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늦은 시각, 학교에서 돌아온 피터는 방 안에 떡하니 자리잡은 허연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부르셨어요, 형?"
“저 털뭉치는 뭐야.”
“닭이예요.”
혹시 학교와 집만 다니느라 산 닭은 처음 보는 걸까?
토마스의 고개가 갸웃거리자 피터의 미간은 더더욱 구겨졌다.
“누가 몰라서 물어? 저게 왜 방 안에 들어와 있는데?”
“엘리엇이 아까 개랑 싸우다가 다쳤어요.”
“다친 닭 같은 건 잡아먹어 버리면 되잖아. 암탉도 아니고 수탉인데.”
저게 뭐라고 이름까지 붙여?
고분고분했던 여태까지의 토마스를 보아 ‘잡아 버리자’고 했더니 놀랍게도 거부한다.
“안돼요, 엘리엇은 특별한 닭이라구요!”
“닭 같은 게 뭐가 특별해.”
“엘리엇은 다른 닭보다 울음소리도 멋있고 힘도 세고 머리도 좋다구요. 게다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와서 개한테 물릴 뻔 했을 때 엘리엇이 구해줬어요.”
완고한 모습에 피터는 다른 말을 하기로 했다.
“이름은 왜 하필 ‘엘리엇’인데?”
“멋있잖아요. 이름이.”
“...내 이름도 멋있어.”
그러나 영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라 어떻게 하면 멋있을 것 같냐고 은근하게 물었더니 주저주저하다 대답하는 것이 가관이다.
“피터우스 파니니 칭키스칸 3세 같은 거요.”
“무슨 근본없는 이름이야 그건. 애가 겉멋만 들어서.”
“...겉멋만 든 애라서 그래요.”
그러곤 칫! 고개를 돌린다.
삐진 것 같아 슬쩍 다가갔더니 모른 체한다.
“토마스.”
“...”
모른 체하고 닭의 상처 자리에 약만 바르기에 쓰윽 더 가까이 갔더니 모르는 척 하면서도 이쪽을 신경 쓰는 것이 너무 티가 나 웃음이 나올 정도다.
“...기다려 엘리엇, 모이랑 물 가져올게.”
피터가 바짝 붙는 것을 견디지 못한 토마스는 닭 모이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피터는 슬그머니 바닥에 끌릴 듯 긴 자락의 옷을 밟아버렸다.
콰당.
요란스레 넘어지는 소리가 나고 이렇게 세게 넘어질 줄 몰랐던 피터가 놀라 일으켜 보니 이마가 빨갛게 되어 있었다.
괜찮냐는 말도 못 하고 있으려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이쪽을 보다 팩 가버린다.
“...다 너 때문이잖아. 엘리엇인지 엘리인지 모를 닭 놈아.”
엄한 닭에게 화풀이 하고 있으려니 토마스가 들어온다.
“...야.”
“....”
“야, 토마스.”
“....”
“꼬마야.”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닭 앞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그릇에 모이와 물을 부어준다.
눈은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너 그러다 다리 저려.”
“....”
“삐졌냐?”
“아니예요!”
삐졌구만 뭘.
삐져서 입 딱 닫고 꽁하게 있다가 삐졌냐는 말에 아니라고 냉큼 부정하는 것이 제법 아이다웠다.
지금까지가 상냥하고 어른스러워 귀여웠다면 지금은 신선하게도 어려 보인다고 해야 할까.
“삐졌지?”
“아니예요.”
“삐졌네.”
“아니라구요.”
“삐졌구만.”
“아니라니까요!”
어쭈, 이제 소리도 질렀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여워 킥킥 웃던 피터는 토마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놀리던 것을 멈췄다.
토마스는 눈물을 흘리다 급기야 소리까지 내어 울더니, 딱 한 마디를 했다.
“형 미워요.”
둘 다 저녁이 되어 잠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피터의 돌아누운 등에 붙어 자곤 하던 토마스는 천을 감아 만든 엘리엇의 임시 둥지에 손을 올리고 잠들었다.
“토마스, 엘리엇은 어때?”
“아침에 물도 잘 마시고 모이도 잘 쪼았어요, 상처가 깊긴 하지만 곧 나을 것 같아요.”
재잘재잘 잘도 얘기하는 것을 보던 피터는 토마스가 평소와 달리 후다닥 일어나 닭을 보러 가는 것을 뚱하니 쳐다보았다가 옆으로 말을 걸었다.
“엘리엇?”
“그 왜, 토마스가 좋아하는 닭 있잖아.”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름까지 붙여주더라고, 잡아먹으면 우는 건 아닐까 몰라.”
나 빼고는 다 알잖아.
피터는 남은 것을 입에 밀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 토마스가 울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수업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주의도 받고 하였지만 토마스가 울던 모습과, 재잘거리던 웃는 얼굴이 번갈아가며 보이는 것 같아 수업의 내용보다도 어떻게 하면 웃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것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수업을 마치고, 피터는 장터로 발을 옮겼다.
아이들은 과자를 좋아하니까.
이 먼 길을 걸어 시장까지 와 놓고는 다른 것은 보지 않고 튀김과자만 한 자루 사서 발길을 되돌렸다.
나귀를 탈 생각도 하지 않고 걸어갔다 왔더니 늦은 시각이라 이미 해는 졌고 별이 총총하게 떠 있었다.
집에 미리 연락을 해두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을 찾느라 큰일이 날 뻔 했네.
한참이나 걸어 발은 물집이 잡히고 피곤했지만 이걸 받으면 다시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힘들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서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간단한 과일과 빵으로 요기한 뒤 제 방으로 가니 토마스는 이불 위에 이미 잠들어 있었다.
하기사 아직 한참 어린아이니, 잠이 많겠지.
머리맡의 닭 둥지에 팔을 얹은 건 싫었지만 다른 손에는 제 베개 귀퉁이가 잡혀 있어 자신을 기다렸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과자 자루를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과자가 든 자루를 머리 위쪽에 놔두고 자신도 이불 속에 들어갔다.
기대에 한참이나 뒤척거리다 간신히 잠들었건만.
다음날 일어났더니 자루는 찢어져 있었다.
애초에 질기지 않은 것이라 장닭인 엘리엇이 발톱으로 할퀴고 부리로 쪼니 헤쳐져서 과자가 반이나 아작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이... 멍청한 닭이...”
잡으려 했더니 다쳤다는 녀석이 퍼득퍼득 뛰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을 다닌다.
그걸 잡는답시고 저도 방 안을 뛰어다녔더니 그 소란에 토마스가 놀라 일어났다.
아직 기뻐하는 얼굴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 닭이 자기 계획을 망쳐 버렸다.
저걸 꼭 잡아 국이라도 끓여 버리겠노라 생각하는데 토마스가 그 앞을 막았다.
“이 과자, 저 주려고 사 오신 거예요?”
속상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토마스는 부스러기를 치우고 성한 것들을 골라 빈 바구니에 옮겨 담고 양손으로 들어 제게 보인다.
“이것 봐요,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어요.”
이렇게 과자가 많은 건 처음 봐요, 정말 고마워요.
피터는 잠시 내려다보다 한숨을 쉬고 다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다음에 갈 때 하미과(멜론의 일종)를 사 올게.”
“정말요?”
“장식 구슬도 사 오고.”
참 착한 아이다.
이런 걸로도 기쁘다면야.
더 기쁘게 해주기 위해 피터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걸로 뭔가 만들어 줘, 항상 하고 다닐 테니까.”
그러고도 아직 부족한 듯하여, 뭔가 갖고 싶은 게 없냐고 물었다.
“가지고 싶은 건 없지만요 형.”
무거운지 토마스는 바구니를 옆으로 내려놓고 폭 안겼다.
“...밉다고 말해서 미안해요. 사실 형 하나도 안 미워요.”
아직 아기처럼 말랑거리는 몸에서 단 향내가 난다.
넘어질 때 부딪힌 이마는 괜찮으냐고 한참 늦은 걱정을 하면 토마스는 몸을 물렸다.
“아팠어요. 그러니까 호- 해줘요.”
후-
입김을 불어주면 그제야.
토마스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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