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곳은 어두운 곳이었다.
어둡고, 춥고,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곳.
주위는 횃불이나 낡은 등불이 비춰주고 있었다.
숲인가, 나무가 많다.
그러고보니 좀 익숙한 곳이다.
...가문 소유의 사냥터?
옛날에는 사람 사냥도 빈번하게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오한이 끼쳤다.
머리를 젓고 주위를 다시 둘러보려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깼느냐, 이글.”
“다이무스 형!”
펄쩍 뛸 만큼 놀라고 반가워 돌아보려는데 몸이 기우뚱하더니 기세를 못 이기고 결국 쓰러진다.
뭐야, 하고 보았더니 밧줄이었다.
밧줄과 거기 묶인 자신의 몸과, 그리고 딱딱한 나무 의자.
“형아, 이것 좀 풀어줘...”
조금 이상한데.
왜 형이 칼을 빼들고 있지?
그러고보니 저 앞에 사람 같은 것이 보인다.
머리에는 검은 자루를 씌우고, 무릎 꿇려서 손은 뒤로 묶고.
“...루이스...?”
그중 하나, 옷이 낯익어 말을 걸었다.
“이글 홀든? 이게 무슨 일이야?”
“나야... 모르지...”
이상한데, 몹시 이상한데.
“선배예요?”
맙소사, 옆은 토마스.
그리고... 나이오비...
“형,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줄 좀 풀어주면 안 될까? 나랑, 쟤들이랑...”
“네 머리로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잖아! 내 상상력은 빈약하다구.”
“내가 너를 너무 과대평가 한 모양이군.”
다이무스가 말했다.
그러고는 이해를 도와주겠다, 며 루이스 쪽으로 다가가더니, 단번에 칼을 내리쳤다.
피가 분출되며 따뜻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형아...?”
“사랑한다고 해 보거라.”
약간의 표정 변화도 없이 다이무스가 말했다.
“누굴... 형을?”
이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형이 아냐.
형일 리 없어.
다이무스 홀든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역사서보다는 기사도 소설책을 좋아하면서... 질려하면서도 꾸역꾸역 성실하게 초콜릿을 먹어주고... 때때로 시나 지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흘리는....
검이 올라갔다.
횃불에 은빛으로 반짝 빛나 이글은 정신을 차렸다.
“미친거 아냐?! 그만둬 다이무스 홀든!”
가엾은 토마스는 무슨 일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으면서 떨고 있었다.
“너무하는거 아닌가, 형한테 미쳤다니.”
“형! 다이무스! 그만두라고 다이무스!!!”
서걱.
그리고 툭, 하는 소리가 났다.
다이무스의 검날이 다시 빛을 반사했다.
제발, 안돼.
엘리가 나이오비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동화책을 읽어 달라며 양손으로 커다란 책을 들고 침대 위에 앉아 있을 텐데.
이글은 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해! 사랑해 형! 사랑한다고!”
서걱.
머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잉게 나이오비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실망이다, 이글.”
다이무스는 한숨을 쉬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나?”
“했잖아! 했잖아 미친놈아!”
이글은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친했던 세 사람은 죽어버리고, 여태까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따르던 큰형은 손에 검을 들고 피를 묻힌 채 무엇이 잘못이냐는 듯 평온하게 말을 한다.
“저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날 사랑해서 하는 말이 듣고 싶은 거다. 빨리 말하거라, 나는 인내심이 없다.”
“...제발, 형...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어쩌면.
다음은 레베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트리비아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어쩌면 엘리나 피터나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지.
“나는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만, 이글.”
다이무스가 재촉해 왔다.
“사, 사랑해... 형, 사랑해, 진짜 사랑한다고!!!”
절박하게 소리 질렀는데, 어깨로 검이 찔러 들어왔다.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음에도 신음소리는 흘러나왔다.
“형이 거짓말은 나쁘다고 누누이 얘기했잖느냐.”
사람 어깨에 칼을 꽂아 놓고서 안타깝다는 듯, 나쁜 아이를 야단치는 듯한 목소리로 혀를 찬다.
검의 날이 다시 반짝이며 빛을 반사했다.
이번에는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이글은 섬뜩해지는 느낌에 조금 더 필사적으로 다이무스를 올려다보았다.
“사랑해...”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사랑해 다이무스.... 흑... 흐으....”
“사랑한다고? 정말로?”
다이무스가 역겨우리만치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제 앞에 무릎을 구부려 시선을 맞추고, 눈가로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진심이야.. 흑... 사랑해... 정말로...”
문득 불빛에 비친 다이무스의 눈이 정말 자신을 죽일 수 있을거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시선을 마주치기 싫었다.
자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좀 더 말하고 싶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정말로-”
“고맙구나 이글, 형은 기쁘다.”
다이무스가 웃었다.
치켜올라갔던 눈꼬리는 미미하지만 부드럽게 휘어졌고 입도 천천히 확실하게 웃는 모양이 되었다.
“기쁘다.”
푸욱.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소리가 들리고, 몸 가운데를 무언가가 가르고 들어온다는 느낌이 들고.
고통은 그 다음에 찾아온다.
이글 홀든은 모래바닥에 뉘여졌다.
이곳은 사냥터, 이 일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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