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가 사라졌다.
언제나 물건을 두는 자리에 두는 것 같은데도, 자질구레한 것들은 내 손에서 떠나 물건들만이 갈 수 있는 어딘가로 떠났다.
예를 들면 외국의 낡은 동전이라던가 반짝이는 색의 볼펜,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사라졌었고 오늘은 그게 책갈피다.
읽는 데 비해서는 넉넉하게 둔다고 생각하는데, 찾기 위해 책상 서랍을 열었더니 어디에도 없다.
오래 전 주고받은 편지가 몇 장 있고, 언젠가는 쓸지도 모르는 엽서가 있고, 버리지 못해 모아 둔 쓸모없는 것들까지 한 상자나 있는데도.
친구가 만들어준 것도 사라졌고, 우연히 발견한 네잎클로버를 말려 만든 책갈피도 사라졌고, 기념이라며 받은 번쩍거리는 금도금 책갈피도 없어졌지만 오직 찾는 것은 얇고 가는 코팅 종이 하나다.
정확히는 명함.
마틴은 자신의 능력이 물건한테도 통했으면 하고 잠시간 바랐다.
이리 오라고 부르면 촐랑촐랑 걸어오는 명함이라니 얼마나 편할까.
아니면 그 사람의 명함이니 순간이동이라도 하려나.
그것도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마틴은 최근에 읽었던 책을 펼쳤다.
두꺼운 것을 양손으로 들고 흔들지만 떨어지는 것은 없었고 이번에는 가지고 다닌 가방을 열었다.
가장 큰 곳에서 가장 작은 주머니까지 전부 뒤졌지만 나오지 않는다.
서류더미에서도.
공책에서도.
방, 복도, 거리, 어디도.
마틴은 단추에 매달아둔 회중시계를 꺼냈다.
오늘 약속이 있었...
아.
“...늦었네...”
열심히 달려갔더니 상대는 이미 테이블에 앉아 크리스털 안에서 흔들리는 촛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릭!”
“어서 오시오 챌피.”
왜 늦었냐고 묻는 말도 없이, 릭은 어딘가에서 가져온 브로슈어로 마틴에게 부채질을 해 준다.
차근차근 날라져오는 요리보다도 한 잔의 찬물이 반가워 단번에 마시자 잘 차려입은 웨이터가 다시 물을 따라주었다.
명함이 사라져 어딘가 찜찜한 마음으로 가자미나 닭이 있는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낸 후.
서로 저녁을 사겠다며 지갑을 찾는다.
마틴은 조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익숙한 감촉의 가죽 지갑을 꺼냈고, 지폐가 있는 곳으로 손가락을 넣었다가 돈이라기에는 이질적인 것을 만졌다.
“늦었소, 내가 먼저 계산을 해 버렸거든.”
벌려 보니 지폐 사이에 가장자리가 구겨진 명함이 한 장 들어 있다.
누구 것인지 글자를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어쩔 수 없네요, 커피 마시고 갈래요?”
도넛과 함께.
그렇게 덧붙이자 릭이 웃었다.
“커피 좋지.”
“그럼 커피를 끓여드릴 테니까 명함 하나만 주세요.”
“또?”
“또 잃어버린 것 같아요.”
가끔 보면 덤벙거린다니까.
마틴은 지갑을 닫았다.
“제가 얼마나 물건을 많이 잃어버리는지 안다면 놀랄 거예요.”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면 잃어버린다니까요.
“항상 가지고 다닐만한 걸 선물 해야겠는걸.”
사실은 지금도 하나 있지.
마틴이 돌아보자 릭은 무언가를 쥔 손을 뒤로 빼었다.
“...릭, 그게 뭔지 알아내고 싶으면 전 굉장히 쉽게 알아낼 수 있어요.”
“안돼, 비밀이야.”
“금방 줄 거잖아요? 그렇죠?”
“어떻게 할까....”
마틴은 괜히 말꼬리를 잡아 끄는 릭을 흘겨보았다.
거리를 걸으며 마틴은 이따끔 빼앗으려는 듯 손을 뻗었고 릭은 뺏기지 않으려는 듯 손을 위로 들거나 뒷걸음질을 쳤다.
땅거미가 내리는 거리에 하나 둘씩 불빛이 켜지고, 둘은 보지 않아도 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길을 따라간다.
명함도 손도 꼭 쥐고.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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