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랑은 아버지가 이국으로 가는 날 주었던 주역을 펼쳐들었다.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었으나 부러 전등 대신 기름등잔을 꺼내었다.
바지직 바지직 기름 타들어가는 내음은 향긋하고 소리가 나직하니 마치 이 순간만이라도 고향으로 간 것 같다.
주역은 아직 어렵고, 어쩌면 아버지에게까지도 어려웠겠지만 이 책을 자신에게 준 것은 이국 땅을 밟을 자신에게 흉운이 멀어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기원이렷다.
음기가 어쩌고, 양기가 어쩌고.
몇 장쯤 읽다 하랑은 공기가 더워 창을 열었다.
“거 달도 밝다.”
보름달도 아닌 것이 자그마해서 이곳의 가스등 따위에 빛이 위축될 만도 하건만 그러한 기색도 없이 깊고 어두운 밤하늘에 떠 밝게 비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달 좋고, 주위도 모처럼 고요하니 좋고.
여기 향긋한 술이나 한 잔 있으면 좋으련만.
하랑은 아버지 몰래 한잔 두잔 빼어먹던 것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향긋하지 않아도 되니까 마시고 취할 곡차 한 잔만 있으면 좋으련만.”
하랑은 팔을 뒤로 돌려 머리에 대면서 휙 누웠다.
“어린놈이 술타령이라니 퍽이나 보기 좋은 모양새다.”
그런데 눕는 순간 들어오는 것이 사부의 얼굴이라니.
“거 인기척 좀 내고 다니쇼.”
하랑은 방금 누웠지만 몸을 일으켜 앉았다.
“호오, 주역?”
티엔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집어들었다.
“아버지가 주신 거요.”
티엔은 하랑의 옆에 앉더니 가지고 온 것들을 주섬주섬 풀어놓았다.
“떡, 전, 생선에 술? 이게 다 뭐야?”
이걸 여기서 볼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먹기 좋게 잘린 과일이 담긴 접시까지 나오자 하랑은 얼떨떨하면서도 기뻐 배 조각을 집었다.
조선 것보다야 무르지만 맛만은 같으니 입에다 톡 던져넣고 우물우물 먹는다.
티엔은 작은 잔 두 개를 꺼내더니 그 잔에다 술을 따랐다.
아까는 어린놈이 술타령이다 뭐다 하더니.
하랑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티엔을 빤히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양과가 든 분홍색 상자를 주더니, 티엔이 입을 열었다.
“네놈 생일상이다.”
“...이 야밤에?”
“그래야 내가 네 생일을 제일 처음으로 축하해 준 사람이 되지 않나.”
뭘 그런 걸 신경쓰고 그러시나.
그러면서도 하랑은 양과자를 집어 티엔의 입에다 물려주었다.
“그래도 난 사부가 제일 먼저 축하해 주어서 기쁘오.”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틀비<-토마] To.지민선배 (0) | 2014.10.29 |
---|---|
[이글X빅터] 고양이 -01 (0) | 2014.10.25 |
[웨슬카인/오메가버스] 기만하지 말게 (0) | 2014.10.20 |
[카인웨슬] 마법의 각설탕 (0) | 2014.10.18 |
[다이글] 선택지 (0) | 2014.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