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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랑] 기우제

2016. 10. 18. 18:14 | Posted by 호랑이!!!

하랑은 손을 들었다.

 

붉은 색으로 물들인 넓은 소매가 하늘 가득하게 펼쳐졌다가 땅으로 가라앉았다.

 

앞으로 펼친 병풍도 화려하고 그 앞의 제사상도 딴에는 화려하고, 귀로 들리는 소리도 꽹과리며 북이며 요란하다.

 

알록달록 물들인 천을 나풀거리는 하랑까지 그야말로 눈도 귀도 소란한 가운데 하랑의 눈빛만은 이질적으로 고요했다.

 

신령님, 신령님

 

비를 내려주십사

 

농작물이 풍족하게

 

올해 배는 곯지 않도록

 

비야 비야 내려라.

 

비야 내려라.

 

그런 소원을 뒤로하고 하랑이는 다시 손을 들어 하늘을 가렸다.

 

그 눈 아프도록 짙게 물들인 소매가 하늘을 덮었다가 다시 가라앉자 멀리서 구름 무리가 나타났다.

 

커다란 구름 무리.

 

사람들은 그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하랑의 눈에는 그 구름을 몰고 오는 이무기가 똑똑히 보였다.

 

소매가 더욱 화려하게 춤추었다.

 

돌풍이다

 

비구름을 몰고 오는 돌풍이다!”

 

그 거대한 것이 이쪽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점점 바람이 강해지더니 빗방울이 뚝 떨어졌다.

 

굵은 빗방울 하나가 땅에 닿는 것 하나를 기점으로 폭풍이라고 할 정도의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지지대를 세우러 가자

 

논일은 우리가 할 테니 당신들은 그저 있으소

 

사람들은 바삐 걷고 뛰었다.

 

그 가운데 하랑이는 뛰고 돌고 손을 들어 소매를 휘날렸다.

 

이 돌풍 속에서도 미동조차 없는 병풍 뒤로 거대한 호랑이가 이무기와 마주하고 있었다.

 

요란하게 꽹과리가 울었다.

 

호랑이가 이를 드러내었다.

 

바람이 일순 멎었다.

 

하랑의 손짓에 악기가 멎자 이무기가 구슬을 움키고 비가 거세게 내렸다.

 

다시, 음악소리가 커졌다.

 

 

 

 

 

 

 

 

 

비는 정확히 마을 사람들이 원하던 만큼 내렸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적당히.

 

비가 멎고 나서야 하랑이는 춤을 멈추었다.

 

비가 아닌 땀에 젖어서.

 

그리고 누군가는 지쳤다는 것이 역력한 그의 눈만은 마치 싸움이라도 한바탕 한 것처럼 흥분으로 번뜩이더라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