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아이디어를 받았습니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마틴 챌피는 한숨을 쉬며 편지를 접었다.
편지는 봉투째로 벽난로 속으로 들어갔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편지네요.”
저게 설령 사이퍼가 만든 일종의 사이킥 페이퍼라서 진짜로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제게는 행복이 필요한 거지 행운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하얀색 종이봉투에 담긴 행운의 편지는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찾아왔다.
세 번째로 받은 날, 마틴은 다시 봉투를 열고 안의 내용을 읽었다.
어라? 뭔가 이상하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3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행운이 당신에게 깃들 것입니다⌟
이런 편지에 으레 있어야 하는 ‘7통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시오’하는 문구가 없다.
마틴은 그 편지의 뒷면과 봉투까지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옆에 놓아두었던 시계가 땡땡땡 하는 소리를 내었다.
벌써 잘 시간이군요.
커튼을 걷어 바깥을 살폈더니 창밖은 어둑했고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편지는 원래대로 접어 책상에 올려두고 마틴은 방의 불을 껐다.
마틴은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눈을 떴다.
바다 냄새가 났다.
그리고 자신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크고 밝게 빛나고 있었고 별은 쏟아질 듯, 손을 뻗기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득 매달려 있다.
“일어나 보시오.”
다정스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자 갈색 머리의 남자가 앞에 서 있었다.
“...꿈에는 자신이 본 사람의 얼굴만 나온다고 하던데, 제가 언제 당신을 만난 적 있었나요?”
그러자 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야말로 시원스레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그대의 꿈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내가 그대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시오.”
마틴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불 꺼진 등대에 바로 앞엔 바다가 파도치고 불빛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별이 반짝였다.
열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기분좋게 헤집고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머릿속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그는 마틴을 이끌어 유리 테이블 앞에 앉혔다.
유리 테이블 위에는 유리그릇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유리 구슬이 가득하게 들어 달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블론디, 그거 아시오?”
이것은 별이라오.
이게 별이라고요?
마틴이 반문하자 그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작고 하얀 초에 불을 붙였다.
초를 옆에 내리자 유리그릇 속의 수많은 유리알이 반짝거리며 빛을 내었다.
“그대를 위해 빛나는 별이라오.”
자명종이 금속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마틴을 깨웠다.
마틴은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정말 멋진 꿈이었는데.
오늘도 하루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일해야 한다.
어제만 해도 이 생각만 하면 쉬고 싶다, 아프다고 할까, 감기에 걸렸다고 할까 생각했지만 왠지 오늘은 그조차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마틴의 시야에 책상에 두고 잔 편지가 보였다.
행운이라.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하하.”
그처럼 시원스레 웃어보려 했지만 큰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찌푸리고, 맥없는 모습.
양 손바닥으로 뺨을 꾹 눌렀다.
거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오늘의 꿈 속은 몹시 추웠다.
이게 정말 살을 엔다는 거구나.
“춥지 않소?”
어제의 꿈 속에 나왔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두터운 겉옷을 입혀 주었고 털신을 신겨 주었다.
오늘의 꿈속은 소파 위였는데 그 앞엔 모닥불이 타오르고 둥글게 주변이 정돈되어 있었다.
모닥불의 위에는 작은 주전자가 걸려 있었고 그는 마틴이 일어나 앉자 커다란 담요를 꺼내 함께 덮었다.
바닥이 얼음인데 불을 피워도 되는 걸까? 묻고 싶었지만 이내 머릿속에 답이 떠올랐다.
“여기는 제 꿈속이니까요.”
“스모어 먹겠소?”
“스모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거지, 밖에서 캠핑을 할 때마다 만든다오.”
아주 쉬워, 자 이걸 받아.
마틴은 쇠꼬챙이를 받았다.
끝이 뾰족한 쇠꼬챙이에 마시멜로를 끼우고 불 쪽으로 내밀자 곧 달콤한 향이 났다.
“챌피, 그렇게 가까이 놓으면 타 버린다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얀 마시멜로의 겉에는 갈색 기포가 생기더니 이내 불에 휩싸여 버렸다.
그가 후 불자 불이 꺼졌지만 하얀 마시멜로는 까맣게 타 버렸다.
“하는 수 없지. 자, 내 것으로 만드시오.”
겉이 살짝 갈색으로 변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마시멜로를 크래커에 올리고 그 위에 초콜릿 조각을 얹은 뒤 그 위에 크래커를 하나 더 얹자 보기 좋은 샌드가 되었다.
그는 그걸 익숙한 솜씨로 하더니 다 된 것을 마틴에게 내밀었다.
“자, 맛을 봐.”
마틴은 그것을 받아 한 입 깨물려다 그가 태운 마시멜로로 만든 스모어를 먹으려는 것을 보고 소매를 잡아당겼다.
“태운 것은 저니까, 그걸 저한테 주세요.”
그러자 그는 씩 웃더니 스모어를 입에 쏙 넣었다.
“아, 앗 뜨거! 뜨거....!”
“당신?!”
“이거 막 구운거라 뜨거우니 조심하시오. 아.. 후... 하후...”
마틴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혀를 내밀고 뜨거워하는 모습에 몸을 그 쪽으로 기울이곤 후- 입김을 불었다.
“좋아, 이 꿈의 주인인 제가 후-후- 했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예요.”
릭은 하하, 웃고는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보았다.
“그래, 이제는 하나도 안 아파.”
문득, 마틴은 하늘이 몹시 밝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는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 가득 빛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황록색, 백색, 보라색, 푸른색이 어두운 밤에게서 그들을 감싸듯 하늘 끝까지 펼쳐진 것 같았다.
“정말... 아름다워요.”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했다.
마틴은 그가 만들어준 스모어를 한 입 베어물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달콤한 맛이었다.
“어떻소, 맘에 드오?”
“정말로... 멋져요.”
그는 마틴의 뺨에 입술을 대었다.
어김없이 자명종이 마틴을 깨웠다.
마틴은 입술이 닿았던 뺨을 만져보았다.
정말이지 생생한 꿈이다.
반할 것 같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행운의 편지를 들어 한가운데에 몇 번이고 입맞추었다.
자명종을 끄고 언제부터인지 거의 걷은 적 없던 커튼을 활짝 열었다.
아침햇살이 이렇게나 밝았던가? 아침의 공기가 이렇게 상쾌했던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 바람조차 기분 좋았다.
큰 소리로 웃고 싶었다.
일터에서 하루종일 그 꿈 생각이 났고, 꿈을 생각할 때면 손이 뺨을 만지고 있었다.
오늘도 만약 그 꿈을 꾼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볼 것이다.
평소 외출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점심시간에 재단 밖으로 나갔다.
재단 근처의 작은 가게로 들어가 크래커 한 봉지와 마시멜로, 초콜릿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가게의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상품이 눈에 띄었다.
가격표를 보니 제법 비싼데...
하지만 저걸 보니 꿈 속의 그 사람이 떠오른다.
저걸 선물해 주면 좋아할...
...아니, 정신 차려, 그 사람은 꿈 속의 사람이라고.
요 며칠의 꿈은 그냥... 꿈이야.
저걸 봐, 넌 평생가도 쓰고 싶지 않을 텐데 저만큼이나 비싼것에 돈을 쓸 여유가 있어?
하지만 결국 마틴은 사고 말았다.
심지어 점원에게 선물로 줄 거니 잘 포장해달라는 말까지 해서.
손바닥만한 상자를 벨벳 천으로 감싸고 비단끈으로 장식하듯 묶은 것을 주머니에도 넣지 않고, 마틴은 그대로 들고 재단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편지를 다시 읽었다.
⌜이 편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3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행운이 당신에게 깃들 것입니다⌟
3일?
오늘이 3일째였다.
마틴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포장된 선물을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눈 떴소?”
밤이다.
꿈은 밤에 꾸는 거니까.
하지만.....
마틴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여긴 내 꿈이예요, 그렇죠?”
“그렇소.”
“그럼 꿈의 배경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대가 원한다면.”
이걸 보시오, 라며 그는 긴 종이를 펼쳐 보였다.
“그대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던지, 뭐든 가능하오.”
그리스의 건축물을 볼 수도 있고, 그 어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고대 신전을 탐험할 수도 있소.
히말라야의 산봉우리, 브라질 밀림의 흑표범을 만져볼 수도 있고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거대한 고래와 함께 헤엄칠 수도 있소.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그는 마틴의 손을 잡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거대한 축제의 한복판에 와 있었다.
“주위를 보시오.”
신문에서 본 적 있다.
저것은 피라미드, 저것은 스핑크스.
“챌피,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전혀. 동물인가요?”
“그대는 방금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혔소. 답은 사람이오.”
축제를 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이방인들이 나타났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음악 소리는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거기 맞추어 춤을 추었다.
여기저기 불이 밝았고 사람들은 신처럼 웅장한 건축물 앞에서 춤을 주고 있었다.
“밤에? 춤을 춘다고요?”
“바로 그렇소!”
걱정 말아, 어두워도 남의 발에 발을 밟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릭은 마틴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들은 순식간에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휘말렸다.
“한밤의 축제 속에 빠진 것을 환영하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져서 지칠 때 까지 춤을 출 수 있었다.
춤을 추고, 추고, 추고, 음악은 뼛속까지 파고들어 뛰고, 손을 들고, 빙글빙글 돌게 한다.
마침내는 지쳐, 마틴은 한쪽으로 나가 주저앉았다.
“지쳤소?”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자 그는 이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었다.
“나는 그대의 꿈이니까.”
그대가 거부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꿈 속으로 유혹하지.
거부할 수 없는 것, 이라는 말에 문득 떠올라서 마틴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왜 그러오?”
“분명... 아까 쥐고 잠들었는데, 없어요.”
선물과 더불어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마틴이 기운이 없어 보여, 그는 마틴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당신이 행운의 편지를 보냈어요, 그렇죠?”
“그렇소.”
“그럼 오늘밤이 마지막 꿈이예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틴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만치, 한쪽 하늘이 밝아오는 것이 보였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꿈이고, 헛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틴은 그렇게 물었다.
“챌피, 이제 가야 하오.”
가기 전에 말해 주세요.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마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마틴은 어느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이 몰려왔다.
이름을 물어보려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멋진 꿈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마틴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팔을 뻗었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귓가에 한마디를 속삭였다.
“사랑해요.”
세상은 검게 변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밤.
꿈은 꾸지 않았다.
선물로 주려고 했던 것은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여섯 번째의 밤을 보내고 일어난 마틴은 책상 위의 행운의 편지를 집어들었다.
봉투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고 꿈속의 그를 떠올렸다.
재단에서 일을 하고, 입이 심심할 때는 크래커에 초콜릿과 굽지 않은 마시멜로를 얹어 베어 물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류를 브루스씨한테 전달해야 했다.
다시 한숨이 나왔다.
서류뭉치를 들고 그의 사무실로 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브루스씨는 지금 응접실에 있다고 했다.
급한 서류는 아니었지만 전달하기 위해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길쭉한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한쪽에 브루스가 앉은 것이 보였다.
“브루스씨, 이거...”
‘챌피’
손에서 서류가 우수수 떨어졌다.
“챌피.”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보고싶었소.”
생각과 같은 말, 생각과 같은 느낌.
마틴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재단의 ‘침착’하고 ‘차분’한 인재, 마틴 챌피는 자신의 방으로 전력질주를 했고, 다시 응접실까지 전력으로 뛰어 돌아왔다.
헉헉거리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마틴은 손에 든 벨벳 상자를 그에게 있는 힘껏 던진 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의 행복한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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