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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12

2022. 11. 20. 22:49 | Posted by 호랑이!!!

 

마틴은 보고를 마쳤다.

 

복도를 따라 난 유리창 너머로 온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온 복도도 물건도 모두 붉은 색으로 변한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기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마틴은 그게 사람인 것도 몰랐을 것 같았다.

 

티엔 사부... 아니, 정 티엔 어디있어?”

 

마틴은 하랑에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여러 사람이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가 하랑을 휘감고 몰아치고 있었다.

 

정 티엔-’

 

죽여!’

 

대화를 먼저

 

처음부터 수상했어

 

뭔가 오해가

 

하랑이 고개를 마틴 쪽으로 들었고 동시에 마틴은 누군가 밀친 것처럼 브루스의 방 문에 부딪쳤다.

 

듣지 마!’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고 마틴은 비틀거렸지만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랑, 지금 과하게 분노했어요. 냉정을 되찾으세요!”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

 

으레 티엔이 하던 소리라서인지 역효과가 났다.

 

하랑이 화를 잠재울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마틴은 다시 소리에 귀 기울였다.

 

누구인지, 인간인지도 모를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지나면 개가 경계하여 짖는 소리, 뱀의 쉿쉿거림, 독이 오른 쥐가 긁는 소리, 그리고.

 

분노한 범.

 

개와 쥐가 경계하는 것은 이전에도 들었다.

 

뱀이 위협하는 소리는 적지만 간혹 있었고.

 

그러나 호랑이라니?

 

단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던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이라니.

 

하랑은 마틴에게 시선을 두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짓누르는 것 같은 힘이 천천히 마틴에게서 떨어졌다.

 

순식간에 하랑의 몸은 계단 위를 뛰어오르고 마틴은 손을 뻗었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바로했다.

 

무슨 일인가.”

 

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덩치가 복도를 메우듯이 열린 틈에서 빠져나왔다.

 

하랑입니다.”

 

무슨 일로?”

 

모릅니다.”

 

모른다고?”

 

자네가? 라고 묻는 듯한 눈에 마틴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가 없는 것은 자기 책임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마틴은 모자를 꾹 눌러 썼다.

 

하랑에게 가보겠습니다.”

 

자리를 떠도 좋다는 허락을 듣기도 전에 마틴은 발을 옮겼다.

 

빠르지 않은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면 티엔의 방이 가까워진다.

 

겨우 몇 초 늦게 출발했을 뿐인데 복도는 이미 여기저기 부서졌고 때마침 근처에 있었던 일부 능력자들도 부상을 입은 채 티엔의 방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비용으로 둔 출장 가방이 사라진, 주인이 없는 그 빈 방을.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아침이면 하랑은 일찍 일어나 수련을 시작했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도 틈틈이 배웠다.

 

역사서를 읽었고, 신문을 읽었고, 수많은 책을 읽었으며 브루스의 뒤에서 회의나 회담에도 참가했다.

 

이제 첫 히트도 지났고,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틴은 브루스에게 하랑과 회의에 참가하라는 말을 들었다.

 

, 여기 자리 있어?”

 

한 일원으로 참가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비서진 사이에서 참가하는 것뿐인데다, 브루스 외에 자신 옆에서 일을 배우는 건 재단 일 치고도 꽤나 안전한 일이긴 하지만.

 

자리, 있냐니까, !”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자신이 조금 더 철저하게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틴은 자료를 넘겼

 

마틴 형!!!!!!!”

 

으아아악!!! !!? !!! 앉아요 앉아, ...... ....?”

 

하랑은, 열일곱 되는 아이다.

 

어휴, 어디에 정신을 판 거야?”

 

깨끗하게 씻고 땋아 드리운 댕기머리.

 

그의 아버지가 구해다 주었다는 파란 셔츠와 조끼.

 

언제나 명랑하고 착하고 솔직한...

 

오늘은 나랑 형이랑 가는 거 알아?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정말.”

 

거기 꽤 멀던데, 그래도 1시쯤 나가면 시간이 충분할 거야.”

 

나 그 설탕 좀. 아까 저기서 오늘 건 설탕 듬뿍 넣으면 맛있을 거라고 하더라?”

 

그러나 건네어진 설탕그릇은 뚜껑을 달각거릴 뿐이었다.

 

평소처럼 하얀 산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 앞에 현관에 나와야 해.”

 

하랑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틴은 벌떡 일어나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음식을 쓰레기통에 부어버리고 재단 안을 달렸다.

 

계단을 뛰어오르고 복도를 달려나가고 유달리 사람이 많아 번거로운 곳에서.

 

욕설과 함께 공용 전화기 사용 신청서를 쓰는 손길은 거칠었고 담당하는 직원은 웬일로 험한 모습을 보이는 마틴에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티엔 정은 아직 배 위일 테니 전보 쪽이 빠를 겁니다. 뭐라고 보내드릴까요?”

 

나중에 전해져도 상관없으니 전화 쪽으로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자신이 자연스럽게 티엔 정을 떠올린 것.

 

그리고 그가 거의 오자마자 출장을 다시 나간 것.

 

마틴은 그 안에서 티엔의 부속물처럼 여겨지던 하랑이 요즈음 재단 일을 다양하게 하던 것과의 연관성을 읽어냈다.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11

2019. 8. 31. 10:27 | Posted by 호랑이!!!

 

얼마 안 있어 셋은 재단으로 돌아왔다.

 

마틴과 티엔은 각기 예정보다 길어진 출장에 대한 보고를 하러 갔다.

 

눈만 마주치면 티격태격하는 사이지만 짐을 내려놓을 새도 없다보니 복도 안에는 무거운 두 발걸음만 울려 퍼졌고 세 명분의 짐을 떠안은 하랑은 계단을 올랐다.

 

마틴의 방 앞에 하나, 티엔의 방 앞에 하나.

 

마지막 하나는 하랑의 침대 위에 쏟아졌다.

 

사탕 캔, 못생긴 모형, 단어장, 그 사이에서 하얀 곰인형을 집어든 하랑은 후다닥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인형을 품에 꽈악 안았다.

 

며칠만에 냄새가 배었는지 호텔에서 나던 것과 비슷한 마른 종이와 꽃 향이 잔뜩 뿜어져 나왔다.

 

하랑은 거기 코를 박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손에는 누런 부적 종이가 한 주먹 쥐여 있었다.

 

 

 

 

 

 

항구에는 사람들이 많다.

 

떠나는 사람, 떠나보내는 사람, 도착한 사람들과 맞아주는 사람들까지.

 

얼마 전에는 하랑도 저 중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떠나거나 마중을 나온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에게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뒷골목으로 들어서며 하랑은 부적 하나를 빼들었고 그것은 손 안에서 화르륵 불타 사라졌다.

 

찾아라.”

 

우우우우 소리를 내며 붉은 개들이 뒤엉키고 움틀대며 골목 골목으로 사라졌다.

 

서생원은 잽싸게 인간이 다니지 못하는 길로 사라지고 하랑은 그들이 모든 골목과 모든 사람들을 훑고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섰다.

 

기괴하게 일렁이는 붉은 빛은 실체가 있는 것처럼 흘러넘쳐 하랑의 옷가지며 머리카락을 밀어올리고 들추어진 머리카락 아래에서 눈동자도 붉게 빛을 냈다.

 

바람이 불었다.

 

바다, 파도에 밀려나온 해초와 무엇인지 모를 비린내가 훅 끼쳤다.

 

항구의 여기에서 저기까지 기운이 술렁이고 하랑의 개들이 사람을 엮어왔다.

 

전부 익숙한 낯짝들이다.

 

그들이 사이퍼일지는 몰라도 귀신에는 면역이 없는지 가여울만큼 떨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지.

 

하랑은 나무 상자에 걸터앉았다.

 

일꾼들은 눈치를 보다 귓가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넘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

 

하랑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너넨 뭐냐?”

 

그러자 사람들이 고개를 든다.

 

우리, 아니, 저희는. 그냥 여기서 일하는-.”

 

하랑은 그 사람 앞에 다가갔다.

 

시선이 마주칠 듯 가까워지자 그 사람은 필사적으로 눈알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하랑은 그 앞에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었다.

 

, 나 알지?”

 

, , , 무슨 소리이신지 저는 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일렁이는 머리카락은 다분히 이질적이다.

 

그저 머리카락이 흩날릴 뿐인데 그 움직임은 마치 악마가 지내는 번제의 절과도 같아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랑은 기겁하는 그의 고개를 잡아 저를 보도록 강제로 돌렸다.

 

상대가 오메가인지 베타인지 알파인지는 히트 당시가 아니면 알 수 없다고 마틴 형이 보증해 주었다.

 

하지만 이 자들은 저를 보자마자 오메가라고 달려들었지.

 

누가 시켰어?”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10

2019. 8. 28. 14:28 | Posted by 호랑이!!!

 

바다. 바다. 바다!

 

하랑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따뜻한 바다는 하얗게 부서지며 하랑을 맞았고 손을 힘차게 뻗거나 발장구를 치면 또 첨벙첨벙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물을 좋아하는 붉은 개는 하랑이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뛰어들었고 이어 청사가 물 속으로 스르르 헤엄쳐 사라진다.

 

파도가 거친지 서생원은 밀려온 바다 거품에 조그만 발을 담가보고는 만족했고 덩치 큰 신호는 답지 않게 앞발을 파도 속에 첨벙 넣었다가 뒤로 물러서더니 두두두 달려와 힘차게 뛰어들었는데 옆에 있던 마틴은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았다.

 

조용히 해욧!”

 

나 아직 암말도- 어풉...!”

 

그래, 챌피. 아직 하랑은 아무- ...”

 

! 하라악...! 능려.. 푸푸푸....!”

 

두고보자며 마틴은 회중시계를 찾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수영복 차림이었고 무방비하게 하랑이 뿌리는 물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틴을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만들었다며 웃다 서생원과 눈이 마주쳐 어색한 시간을 보낼 뻔 한 하랑은 그걸 수습해 보겠답시고 티엔에게 물을 쏟았다가 티엔이 이끌어낸 쌍룡에 의해 정말로 물에 빠져버렸다.

 

진짜로 기술을 쓰는 게 어디있어!”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는 것 뿐이다.”

 

거러온 싸우물 피하쥐 안눈 거 뿌뉘다.”

 

하랑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마틴은 허허 웃으며 수건을 가져다주었는데 하랑은 익숙하게 마틴 앞에 앉아서 머리를 툭 기댔다.

 

그리고 동시에 옆에서 들려오는 음습한 마음의 소리에 마틴이 고개를 돌렸더니 거기에는 티엔이 이 쪽을 황당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뭐예요.”

 

이 하랑. 지금 뭐 하는 거냐.”

 

아무것도...? 안 하는데...?”

 

마틴은 수건으로 하랑의 머리를 탈탈 털어주다가 팔을 둘러 꽉 끌어안았다.

 

남자의 질투는 보기 흉해요.”

 

누가 질투한다는 거냐.”

 

방금 제가 마음을 들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모 씨가 아닐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마틴은 후우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예의가 뭔지 아는 영국 남자다.

 

비록 저 인간은 예의도 없고 싸가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하랑의 마음도 없지만!

 

하랑의 마음도 없지만!

 

그렇게 생각한 마틴은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었고 티엔은 이를 꽉 다물었다.

 

하랑이 옷을 가지러 가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티엔은 일부러 앉아있는 마틴의 앞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무슨 꿍꿍이냐.”

 

꿍꿍이라니 듣기 섭섭하군요. 제가 자주 하랑의 머리를 말려주는 걸 몰랐나요?”

 

자주?”

 

누군가가 힘들 때마다 옆에 있어주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겨우 옆에 있는 것 말인가...?”

 

물론 혼자서완벽하려고 노력한 당신은 모르겠지.

 

더운 날에 주스를 준다던가, 불안할 첫날에 사탕과 함께 힘내라는 말을 해준다던가.”

 

마틴은 손가락을 꼽았다.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당신은 모르니까.”

 

누가 모른다고 그러나.”

 

티엔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하랑이 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하랑.”

 

얼마간 걷자 하랑이 겉옷을 들고 오는 것과 마주쳤다.

 

“...뭐요?”

 

, 조가비... 그걸로는 안 되나?”

 

뭔 조가비? 저번에 준 그 흉... 모형?”

 

그래.”

 

그게 뭔데? 그거 무슨 주술 도구였나? 하랑은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그 흉물한테 무슨 기운이 느껴졌던가? 자신은 잘 모르겠는데, 더군다나 받은 후로는 계속 잠만 자서 어디 쓸 수 있나 시도도 안 했었다.

 

“..., 또 뭐라고 하게?”

 

공손하게 말해라, 하랑.”

 

아파서 잠만 잤다고 하면 또 수련이 부족하다 하려고 그러시옵니까? -.”

 

티엔의 인상이 구겨졌다.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9

2019. 8. 8. 16:04 | Posted by 호랑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티엔은 일주일 치의 방값을 더 지불했다.

 

재단에 연락했더니 당장 달려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마틴이 애써서 진정시켰고 하랑은 약에 적응했는지 약 전에 죽이라도 먼저 먹었다.

 

티엔과 마틴은 우편으로 받은 서류를 처리하거나 전화기에 매달렸고.

 

그렇게 첫 히트가 일어난 후 사흘이 지나고 하랑의 열이 가라앉았다.

 

하랑의 뱀, , , 호랑이는 며칠 아픈 하랑의 곁에 있는가 싶더니 몸이 나아진 것 같자 새로운 환경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티엔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방바닥에서 작은 동물의 뒷덜미를 집어 치우는 것 같은 행동을 간혹 했다.

 

하루이틀은 그러려니 했지만 그게 사흘이 되자 티엔은 하랑의 방문을 열어젖혔고 잘만 자던 하랑은 난데없는 방문에 억지로 눈을 비벼 떴다.

 

뭐요?”

 

나가라.”

 

남의 방에 와서 갑자기 축객령이라니?

 

뭘 잘못 들었나?

 

하랑은 다시 물었다.

 

뭐요?”

 

나가라고 했다.”

 

이 양반이 미쳤나, 뜬금없이 왜 와서 이런담.

 

자신이 마틴 형도 아니고, 아니, 마틴 형도 모르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이렇게 다짜고짜인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말도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뭐요.”

 

시비같은 어투에 티엔도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나가-”

 

정티엔, 그렇게 말하면 남이 어떻게 알아요?”

 

동년배라고 종종 홀든네 첫째를 만나더니 말투까지 옮았나, 하고 마틴이 운을 떼었다.

 

요즘 티엔이 허공에 손질을 해서...”

 

“...네 개나 쥐나 뱀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 때문이다. 바다 바다 했으니 나갔다 와라.”

 

... 혼자?”

 

그래.” “저랑?”

 

티엔과 마틴이 동시에 말하더니 힐끗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랑.” “혼자-”

 

또 동시에 말한다.

 

뭐냐.” “뭐예요.”

 

또 동시에.

 

이건 또 무슨 코미디인지 생각하다가 하랑은 작은 가방에 주섬주섬 노란 부적을 넣었다.

 

우리 애들이랑 갔다 올게.”

 

나도 같이 간다.”

 

, 저도!”

 

저 양반들 일이 급한 거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그야 저 사람들이 감당할 일이고.

 

좀 있자니 둘이 뭔가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하랑으로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호텔 밖에 발을 디디자 쨍한 햇볕이 피부에 닿았고 방 안에서보다 강렬하게 바다 냄새가 난다.

 

이미 붉은 개들은 자기들끼리 뒤엉키고 장난치며 바다로 달려갔고 거대한 호랑이는 머리에 쥐를 얹고 발을 옮겼다.

 

은근슬쩍 다리에 감기는 청사도 모른척하며 하랑이 발을 옮기자 넓은 바다가 눈에 담겼다.

 

겨우 이런 것에 더는 설레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랑은 달려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하랑, 안된다!”

 

하랑 군, 준비운동! 준비운동!”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8

2019. 5. 17. 12:45 | Posted by 호랑이!!!

 

몰래 빠져나갈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호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침대에 누워나 볼까 했던 하랑은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저녁시간을 지나고 아침도 거르고 토스트와 주스를 가져다 준 마틴이 아침에 놓고 간 음식이 그대로인 것에 비명을 지를 때까지나 말이다.

 

다시 잠들려고 했던 하랑을 마틴이 깨워 앉히고 티엔은 주방을 빌려 죽을 끓였다.

 

입에 넣다가도 잠들어 버려 마틴이 능력을 이용해 깨워야만 했지만 결국 한 그릇을 비운 하랑은 식사하느라 잠이 깼다며 눈을 비볐다.

 

네가 체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졸린 거다.”

 

마틴은 티엔의 옆구리를 콱 찔렀다.

 

잠이 조금 남아있던 눈꼬리는 홱 올라가고 하랑은 숟가락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뭐냐.”

 

이 잔소리꾼.”

 

입가에 흐른 죽이나 닦아라.”

 

마틴은 냅킨을 들어 하랑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정티엔 바보멍청이.”

 

사부라고 불러야지.”

 

마틴은 투덜거리는 하랑을 내려다보았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악 뭐야 형, 나 애 같다고 생각한 거지!”

 

. 가서 약 먹고 사탕 하나 먹고 양치질 하세요.”

 

약 먹으면 졸립단 말야!”

 

그럼 좀 자요. 재단에는 형이 말해둘게요.”

 

싫다고 칭얼거리는 하랑을 어르고 달래 마틴은 약과 물을 손에 쥐여주었다.

 

하랑은 약을 꿀꺽 삼키고 마틴이 가져다준 초콜릿을 하나 물고는 꿍얼거리면서 마틴의 가슴에 머리를 툭 기댔고 동시에 티엔의 눈썹 한 쪽이 불만스럽게 올라갔다.

 

이하랑, 나랑 마틴은 먼저 재단으로 갈테니까 너는 몸을 좀 추스르고-”

 

뭐어? 정티엔 지금 제정신입니까?”

 

!? !?”

 

성인 알파가 둘이나 붙어 수발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베타가 직원인 호텔에 와 있으니 여기 맡겨두고 우리는 돌아가야지.”

 

당신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하랑의 보호자 아닙니까, 책임지고 괜찮아질 때까지 돌볼 의무가 있어요.”

 

티엔의 눈가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알파가 오메가에게 가까이 갔다가 한순간의 충동으로 어그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 있는 것 같나.”

 

하랑은 휙 티엔에게 시선을 옮겼다.

 

티엔은 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마틴을 보는 것도 아니고, 하랑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분노하고 있다.

 

“...우웩....”

 

정티엔 냄새나요.”

 

마틴은 입을 뻐끔거려서 하랑에게는 들리지 않게 무어라고 말했고 티엔은 푹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하랑의 붉은 개가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고 환기가 되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티엔에게서 흘러나온 페로몬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하랑은 입에 문 초콜릿을 마저 씹어 삼켰다.

 

이전이라고 알파의 냄새를 안 맡아본 것은 아니었고, 재단 내에서도 알파 냄새 같은 건 벽에 배길 정도로 많이 나지만 티엔이 감정상의 실수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페로몬(이라고 부르는)을 내보낸 적이 없었기에 낯설다.

 

냄새 뿐만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하지만 저 티엔이 저런 반응이라.

 

충동으로 뭘 어그러뜨리는데?”

 

티엔이 딱 잘라 말했다.

 

넌 알 거 없다.”

 

참 다정하기도 하지.

 

하랑은 마틴을 돌아보았지만 마틴도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몰라요.”

 

알았으면?”

 

말했겠죠.”

 

티엔이 돌아보았지만 마틴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하랑이 무서워하잖아요. 뭐든 말했을 걸요.”

 

“...”

 

뭐 든, 하고 마틴이 입을 벙긋거렸다.

 

 

미쉘 모나헌이 죽었다.

 

능력자 전쟁이나 사고 따위가 아니라 자살.

 

그것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첫 번째 발견자는 까미유 데샹이었다.

 

미쉘이 앞이 안 보인다고 우는 것을 달래다가 일단 따뜻한 코코아를 가져오겠다며 잠시 방을 떠난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둘이서 사는 것이 편하다며 이층집을 사 신혼마냥 보내던 나날이었는데.

 

미아부터 주위 사람들은 모두 까미유를 위로했다.

 

그리고 첫 번째 발견자는 미쉘에게 주려던 코코아 잔을 꼭 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미쉘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며, 능력 때문에 눈이 타들어가서일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피터를 걱정했고, 피터를 돌봐 달라는 말을 들었다.

 

왜 마지막까지 피터였지? 자신이 아니라.

 

어쩌면... 하고 까미유가 생각했다.

 

미쉘이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조금씩 약을 먹였다는 것을.

 

앞이 보이지 않는 염동력자는 쓸모없다.

 

하지만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던 사람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하루 종일 의지하리라는 생각에서 벌인 일인데...

 

까미유는 검은 정장을 입은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나랑 살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여기가 네 집이야.”

 

진부한 대사를 하며 까미유는 피터를 안으로 들였다.

 

어두운 밖은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 번 와본 적 있지?”

 

매우 소박하고 작은 집이었다.

 

스위치를 올리면 안이 보였는데 애초에 둘만 살 생각이었던지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단이, 왼쪽으로는 안쪽에 부엌이 보였고.

 

계단은 정성껏 사포질해 부드럽게 잡히는 난간이 양쪽으로 있었고 벽은 연한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작은 화분이 놓인 창틀에는 하얀 레이스 커튼이 모양 좋게 리본으로 묶여 있었고.

 

하나하나 살펴보던 피터는 계단을 올라가다 부드러운 벽을 만져 보았다.

 

직접 칠한 거다.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방이 나뉘어 있었는데 까미유는 피터에게 오른쪽 방을 쓰라고 했다.

 

조만간 미쉘 물건은 정리할거야.”

 

“...누나가.”

 

피터는 입을 뗐다.

 

“...까미유를 잘 부탁한다고 했어.”

 

언제?”

 

꿈 속에서.”

 

“...그런 꿈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큰 아이지, ?”

 

피터는 까만색의 네모난 바탕에 여러 스티커가 가득 붙어있는 작은 짐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가방을 던지고 불을 켜보니 새하얗다.

 

네모난 옷장이 있고 침대 옆에는 전등이 올려진 서랍장이 있고 저만치에 작은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원목 책상과 쿠션이 대인 의자까지.

 

늦었으니 얼른 자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피터는 방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침대에 하얀 시트가 깔려 있었는데...

 

누나 냄새가 안 나.

 

침대 옆 전등이 올려진 서랍장 위에는 액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액자 속에 든 것은 미쉘과 피터가 함께 찍힌 사진이 아니라 미쉘과 까미유가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젖은 겉옷을 벗고 의자에 걸던 피터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을 열고 나가 까미유가 들어간 방 문을 확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었고 창 앞에 서 있던 까미유는 이제 자려던 참이었는지 파자마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피터는 대답하기 전에 눈을 감았다.

 

, 누나 향기다.

 

이 방이 누나 방이지?”

 

“...”

 

알아차렸구나.

 

피터는 까미유를 염동력으로 침대에 옮겼다.

 

아니, 굳이 네가 이러지 않아도-”

 

시끄러워.”

 

피터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까미유가 일어나려고 하니 피터의 하얗게 타들어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알았어, 알았어.”

 

불편하나마 누우니 다시 눈이 감긴다.

 

피터가 잠들면 일어나려 했건만, 이 야생동물에 가까운 꼬마는 자신이 조금 움직이려는 기색만 있어도 벌떡벌떡 일어나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꼭 경계하는 고양이 새끼 같네...

 

그러고 보니 미쉘도 처음에 이랬었지, 자신을 경계한다고.

 

“...손 잡아줄까?”

 

됐어.”

 

...거봐, 미쉘을 닮았어.

 

까미유는 나지막히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릭하고 마틴] 잃어버리지 않게

2018. 8. 2. 04:25 | Posted by 호랑이!!!

책갈피가 사라졌다.

 

언제나 물건을 두는 자리에 두는 것 같은데도, 자질구레한 것들은 내 손에서 떠나 물건들만이 갈 수 있는 어딘가로 떠났다.

 

예를 들면 외국의 낡은 동전이라던가 반짝이는 색의 볼펜,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사라졌었고 오늘은 그게 책갈피다.

 

읽는 데 비해서는 넉넉하게 둔다고 생각하는데, 찾기 위해 책상 서랍을 열었더니 어디에도 없다.

 

오래 전 주고받은 편지가 몇 장 있고, 언젠가는 쓸지도 모르는 엽서가 있고, 버리지 못해 모아 둔 쓸모없는 것들까지 한 상자나 있는데도.

 

친구가 만들어준 것도 사라졌고, 우연히 발견한 네잎클로버를 말려 만든 책갈피도 사라졌고, 기념이라며 받은 번쩍거리는 금도금 책갈피도 없어졌지만 오직 찾는 것은 얇고 가는 코팅 종이 하나다.

 

정확히는 명함.

 

마틴은 자신의 능력이 물건한테도 통했으면 하고 잠시간 바랐다.

 

이리 오라고 부르면 촐랑촐랑 걸어오는 명함이라니 얼마나 편할까.

 

아니면 그 사람의 명함이니 순간이동이라도 하려나.

 

그것도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마틴은 최근에 읽었던 책을 펼쳤다.

 

두꺼운 것을 양손으로 들고 흔들지만 떨어지는 것은 없었고 이번에는 가지고 다닌 가방을 열었다.

 

가장 큰 곳에서 가장 작은 주머니까지 전부 뒤졌지만 나오지 않는다.

 

서류더미에서도.

 

공책에서도.

 

, 복도, 거리, 어디도.

 

마틴은 단추에 매달아둔 회중시계를 꺼냈다.

 

오늘 약속이 있었...

 

.

 

“...늦었네...”

 

열심히 달려갔더니 상대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크리스털 안에서 흔들리는 촛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

 

어서 오시오 챌피.”

 

왜 늦었냐고 묻는 말도 없이, 릭은 어딘가에서 가져온 브로슈어로 마틴에게 부채질을 해 준다.

 

차근차근 날라져오는 요리보다도 한 잔의 찬물이 반가워 단번에 마시자 잘 차려입은 웨이터가 다시 물을 따라주었다.

 

명함이 사라져 어딘가 찜찜한 마음으로 가자미나 닭이 있는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낸 후.

 

서로 저녁을 사겠다며 지갑을 찾는다.

 

마틴은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익숙한 감촉의 가죽 지갑을 꺼냈고, 지폐가 있는 곳으로 손가락을 넣었다가 돈이라기에는 이질적인 것을 만졌다.

 

늦었소, 내가 먼저 계산을 해 버렸거든.”

 

벌려 보니 지폐 사이에 가장자리가 구겨진 명함이 한 장 들어 있다.

 

누구 것인지 글자를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어쩔 수 없네요, 커피 마시고 갈래요?”

 

도넛과 함께.

 

그렇게 덧붙이자 릭이 웃었다.

 

커피 좋지.”

 

그럼 커피를 끓여드릴 테니까 명함 하나만 주세요.”

 

?”

 

또 잃어버린 것 같아요.”

 

가끔 보면 덤벙거린다니까.

 

마틴은 지갑을 닫았다.

 

제가 얼마나 물건을 많이 잃어버리는지 안다면 놀랄 거예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면 잃어버린다니까요.

 

항상 가지고 다닐만한 걸 선물 해야겠는걸.”

 

사실은 지금도 하나 있지.

 

마틴이 돌아보자 릭은 무언가를 쥔 손을 뒤로 빼었다.

 

“..., 그게 뭔지 알아내고 싶으면 전 굉장히 쉽게 알아낼 수 있어요.”

 

안돼, 비밀이야.”

 

금방 줄 거잖아요? 그렇죠?”

 

어떻게 할까....”

 

마틴은 괜히 말꼬리를 잡아 끄는 릭을 흘겨보았다.

 

거리를 걸으며 마틴은 이따끔 빼앗으려는 듯 손을 뻗었고 릭은 뺏기지 않으려는 듯 손을 위로 들거나 뒷걸음질을 쳤다.

 

땅거미가 내리는 거리에 하나 둘씩 불빛이 켜지고, 둘은 보지 않아도 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길을 따라간다.

 

명함도 손도 꼭 쥐고.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7

2018. 7. 31. 03:27 | Posted by 호랑이!!!

 

뭡니까?”

 

뭐가.”

 

하루 종일, 외출했다 돌아오는 내내, 마틴은 피부에 달라붙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처음에야 애써 모른척했지만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까지 이러니 아무리 사람 좋다는 말을 듣는 마틴이라도 한 소리 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쳐다봤잖아요.”

 

내가 언제.”

 

할 말 있으면 하시죠.”

 

그런 거 없다.”

 

속일 사람을 속여야지.

 

마틴은 기도 안 찬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면 그 불쾌한 시선 좀 치워 주겠어요? 당신의 열정적인 눈빛 같은 거, 받아도 기쁘지 않거든요.”

 

쳐다보지 않았다니까. 나나 쳐다보지 마라.”

 

누가 누굴 쳐다봐?

 

하여간에 어이가 없어서.

 

마틴은 미간을 콱 구겼다.

 

그럼 가는 동안 서로 바깥이나 보면서 가기로 하죠. 쳐다보면 당신의 이번 월급 절반은 제 거예요.”

 

말을 걸면 자네 월급 절반을 내 걸로 하지.”

 

티엔과 마틴은 동시에 고개를 바깥으로 돌렸다.

 

바깥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또 가판대가 보이고, 그 중에는 특이한 모양의 조개 껍데기 같은 것도 있고... 저런 것도 파는 건가.

 

마차 세워주게.”

 

티엔이 바깥에 대고 말하자 마차가 멈추었다.

 

어딜 갑니까.”

 

그것도 소금물에 닿았다간 후회해야 할 정장을 입고.

 

알 바 아니다.”

 

한 번 정도는 살가운 대꾸를 해 주시죠.”

 

자네는 누구나 상냥하게 만들 수 있으니 나 하나에게 굳이 연연할 필요가 없지 않나.”

 

나 하나쯤이야라는 문장이 별로 좋지 못한 말이라는 건 알지요?”

 

티엔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바닷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던 마틴은 얼마 안 있어 내려달라고 마부를 불렀다.

 

 

 

 

 

 

 

 

지금쯤이면 하랑이 자기 방으로 갔을까, 아니면 아직 방에 있을까, 고민하며 방 문을 열었다.

 

복도에 있을 때부터 어디에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라니, 문을 열자 마치 봇물이 터지듯이 소리가 터져나와 커다란 갈색 봉투를 안고 있던 마틴은 휘청 몸이 기울었다.

 

그러면 사부가 나 옮겨주던가! 기운이 안 나서 못 일어났단 말이야! 계속 잤다고! 배도 고프고!”

 

알파들이 위험하다는 소리를 굳이 해야 아나. 소리 지를 기운은 있는 것 같으니 방까지 걸어갈 힘도 있겠지.”

 

문이 닫겼다.

 

“...하여간 변하지 않는군요.”

 

“...다녀왔어, 마틴 형.”

 

어딜 갔다 이제야 오나.”

 

마틴은 하랑에게 다가갔고 하랑은 마틴이 앉을 수 있도록 조금 옆으로 물러났다.

 

자아.”

 

갈색 봉투를 기울이자 안에서는 사탕 캔, 초콜릿 상자가 굴러나오고 약이 든 유리병도 하나 떨어졌다.

 

이게 안 나오네, 라며 마틴은 봉지 안에 손을 넣더니 흰색 리본이 달린 곰인형을 꺼냈다.

 

“...뭐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껴안고 자기에는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마틴은 쏟아지듯이 터져나오는 행복감, 혹은 감동을 온몸으로 맞았다.

 

털이 북실북실한 곰 인형은 하랑이 기껏해야 장난감 가게를 지나칠 때야 본 모양인데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음에도 표정에는 변화가 없고 기껏해야 곰 앞발만 꽉 잡고 만다.

 

아파질 것 같으면 계속 하나씩 먹어요. 약이 쓰니까 사탕이나 초콜릿도 하나씩.”

 

물이랑 삼키는 거던데.”

 

그래도.”

 

기뻐하고 있으면서.

 

마틴은 입가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뭐야, 뭘 웃어.”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어딘가 쑥스럽게 들린다.

 

그런 것도 잠시, 누군가가 입을 열자 공기는 영점 아래로 떨어졌다.

 

사실은 말도 없었고.

 

그저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에는 산호, 조가비, 색이 짙은 고둥 따위를 이어 붙여서 만든 사람 모형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하랑은 몸을 뒤로 빼었고,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서는 의문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마틴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 인간이 왜 나한테 뭘 주는 거지?’

 

심지어 이런 흉한 걸?’

 

티엔 역시 부동으로 모형을 쥔 손을 내밀고 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어색한 움직임으로, 하랑은 그 모형을 받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럼 나는... 이만 방으로 가볼테니까...”

 

그러자 티엔과 마틴이 동시에 대답했다.

 

거기 얌전히 있어라.”

 

나가기 전에는 둘 중 하나를 데리고 나가야 해요.”

 

그리고 둘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가긴 어딜 나가.”

 

싫다면 제가 보호자로 다녀올게요.”

 

둘이 정말 사이가 안좋다니까.

 

하랑은 거의 뒷걸음치다시피 해서 방 밖으로 나갔다.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6.5

2018. 7. 18. 13:26 | Posted by 호랑이!!!

 

하랑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한낮이었는데 작은 테이블에 쪽지가 놓여있었다.

 

카운터에 말해놓았으니 직원을 부르세요

 

전화기를 들자 카운터로 연결되는 음이 났다.

 

[카운터입니다]

 

여긴... 407호실인데요. 뭔가를 부탁했다고 해서요.”

 

[407호시군요, 일행분께서 약을 부탁하셨습니다. 곧 직원이 찾아갈 것입니다]

 

둘이 나가면서 전화번호를 남겼으니 전화해놓겠다는 말이 이어지고 하랑은 다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어제까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냄새가 났다.

 

체취, 인 것 같은데...

 

기분 나쁘다던가 하지 않고 외려 안정감을 주는 것.

 

처음에는 그냥 신기한 냄새인가 했는데 계속 맡다보니 좋아서 코를 묻게 된다.

 

향취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얼마 안 있어 노크소리가 들리자 하랑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문을 열자 직원은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따뜻한 버터와 푹 끓인 고기 냄새에 갑자기 배가 아프도록 고파와서 두꺼운 빵에 버터를 듬뿍, 버섯과 고깃점이 있는 수프에 꾹꾹 눌러 담그면서 허겁지겁 먹고 나니 스스로를 베타라고 소개한 갈색머리 직원은 물과 약을 내밀었다.

 

억제제입니다.”

 

억제제는, 그러니까... 당신의 히트 사이클을, 없는 것처럼? 만든다.

 

천천히 또박또박, 부러 쉬운 단어를 써서 재차 말해줄 때에야 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히트사이클이었구나.

 

아무리 일행이라고 해도 알파가 둘이나 있는 방에 뛰어들면 나중에 고생한다고들 하니까요.”

 

알파가 둘이라고?”

 

, 알파 둘이요. 문신한 사람이랑 마틴이라는 사람...”

 

마틴 형이 알파!?”

 

그 분도 알파라서 옆에 있기 힘드니까 대신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요. 일은 둘이서 하고 올테니까 아랑? 하랑, 은 밥 먹고 약 먹고 몸 괜찮아질 때까지 호텔에 있으라던걸요!”

 

하랑은 약을 물과 함께 삼켰다.

 

그새 또 몸 속에 모여든 열기가 다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젠 냄새가 안 나는가 하고 팔을 들어 코를 킁킁거렸지만 직원은 잘 모를 거라는 소리를 한다.

 

약 드셨으니 오늘은 술 드시면 안 되고, 대마초나 담배도 자제해 주시고. 몸에 발진... 빨간 게 생기거나 가려우면 병원에 모셔드릴 테니 카운터에 연락 주시고요.”

 

그러고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짭짤한 내음이 섞인 바닷바람이 불자 방 안의 후덥지근한 공기는 날아가고 하랑은 땋은 머리카락을 들어 목덜미에 기분 좋게 바람을 쐬었다.

 

그리고 팔에 문신이 있는 일행분이 전해달라고 한 이야기인데...”

 

침대로 슬슬 기울던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여기 있지 말고, 방에 가서, 얌전히 있으라고.”

 

동그랗게 뜬 눈은 직원의 말이 끝날 즈음에는 미간을 찡그리고 반쯤 감겼다.

 

“....”

 

배려가 부족했다던가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기대도 안 했지.

 

하지만 축객령이라니.

 

차라리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으면.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 텐데.

 

직원은 무슨 일이 있으면 카운터에 연락하라고 하고 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하랑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겼다가.

 

끝에는 한숨을 쉬며 다시 침대에 늘어졌다.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6

2018. 7. 4. 18:14 | Posted by 호랑이!!!

 

다음 날 아침, 하랑은 숨막히는 열기에 눈을 떴다.

 

목이 아픈가? 그렇지는 않고.

 

기침이 나오는 것 같지도 않고.

 

코가 막히나? 그렇지는 않고.

 

열이 나는데. 아픈 것 같은데.

 

어제 누운 그대로 잤는지 테라스는 활짝 열려 있고 짐가방도 그대로라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발에 가방이 걸려 넘어졌다.

 

무릎을 찧었지만 아프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고, 다만 마틴과 티엔이 있는 그 방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채운다.

 

당장, 문을 열고.

 

이 밖으로.

 

저 방으로.

 

바닥에 깔린 카펫은 부드러웠고 나무 바닥은 단단하지만 어느 곳을 밟아도 조금 시원한 것이 느껴질 뿐 발에 무언가가 닿는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도 움직인다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걷고 있다기보다는 물 속을 헤치고 가는 것 같다.

 

열이 많이 나서 그런가.

 

바다도 못 갔는데 아파지다니 아쉽다.

 

구겨진 셔츠에 헐거워진 바지 차림으로 비척비척 걸어가는데 어제는 분명 가깝게 보였던 방이, 그 방으로 가는 세 걸음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문 손잡이는 차갑다.

 

문도 차가울까.

 

이마만 살짝 대보려고 했는데 몸이 그대로 기울어서 문에 들이박았다.

 

무슨 일이냐.”

 

문이 벌컥 열렸다.

 

하얀 손이 쓰러지려는 하랑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응? 하랑?”

 

낯익은 목소리에 하랑은 냉큼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마틴 형!”

 

나 아파, 열 나.

 

 

 

 

 

 

아침 일찍 눈을 뜬 것은 티엔이다.

 

여느 때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서 가볍게 몸이나 풀 겸, 하랑도 깨워서 산책이라도 한 후에 아침이나 같이 하자고 할 생각이었다.

 

물론 마틴은 그대로 재워 놓고.

 

바다 바다 그렇게 노래를 불렀으니 바닷가를 가볍게 뛰고 바닷물에 몸이나 담갔다가 오면 그래도 마음을 좀 풀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그간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이렇게 풀어주면, 매일 마틴 형, 마틴 형, 하는 녀석도 좀 생각을 바꿔먹을 것이다.

 

임무를 위해 배당받은 시간은 일주일이지만 오고가는 시간을 제하더라도 하루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을 터이니 마지막 날에는 쉰다고 해야겠군.

 

다른 알파들이 그러듯이 이것저것 사 주며 흥청망청 놀기도 하고.

 

일단은 수영복을 한 벌, 샌들도, 코코넛 같은 것이나 또 뭐든 흥미를 보일 쓸데없는 것도.

 

어차피 조개껍데기나 조악한 장난감 따위를 쳐다보고 있겠지.

 

마지막으로 겉옷을 걸치는데 복도 건너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잠자리가 맞지 않았거나, 아니면 악몽을 꿨다던가, 매일 아침에 운동을 시킨 보람이 있었거나 그 정도겠지.

 

정 잠자리가 맞지 않으면 같이 가서 자 준다고 할까.

 

문에 손을 대는데 가볍게 툭,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쾅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냐.”

 

늘상 하랑의 주위를 맴돌던 작은 기운들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문을 열면 항상 아침마다 보았던 하랑이다.

 

땋은 머리를 제대로 빗고 자지 않아서 삐친 머리가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고, 항상 입는 잠옷은 하얀 색, 구겨지고 몸에 감기고.

 

바깥에서, 남들에게 보여줄만한 것은 아닌 차림에 얼굴은 달아오른 그 모습은 갑자기 땅으로 푹 꺼진다.

 

놀라 몸을 잡고 일어서게 하자 그 몸은 비척비척 방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진한 향기가 코 끝을 스쳤다.

 

코 끝을 스친 향기는 하랑이 지나간 자리를 타고 짙어져 순식간에 방 안을 메웠다.

 

하랑...!”

 

처음으로 히트사이클을 맞은 오메가가.

 

침대로 뛰어든다.

 

마틴 형!”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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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 19금은 미뤄진다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5

2018. 6. 30. 03:00 | Posted by 호랑이!!!

 

망할, 더워!”

 

하랑은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 얼굴에 대고 부쳤다.

 

이하랑, 성질 부리지 마라.”

 

어차피 조선어로 떠들었으니 알아들었을 사람도 없지 않아.”

 

버릇없이 굴지 말라며 티엔은 하랑의 손에서 모자를 빼앗아 머리에 씌워 주었다.

 

티엔 정, 가서 방 확인이나 해요.”

 

또 하랑을 오냐오냐 하는군, 챌피.”

 

더운 건 사실이잖아요.”

 

조금만 참아요, 라고 하랑에게 귓속말을 하고 마틴은 티엔 쪽으로 갔다.

 

그러니까 재단의 이름으로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만. 침실 두 개가 딸린 방을 말이다.”

 

죄송하지만 이 서류로는 손님이 재단에서 온 것을 확인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적어도 재단에 전화를 해서 확인받지 않으면 저희로서는 방을 드릴 수가 없군요.”

 

전화를 해라.”

 

지금 시간에는 전화를 사용하기 곤란합니다. 전화선에 문제가 있어서 말이지요.”

 

아까부터 억지나 부리고.

 

티엔은 울컥 올라오려는 화를 애써 가라앉혔다.

 

마틴 형, 무슨 일 있대?”

 

제가 보기에는 실수로 방을 준비하지 못한 것 같네요.”

 

그런데 온 일행에 동양인이 둘이나 있으니까 재단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는 핑계로 돌려보내려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 뭐야, 짜증나!”

 

바깥에 보니까 바다 있던데 바다 가고 싶다.

 

어차피 지금 상황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잠깐 놀다 와도 괜찮지 않을까.

 

수리하려면 좀 걸릴 겁니다. 내일 아침에야 사람이 올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다른 호텔에 객실을 잡으시거나 다른 방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바꾸시겠습니까?”

 

마틴 형, 나 잠깐만 밖에 나갔다 와도 돼?”

 

이제 곧 해결될지도 모르는데 잠시만 기다렸다가 방에 짐 내려놓고 가요.”

 

와중에 마틴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던 티엔은 그래도 마틴이 가까이 오자 옆으로 한 발짝 비켜주었다.

 

아까까지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젓던 사람은 마틴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몇 마디 건네자 금방 울상이 되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티엔은 무언가가 느껴지는지 한 발짝, 더욱 멀리 마틴에게서 떨어졌다.

 

이야기를 마친 마틴은 열쇠를 두 개 받아서 돌아왔다.

 

우선 1인용 객실 하나랑 2인용 객실 하나를 받았어요. 침실 두 개가 딸린 커다란 객실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방이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몇 가지 서비스에 대한 쿠폰을 받았으니 편한 때 써 주세요.”

 

내 것도 있어?”

 

자요.”

 

마사지권, 룸서비스, 세탁, 구두닦이 등의 쿠폰을 받은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나 이제 바다로 가도 돼?”

 

바다는 무슨!”

 

또 놀 생각 뿐이구나, 그렇게 해서 언제 강해지려고, 주위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혼자서 그렇게...

 

티엔이 딱딱거리자 하랑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틴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지금까지 계속 단어도 외웠고! 어차피 오늘 더 이상 할 것도 없는데 좀 놀면 어때서?”

 

멀리 와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방종하다니. 게다가 지금부터 할 게 없기는 왜 없나, 내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미리 보고서를 읽어보고 해야 할 거 아닌가.”

 

그건 내가 단어 외우는 동안 형이랑 사부가 했잖아. 내일 가는 동안 설명해줄 거 아냐?”

 

그런 건 남의 손에 목숨을 맡기는 행위나 다름없다. 너도 어린 나이가 아니니 책임감을 갖고 행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자꾸 안된다고만 하고! 게다가 재단의 임무를 맡을 정도라면 혼자 바다에 가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그런 건 할 일을 다 끝낸 다음에 해라.

 

보고서나 조사서를 읽는 건 몇 시간이면 되는 일인데 그것까지 다 하고 나면 밖은 완전히 깜깜해질 거라고, 그게 더 위험하잖아.

 

할 걸 다 한 다음에 이야기하면 내가 같이 가겠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이 고집불통, 합리적이지도 못하고! 계속 안된다는 소리만 하고!”

 

맨날 공부도 운동도 너무 많이 시키고! 다른 사람하고 말하는 것도 맨날 끼어들고! 옷도 답답하게 입히고! 기차 안에서 바깥 구경도 못 하게 했지!

 

매일 게으름피울 생각이나 하고,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데려왔더니 힘은 고사하고 여기저기 놀 생각만 하는데다-”

 

데리고 왔다니, 끌고 온 거지! 애당초 그런 거래를-”

 

그만!”

 

마틴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양 쪽으로 밀쳤다.

 

둘 다 지금 너무 흥분했어요.”

 

티엔 정은 그렇다 치고 하랑도,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화내지 않잖아요.

 

지금 피곤해서 그런 걸 거예요. 오늘은 이만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볼까요?”

 

티엔이 길게 한숨을 쉰 다음 문을 열었고 마틴은 하랑을 억지로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게 된다고 해도 바다로 외출해도 좋다는 허락은 하지 않았다. 얌전히 방 안에 있어.”

 

웃기지 마, 누가 허락 같은 거 필요하대? 정티엔 진짜 싫어! 멍청이야!”

 

하랑, 좋은 밤 되세요!”

 

마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하랑은 방 안에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테라스는 바람이 불 때마다 얇은 커튼이 커다랗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고 나무로 만든 티테이블에는 하얀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다.

 

침대는 네 개의 기둥과 두꺼운 캐노피가 달렸는데 하랑은 가방을 테이블 옆에 던져놓고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한 사람용이라는 침대는 커다랗고 푹신푹신한데 베개도 몇 개나 있다.

 

베개를 안아 보자 푹신한데 딱 안기 좋은 크기다.

 

잔뜩 치솟았던 짜증도 조금은 가라앉아서 하랑은 방 안을 살펴본답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가 차가운 물통을 발견하고 한 모금 마셨다.

 

어쩐지 덥네.

 

하랑은 아무렇게나 침대에 거꾸로 엎드렸다.

 

발을 베개에 묻고 물통을 이마에 대자 차가운 물방울이 이마를 따라 흘러내렸다.

 

더워...”

 

조금 뛴 것 치고는 지나치도록.

 

열이 난다.



[루이벨져] 하얀 눈

2018. 6. 27. 05:26 | Posted by 호랑이!!!

루이스는 종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종이쪽에는 언제나 건성인 사람이 썼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세련된 글씨로 주소가 적혀 있었고 그는 그 주소를 따라왔다.

 

종이의 주소는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촌구석이었다.

 

간판에 녹이 슨 식료품점과 문조차 지저분한 잡화점을 지나 마을 끝에 있는 집으로 가며, 루이스는 추천받은 대로 꽤 괜찮은 포도주 한 병을 샀다.

 

살 일이 드문 포도주 향을 맡아보곤 루이스는 이글이 건네준 잡화 꾸러미를 살짝 흔들어보았지만 깨지지 않게 천과 신문으로 싼 것인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을 끝의 집.

 

이 주소는 이글이 준 것이었는데, 이글이 잘못된 주소를 주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집을 본 순간 루이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정원은 황폐하고 경첩은 기름을 치지 않았는지 끼익 하는 불쾌한 소리가 나고.

 

집의 벽에는 덩굴이 올라가고 있고 문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지고 색이 바래서...

 

폐가... 아니, 흉가?

 

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이질적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돌길을 따라 집으로 가니 문은 잠겨 있었다.

 

정말 제대로 된 주소를 준 것인지 잠시 의심했지만 이글이 맡긴 열쇠로 문을 열었더니 삐그덕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고, 안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났다.

 

"이글? 늦었다."

 

집은 지나치게 작았다.

 

이 작은 마을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도 방이 네 개쯤 딸린 이층집에서 사는데.

 

이 집은 단층이다.

 

좁고 작은 부엌에 거실이라고 부를 만한 곳에도 난로와 소파에 다리 길이가 각각 다른 나무 테이블이 전부.

 

가장 안쪽에는 방이 하나 있었지만 열린 문틈으로 보건대 거실이나 부엌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

 

"늦었다니까, 빨리 이리로 와라."

 

루이스는 그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것은 아마도 침실인데, 가장 안쪽 벽에 침대가 붙어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탁자와 의자, 투박하고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침대는 철사로 만든 철사 침대에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시트를 깐 저급품이었는데 마치 어느 영화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벨져는 그 위에 앉아 있었다.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서, 얇고 하얀 잠옷 하나만 입은 채, 그 긴 머리를 빗어 늘어뜨리고.

 

지나칠 정도로 평소와 같았다.

 

뜬 눈동자가 흐릿하다는 것만 빼면.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4

2018. 1. 29. 13:43 | Posted by 호랑이!!!

 

가는 길은 멀어 기차를 타야 했다.

 

널찍한 시트의 한 쪽에는 티엔과 가방, 다른 쪽에는 마틴과 하랑이 앉아서 이따끔 창밖을 보거나 가져온 과자를 뜯거나 하던 중 티엔은 가방을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가는 길에 이걸 다 외워라. 틈틈이 시험 볼 테니 앞 장부터 읽어.”

 

뭐어? 이걸 다? 많다고!”

 

어차피 가는 길에 할 일도 없지 않나.”

 

하랑은 티엔이 손수 만든 영단어 한 묶음을 건네자 노골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마틴 형- 도와줘-”

 

하랑이 마틴의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대자 이번에는 티엔의 미간이 콱 찡그려진다.

 

이하랑, 공부를 하면 당장 네 생활이 편해진다.”

 

그치만 이거 많은걸? 이 중에서 당장 쓰지 않는 단어도 많고. 쓰는 거라고 해도 기차 타고 가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이걸 다 외우래?”

 

촌음을 아껴서 공부를 하질 못할망정 많다고 투정이냐.”

 

그치만그치만그치만! 나 과자 먹고 싶고! 촌음을 아껴서 놀고 싶고!”

 

힘을 얻겠다던 녀석이 공부도 안 하고 뭘 한단 거냐.”

 

정 사부는 바보야! 정티엔 멍청이!

 

마틴은 하랑의 마음의 소리를 듣다가 웃고 말았다.

 

티엔 정.”

 

그렇게 운을 떼자마자 하랑에게서 내 편 들어줄 거지!’라는 강렬한 소리가 들려와 한 번 더 웃고.

 

물론 막아줄 생각이었지만 조금 짓궂게 굴고 싶어진다.

 

티엔 정이 준 단어는 몇 개인가요?”

 

“100개다.”

 

단어 하나 외우는 데 1분이면, 가는 데는 다섯 시간이니까 300개를 가져왔어야죠.”

 

마틴 형!? 너무해!”

 

하하, 농담이에요.”

 

펄쩍 뛰는 하랑을 당겨 다시 앉히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과자도 먹여서 살살 달래주고 하는데도 입이 댓발이나 나와 있다.

 

저 삐죽하게 튀어나온 입은 마음에도 없는 행동이지만 거기 또 넘어가서 마틴은 티엔과 이야기해서 가는 데 50, 오는 데 50개로 나누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하랑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 웃으며 마틴의 팔을 꼭 잡았고.

 

티엔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하랑을 쳐다본다.

 

독심술이 없어도 알 것처럼 뻔한 행동이라니 저 인간도 꽤나 인간답군요.

 

마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과자를 들어 하랑의 입에다 물려주었다.

 

하랑은 그 과자를 받아 깨물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과자를 와작와작 깨물어 급하게 삼켰다.

 

안 그래요.”

 

나 아직 말 안 했는데.”

 

말 안 해도 아니까 천천히 먹어요.”

 

티엔이 건네는 물을 마시고, 하랑은 입을 열었다.

 

알파들이 오메가 향을 맡아서 구분하는 게 아니야?”

 

그럴 리가요. 일반적인 상황에서 오메가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형은 생각을 읽을 수 있으니까 알겠지만...”

 

사람이 항상 자기 성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걸요. 게다가 좀 프라이빗 하지 않나요?”

 

남의 생각을 허락도 없이 읽어대면서 프라이버시를 따지는군.”

 

당신 참-”

 

무례한, 이라고 말하려다 마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파도 러트 기간이 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향을 맡을 수 없잖아요.”

 

나 그거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데, 어때?”

 

어린애한테는 자극이 세다.”

 

마틴은 그 말에 고개를 홱 들었다.

 

어린애? 어린애? 어린애애애애?

 

나 애 아니라니까.”

 

하랑을 걱정 좀 했다고 애 취급이라느니 실례라느니 하던 인간이?!

 

옆에서 물 한 병을 다 마신 하랑은 물병을 쓰레기통에 넣고 오겠노라며 쏙 사라졌다.

 

“...당신 지금 하랑을 애 취급 한 건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당신 아주 제멋대로라고 마틴이 말하는 그 시각, 하랑은 병을 쓰레기통에 넣고, 그 김에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벽에는 안내 문구와 버튼이 플라스틱 덮개에 덮여 있었다.

 

보자... 만약에...? 당신의... suddenly... 그 날... 버튼을?”

 

다시 객실에 돌아오자마자 하랑은 단어장을 뒤적였다.

 

웬 일이냐.”

 

화장실에 sudden이라는 단어에 -ly가 붙은 단어가 있었어.”

 

화장실에?”

 

만약 당신의 소중한 그 날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거.”

 

갑자기 히트나 러트가 올 때 눌러주면 억제제를 가지고 베타 직원들이 도와주러 간다는 말이예요.”

 

히트나 러트 같은 말은 안 적혀 있었는걸.”

 

마틴은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히트사이클이나 러트에 대해서는... 그냥 말하면... 조금,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럴거예요, 아마.”

 

영국인이라서 그런가보지.”

 

단어장에서 sudden을 찾아낸 하랑은 그게 뒤의 50개에 들어가자 이미 뒤의 sudden을 외웠으니 오늘은 앞의 49개만 외울 거라고 티엔에게 엄포를 놓았고, 그 말에 티엔은 이마를 감싸고 마틴은 소리죽여 웃었다.

 

그럼 앞쪽 49개를 어서 외우도록 해라.”

 

-.”

 

하랑은 단어장을 팔락팔락 넘기다가 무언가가 생각나자, 딴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푹 빠졌다.

 

그러고 보니.

 

영국에 온 첫 날에.

 

선착장에 있던 수많은 그 사람들.

 

이하랑, 또 딴 생각하는 거냐.”

 

아냐 아냐, 제대로 외우고 있다고!”

 

[티엔하랑마틴?/알파오메가] Mine 3.5

2018. 1. 12. 08:31 | Posted by 호랑이!!!


티엔 정, 저 좀 보죠.”

 

티엔은 누가 부르는지를 확인하더니 하랑에게 5분 휴식이라고 말했다.

 

하랑은 수건으로 땀을 닦다가 누가 티엔에게 찾아왔는지를 보더니 물통을 들고 달려왔다.

 

, 마틴 형! ...하아, 하아...! 형 안녕...! 웬일이야?”

 

마틴이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하랑은 가까이까지 다가왔음에도 팔을 흔들었다.

 

격한 환영은 고맙지만, 숨부터 고르고, 물도 좀 마시고 해요. 형은 티엔 정이랑 어른의 대화를 나누고 올 테니까.”

 

“..., , 헤엑.. 애 아닌데.”

 

하랑,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면 이따 정권만 두 배로 해도 되겠군.”

 

아니, 아니거든! 쉴 거거든!”

 

하랑이 벤치로 쪼르르 가자 마틴은 티엔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더니 하랑에게 말하는 것이 들리지 않을만한 곳에서 발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지, 챌피.”

 

낼모레에 티엔 정 당신하고 저, 하랑이 같이 임무 나가는 것 때문입니다.”

 

빠질 건가?”

 

아쉽게도 아니예요.”

 

마틴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는 알다시피 우리 사이가 그렇게 살갑지는 않지요라고 운을 떼었다.

 

임무에 나가서도 우리가 싸우면 하랑이 불안해 할 테니까 그 때만큼은 서로 충분한 협력을 하고, 친하지 않더라도 이는 드러내지 말자고 이야기하러 온 겁니다.”

 

하랑이 불안해하기는, 릭 톰슨도 그러더니 저 녀석을 애 취급 하는 건가.”

 

마틴은 그 말에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티엔 정, 하랑은 아직 열일곱입니다.”

 

그만하면 다 큰 거지. 공성전에 여섯 살 아이도 나오는 판국에 열일곱이 뭐가 어리다는 거냐.”

 

여섯 살도 열일곱도 아직 어려요. 불가피하게 참가하게 되었다고 해도 아직 어린 이상 어른인 우리가 불안 요소를 최대한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예요.”

 

이 정신 나간 인간 같으니.

 

마틴이 팔짱을 끼자 이번에는 티엔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하는 말이지만, 릭 톰슨보다 각오를 하고 전장에 들어온 아이다. 여느 어른 만큼은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있어. 그렇게 배려해주는 것 자체가 실례다.”

 

그래서, 가는 날에도 계속 사이 나쁘게 굴겠다고요?”

 

마틴은 대놓고 얼굴을 찡그렸고 티엔은 하랑 쪽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합의는 하도록 하지.”

 

티엔은 한 마디 하고 하랑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노려보던 마틴은 얼마 안 있어 하랑이 왜 나한테 성질이야, 정티엔!’이라고 생각하는 소리를 듣고는 웃어버렸다.

 

티엔 정, 저 사람은 또 하랑에게 심하게 대할 테니 자신은 미리 이것저것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다.

 

예를 들면 차가운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주스라던가.

 

땀을 식혀줄 부채라던가.

 

씻고 나왔을 때 머리를 빗어준다고 할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벨져/마틴] 도도새님 썰을 보고

2018. 1. 10. 03:11 | Posted by 호랑이!!!

그럼 이것으로 오늘 회의는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벨져는 회의록 정리랑 프린트 정리 좀 해줘. 혼자서는 무리니까... 보자...”

 

마틴은 회장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왠지 벨져랑 마틴은 전혀 안 친해진단 말이지, 마틴은 좋은 애인데!’

 

그러는 회장이야말로 좋은 사람이란 말이지.

 

마틴, 좀 도와줄래?”

 

그렇지만 친해지지 않는 이유는 좀 다른 것 같다.

 

도움 따위 필요 없다.”

 

도움을 줄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에 칼같이 잘라내는 저 말을 보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반 안에서 학생들의 머릿속에서는 비슷비슷한 말들이 떠올랐고 한 마디로 요약을 하자면 아마도 이 정도일 것이다.

 

둘째홀든 정말 마틴 싫어하나보다...’

 

그리고 몇 가지 더 건져내 보자면 이렇다.

 

인사할 때 손도 안 잡으려고 했지

 

도움은 죽어도 안 받으려고 하고

 

그래서 이글 도와주러 가니까 뒤에서 엄청 노려보던데

 

마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 그러니까 전부 오해라구요.

 

그렇지만 벨져가 싫어할테니 그게 오해라고 자신이 해명할 수도 없다.

 

그래도 그거 혼자서 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제가 남을게요.”

 

좋아, 그럼 해산!”

 

회장이 그렇게 선언하자 사람들은 제각기 가방을 싸서 밖으로 나갔다.

 

벨져는 회장의 뒤통수를 째려보다가 마틴이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나 하나면 되니 너는 집에 가도 좋다.”

 

일 시키기 싫으니까 가라

 

보기도 차갑고 듣기도 차갑지만 이대로 순순히 가버리기에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가 산더미같이 많다.

 

그렇지만 그냥 앉아서 돕겠다고 하기에는 쫓겨났던 경험도 있고.

 

다행스럽게도 마틴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지도 알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목소리 톤은 조금 낮게, 시선은 아래로.

 

제가 방해가 되나요?”

 

그건 아니다!”

 

그럼, 짐일까요?”

 

그렇지 않다!”

 

그럼...”

 

도와라!”

 

옳지.

 

마틴은 종이와 호치케스를 들었다.

 

돕겠습니다!”

 

평소와 똑같은 냉랭한 얼굴 아래에서, 마틴은 아뿔싸, 하고 놀라는 얼굴을 보아 버렸다.

 

내심 웃으면서 종이를 정리하는데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이글이 들어왔다.

 

안녕! 귀여운 이글이 왔습니다!”

 

벨져의 몸도 마음도 냉점으로 내려가는 것도 보인다.

 

가라.”

 

거 무슨 섭한 말씀~ 벨져 형이 매일매일 마틴한테 딱딱하게 구니까 착한 동생인 내가 둘 사이를 봄날처럼 포근~하게 만들어주려고 온 거 아니겠어?”

 

저도 왔습니다.”

 

까미유 데샹, 너는 왜...”

 

까미유의 뒤에서 한 사람이 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들어온다.

 

바레타로군.”

 

그 뒤로 토마스가 지나가고 하랑이 지나가고 루시에 티엔이 뒤를 잇는다.

 

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의 뒤를 이어 한 사람이 더 들어오고 그럴수록 교실은 더 소란스러워 진다.

 

해야 하는 일에는 손도 대지 못 했는데 벨져의 마음속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보여서.

 

마틴은 웃었다.

 

뭐냐 챌피.”

 

그리고 이어.

 

벨져가 자신을 보고 하는 생각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사람들은 저 사람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지!

 

 

[티엔하랑마틴?/알파오메가] Mine 3

2017. 9. 8. 16:21 | Posted by 호랑이!!!

1편

2편

 



어른스러움이란 뭘까.

 

하랑은 뛰어가는 아이를 멍하게 보며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 아이의 손에 들린 초콜릿 맛 우유를.

 

이럴 때 브루스 어르신이라면... 역시 우유가 아니라 고기를 먹어라! 라고 하려나.

 

릭 형씨는 나라별 초코 우유를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거 하나에 연연하지 않을 거고.

 

티엔은 애당초 초코 우유를 고르지도 않겠지.

 

마틴 형씨는 왠지 다른 가게로 가서 우유를 찾아볼 것 같고...

 

...어라?

 

하랑은 빈 매대 앞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가 그 옆의 딸기 맛 우유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마틴 형씨는 베타일까 오메가일까?

 

시리얼 코너에서 하랑은 손에 초코 우유를 든 아이를 발견했다.

 

이 애도 자기처럼 초코 우유에 초코 시리얼을 먹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하랑은 마지막 남은 초콜릿 시리얼을 잽싸게 들어 올렸고,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불쑥, 아까의 생각이 하랑의 마음속에 다시 나타났다.

 

어른스러움이란 뭘까.

 

플라스틱 바구니에 시리얼 박스를 담으면서 하랑은 결심했다.

 

앞으로는 어른의 여유라는 것을 좀 가져보기로.

 

이번에는 사탕 쪽으로 움직이는데 마악 모퉁이를 돌다가 하랑은 마틴과 마주쳤다.

 

마틴 형씨! 웬일이야?”

 

작은 병과 납작한 캔이 늘어선 앞에서 고민하던 마틴은 드물게도,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뭐 살려고 그래?”

 

, , ... 저는요! ...러니까...!”

 

당황하는 앞에서, 아까까지 어른의 여유를 가지기로 했던 이하랑은 여유를 저버렸다.

 

헤어 제품은 왜? 왁스 바르게? 염색할거야? 난 형씨 지금 머리카락이 좋은데!”

 

마틴은 머리에 쓴 모자를 쥐어뜯듯이 움켜쥐고 내려 얼굴을 가렸다.

 

저도, 안다구요. 그러니까... 하나 사려구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얼굴 새빨개진 거지?

 

마틴은 고개를 갸웃하는 하랑 앞에서 광고가 붙어있는 제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랑은 작은 병을 하나 집어들고 태그에 적힌 설명을 더듬더듬 읽었다.

 

... 신의 머리털... 보들... 찰랑?”

 

다소 절망적인 심정으로 마틴이 말했다.

 

머릿결이라고 읽는 거예요.”

 

매일 티엔에게는 아둔하다 게으르다 마음에도 없는 타박을 듣고 있지만 하랑은 오히려 영민하다.

 

오히려 영악하다.

 

지금도 하랑은 그 팽팽 돌아가는 머리로 하나의 과거와 하나의 사실을 결합시켰고.

 

하나의 정답을 내놓았다.

 

전에-”

 

네 그거 맞아요.”

 

머리 만지게 해주겠다는 그거 때문에? 라고 말하기도 전에 마틴은 하랑의 입을 틀어막듯이 긍정해버렸고 하랑은 새삼 그의 능력이 편리하게 느껴졌다.

 

... 지켜도 그만-인 약속 때문에... 이런 것까지 사서 관, ...뭐더라, 관리? 관리! ...를 한다니 대단한데!’

 

좀 더 편하게 생각해도 읽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애써서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렇지만 스르륵- 하고 생각... 생각해버리면 못 읽을지도... 모르잖아

 

글쎄요. 누가 저한테 이렇게 대놓고 읽으라고 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오히려 그냥 생각하는 쪽이 빠를지도요. 그보다 sssrrrkk이 뭐예요?”

 

감기 같은 거 걸려서 말 못할 때 편하겠다

 

그런 때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야 기쁘지만...”

 

착한 사람이네.

 

하랑은 티엔 옆에서 수련하는 동안 마틴이 대신 기합을 질러주는 것을 상상했다가 키득키득 웃었다.

 

마틴도 짧게 웃음소리를 냈다.

 

여하간 머리를 만지게 해주겠다는 말에 이렇게 관리까지 해서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주겠다니 이것도 약간 완벽주의자 같은 걸까.

 

정티엔하고 닮았네.

 

“...”

 

그러고보니 전에 정티엔이 마틴 형은 주위에 인기가 많다고 했지, 이래서인가, 설렐 뻔 했네.

 

“.....”

 

...어라? 그러면 정티엔도 그 성질머리만 좀 고쳐먹으면 인기 많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형이나 정티엔이나 둘 다 잘 생겼고, 능력도 있으니까...

 

“.........”

 

마틴과 티엔의 공통점으로 생각이 넘어가려는 찰나에 소리가 크게 울렸다.

 

꼬르륵.

 

앗차 나 아직 아침 안 먹었지!”

 

어서 가서 아침식사 해요.”

 

, 나중에 봐-.”

 

방금까지 생각하던 것을 털어버리고 하랑은 총총 계산대로 갔다.

 

티엔 정이랑 닮았다라.

 

그 뒷모습을 보던 마틴은 방금까지 살까 말까 고민하던 병을 내려놓았다.

 

어두운 골목, 심부름을 마치고 재단으로 돌아가던 하랑은 이상한 직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좁다란 골목길을 희뿌연 남폿등이 밝히고 그보다 밝은 달 한 덩이가 덩그러니.


별다를 것 없는 골목 길이라 다시 뒤를 돌았다가, 하랑은 누군가의 맨가슴에 코를 부딪혔다.


"악!"


"그간 잘 있었습니까?"


"아 좀! 평범하게 오면 안 돼!?"


"습관이라."


어깨를 으쓱하는 그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보기 좋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는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루드빅은 하랑이 제 어깨 뒤를 넘겨다보는 것이 끝나기까지 기다렸다.


한참이나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리 저리를 살펴보던 하랑은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섯."


"네에, 정답."


오늘도 참 잘했어요.


루드빅이 손을 내밀자 이하랑은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또 이상한 거 주려는 건 아니지?"


"아니거든요. 날 뭘로 보는 겁니까."


전번에는 죽인 사람에게서 가져온 커프스 단추를 주려고 했으면서.


하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루드빅은 하랑의 손 위에다 은박지로 싼 초콜릿 두 알을 떨어뜨렸다.


"저번에 당신이 기념품은 가져오지 말래서 그 짓은 더 안한다구요."


그거 꽤 소소한 취미였는데.


"그러다 진짜 빛의 속도로 가."


그것도 원한령 때문에.


"방금 그 말은 꽤 재미있군요. 산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죽은 사람이 대수겠습니까."


유들유들하게 넘어가려는 이 사람을 불만스럽게 올려다보자 푹신한 앞발이 하랑의 어깨에 얹혔다.


「네가 걱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알어. 그렇지만 저 형씨한테 붙은 령들이 정말 죄를 짓게 할 수는 없잖어."


「아무데나 신경쓰고 다녔다가는 가뜩이나 짧은 네 명줄이 더 짧아질거다」


"으음..."


잠시 하랑이가 그러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루드빅은 하랑이 쳐다보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에는 네 옆에 있는 령하고 대화한 겁니까?"


령이라고 부르기에는 걸맞지 않지만 이 곳 언어에는 산군이라던가 하는 적절한 존경을 품은 말이 없었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야 만다.


"내가 형씨 생각해서 말해주는 건데, 여름이라고 피서 가지 말고 위험한 짓 하지 말고..."


"당신 지금 누구한테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고 하는지 알고는 있습니까?"


하지만 걱정받는 것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요.


루드빅은 말대로 해주겠다며 발을 옮겼다.


"나한테 빚진 겁니다."


"빚은 그쪽이 졌거든."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하랑이 말했다.


이미 빈 골목길에다 대고.


[다무바레] 서재

2017. 6. 29. 02:29 | Posted by 호랑이!!!

히카르도는 다이무스의 서재에 들어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재라기보다는 사무실의 역할을 더 충실하게 수행함에도 값에 상관없이 책이 가득했기에 히카르도의 눈에는 이 곳이 도서관 같았다.

 

여느 때와 같이 다이무스는 서류를 붙들고 있고, 히카르도는 다이무스가 어서 서류작업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책을 대강대강 훑어보다가 적당히 얇은 책을 골랐다.

 

바닥에 주저앉고 책장에 기대 책을 펼치면 페이지 너머로 다이무스가 보인다.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나는 육중한 책상과 딱딱한 의자에 앉아 다른 곳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펜으로는 바쁘게 무언가를 쓰는 모습은, 정말...

 

‘-를 갑니다, 사과, 오렌지-’

 

바깥에서 갑자기 메가폰 소리가 났다.

 

책을 떨어뜨릴 뻔한 것을 아무렇지 않은 척 들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보니 다이무스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완전히 서류 속에 빠진 것 같지만.

 

히카르도는 입을 열었다.

 

“everlasting”

 

"영원한, 변함없는."

 

“grave”

 

무덤.”

 

언제든 영어가 아직 어설프다는 구실로 말을 걸면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듣고 답을 한다.

 

다음 장을 넘기다가 히카르도는 알아차렸다.

 

이 책은 이 서재의 여느 책과는 다르게 그림이 많고, 거기 더해 새 책이다.

 

책은 아이들의 나라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지만 히카르도는 더 이상 책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홀든.”

 

펜촉이 종이를 스치우는 소리가 이어졌다.

 

“love.”

 

"사랑."

 

사각사각, 부드러운 손길만이 낼 수 있는 소리지.

 

“love.”

 

사랑.”

 

다시 한 번 더.

 

“love.”

 

다이무스는 고개를 들었다가 이 쪽을 보며 웃고 있는 히카르도와 눈이 마주쳤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내가 네게 느끼는 감정.”

 

다시 사각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히카르도도 다시 책으로 눈길을 내렸다.

 

 

빅터와 헬레나의 한때 (알티이벤: 아드님)

2017. 6. 17. 21:36 | Posted by 호랑이!!!

마을 한가운데의 커다란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러다간 늦을 것 같은데.

 

빅터는 조금 더 바람을 재촉했다. 그렇다고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각까지 앞으로 3.

 

얼마 안 있어 넓은 공터가 눈에 보였다.

 

공터에는 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빅터의 파란 점퍼를 보고 아래에서 손을 흔들었다.

 

- -”

 

한 번 바람을 걷어차고 쾅, 내려가자 바로 앞에 헬레나가 서 있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웃음을 머금고.

 

어휴, 이 말썽꾸러기. 그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엄마 놀라잖니.”

 

나도 벌써... 아니, 저도, 벌써 열 넷이예요.”

 

다 컸다구요, 라면서 가슴을 내미는 빅터를 웃으면서 내려다보던 헬레나는 가볍게 그의 볼을 꼬집었다.

 

그래, 벌써 열 넷이네.”

 

벌써 이만큼이나 컸어.

 

헬레나는 빅터의 머리를 넘겨주고는 이제 가자며 앞장서 걸었다.

 

향한 곳은 유원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터질 것 같은 분홍색, 레몬 같은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유원지 안에서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유쾌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오늘 말이야, 빅터랑 만날 거라고 했더니 그 검은 머리 아가씨가 티켓을 주더라. 좋은 친구를 사귀었나 보구나.”

 

빅터는 티켓을 흔들며 앞장서는 헬레나를 좇아 가볍게 발을 공중에 띄웠다.

 

티켓을 내고 들어가자 마스코트 인형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친구야! 사진 한 장 찍지 않을래?”

 

나는 됐...”

 

빅터, 여기, 찍자!”

 

헬레나가 눈을 반짝였다.

 

빅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마스코트와 헬레나 사이에 섰다.

 

자아 찍습니다~”

 

직원이 장난감같이 생긴 카메라를 들고 요란스럽게 손가락을 폈다.

 

하나~ ~”

 

빅터는 헬레나의 손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조금만 위로 손을 올리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쪽으로 손을 올렸다가.

 

~”

 

내렸다.

 

헬레나는 그 자리에서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받고는 이리 오라며 빅터에게 손짓했다.

 

이것 봐~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단다. 나중에 한 장 더 찍어 달라고 해서 한 장씩 나눠가지자.”

 

웃지도 않는 얼굴이 뭐가 좋다고.

 

빅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원지 지도를 들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도 먹고, 언제부터인가 빅터와 헬레나는 색색깔이 화려한 풍선을 들고 이상한 머리띠와 선글라스를 했다.

 

빅터가 이런 것은 낭비라고 말리려고 했지만 헬레나는 그 까만 머리 친구가 유원지 쿠폰을 주었다고 했다.

 

마를렌 그 녀석, 괜히 오지랖은.

 

마지막으로는 저 끝의 놀이기구로 날아가려고 했다가 안전요원에게 잡혀서 설교를 들어야 했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놀이기구가 여럿 있으니 날아다니다가 부딪히면 위험하다나.

 

그러고 다른 놀이기구로 도망쳤다가 타고 내려올 즈음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고 있었고 마지막이라며 관람차를 타러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돌아가느냐, 아니면 관람차를 타러 가느냐,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다가.

 

빅터는 입구 쪽을 가리켰다.

 

노을을 등지고 마스코트 인형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둘은 마스코트 옆에 나란히 섰다.

 

자아 찍습니다~”

 

마스코트는 양 팔을 뻗어 포즈를 취했다.

 

하나~”

 

빅터는 손을 올렸다.

 

아까처럼, 조금만 손을 올리면 잡을 수 있는 그 위치에 있는 헬레나의 손을...

 

~”

 

조심스럽게, 빅터의 손이 헬레나의 손에 닿았다.

 

!”

 

그리고 빼려는 찰나, 헬레나가 빅터를 와락 끌어안았다.

 

 

 

 

 

 

 

 

두 번째로 찍은 사진은 빅터가 놀라 움직인 바람에 완전히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두 번째 사진을 가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글다이글] 선상에서

2017. 3. 29. 15:50 | Posted by 호랑이!!!

여기에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이야기!

 








다이무스는 배에 올랐다.

 

대개의 시간은 서류 작업이나 가상 전투를 위해 쓰다보니 출장을 다녀오는 것은 간만이다.

 

본디라면 우편으로 계약서만 보내 처리할 일인데 이렇게 사람이 움직인다는 건 역시 교통이 발달한 덕이지.

 

이 배를 타고는 3, 배에서 내려서는 자동차를 타고.

 

그 먼 거리를 겨우 일주일 남짓한 기간 안에 오고갈 수 있다니.

 

다이무스는 직원에게 표를 내밀었다.

 

헬리오스에서 오셨군요, 계단으로 올라가시면 방이 있습니다.”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서두르는 듯 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로 짐작되는 대략적인 무게, 성격, 주로 하는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서...

 

다이무스는 고개를 돌렸다.

 

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부적절할 정도로 긴 은발이 흐트러진, 낯익은 사람이 배로 오를 때 쓰는 계단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 ! 안녕!”

 

“...너냐,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귀여운 동생을 만났는데 그게 다야?”

 

네가 배를 탈 일이 뭐가 있어서 그러지.”

 

그는 티켓을 검표원에게 내밀었다.

 

연합의 이글 홀든, 확인하였습니다, 계단 아래로 내려가시면 객실이 있습니다.”

 

나도 볼일 보고 돌아가는 길이거든? 형 방은 어디야아? 나 놀러가도 돼?”

 

다이무스는 이글의 티켓을 확인했다.

 

“...내 방으로 와라. 특실은 아니지만 그 방보다는 나을 거다.”

 

형 최고야!”

 

특실은 아니라고 했지만 다이무스가 받은 방은 꽤 넓었다.

 

1인실이었지만 물건들은 나름대로 여유있게 넓었고 고급스러웠다.

 

들어가자마자 이글은 무언가에 흠뻑 젖은 부츠를 벗어던지고 가방에서 편한 옷을 찾았다.

 

아직은 안 된다.”

 

, 왜애.”

 

저녁 시간이 곧이다. 파티는 아니지만 단정하지 못한 차림은 안 돼.”

 

다이무스는 이글의 짐 속에서 빗을 꺼냈다.

 

우선 그 머리부터 어떻게 하도록 하지. 머리끈은 있나?”

 

아니! 안 가져왔어!”

 

이글은 방긋 웃으며 거울 앞에 있는 의자에 털석 앉았다.

 

다이무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뒤에 서서는 머리를 빗질해주었다.

 

급한대로 땋아 주도록 하지. 나중에 내려서는 머리끈을 마련하던가, 아니면 아예 이 머리를 잘라라.”

 

목 위에 있는 거?”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두피에 돋아난 이 털 말이다.”

 

식사 예절은 제대로 알고 있겠지, 나이프가 어떻고, 사람과의 대화가 어떻고, 마시는 것은 어떻게, 옷차림은... 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잔소리에서 귀를 닫아버린 이글은 거울을 보았다.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도료를 써서 비슷하게 만들어진 흉터에, 겉만은 본체와 같은 모습.

 

거울 너머로 자신의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투박한 손가락이 움직인다.

 

익숙하게.

 

이글은 만족스럽게 씨익 웃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거냐.”

 

형이랑 있는 게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