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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쉘 모나헌이 죽었다.

 

능력자 전쟁이나 사고 따위가 아니라 자살.

 

그것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첫 번째 발견자는 까미유 데샹이었다.

 

미쉘이 앞이 안 보인다고 우는 것을 달래다가 일단 따뜻한 코코아를 가져오겠다며 잠시 방을 떠난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둘이서 사는 것이 편하다며 이층집을 사 신혼마냥 보내던 나날이었는데.

 

미아부터 주위 사람들은 모두 까미유를 위로했다.

 

그리고 첫 번째 발견자는 미쉘에게 주려던 코코아 잔을 꼭 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미쉘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며, 능력 때문에 눈이 타들어가서일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피터를 걱정했고, 피터를 돌봐 달라는 말을 들었다.

 

왜 마지막까지 피터였지? 자신이 아니라.

 

어쩌면... 하고 까미유가 생각했다.

 

미쉘이 알고 있었을까?’

 

자신이 조금씩 약을 먹였다는 것을.

 

앞이 보이지 않는 염동력자는 쓸모없다.

 

하지만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던 사람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하루 종일 의지하리라는 생각에서 벌인 일인데...

 

까미유는 검은 정장을 입은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앞으로 나랑 살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여기가 네 집이야.”

 

진부한 대사를 하며 까미유는 피터를 안으로 들였다.

 

어두운 밖은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몇 번 와본 적 있지?”

 

매우 소박하고 작은 집이었다.

 

스위치를 올리면 안이 보였는데 애초에 둘만 살 생각이었던지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단이, 왼쪽으로는 안쪽에 부엌이 보였고.

 

계단은 정성껏 사포질해 부드럽게 잡히는 난간이 양쪽으로 있었고 벽은 연한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작은 화분이 놓인 창틀에는 하얀 레이스 커튼이 모양 좋게 리본으로 묶여 있었고.

 

하나하나 살펴보던 피터는 계단을 올라가다 부드러운 벽을 만져 보았다.

 

직접 칠한 거다.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방이 나뉘어 있었는데 까미유는 피터에게 오른쪽 방을 쓰라고 했다.

 

조만간 미쉘 물건은 정리할거야.”

 

“...누나가.”

 

피터는 입을 뗐다.

 

“...까미유를 잘 부탁한다고 했어.”

 

언제?”

 

꿈 속에서.”

 

“...그런 꿈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큰 아이지, ?”

 

피터는 까만색의 네모난 바탕에 여러 스티커가 가득 붙어있는 작은 짐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가방을 던지고 불을 켜보니 새하얗다.

 

네모난 옷장이 있고 침대 옆에는 전등이 올려진 서랍장이 있고 저만치에 작은 책장에 책이 가득 꽂혀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원목 책상과 쿠션이 대인 의자까지.

 

늦었으니 얼른 자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피터는 방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침대에 하얀 시트가 깔려 있었는데...

 

누나 냄새가 안 나.

 

침대 옆 전등이 올려진 서랍장 위에는 액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액자 속에 든 것은 미쉘과 피터가 함께 찍힌 사진이 아니라 미쉘과 까미유가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젖은 겉옷을 벗고 의자에 걸던 피터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을 열고 나가 까미유가 들어간 방 문을 확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은 꺼져 있었고 창 앞에 서 있던 까미유는 이제 자려던 참이었는지 파자마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피터는 대답하기 전에 눈을 감았다.

 

, 누나 향기다.

 

이 방이 누나 방이지?”

 

“...”

 

알아차렸구나.

 

피터는 까미유를 염동력으로 침대에 옮겼다.

 

아니, 굳이 네가 이러지 않아도-”

 

시끄러워.”

 

피터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까미유가 일어나려고 하니 피터의 하얗게 타들어간 눈이 번쩍 뜨였다.

 

“...알았어, 알았어.”

 

불편하나마 누우니 다시 눈이 감긴다.

 

피터가 잠들면 일어나려 했건만, 이 야생동물에 가까운 꼬마는 자신이 조금 움직이려는 기색만 있어도 벌떡벌떡 일어나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꼭 경계하는 고양이 새끼 같네...

 

그러고 보니 미쉘도 처음에 이랬었지, 자신을 경계한다고.

 

“...손 잡아줄까?”

 

됐어.”

 

...거봐, 미쉘을 닮았어.

 

까미유는 나지막히 한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불쌍빙/쓰다 만 거]

2015. 12. 17. 14:12 | Posted by 호랑이!!!

그러니까 일이라는 것은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를 들면 루이스가 토마스의 초콜릿 무스에 질투를 느껴 그걸 숨겼다던가, 그래서 토마스가 화를 내기를 소파 뒤에 숨어서 기다렸다던가.

그런데 하필 루이스가 케익을 숨긴 곳이 피터의 가방이었는데 포장에 문제가 생겨 가방 안에서 터졌다던가.

이전까지 토마스와 피터는 데면데면한 사이었다.

토마스는 어린애인 피터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고, 피터는 피터대로 토마스와 말을 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둘다 붙임성있는 성격은 아니라 소 닭보듯 하는 사이였다만 그것이 바뀌었다!

케익 때문에 엉망이 된 피터의 가방을 보고 토마스는 인상을 찌푸렸고, 피터도 인상을 찌푸렸다.

토마스는 당연히 피터가 울거라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지만 당연히 피터는 울지 않았고, 외려 책가방을 닦아낸 후 토마스의 등을 두드렸다.

툭툭 투둑 툭.

"나랑 케익 먹으러 갈래?"

"좋아."

물론 소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루이스의 표정은 구겨졌다.


"토미~♡"

"뭐요, 떨어져."

"나랑 (삐-)할래?"

토마스는 잠시 더러운 개라도 보듯 찡그리며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오늘 저녁엔 안 돼요. 피터 공부 봐주기로 했어요."

"뭐어? 지금 이 나보다 그 꼬맹이가 우선이라는 거야?"

"먼저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럼 지금 하자."

"인간이 왜 아침부터 발정나서 이래."

지금 아침도 아닌데!

웃기지 말고 꺼져요.

그리고 루이스는 밖에서 아무나 잡아 할거라고 뛰쳐나갔다.

토마스는 한 번도 그를 잡으러 간 적 없었지만 그런 날 저녁이면 낙인이라도 찍듯 거칠게 굴었고, 루이스는 그런 게 좋았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어도 토마스는 루이스를 안기는커녕 손도 잡지 않았고 심지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스는 토마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피터를 잡아챘다.

"야, 꼬맹이. 너 뭐야?"

"..."

무표정이었지만 그 표정은 '이건 또 뭐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게 묘하게 토마스와 닮은 것 같아서 일순 할 말을 잃었다.

나이를 열 살... 아니, 다섯 살만 더 먹었어도 확 잡아먹어버리는 건데.

아쉬워서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 양심에 거리낀다던가 아청법이 무섭다는 건 아니고, 거기가 작을 것 같아서.

제대로 발기는 하나?

"질투나?"

잠시 딴생각을 하는 루이스에게 피터가 툭 던졌다.

"뭐, 뭐어?"

"형아는 토마스 형아랑 놀고 싶은데 토마스 형이 요즘 나랑만 노니까 질투나는 거지?"

정답.

"그래, 질투나! 너 토마스한테서 떨어져!"

대화 내용만 보면 어린이 둘이라고 해도 믿겠네.

"싫어."

"...태워버린다, 너."

"돌려버릴거야."

노려보다, 먼저 움직인 쪽은 피터였다.

늘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연필이며 컴퍼스, 각도기를 꺼내 날려보냈고 추적 미사일이라도 되는지 몸을 틀었건만 루이스에게 사정없이 박혔다.

"토마스 형아한테 집착하지 마, 아저씨."

"이 시건방진 꼬맹이놈..."

루이스는 여기가 연합이라는 것도 잊고 궁극기를 사용하려 했다.

몸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유례없는 일이지만 루이스의 능력자용 옷에서 그을리는 냄새가 났다.

"모두..."

빠악.

루이스의 머리에 토마스의 불이 부딪혔다.

머리카락이 탄다거나 심하게 아프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데는 충분한 정도.

"애한테 궁극기를 쓰려 하다니 선배 지금 제정신이예요?! 게다가 여긴 연합 건물 안이라구요!!!"

"토미, 저 꼬맹이가...!"

"핑계대지 말아요, 보나마나 선배가 먼저 시비 걸었겠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만!

"먼저 시비걸어놓고 애한테 능력까지 쓰려 했어요? 선배 정말-"

뒷 말을 끊은 건 피터였다.

주의력을 돌리려는 건지 토마스의 옷깃을 잡고 톡톡 당겼다.

"난 괜찮아, 형아."

"정말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저 다정해보이는 모습에, 우리들의 루이스는 지나치게 울컥한 나머지 밖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토마스는 바보야! 그 꼬맹이도 능력을 썼는데! ...물론 내 불만큼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걱정은 안 하냐고!'

어린아이가 부모한테 땡깡 부릴 때나 할 법한 말들을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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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이맘때쯤이면 학생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퀴디치컵!

 

벌써 아침 연습을 마친 기숙사팀은 땀이나 이슬, 진흙에 젖어 연회장으로 오기도 하고, 연회장으로 오지 않은 선수들에게 가져다준다고 휴지에 토스트를 싸가는 학생들도 종종 보인다.

 

작은 수첩에 전략을 적어 웅얼거리며 외우는 학생들도 있고 선수나 전략에 대해 토론하는 학생들도 여기저기에.

 

이번달의 경기는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인데 학생들의 얘기를 조금 듣자면 이렇다.

 

후플푸프는 추격꾼 층이 탄탄하지.”

 

거긴 여자들이 꽤 많아. 파수꾼인 린도 여자애고.”

 

거기 수색꾼은 작년에 7학년이었잖아? 이번 수색꾼은 2학년 여자애래!”

 

그리핀도르에 대해 얘기하는 학생들을 보자면.

 

뭐니뭐니해도 영웅루이스가 파수꾼이니까.”

 

거긴 응원도 되게 화려하지. 저번에 클레어가 하는 거 봤어? 올해도 하려나-”

 

추격꾼은 그냥 그렇지만 파수꾼이 단단하고, 무엇보다...”

 

몰이꾼. 걔들이 대단해.”

 

아침의 연회장.

 

피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글을 찾아내었다.

 

토마스 형은?”

 

연습, 나도 하러 가는 길이고.”

 

이글은 토마스가 없다는 말에 부루퉁해지는 피터의 머리를 헝클어뜨려 놓고는 어깨에 빗자루를 맨 체 휙 돌아섰다.

 

늦지 말고 가라?”

 

“..., 잘난척은.”

 

피터는 그릇에 포리지를 덜다가.

 

티슈를 딱딱하게 뭉쳐 이글의 머리에 대고 던졌다.

 

“...좋아, 이 꼬마야. 지금 당장 미안하다고 하면...”

 

철퍽, 이번에는 끈적끈적한 호박 주스에 적셔 뭉쳐진 휴지가 얼굴에 날아왔다.

 

“...너 죽었어.”

 

 

 

 

 

 

 

 

오늘은 단언컨대, 토마스 스티븐슨 최악의 날이었다.

 

아침의 퀴디치 연습에서는 스니치 대신 던지는 골프공을 두 개나 놓쳤으며 연습하다가 도중에 나와서 연회장에서 피터와 이글이 대판 싸운 통에 엎질러지고 뒤집힌 테이블과 집기류를 원래대로 해 놓아야 했으며, 그로 인해 징계를 받은 피터가 자기는 징계를 받기 싫다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것을 달랬다.

 

이제 한 숨 돌리는가 하여 포리지에 설탕을 듬뿍 떠넣었더니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었던 데다, 그 끔찍한 아침의 피날레로 요일을 착각해 교재를 잘못 들고 왔다.

 

래번클로, 3점 감점.”

 

그 말에 토마스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3점은 토마스가 학교에서 지낸 5년 동안 잃은 유일한 점수였다.

 

토마스가 선망하는 루이스나, 존경하는 다이무스가 잇따라 찾아오기는 했으나 루이스의 경우 점수를 잃는 데 있어 별로 거리낌이 없었고, 다이무스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주의라 결국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인생은 혼자라는 생각을 새삼 하며, 토마스는 치료사용 약물 교재를 들었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만드는 약, 327페이지.

 

달이 없는 밤에 투구꽃과 쥐오줌풀 뿌리를 썰어서 뭉근하게 끓이는데 길면 길수록 좋다나.

 

토마스는 후우 숨을 내쉬고 자신의 냄비를 들었다.

 


[피톰] To. 팬쥐님

2015. 7. 5. 19:54 | Posted by 호랑이!!!

그 날이 왔다.


올 것이 왔다!


연합의 사람들은 은근히 시선을 피하며 뒷걸음질 치고, 한군데 모여 수군거리며 뭔가 의논을 하더니 마침내는 인내심이 다한 피터 때문에 멈추어야 했다.


"아기는 어떻게 생겨?"



 


우선은 이글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한손으로는 동그라미를 만들고 다른 쪽 손의 손가락은 하나만 바짝 세워서는 외설적인 손짓을 하려 했다.


"아이는..."


"드라이아이스!"


토마스와 루이스가 동시에 외치며 손을 뻗었다.


이글은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가 이내 얼음을 후둑후둑 떨어뜨리며 다시 피터를 쳐다보았다.


"아기는 섹스하면... 아 잠깐 영구동토는 안돼! 토마스, 너도 크리스탈 허리케인은...!"


루이스가 이글을 질질 끌고 나가는 동안 레베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기는 말이지! 황새가 물어다준다?"


"...그런건 안 믿어."


이거 안 먹히네- 레베카는 단호한 피터의 말에 하하 웃었다.


"남자에게는 정자가 분비되고 여자는..."


"언니이이! 언니이이!"


나이오비가 뭔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려는데 엘리가 뭔가 엉망인 모습으로 연합에 들어섰고 나이오비는 설명을 중단했다.


그 사이 이글을 버리고 루이스가 들어왔고 트리비아는 잠시 외출한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들었다.


그러고는...


"직접 보여줄까?"


", 잠깐 트리비아!"


"어머, 농담이야."


여긴 글렀어.


토마스가 중얼거렸다.


"선배, 선배가 설명해봐요"


"섹스가 뭐야?"


어느샌가 변경된 질문에 남자몸이 어떻고 여자몸이 어떻고 하는 설명을 하려던 루이스는 일순 굳었다.


"..."


?


"하하하하하하하하- 트리비아, 오늘 저녁에 외식할까?"


"잠깐, 도망가지 말아요!"


이미 늦었다. 나갔어.


토마스는 주위에서 설명해줄 만한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섹스는 말이지, 어른들이 사랑을 확인할때 동반되곤 하는 육체적 수단인데... 할 때는 상대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아주 중요하고..."


이어지는 설명에 피터는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배려... 라고 했던가..?"


"흐윽, ... , 터야..."


"목소리 줄이지 마, . 괜찮아."

 



피터와 엘리는 커다란 고무 대야에 타고 있었다.

 

다용도로 쓰이는 터라 끝이 나달하게 닳은 대야 아래로는 하얀 구름이 넘실거리고, 드문드문 구름 사이로 난 구멍 아래로는 바다같은 밤하늘이 보인다.

 

피터는 할로윈에 사용했던 암녹색의 커다란 해적 모자를 쓰고 허리춤에는 그럴싸한 나무칼을 찼다.

 

옆에서 엘리는 옷자락이 질질 끌리는, 나이오비의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하얀 군복 코트를 망토처럼 두르고 소매를 목 앞으로 돌려 묶었다.

 

신문을 말아서 만든 망원경을 눈앞에 대던 엘리는 손가락을 들었다.

 

“12시 방향에 구름 고래가 나타났다-! 백 미터는 되겠어!”

 

불쑥, 앞쪽의 구름이 들썩이고 거대한 고래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이대로 가면 먹혀버려!”

 

피노키오에서 봤잖아!

 

피터는 허리춤에 찬 나무칼을 빼들었다.

 

그 칼은 끝부터 은빛으로 변하고 뾰족해지더니 마침내 멋들어진 칼이 되었다.

 

피터 해적! 대포를 장전하라!”

 

예 써, 엘리 장군!”

 

어느새 고무 대야는 커다란 돛도 없고 핸들도 없는 범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피터는 서 있던 난간 아래쪽에서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모를 커다란 청동색 대포를 조준했다.

 

사과폭탄 장저언-!”

 

매끈하게 윤기가 도는 빨간 사과를 청동색 대포에 우르르 떨어졌다.

 

장전-!”

 

엘리가 신이 나 피터의 말을 따라 외쳤다.

 

피터가 자갈 부싯돌을 꺼내 착착 긋자 불꽃이 튀었다.

 

-!”

 

, 라고 하려는 순간 이불이 걷혔다.

 

얘들아.”

 

펄럭.

 

하얀 시트가 걷히는 순간 대야 아래의 구름도, 앞의 고래도, 커다란 대포도 한순간에 펑 사라졌다.

 

토마스는 테이블을 덮는 이불을 들추고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이나 폭탄, 날카로운 물건처럼 위험한 건?”

 

만들고 놀지 않는다.”

 

피터와 엘리는 동시에 대답하고는 자루에 담겨서 대야 옆에 둔 사과를 돌아보았다.

 

토마스는 그 중 하나를 꺼내 옷자락에 문질러 닦고는 들추었던 이불자락을 내렸다.

 

재미있게 놀렴.”

 

아이들은 다시 놀이에 푹 빠졌는지 대답이 없었다.

 

고래를 무찌르는 대신 친구가 되자는 얘기를 듣고, 토마스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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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인 카인 스타이거의 사무실은 3.

 

허나 스타이거 교수가 수업을 위해 고른 교실은 1층이다.

 

점심시간이면 늘 오전 수업동안 배고파했던 학생들은 교수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를 말하는 순간 연회장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스타이거 교수는 학생들이 달려나간 직후의 고요한 복도를 걸어 계단 앞까지 가고, 그러면 아래층에서 마악 걸어 올라온 마법의 약 교수 웨슬리 슬로언과 마주칠 수 있다.

 

오늘도 수고했네, 슬로언.”

 

자네도, 스타이거.”

 

한쪽 팔에는 오늘 사용했던 책을 끼고 나란히 걷지만, 연회장으로 바로 가지 않고 넓은 1층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한다.

 

오늘도 복도에는 사람이 없구먼, 다들 배가 고팠나 보지.”

 

“...그러니까 젊은 애들한테 아침마다 죽 따윌 먹이니까 저렇게 굶주려 있는 거야."

 

내가 젊을 땐-하고 운을 떼는 것을, 슬로언 교수가 막았다.

 

덕분에 우리는 좋지 않나.”

 

그도 그렇군.”

 

식전 산책은 홀과 연결되는 계단부터 시작해서 안뜰이 보이는 복도를 걸어 한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원래라면 유령들이 돌아다니곤 하지만 스타이거 교수와 얘기한 덕분에 이 시간만은 1층에 오지 않는다.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나.”

 

질리지도 않는군.”

 

언젠가 그들이 학생이었던 때처럼 웃음섞인 목소리로 키득거리면서 결과를 아는 시답잖은 수작을 걸었다.

 

저쪽에서 다 보이네.”

 

어차피 아무도 없지 않나.”

 

그래도, 그럼 춥기도 하니 이쪽으로 돌아서서-”

 

날씨는 평소처럼 흐리다.

 

그런 평소의 나른하고, 조금은 야릇한 분위기를 내려는 찰나.

 

안뜰 쪽에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피터!!!”

 

마악 빈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스타이거는 손을 멈춰버렸다.

 

“...래번클로의... 토마스 스티븐슨이군.”

 

“...성실한 학생이지.”

 

자네한테서 성실하다는 얘기를 듣다니, 역시 기대되는 학생이야.”

 

평소와 달리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그들은 빈 교실에서의 밀회 대신 안뜰을 지켜보기로 하고 난간에 다가서서 기댔다.

 

안뜰, 아직 겨울이라 분명히 나무와 덩굴이 있음에도 초록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회색에 가까운 정원 속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푸른 머리색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뭐라는지 들리지는 않는군.”

 

학생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는 게 어떤가, 슬로언.”

 

버릇처럼 기둥의 그늘 뒤에 숨어 지켜보던 그들은 마침내 푸른 머리 중에서 작은 쪽이 큰 쪽에게 안기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보니 저 학생이지? 자네 수업 중에 무작정 들어왔다던.”

 

스타이거 교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모나헌은... 듣자하니 1학년 중에서도 유독 두각을 드러낸다고 하더군.”

 

내 수업시간에도 가장 뛰어나긴 하네만.”

 

슬로언 교수는 몸을 구부려 기둥 바깥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의뭉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스타이거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옛날의 자네를 닮았네.”

 

나는 재능이라곤 없었지만.”

 

스타이거 교수는 작게 대꾸하고 여느 때라면 슬슬 연회장에 도착할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오늘은 이만 가지.”

 

그럴까, 점심 메뉴가 기대되는군.”

 

스타이거 교수는 벽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슬로언 교수에게 짧게 입술을 대었다.

 

“...그래도 작은 모나헌에게 스티븐슨 학생이 있어서 다행이네.”

 

내가 그러했고, 그러한 것처럼.

 

그들은 복도를 마저 돌아 홀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릭마/Bㅣ광] 최군과 사퍼 크로스오버

2014. 12. 20. 13:09 | Posted by 호랑이!!!

“마음을 읽는다고 하셨나요? 마인드랑 같은 능력이네요.”

 

“그쪽에도 저 같은 능력자가 있나 보네요. 반가워요, 마틴 챌피예요.”

 

“B라고 해요.”

 

마틴과 B가 멋쩍게 인사를 나누었다.

 

저 한편에서는 저런 화기애애하고 수줍은 분위기가 아닌 상당히 불꽃튀는 분위기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대가 군단 프리랜서의 대표요?”

 

“아따, 거 먼데까이 내가 알려졌나 보이. 그랴, 내가 프리랜서 대표, 비광이요 타키온.”

 

차분한 목소리.

 

예의바르게 올라간 입꼬리와 웃는 표정.

 

그러나 그 눈만은 웃지 않고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정 중 동!

 

그리고 저 멀리, 인사하는 보모와 아이 페어가 있었다.

 

“반가워요 어이.”

 

부엉!

 

“...”

 

“초코파이 사줘.”

 

 

 

 

 

 

“요거요거 이것이 양놈들 화투다냐?”

 

“깔끔하니 보기 쉽죠?”

 

릭은 비광이 돈 거는 게임을 좋아한다는 말에 카드게임을 하자며 서양카드 한 벌을 꺼내들었다.

 

B는 전혀 몰랐지만, 비광은 릭이 저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이런걸로 골패놀이를 하면 재미있나? 그림도 네 종류밖에 없고 영...”

 

비광은 에이스 카드 한 장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화투보다 넓고, 얇고, 하얀 배경에 무늬가 숫자에 맞게 박혀 있고... 흐음.

 

“...소매에 숨기기 좋겠구마.”

 

...네?

 

B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다.

 

“...비광...?”

 

그러자 비광은 그를 돌아보더니 화알-짝 웃어보인다.

 

“비광, 안돼요, 안 돼요.”

 

비광 전에 사기치다 걸려서 손목 잘릴 뻔 했다면서요, 저기 마인드랑 같은 능력 쓰는 사람 있단 말이예요.

 

이번에 걸리면 진짜 손목 잘릴지도 모른다.

 

게다가 저 사람들은 전쟁에서 나왔다고 하니 손목으로 안 끝날지도 모르고.

 

“아그야.”

 

비광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B에게 바싹 고개를 들이밀었다.

 

B는 가면 밑으로 보이는 목이 새빨개져선 몸을 뒤로 빼었고 비광은 거기 따라붙어 얼굴을 가까이 했고 B는 다시 뒤로 빼었고 비광은 또 가까이 붙었다.

 

이 이상한 술래잡기는 B의 등이 벽에 부딪히며 끝이 났고 비광은 벽에 등이 닿아 옴짝달싹 못하는 B의 양 옆에 팔을 대고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대었다.

 

“아그야, 게임이 뭐냐?”

 

“게임이요? 재밌는...거?”

 

“그랴, 재밌는 거. 내는 도박판에서 남을 속여가며 이기는거이 그리도 즐겁드라.”

 

“하지만... 하지만 비광...”

 

“아그야, 남자는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이 시키는대로 따를 때가 있다.”

 

비광은 멋들어지게 겉옷을 어깨에 걸치며 돌아섰고 B는 주르르 벽을 타고 미끄러지며 중얼거렸다.

 

“비광은 여자잖아요...”

 

 

 

 

 

 

동양인은 좌식! 이라는 릭은 따끈한 바닥에 돗자리를 깔아 자리를 만들었다.

 

비광은 양쪽으로 허리까지 갈라진 치마임에도 떡하니 양반다리로 앉았고 B는 ‘팬티 보여요!’라고 기겁하며 겉옷을 벗어 덮어주었다.

 

“이 오빠가 이렇게 얌전해 보여도 라스베이거스랑 메트로폴리스에서 큰 판 벌리던 사람이었는데, 이거이거 촌 아가씨 기 죽으면 어떡하오~?”

 

“아따, 걱정도 팔자랑께. 양화투라고 봐주기 없기여? 뭐혀, 후딱 패 돌려.”

 

공정함을 기해 자신이 패를 나눠주겠다며 마틴이 카드를 착착 섞었다.

 

차르르 차르르 카드 섞이는 것을 보며 한쪽 팔을 괴고 있던 비광이 씩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사내자식 손이 참 곱기도 곱구마잉~ 이따가 함 잡아봐도 될랑가?”

 

“물론이죠, 그러세요.”

 

그러자 과자를 집어 입에 넣던 릭이 B에게 웃어보였다.

 

“거기 예쁜이, 과자 좀 먹여 줄까?”

 

“아, 저... 저기... 괜찮아요.”

 

B는 귀 끝을 붉히며 무릎을 안고 비광의 옆에 쪼그려 앉았고 비광과 릭 사이에는 파지직 불꽃이 튀었다.

 

‘마틴 손을 잡아보겠다고?’

 

‘우리 B한테 작업이라도 거는 기가 뭐가?’

 

그리고 웃음을 참는 마틴이 카드를 돌렸다.

 

 

 

 

 

“나그네씨도 프리랜서예요?”

 

“초코파이 사줘.”

 

“허리춤의 검을 보니 역시 검을 다루시는 분인가봐요.”

 

“어이 없어.”

 

토마스는 뒤로 돌아보았다.

 

어이라는 저 커다란 부엉이는 사람마냥... 아니 사람보다 훌륭하게 피터와 놀아주고 있었다.

 

뭐든지 일단 시큰둥해하고 관심이 없던 피터도 이 커다란 부엉이와는 순식간에 친해져 왠지...

 

아 갑자기 피터와 보냈던 지난날이 눈 앞을 스쳐지나간다.

 

주마등은 아니겠지.

 

“간식 만들어 줄까요?”

 

“초코파이 줘.”

 

초콜릿이 들어간 파이?

 

토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재료가 충분히 있는지 모르겠네요, 해볼게요.”

 

“먹을거 줘.”

 

토마스는 피터와, 피터와 놀아주는 어이 쪽으로 손나팔을 만들었다.

 

“피터, 어이, 간식시간 할까?”

 

“할래.”

 

부엉!

 

날이 춥더라, 형이 따뜻한 우유랑 맛있는 거 만들어 줄 테니까 쉬었다가 놀...

 

토마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손으로 피터의 눈을 가렸고, 어이는 날개를 펼쳐 나그네의 눈을 가렸다.

 

“마에스트로! 마침 잘 왔소! 당장 저 여자 얼려버리시오!”

 

“나그네야 저놈아 저거저거 아주 몹쓸 놈이여!”

 

릭의 뒤에서 어깨를 잡고 말리는 마틴, 그리고 비광의 앞에서 막아서는 B.

 

아까까지 앉아서 ‘저 이거 좀 잘하거든요, 당신한테 이게 너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와 ‘괜찮아요, 잘 못하니까 열심히 할게요. 우리 얼른 시작해 볼까요?’라고 하던 사람들은(어디까지나 토마스 시점) 자리에서 일어나 멱살이라도 잡을 듯 씩씩거렸다.

 

“...피터는 저런거 보면 안돼, 가서 식탁에 앉을까?”

 

“알았어 형아.”

 

토마스는 재료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식탁 위에 선 어이는 마치 손가락인 마냥 큰 깃털 하나를 들고 말했다. 부엉부엉.

 

부엉, 부엉부엉부엉. 부엉.

 

“알았어 어이.”

 

나그네는 피터 옆에 얌전히 앉았다.

 

“거기 네 분도 이리 오세요, 차 끓여 드릴게요.”

 

배고프면 신경 날카로워지니까요.

 

그렇게 널찍한 테이블에 어른 다섯에 아이 하나, 부엉이까지 하나 앉았더니 꽉 찬다.

 

아무래도 이거 작은 오븐에 굽는 작은 파이는 못 만들겠는데.

 

손이 근질근질해진 토마스는 커다란 보울에 밀가루와 계란을 넣고는 커다란 프라이팬에 레코드판만한 팬케이크를 만들어냈다.

 

반질반질한 하얀 접시에 커다란 팬케이크를 층층이 쌓고 생크림과 여러 가지 시럽, 딸기를 맨 위에 하나씩 장식해 자리 앞에 하나씩 놓았다.

 

나그네가 포크를 들자 토마스는 나그네 앞에 머그컵을 탕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기다려. 요.”

 

묘한 박력이 있어 손을 대려던 비광도 릭도 포크로 향하던 손을 멈췄다.

 

토마스는 각자의 컵에 우유와 차를 따라주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컵에 따뜻한 우유와 각설탕 두 개를 떨어뜨려 찻숟가락으로 저었다.

 

“이제 먹어도 돼요.”

 

와구와구와구.

 

그리고 접시가 요란하게 비워지는 소리가 났다.

 

“벌써 다 먹었어요?”

 

“맛있어!”

 

“정말요?”

 

“아따, 저 아그가 이렇게까지 빨리 먹지는 않는디. 거 괜찮으면 하나만 더 만들어 줘, 응?”

 

“저한테 맡기세요!”

 

아니, 하나만 더 만들면 되는....이라고 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토마스는 아까보다 더 커다란 팬케이크를 구워내기 시작했다.

 

“...아따아... 그쪽 아가야들은 다 이렇다냐? 엄~청 나구만~”

 

“저희도...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톰슨씨! 가서 밀가루랑 우유랑 버터 좀 더 사다주세요!

 

다 먹은 그릇은 설거지통에! 물 붓는 거 잊지 말구요.

 

“저기... 토마스, 제가 설거지할게요.”

 

“고마워요!”

 

엄청 신나 보이네, 형.

 

피터는 부루퉁하게 양손으로 턱을 괴다가 이따끔씩 제 것을 얼만큼 떼어 옆의 어이에게 먹여주었다.

 

물론 딸기는 안 줘.

 

“피터, 형이 동물한테는 과자 주지 말라고 했지?”

 

“어이는 동물 아니야.”

 

“어이는 부엉이잖아.”

 

그러자 나그네가 식탁을 탁 쳤다.

 

“어이는 부엉이 아니야.”

 

 

 

 

 

 

토마스라 했던가? 아그야 니도 끼래이.

 

라는 말에 의해, 토마스도 그들 사이에 앉아 카드를 잡게 되었다.

 

“이거 그냥 게임만 할라니 맥아리가 빠져 못하겠구만.”

 

“그럼 역시 상품이 있어야하지 않겠소?”

 

“저기, 그거 사행성...”

 

“릭, 그걸 상품이라고 걸면 저 화낼거예요.”

 

그러자 릭은 잠시 주춤했으나 비광이 ‘사내자식이...’로 시작하는 도발을 듣자마자 자신이 생각하던 상품을 외쳤다.

 

“마틴이랑 B 사이에 앉아서 ‘양손의 꽃’ 하기!”

 

“좋다!”

 

“저도 상품이예요?!”

 

“릭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마틴은 바닥을 손바닥으로 탕탕 내려치더니 카드를 섞기 시작했다.

 

“승부는 삼세판.”

 

“이 오빠한테 영혼까지 털릴까봐 단판은 무섭소?”

 

“이 누나야가 타키온 아그 울까봐 해주는거 아니겠수~? 세 번이나 기회를 줬으니 응애응애 울지는 말더라구?”

 

마틴이 패를 섞어 돌렸다.

 

첫 번째는 릭의 승리, 두 번째는 비광의 승리.

 

그런데 세 번째가 토마스의 승리라 그들은 다시 한 판을 하기로 했다.

 

대망의 마지막 판의 첫 패를 오픈하려는데, 마틴이 릭을 쿡 찔렀다.

 

“아야야, 왜 그러오 블론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그러자 릭은 칫 하더니 슬그머니 뒤로 돌렸던 손을 앞으로 가져왔다.

 

B는 불안한 눈으로 보다가 비광을 툭툭 두드렸다.

 

“왜 그런다야?”

 

“...비광, 지면 안 돼요. 아무리 제가 악당이었다고 해도 팔려가기는 싫어요.”

 

“팔려간다고?”

 

“저 상품이잖아요.”

 

인신매매는 싫다, 고 했더니 비광이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비광?! 저 진짜 팔아버릴 거예요?!”

 

“자, 자 패 오픈한데이~”

 

“비과아앙!!!”

 

릭의 첫 카드는 하트 A, 그리고 두 번째도 하트, 세 번째도 하트, 네 번째, 다섯 번째도 하트였다.

 

“아쉽게도 플러쉬네.”

 

꽤나 좋은 카드라 자신만만한 릭 앞에 비광이 의기양양 카드를 뒤집었다.

 

“풀하우스여 아그야.”

 

5 세 장과 8 두 장의 카드가 뒤집혔고 비광은 제 오른편 자리를 탁 쳤다.

 

“거 마틴아 이리 좀 와 보아라.”

 

춘향이 수청 들라는 사또처럼 말하는데 토마스가 손짓했다.

 

“스트레이트 플러쉬예요.”

 

이게 바로 초심자의 행운인가봐요♡

 

 

 

 

 

그 후로 B는 끅끅거리면서 ‘안돼요 이러지마세요 저 비광이랑 있고 싶어요’를 울면서 말했고 정절을 위협받는 과부마냥 가슴 앞에서 손을 교차시켰다.

 

가면 밑으로 눈물이 뚝 뚝 떨어졌고 입으로는 ‘안돼요’를 연발하는 바람에 토마스는 ‘이것은 절대 인신매매가 아니며 자신은 B를 사고팔 생각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안심시켜야 했다.

 

마틴은 ‘그러게 제가 안된다고 했죠!’라고 릭에게 다그쳤고, 보란 듯이 토마스의 무릎에 앉다가 ‘무거워’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봐요.”

 

“그랴, 다음에 또 보장께.”

 

“다음에 또 봐요. 자, 피터도 인사.”

 

“...”

 

부엉!

 

피터는 토마스의 손을 꼭 잡고 연합으로 걸었다.

 

“그런데 형, 양손의 꽃이 뭐야?”

 

“음... 손에 손잡고 나란히 있는게 아닐까?”

 

“그럼 형아는 나랑 엘리랑 사이에 있으니까 매일 양손의 꽃이네.”

 

마틴은 재단 쪽으로 걷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릭에게 물었다.

 

“우리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그러게나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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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첫 실기 수업은 타라 조노비치 교수님의 마법 수업이었다.

 

길고도 지루하게 각종 잔소리(라고 받아들여진 설명과 이론)를 마친 다음에 아이들 앞에는 깃털 하나씩이 놓였다.

 

그러고보니 누가 옛날에 이 마법으로 트롤을 쓰러뜨렸다고 하긴 하던데.

 

요즘 세상에 트롤이 어딨어.

 

피터는 자신의 마법 지팡이를 들고 깃털을 겨냥해 공중으로 휙 들어올렸다.

 

자신의 첫 마법 발현이 폴터가이스트인 만큼 이런 것은 쉬웠으니까.

 

그렇게 래번클로에 5점을 받은 피터는 의기양양해졌다.

 

이글 홀든 그건 5학년인 지금까지 점수 깎아먹었다는 얘기밖에 못 들었지만 자신은 고작 첫날에 5점씩이나 받았다구!

 

이걸 토마스 형한테 얘기해주면 기뻐할테지, 빨리 얘기해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피터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몰래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형은 이 시간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은... 그러니까... 1층이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의 사무실은 3층인데 수업이 1층이라니, 진짜 귀찮게 한다.

 

수업도 3층이면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자신도 같은 층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텐데.

 

피터는 대리석 계단을 단숨에 내려갔다.

 

특별히 폭이 넓은 계단이거나 사라지는 계단 따위는 휙휙 뛰어넘으며 단숨에 1층으로 내려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의 문을 활짝 열었더니 수십개의 눈동자가 피터 쪽을 바라보았다.

 

방어술 수업을 맡은 카인 스타이거는 한쪽 손으로는 책을 받쳐 들고 다른 쪽 손으로 지팡이(켈피의 갈기, 마호가니)를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 동생 모나헌이다

 

쟤 걔지? ... 래번클로의...’

 

피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토마스를 찾아 그 쪽으로 갔다.

 

토마스 형, 이것 봐.”

 

피터는 토마스 앞으로 가더니 토마스의 깃펜을 놓고 지팡이(용의 심장, 호랑가시나무)를 휙 휘둘렀다.

 

깃펜은 가볍게 위로 떠올랐고, 피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글 쪽을 보았다가 토마스에게 가슴을 펴 보였다.

 

“5점 받았어.”

 

토마스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그저 피터를 내려다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피터...”

 

그 때, 아이들을 헤치고 스타이거 교수가 다가왔다.

 

교수는 피터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래번클로에 30점 감점.”

 

스타이거 교수는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허공에 있던 깃펜을 떨어뜨렸다.

 

“1학년이니 징계는 주지 않겠다, 피터 모나헌. 네 교실로 가라.”

 

대단하다- 스타이거 교수님 수업을 방해하고

 

이글 홀든에 피터 모나헌에... 래번클로 되게 웃긴다

 

스티븐슨 진짜 고생하겠다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토마스 스티븐슨, 일어서서 그 다음을 읽어라.”

 

.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볼드모트가 부리는 마법 군단에...”

 

피터는 떨어진 깃펜을 보았다.

 

그냥 형이 대단하네, 첫 수업인데 이만큼이나 하고!’라고 해 주었으면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비웃고 형은 이쪽을 돌아봐주지도 않는다.

 

토마스 형아.”

 

“...대한 방어책으로는 가장 믿을 사람을 골라 암호를 주고받는 것을 권고했고...”

 

토마스 형.”

 

“...기본적으로는 외형을 본떠 마법을 거는 것이니 암시를 걸거나...”

 

토마스!”

 

토마스의 읽기가 멈췄다.

 

피터.”

 

토마스가 돌아봐 주자 피터가 눈을 반짝였다.

 

, 어서 웃으면서 대단하다고 말해.

 

형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지만 토마스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여기는 형이 수업하는 곳이야. 어서 피터 교실로 가.”

 

피터는 잠시간 토마스를 올려다보다가, 몸을 돌려 교실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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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보물상자

2014. 11. 2. 20:35 | Posted by 호랑이!!!

피터는 서랍을 열었다.

 

서랍의 가장 아래쪽에는 노랗게 바랜 구두상자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으레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보물상자'에는 조개껍데기나 오랜 편지 따위가 자질구레하게 들어있기 마련이었으나 피터의 상자에는 낡은 옷 한벌 뿐이었다.

 

몸이 자라서 옷을 입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옷을 넣어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낡아 색이 조금 바래긴 했지만 솔기 하나 뜯어지지 않고 고이 모셔진 옷은 가슴팍의 검은 얼룩 외에는 아무 흠도 없었다.

 

검은 얼룩.

 

얼핏 잉크처럼 보이는 그것은 사실은 피로.

 

그 주인은... 이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생김새나 목소리도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지만 안겼을 때 포근했던 품이나 다정하던 말투, 자신을 끊임없이 보살펴주던...

 

파란 머리였다.

 

, 이건 확실해.

 

눈도 파란색... 이었나? 그랬겠지.

 

그리고 하얀색 넥워머...가 있었다.

 

얼음벽이 둘 사이에 서 있었고... 그 얼음벽 너머로 형이 있었고.

 

그리고 정말 투명하던 벽에 극장의 커튼이 막이 내리듯 피가 흘러내렸다.

 

피터는 옷을 집어들었다.

 

이제는 옷이 마치 인형의 옷처럼 작게 보였다.

 

옷에다 코를 묻고 한 번 숨을 들이쉰 뒤 다시 차곡차곡 개어 상자에 넣었다.

 

-보고싶다

 

“...그러니까, 이제 저한테도 평화로운 아침 시간을 달라구요!”

 

뭘 그 정도로 그래~ 오늘은 별일 없었잖아?”

 

-- 없었다구요? 우편물을 전부 다시 분리해서 하나하나 전교생에게 가져다 준 데다 부엉이들이 다친게 별일이 아니예요? 후플푸프 애들도 여럿 다쳤다구요!”

 

부엉이 발톱에 좀 긁힌 거 가지고 호들갑 떨긴.”

 

후플푸프 애들은 이제 래번클로의 이글 홀든하면 치를 떤다구요! 아무리 착한 애들이지만 이대로 가면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처럼 사이가 나빠질 것...

 

이글은 이어지는 잔소리에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는데 지나가던 루이스와 마주쳤다.

 

안녕, 오늘도 수고하네 반장.”

 

수고라뇨, 뭐 수고랄 것 까지는... 루이스 선배도 작년에 반장이셨잖아요.”

 

허어.

 

이글은 순식간에 변신해 수줍어하는 토마스를 보았다.

 

하기사, 이글은 알고 있었다.

 

작년에 루이스가 그리핀도르의 반장을 지낸 이후 토마스가 얼마나 반장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올해 은색의 P배지가 반장 임명장과 함께 도착하였을 때 얼마나 기뻐하였는지도.

 

그래도 이거 너무하네, 아까까지 자신한테 딱 붙어 잔소리를 퍼붓던 토마스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수줍어하는 새댁같은 녀석이 왔냐.

 

토마스, 얼굴 빨개졌다.”

 

, 아니, 이건... 그냥 더워서...”

 

이제 11월인데?”

 

손부채질을 하는 토마스를 삐딱하게 놀려대자 루이스는 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수고해, 토마스 반장. 이글 너도 토마스 그만 고생시키고.”

 

루이스가 떠나자 이글 홀든은 입술을 삐죽 거렸다.

 

수고해 토마스 반장~?”

 

이글은 멀어져가는 루이스 쪽으로 혀를 내밀었다.

 

들었죠? 저 좀 그만 고생시키라고 하잖아요.”

 

, 꼭 갓 결혼한 새신랑한테 하는 말 같네.”

 

전 이글 형 아니어도 할 일이 많다구요.”

 

토마스는 이글의 말을 못들은체 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토마스 형.”

 

그때 저쪽에서 걸어오는 1학년 꼬마가 보였다.

 

초록색 머리에 하얗게 타들어간 눈.

 

미쉘 모나헌의 동생으로 홀해 입학한 1학년생이었다.

 

반장에, 퀴디치 선수에, 보모라니 거 바쁘겠네.”

 

형이 사고만 안 치면 토마스 형 일도 반으로 줄어들 거야. 망나니 형.”

 

그러더니 토마스의 다리 뒤에 숨어서 보란 듯 토마스를 끌어안는다.

 

그건 네 얘기겠지, 하루종일 토마스한테 찰싹 붙어선.”

 

내가 그런다고 기숙사 점수가 깎이거나 징계를 받지는 않아. 오늘 소동으로는 몇 점 깎았어? 5? 10?”

 

20점이었다.

 

토마스는 그만 하라는 듯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 거기까지. 피터, 수업 들어갈 준비 다 했어?”

 

.”

 

교과서?”

 

넣었어.”

 

양피지 두루말이.”

 

있어.”

 

잉크병, 깃펜은?”

 

피터는 대답 대신 가방을 열어 보여주었다.

 

잘했어, 그럼 수업 잘 다녀와.”

 

, 형아도 잘 다녀와.”

 

얼씨구, 아주 훈훈하시다.

 

겉보기만으로는 우리 형제보다도 더 형제같으니 이게 바로 물이 피보다 진하다는 경우로구나.

 

이글은 피터와 눈이 마주치자 눈꺼풀을 까뒤집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피터한테 있는 힘껏 발을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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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늦은 시각, 학교에서 돌아온 피터는 방 안에 떡하니 자리잡은 허연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부르셨어요, 형?"

 

“저 털뭉치는 뭐야.”

 

“닭이예요.”

 

혹시 학교와 집만 다니느라 산 닭은 처음 보는 걸까?

 

토마스의 고개가 갸웃거리자 피터의 미간은 더더욱 구겨졌다.

 

“누가 몰라서 물어? 저게 왜 방 안에 들어와 있는데?”

 

“엘리엇이 아까 개랑 싸우다가 다쳤어요.”

 

“다친 닭 같은 건 잡아먹어 버리면 되잖아. 암탉도 아니고 수탉인데.”

 

저게 뭐라고 이름까지 붙여?

 

고분고분했던 여태까지의 토마스를 보아 ‘잡아 버리자’고 했더니 놀랍게도 거부한다.

 

“안돼요, 엘리엇은 특별한 닭이라구요!”

 

“닭 같은 게 뭐가 특별해.”

 

“엘리엇은 다른 닭보다 울음소리도 멋있고 힘도 세고 머리도 좋다구요. 게다가 처음에 이 마을에 와서 개한테 물릴 뻔 했을 때 엘리엇이 구해줬어요.”

 

완고한 모습에 피터는 다른 말을 하기로 했다.

 

“이름은 왜 하필 ‘엘리엇’인데?”

 

“멋있잖아요. 이름이.”

 

“...내 이름도 멋있어.”

 

그러나 영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라 어떻게 하면 멋있을 것 같냐고 은근하게 물었더니 주저주저하다 대답하는 것이 가관이다.

 

“피터우스 파니니 칭키스칸 3세 같은 거요.”

 

“무슨 근본없는 이름이야 그건. 애가 겉멋만 들어서.”

 

“...겉멋만 든 애라서 그래요.”

 

그러곤 칫! 고개를 돌린다.

 

삐진 것 같아 슬쩍 다가갔더니 모른 체한다.

 

“토마스.”

 

“...”

 

모른 체하고 닭의 상처 자리에 약만 바르기에 쓰윽 더 가까이 갔더니 모르는 척 하면서도 이쪽을 신경 쓰는 것이 너무 티가 나 웃음이 나올 정도다.

 

“...기다려 엘리엇, 모이랑 물 가져올게.”

 

피터가 바짝 붙는 것을 견디지 못한 토마스는 닭 모이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피터는 슬그머니 바닥에 끌릴 듯 긴 자락의 옷을 밟아버렸다.

 

콰당.

 

요란스레 넘어지는 소리가 나고 이렇게 세게 넘어질 줄 몰랐던 피터가 놀라 일으켜 보니 이마가 빨갛게 되어 있었다.

 

괜찮냐는 말도 못 하고 있으려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이쪽을 보다 팩 가버린다.

 

“...다 너 때문이잖아. 엘리엇인지 엘리인지 모를 닭 놈아.”

 

엄한 닭에게 화풀이 하고 있으려니 토마스가 들어온다.

 

“...야.”

 

“....”

 

“야, 토마스.”

 

“....”

 

“꼬마야.”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닭 앞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그릇에 모이와 물을 부어준다.

 

눈은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너 그러다 다리 저려.”

 

“....”

 

“삐졌냐?”

 

“아니예요!”

 

삐졌구만 뭘.

 

삐져서 입 딱 닫고 꽁하게 있다가 삐졌냐는 말에 아니라고 냉큼 부정하는 것이 제법 아이다웠다.

 

지금까지가 상냥하고 어른스러워 귀여웠다면 지금은 신선하게도 어려 보인다고 해야 할까.

 

“삐졌지?”

 

“아니예요.”

 

“삐졌네.”

 

“아니라구요.”

 

“삐졌구만.”

 

“아니라니까요!”

 

어쭈, 이제 소리도 질렀다.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여워 킥킥 웃던 피터는 토마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자 놀리던 것을 멈췄다.

 

토마스는 눈물을 흘리다 급기야 소리까지 내어 울더니, 딱 한 마디를 했다.

 

“형 미워요.”

 

둘 다 저녁이 되어 잠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피터의 돌아누운 등에 붙어 자곤 하던 토마스는 천을 감아 만든 엘리엇의 임시 둥지에 손을 올리고 잠들었다.

 

 

 

 

 

 

“토마스, 엘리엇은 어때?”

 

“아침에 물도 잘 마시고 모이도 잘 쪼았어요, 상처가 깊긴 하지만 곧 나을 것 같아요.”

 

재잘재잘 잘도 얘기하는 것을 보던 피터는 토마스가 평소와 달리 후다닥 일어나 닭을 보러 가는 것을 뚱하니 쳐다보았다가 옆으로 말을 걸었다.

 

“엘리엇?”

 

“그 왜, 토마스가 좋아하는 닭 있잖아.”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이름까지 붙여주더라고, 잡아먹으면 우는 건 아닐까 몰라.”

 

나 빼고는 다 알잖아.

 

피터는 남은 것을 입에 밀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 토마스가 울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수업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주의도 받고 하였지만 토마스가 울던 모습과, 재잘거리던 웃는 얼굴이 번갈아가며 보이는 것 같아 수업의 내용보다도 어떻게 하면 웃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것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수업을 마치고, 피터는 장터로 발을 옮겼다.

 

아이들은 과자를 좋아하니까.

 

이 먼 길을 걸어 시장까지 와 놓고는 다른 것은 보지 않고 튀김과자만 한 자루 사서 발길을 되돌렸다.

 

나귀를 탈 생각도 하지 않고 걸어갔다 왔더니 늦은 시각이라 이미 해는 졌고 별이 총총하게 떠 있었다.

 

집에 미리 연락을 해두어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을 찾느라 큰일이 날 뻔 했네.

 

한참이나 걸어 발은 물집이 잡히고 피곤했지만 이걸 받으면 다시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힘들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서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간단한 과일과 빵으로 요기한 뒤 제 방으로 가니 토마스는 이불 위에 이미 잠들어 있었다.

 

하기사 아직 한참 어린아이니, 잠이 많겠지.

 

머리맡의 닭 둥지에 팔을 얹은 건 싫었지만 다른 손에는 제 베개 귀퉁이가 잡혀 있어 자신을 기다렸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과자 자루를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과자가 든 자루를 머리 위쪽에 놔두고 자신도 이불 속에 들어갔다.

 

기대에 한참이나 뒤척거리다 간신히 잠들었건만.

 

다음날 일어났더니 자루는 찢어져 있었다.

 

애초에 질기지 않은 것이라 장닭인 엘리엇이 발톱으로 할퀴고 부리로 쪼니 헤쳐져서 과자가 반이나 아작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이... 멍청한 닭이...”

 

잡으려 했더니 다쳤다는 녀석이 퍼득퍼득 뛰고 소리를 지르고 도망을 다닌다.

 

그걸 잡는답시고 저도 방 안을 뛰어다녔더니 그 소란에 토마스가 놀라 일어났다.

 

아직 기뻐하는 얼굴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 닭이 자기 계획을 망쳐 버렸다.

 

저걸 꼭 잡아 국이라도 끓여 버리겠노라 생각하는데 토마스가 그 앞을 막았다.

 

“이 과자, 저 주려고 사 오신 거예요?”

 

속상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토마스는 부스러기를 치우고 성한 것들을 골라 빈 바구니에 옮겨 담고 양손으로 들어 제게 보인다.

 

“이것 봐요,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어요.”

 

이렇게 과자가 많은 건 처음 봐요, 정말 고마워요.

 

피터는 잠시 내려다보다 한숨을 쉬고 다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다음에 갈 때 하미과(멜론의 일종)를 사 올게.”

 

“정말요?”

 

“장식 구슬도 사 오고.”

 

참 착한 아이다.

 

이런 걸로도 기쁘다면야.

 

더 기쁘게 해주기 위해 피터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걸로 뭔가 만들어 줘, 항상 하고 다닐 테니까.”

 

그러고도 아직 부족한 듯하여, 뭔가 갖고 싶은 게 없냐고 물었다.

 

“가지고 싶은 건 없지만요 형.”

 

무거운지 토마스는 바구니를 옆으로 내려놓고 폭 안겼다.

 

“...밉다고 말해서 미안해요. 사실 형 하나도 안 미워요.”

 

아직 아기처럼 말랑거리는 몸에서 단 향내가 난다.

 

넘어질 때 부딪힌 이마는 괜찮으냐고 한참 늦은 걱정을 하면 토마스는 몸을 물렸다.

 

“아팠어요. 그러니까 호- 해줘요.”

 

후-

 

입김을 불어주면 그제야.

 

토마스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환한 웃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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