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를 맡고 있던 사람들은 생각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은 공장일을 마치자마자 돌아와 설거지와 다른 자질구레한 일들을 마칠 것.
시간을 빠듯하게 써야겠지만 조금 더 서두르고 자신에게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이글형네 집에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아는 중에 유일하게 혼자 살면서 고양이를 흔쾌히 맡아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빅터는 공장일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뛰어와 수프를 끓여놓았다.
집안을 청소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마른 옷을 잘 다려놓으면 할 일이 일단락된다.
마지막 옷을 다려놓자마자 세탁이 다 되었다는 소리에 후다닥 나가 빨랫줄에 널고 나니 정말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원래라면 저녁 내내 할 일을 고작 두 시간 안에 하려니 피곤하고 지쳤지만 이글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땀에 젖은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차가운 물로 몸을 닦았더니 그나마 정신이 든다.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닦고 이글의 집으로 날아가 문을 똑똑 두드렸더니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리고, 이글이 나왔다.
“이제 왔어? 벌써 일곱시 반이야.”
“...”
“...늦은 건 아니니까 들어와.”
문을 열어주고, 빅터는 열린 문틈으로 들어왔다.
“저녁 거의 다 됐으니까 거기 앉아 있어.”
“저기, 고양이는...”
그러자 손가락으로 대충 소파를 가리킨다.
그리를 봤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말끔한 모습이었던 천 소파는 여기저기 튿어지고 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범인으로 생각되는 은색 털에 초록색 눈을 가진 새끼고양이는 소파에다 앞발의 발톱으로 득득득 긁고 있다가 빅터와 눈이 마주치자 가냘프게 야옹- 하고 울었다.
“악! 소파를...!”
덥석 집어들자 이번에는 제 품으로 폭 뛰어든다.
털 때문에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폭신폭신하기도 하고, 그런데 잘못 쥐었다가 부러지거나 날아가거나 다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 녀석이 그 소파가 참- 마음에 드나 봐.”
이글이 그쪽을 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미안.”
“됐어- 예상했던 일이니까. 오히려 소파 하나로 끝나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글은 건성건성 대꾸하며 그릇에다가 스튜를 듬뿍 떴다.
“한창 자랄 때라 햄버그나 양 갈비 같은게 먹고 싶겠지만 내가 그나마 자신있게 만드는 게 이것밖에 없거든? 오늘은 이걸로 참아줘.”
고마워, 라고 대답하고 머뭇거리던 빅터는 수저를 찾아 식탁에다 가지런히 놓았다.
“아- 아, 너, 임마.”
이글은 빅터가 자리에 숟가락을 내려놓자 손가락으로 홱 가리켰다.
“응?”
“내가 앉아있으랬지, 누가 일하랬어?”
빅터는 다시 소파로 가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았다.
그리고 제 무릎 위로 기어올라오는 새끼고양이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윙- 하고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펄쩍 뛸 만큼 놀랐다.
“뭐, 뭐야, 놀랐잖아!”
“머리 젖은 거 말려주려고 이러신다, 왜?”
이글은 드라이어를 가지고 빅터의 머리를 말려주다 새끼고양이가 쉬익 소리를 내며 발톱을 세우고 앞발을 뻗는 것을 보았다.
아- 닮았다.
이글은 빅터의 머리를 말려주고 드라이어를 앞발로 툭 치고는 지레 놀라 화닥닥 도망가는 새끼고양이 쪽으로 드라이어를 밀어준 뒤 빅터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스튜 좋아해? 아, 이런 건 만들기 전에 말해야 하나?”
“...좋아해.”
빅터가 투덜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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