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관계를 정의해 보자면 이해하기 힘든 관계라고밖에 할 수 없다.
타고나면서부터의 우위는 저 쪽이 점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내가 왕족이라도 되는 양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꽃이나 반지 따위 노골적인 선물은 없었지만 늦게까지 깨어있는 날이면 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내어주며 같이 깨어있어 준다던가.
아침이나 점심을 거르는 날이면 빵이나 샌드위치, 혹은 과자.
쉬는 날이면 끊임없이 제 집을 찾아와 자고 가도 된다는 허락을 조른다던가.
그와의 대외적인 관계를 말하라면 일단은 ‘연인’이다.
믿지도 않으면서 왜 연인이 되었냐고 한다면.
엄하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지만 분명한 신분제가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자신 같은 오메가가 웨슬리 슬로언쯤 되는 알파를 거부할 수 있을 리 없다...고 할까.
그러니까 자신에게 있어서 이건 독점과 안전을 주고받은 일종의 ‘거래’인 셈이고 저 쪽도 그걸 알고 있다.
알파들의 독점욕이 꽤나 심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연인 관계를 제시하고 승낙을 얻으면 그만둘 줄 알았지, 끊임없이 찾아오고, 먹이고, 재우고,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세심한 것에 신경을 써 주고, 더 잘해주지 못해 안달이고...
마치 정말로 사랑하기나 하는 것처럼.
그래서 더 믿을 수 없다.
“카인, 셰퍼드 파이 좋아하나?”
“그럭저럭.”
“내일 모처럼 솜씨를 부려 볼까 해서.”
‘모처럼’은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였다.
“고기랑 밀가루가 집에 있으니까 그걸 쓰면 되겠군.”
“그럼 나는 좋은 와인이라도 가져오지.”
오븐이 없다는 핑계로 최근 그는 자신의 집에 매일같이 찾아와서 자고 갔다.
속 뻔히 보이는 술수지만 카인은 번번이 넘어가주고 있었다.
“슬로언.”
“응?”
“요즘 매일같이 찾아오는데, 자네 허리는 멀쩡한가? 그렇잖아도 슬슬 엔진 수명이 떨어질 때인데 그렇게 관리도 하지 않고 무리해서 쓰면 조만간 폐업할지도 모르네.”
“그 정도에 ‘무리’라고 하다니, 난 자네를 생각해 적당히 하고 있는 건데.”
흥, 허세부리긴.
카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읽던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슬로언과 사귀기 전까지만 해도 밤 시간은 총기를 손질하며 보냈지만 교제를 시작한 이후로 매일같이 찾아오는 통에 여유로운 밤을 가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어서 차선책으로 아침에 받은 신문을 저녁에 함께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웨슬리는 10시가 되자 일어나 카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키스를 한 뒤 나갔다.
카인은 아까까지 마시던 찻잔을 비우고 모처럼 혼자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웨슬리는 얘기했던 대로 고기와 밀가루와 계란으로 셰퍼드 파이를 만들었고, 그가 요리 솜씨가 좋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 카인은 탐식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세 조각이나 먹었다.
셰퍼드 파이와 와인,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수순으로 침대까지 가서.
카인은 취기를 빌어 웨슬리의 머리를 쓸어 보았다.
“처음 연애하는 어린애도 아니고, 뭐가 그리 급한 건가, 자네는?”
웨슬리는 킬킬 웃으면서 카인의 옷을 벗겨내려갔다.
“이렇게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하지 않으면 자네를 홀든의 막내에게 빼앗길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
카인은 어이없다는 듯한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어째서 이런 실없는 장난질로 내 마음을 흔들려고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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