서 다가가자 주름진 유리 너머로 얼굴이 보인다.

 

처음 보는 얼굴이로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오라, 그래서 손이 붙어버린 모양이구나.”

 

창문이 삐걱 열렸다.

 

저리로 가면...”

 

하얀 수염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가에 오른 웃음은 숨길 수 없다.

 

그리고 단단한 빙하의 머릿속도 열려 버린 것인지, 그 사람이 무어라고 알려주었지만 머리에 남아있는 것은 단 한 자도 없어서.

 

“...알겠느냐.”

 

“....”

 

이보게, 젊은이?”

 

“............”

 

자네.”

 

“...들려?”

 

뭐가 들리냐는 것인가?”

 

이 종소리.”

 

?”

 

귀를 기울이면 때마침 저 멀리에서 정말로 종이 울린다.

 

이것은 정교회에서 울리는 종이라네.”

 

저 멀리에서 누군가를 찾는 소리가 나고, 창문 너머의 이 사람은 곤란하다, 라고 말하더니 관이 흘러내리지 않게 손으로 누르면서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하얀 수염에 눈이 걸리고 두꺼운 천으로 만든 옷에 눈이 떨어지면 이내 녹아 짙은 색으로 젖는다.

 

그 사람이 손을 뻗고 있음에도 단단한 빙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사람은 문 쪽에다 대고 잠시만 기다리라는 소리를 했다.

 

저 쪽으로 가면 앙달림 신학원이 나온다, 거기서 따뜻한 불을 쬐면 그 손도 떨어질 테지.”

 

어서 가보게.

 

그리고 창문은 닫혔다.

 

그러나 단단한 빙하는 그 닫힌 문에 눈을 떼지 못하고, 일그러진 색유리 너머로 하얀 옷이 멀어지고, 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도 그 자리에 남았다.

 

언 손이 아파와서 새삼스럽게 정신을 차릴 때까지.

 

 

 

 

 

 

 

이 쪽입니다, 모험가님.”

 

단단한 빙하는 안내를 받아 교황청에 들어왔다.

 

건물은 크고, 높고, 오래되었고, 아까 보았던 것과 같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많았다.

 

아까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같은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육중한 문은 양쪽으로 열리고, 단단한 빙하는 둘러보던 시선을 문 너머로 던졌다.

 

우아하게 던지는 것도 아니고.

 

영웅에게 던지는 것처럼 고운 것도 아니고.

 

영웅이여, 그대의 소문은 익히 들었노라.”

 

마치 맨 앞에 있는 적에게 도끼를 던지듯이.

 

그 사람은 눈이 녹아 얼룩이 진 소매를 들어 흰 수염을 쓸어내리고, 마악 창문을 열었을 때와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토르당 7... 이슈가르드 정교를 대표하는 교황이니라.”

 

 

[모험가X가루다/페드X라] 가루다 안나옴

2018. 7. 1. 02:35 | Posted by 호랑이!!!

붉고 눈매 사나운 아우라.

 

페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뭘 어쩐다고?”

 

요리! 즐거운 요리!”

 

루가딘 아가씨는 근육을 뽐내며 외쳤지만 아쉽게도 이 단단한 빙하라는 사람에게는 요리의 기술이 조금도 없었다.

 

요즈음의 본직은 요리사라고 외치기는 하지만 제자 들일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기에, 페드는 다소 거칠게 칼을 내리쳤고 요리는 펑 소리를 내며 못 먹을 만한 것으로 바뀌었다.

 

요리사 길드에 가서 배우세요.”

 

싫어, 그렇게 거창하게 할 건 아니니까!”

 

게다가 여기서 멀어!

 

그렇게 외치는 루가딘을 올려다보다 페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왕 해 먹이는 거 좀 정성을 담아서 만들어 먹일 것이지.

 

저 인간 도끼 잡고 일주일이 안 되어서 야만신 잡으러 다니고 비술서 잡고 일주일이 안 되어서 모든 극의를 다 깨우쳤다고 그만둘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때라고 저 급한 성질머리를 안 알아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대충일 줄은 몰랐지.

 

미간을 찌푸리고 페드는 정리하려던 멋진 프라이팬을 내려놓았다.

 

빌려주겠습니다, 그럼.”

 

재료랑 요리법도 가르쳐줘야지.”

 

얘 실력으로 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그런 눈빛을 받으면서도 단단한 빙하는 꿈꾸는 듯 한 눈빛으로 음식을 나열했다.

 

속을 채운 커다란 도도 통구이라던가, 영양 뒷다리 살을 구운 거나, 피피라피라도 쪄 먹으니까 맛있던데. 아니면 초콜릿과 크림을 쌓은 케이크도 나쁘지는 않지

 

네가 할 만한 조리가 생각났습니다.”

 

송로버섯과 푸크 알을 써서 만드는 볶음요리?”

 

일단 암염을.”

 

.”

 

그리고 증류수도.”

 

.”

 

이제, 소금을 만드는 겁니다.”

 

웃기지마! 라며 단단한 빙하는 프라이팬을 뒤집었다.

 

루미스라이트 주괴로 만든 프라이팬은 겨우 그 정도로는 흠집도 남지 않겠지만 페드는 급히 프라이팬을 들어 샅샅이 살폈다.

 

뭐예요? 둘이 좋은 거 해?”

 

별 거 아닙니다. 단단한 빙하가 한 번 요리에의 길에 눈을 뜨려고 해서.”

 

아니거든. 우리 여신님한테 갖다 바칠 요리거든.”

 

나는 요리를 드리고 호감을 얻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하자 라는 박수를 짝짝 쳤다.

 

그럼 나도 도울래! 재료 뭐 필요해?”

 

라는 할 일이 없을 텐데요.”

 

괜찮아! 나 이제 많은 거 채집할 수 있으니까!”

 

정말로 정말이라니까? 라고 눈을 반짝이는 이 미코테는 광석만 캐봤으면서.

 

그럼 서부 다날란에서 마늘하고, 중부 라노시아에서 밀하고...”

 

, !”

 

그리고 알라그 달팽이랑.”

 

“...?”

 

나무두꺼비를 각기 하나씩...”

 

그걸로 뭐 만드는 거예요?”

 

나무 두꺼비 튀김.”

 

그리고 빙그레 웃자 꼬리털이 부숭부숭하게 일어서서는 캬앙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선다.

 

그런 걸 먹일 수는 없잖아, 그래도 여신님인데.”

 

그런가요.”

 

그래서 너는 원예가 일을 할 수 있냐, 어부 일을 할 수 있냐, 아니면 하다못해 광부 일이라도 할 수 있냐.

 

그러자 또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든다.

 

하나도 못 하지!”

 

보통 이런 때는 부끄러워하거나, 머쓱해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닌가.

 

내가 루가딘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도저히 저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지.

 

페드는 눈가를 살짝 문지르고는 한숨을 쉬었다.

 

가서 원예가가 되십시오. 어부 일은 내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요.”

 

뭐가 필요한데? 얻기 어려운 거야?”

 

피피라랑 살구버섯. 나머지 재료는 내가 마련할게요.”

 

그리고 마실 것으로는 바나나랑 무화과랑 야크 젖이랑, 애피타이저로는 악어 배랑, 또 디저트로는 초콜릿이 좋겠으니 쿠쿠루 콩이랑 메이플 시럽이랑.

 

바나나랑 무화과랑 악어 배는 내가 가져올 테니까, 하고 말하던 페드는 순식간에 제 앞으로 들이밀어지는 훌륭한 재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이건 무슨....”

 

피피라, 살구버섯, 바나나, 무화과, 야크 젖, 악어 배, 쿠쿠루 콩, 메이플 시럽이야!”

 

아니 이걸 어떻게?

 

페드는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단단한 빙하를 쳐다보았다.

 

재료를 가지고 있었나요?”

 

내가 이런 거 가지고 있는 거 봤냐.”

 

야 설마.

 

아 설마.

 

설마.

 

단단한 빙하는 매력적인 앞머리를 뒤로 휙 넘겼다.

 

채집은 역시 장터 게시판 채집이지.”

 

넌 지금 야만신 가죽을 벗겨 옷을 해입은 날 앞에 두고!!!!!!!!”

 

뭐야, 그래도 되는 거였으면 나도!”

 

, 가만히 못 있습니까? 단단한 빙하, 거기 좀 앉으세요.”

 

이 인간들 하여간에!!!

 

아까까지 손수 만든 요리를 가져다 드린다고 했던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뚝딱뚝딱 서걱 서걱 탁탁탁.

 

여기 있네. (네가) 손수 만든 요리.”

 

하다못해 요리사 길드에라도 가서 제대로 배울 것이지 그렇지도 않고, 급하게 만들어야 한다니 도와달라고 해서 왔더니! 하다못해! 재료라도! 손수 캐와야지 않습니까!”

 

손수 번 돈으로 캐 온 재료잖아? 내 피와 땀이 들어가 있다고?”

 

게다가 난 파티의 맨 앞에 서는 멋진 전사니까 진짜로 피를 흘린다?

 

자꾸 꼬박꼬박 말대꾸 할겁니까!”

 

페드가 내리치는 식칼질에는 힘이 실린다.

 

그렇게 손을 놀릴수록 먹음직스러운 배 샐러드가 만들어지고 생선과 버섯을 잔뜩 넣어서 찐 생선찜이 따끈따끈 맛있는 냄새를 풍기고 살짝 얼린 칵테일에서는 신선하고 달콤한 과일 향이 난다.

 

마지막으로 메이플 설탕과 우유와 쿠쿠루 가루를 섞어 초콜릿을 만들자 모양 좋게 늘어지는 액체 초콜릿이 보여서 라는 손을 뻗었다.

 

다 만들면 줄테니까요, 기다려요 라.”

 

그치만 지금 맛보고 싶은걸!”

 

페드는 마악 모양을 내서 바람 크리스털로 굳힌 동그란 초콜릿을 내밀었다.

 

한 입에 넣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르릉거리는데 바람이 휘잉 소리를 내며 불었다.

 

여기로 나를 소환한 것이냐, 벌레들아.”

 

벌레라니?

 

라는 고개를 들었다가 캬앙 소리를 내며 페드의 등 뒤로 숨었고 단단한 빙하는 페드가 만든 요리를 부지런히 식탁으로 옮겼다.

 

어서와아~”

 

떨어져라.”

 

다날란의 아파트 옆, 해가 지면 별이 뜨고 달이 빛나는 것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에 나타난 것은 사람도 벨 듯 날카롭게 부는 바람의 여신이다.

 

손톱을 세운 라 덕분에 페드는 마지막으로 동그랗게 만들어진 초콜릿을 접시에 가득 쌓고 일어섰다.

 

단단한 빙하는 어째서? 저 냐만신은! 어째서!?”

 

단단한 빙하가 가루다를 좋아한대요.”

 

? 저 무시무시한 야만신을!? 어째서!?”

 

목소리가 컸던 모양인지 가루다가 라를 돌아보자 라는 귀를 납작 접으며 페드의 등을 긁었다.

 

“...그럼 우리는 이만 들어갈 테니, 두 분은 좋은 시간 보내시길.”

 

자아 우리는 아파트로 돌아갑시다.

 

저 무시무시한 야만신에게서 멀어지자구요.

 

페드는 라의 등을 토닥이면서 덜렁 들고 아파트 입구로 올라갔다.

 

모처럼 다날란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청의 엑소시스트/시로메피] 옛날에 썼던거 발견함

2018. 6. 24. 16:47 | Posted by 호랑이!!!

「나의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본문 생략)

P.S : 그런데 전화를 당분간 쓰지 못한다니, 버릇 나쁜 고양이라도 만난건가?」


메피스토는 그저 버릇 나쁜 ‘고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며 깃펜을 들었다.


「친애하는 시로,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매우   」


메피스토의 깃펜이 양피지 위에서 딱 멈췄다.


시로를 걱정시키지 않으려면 잘 지낸다고 적어야 하고, 그에게 거짓말하지 않으려면 못 지낸다고 적어야 한다.


악마가 거짓말하는데 양심에 찔리냐고 물으면 정말 할 말 없지만, 그것도 다 상대 보고 하는거다.


(아서라던가 하는)바보들을 속여넘기는건 오히려 즐기는 편이지만, 시로에게, 그러니까, 연인한테만은 하고싶지 않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스트레스 받아 죽기 딱 좋다’고 적었다간...


...아마, 앞뒤분간 안하고 여기까지 달려올지도.


꽤나 신빙성 높은 추측을 하고, 메피스토는 좋다와 싫다의 중간쯤 되는 단어를 찾으려 했다.


‘찾았다’가 아니라 ‘찾으려 했다’라고 한 것은, 누군가 메피스토의 목을 뒤에서 안은 까닭이다.


“메피스토~♡”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메피스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뭡니까, 아버님!”


“뭐냐니, 아빠가 아들 이름부르면서 안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거냐.”


“이런걸 인간들은 희롱이라고 하는걸 알아주십시오.”


“네가 인간이 아니란것 정도는 슬슬 깨우칠 때가 되지 않은거냐?”


한마디도 안 진다.


메피스토는 속으로 여러마디의 험한 말을 씹어삼키며 최대한 눌러 참았다.


“도대체가 말입니다, 어째서 게헤나로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가 여기 있잖느냐.”


사탄은 메피스토의 목을 다시금 끌어안았다.


“너 말이다, 넌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꼴같잖게 인간흉내를 내면서 이렇게 나이까지 먹고.”


사탄은 메피스토의 뺨을 잡아 늘였다.


“주름봐라 주름, 피부도 꽤 까칠해졌고~♪”


“놓으십시오.”


성격도 딱딱해졌어, 이 녀석아.


사탄은 낄낄거리다 메피스토의 의자에 제멋대로 걸터앉았다.


팔걸이에 몸을 삐딱하게 누이고 다른 팔걸이엔 다리를 꼬아 내려놓았다.


“분명히 말합니다만...”


똑똑.


두어번의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의자에 앉아있던 사탄은 그 자세 그대로 확 타올라 모습을 숨겼다.


“펠레스경, 서류 입니다.”


정십자에서 온 서류다.


서류는 ‘시로가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진위 여부를 따지면 일하기 싫어진다) 받아들었다.


문이 닫히자, 다시 불꽃이 확 타오르더니 아까의 자세 그대로 사탄이 나타났다.


“...그래, 분명히 말해보지. 인간과 악마의 사랑이라니, 이 얼마나 넌센스냐.”


사탄은 과장되게 팔을 벌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버님도 인간과 관계를 맺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 나의 얘기를 하는게 아니란다, 사랑하는 메피스토.”


사탄은 갑자기 얼굴을 확 굳혔다.


“인간, 인간 하니 인간식으로 따져보자꾸나. 내가 관계맺었던 인간이 ‘너의 친애하는 시로’의 딸이었던것도 아느냐?”


“...편지를 훔쳐보다니, 악취미로군요.”

“장인어른을 며느리로 맞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구나.”


“저도 아버님도 그런걸 신경쓰지 않는 악마라는걸 잊을만큼 나이가 드셨는줄은 몰랐군요.”


치매라도 왔던 겁니까, 슬슬 후계자위 주시고 은퇴하지 그러십니까?


사탄은 재미난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다가 농염한 미소를 흘리며 메피스토에게 매달렸다.


“오늘은 너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구나, 메피스토.”


굳이 밤이 아니어도 좋고, 라고 덧붙이는 사탄에게 메피스토는 단칼에 거절했다.


“싫습니다.”


“이 모습이 싫다면 ‘친애하는 시로’의 모습으로도 바꿔줄수 있다만.”


“악마는 외면에 집착하는 생물이 아니란 것을 잊으신것 같습니다, 아버님.”


사탄은 시로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메피스토오~ 설마 인간도 아니면서 정조란걸 지킬 생각은 아니겠지이~”


메피스토는 자신의 의자에 털석 주저앉고는 다시 깃펜을 들어 잉크병에 담갔다.


“악마든 인간이든, 여자든 남자든, 연인이 있는 이상 정절은 지켜야 하는 겁니다. 아버님.”


메피스토는 몇 글자 편지에 적었다.


「저는 매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 시로 신부가 보낸 편지가 뒤집혔다.


「보고싶어, 메피!!!」


메피스토의 눈이 곱게 휘었다.


“악마와 인간 사이에, 사랑은 있어도 연애는 있을수 없다고 하셨지요, 아버님.”


사탄은 메피스토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과자 접시에서 시선을 떼었다.


“유감스럽게도, 저와 ‘저의 친애하는 시로’는 연애를 하는것 같습니다만. 존경하는,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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