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은 보고를 마쳤다.
복도를 따라 난 유리창 너머로 온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다.
온 복도도 물건도 모두 붉은 색으로 변한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기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마틴은 그게 사람인 것도 몰랐을 것 같았다.
“티엔 사부... 아니, 정 티엔 어디있어?”
마틴은 하랑에게 귀를 기울였다.
마치 여러 사람이 속삭이는 것 같은 소리가 하랑을 휘감고 몰아치고 있었다.
‘정 티엔-’
‘죽여!’
‘대화를 먼저’
‘처음부터 수상했어’
‘뭔가 오해가’
하랑이 고개를 마틴 쪽으로 들었고 동시에 마틴은 누군가 밀친 것처럼 브루스의 방 문에 부딪쳤다.
‘듣지 마!’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고 마틴은 비틀거렸지만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랑, 지금 과하게 분노했어요. 냉정을 되찾으세요!”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
으레 티엔이 하던 소리라서인지 역효과가 났다.
하랑이 화를 잠재울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마틴은 다시 소리에 귀 기울였다.
누구인지, 인간인지도 모를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지나면 개가 경계하여 짖는 소리, 뱀의 쉿쉿거림, 독이 오른 쥐가 긁는 소리, 그리고.
분노한 범.
개와 쥐가 경계하는 것은 이전에도 들었다.
뱀이 위협하는 소리는 적지만 간혹 있었고.
그러나 호랑이라니?
단 한 번도 소리를 내지 않았던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이라니.
하랑은 마틴에게 시선을 두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짓누르는 것 같은 힘이 천천히 마틴에게서 떨어졌다.
순식간에 하랑의 몸은 계단 위를 뛰어오르고 마틴은 손을 뻗었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바로했다.
“무슨 일인가.”
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덩치가 복도를 메우듯이 열린 틈에서 빠져나왔다.
“하랑입니다.”
“무슨 일로?”
“모릅니다.”
“모른다고?”
자네가? 라고 묻는 듯한 눈에 마틴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가 없는 것은 자기 책임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마틴은 모자를 꾹 눌러 썼다.
“하랑에게 가보겠습니다.”
자리를 떠도 좋다는 허락을 듣기도 전에 마틴은 발을 옮겼다.
빠르지 않은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면 티엔의 방이 가까워진다.
겨우 몇 초 늦게 출발했을 뿐인데 복도는 이미 여기저기 부서졌고 때마침 근처에 있었던 일부 능력자들도 부상을 입은 채 티엔의 방 안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비용으로 둔 출장 가방이 사라진, 주인이 없는 그 빈 방을.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났다.
아침이면 하랑은 일찍 일어나 수련을 시작했고, 영어나 다른 외국어도 틈틈이 배웠다.
역사서를 읽었고, 신문을 읽었고, 수많은 책을 읽었으며 브루스의 뒤에서 회의나 회담에도 참가했다.
이제 첫 히트도 지났고,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틴은 브루스에게 하랑과 회의에 참가하라는 말을 들었다.
“형, 여기 자리 있어?”
한 일원으로 참가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비서진 사이에서 참가하는 것뿐인데다, 브루스 외에 자신 옆에서 일을 배우는 건 재단 일 치고도 꽤나 안전한 일이긴 하지만.
“자리, 있냐니까, 형!”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자신이 조금 더 철저하게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마틴은 자료를 넘겼
“마틴 형!!!!!!!”
“으아아악!!! 네!!? 네!!! 앉아요 앉아, ...하... 랑....?”
하랑은, 열일곱 되는 아이다.
“어휴, 어디에 정신을 판 거야?”
깨끗하게 씻고 땋아 드리운 댕기머리.
그의 아버지가 구해다 주었다는 파란 셔츠와 조끼.
언제나 명랑하고 착하고 솔직한...
“오늘은 나랑 형이랑 가는 거 알아? 내가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정말.”
“거기 꽤 멀던데, 그래도 1시쯤 나가면 시간이 충분할 거야.”
“나 그 설탕 좀. 아까 저기서 오늘 건 설탕 듬뿍 넣으면 맛있을 거라고 하더라?”
그러나 건네어진 설탕그릇은 뚜껑을 달각거릴 뿐이었다.
평소처럼 하얀 산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 앞에 현관에 나와야 해.”
하랑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틴은 벌떡 일어나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음식을 쓰레기통에 부어버리고 재단 안을 달렸다.
계단을 뛰어오르고 복도를 달려나가고 유달리 사람이 많아 번거로운 곳에서.
욕설과 함께 공용 전화기 사용 신청서를 쓰는 손길은 거칠었고 담당하는 직원은 웬일로 험한 모습을 보이는 마틴에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티엔 정은 아직 배 위일 테니 전보 쪽이 빠를 겁니다. 뭐라고 보내드릴까요?”
“나중에 전해져도 상관없으니 전화 쪽으로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자신이 자연스럽게 티엔 정을 떠올린 것.
그리고 그가 거의 오자마자 출장을 다시 나간 것.
마틴은 그 안에서 티엔의 부속물처럼 여겨지던 하랑이 요즈음 재단 일을 다양하게 하던 것과의 연관성을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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