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빠져나갈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호자들에게는 다행히도, 침대에 누워나 볼까 했던 하랑은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저녁시간을 지나고 아침도 거르고 토스트와 주스를 가져다 준 마틴이 아침에 놓고 간 음식이 그대로인 것에 비명을 지를 때까지나 말이다.
다시 잠들려고 했던 하랑을 마틴이 깨워 앉히고 티엔은 주방을 빌려 죽을 끓였다.
입에 넣다가도 잠들어 버려 마틴이 능력을 이용해 깨워야만 했지만 결국 한 그릇을 비운 하랑은 식사하느라 잠이 깼다며 눈을 비볐다.
“네가 체력이 없으니까 그렇게 졸린 거다.”
마틴은 티엔의 옆구리를 콱 찔렀다.
잠이 조금 남아있던 눈꼬리는 홱 올라가고 하랑은 숟가락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뭐냐.”
“이 잔소리꾼.”
“입가에 흐른 죽이나 닦아라.”
마틴은 냅킨을 들어 하랑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정티엔 바보멍청이.”
“사부라고 불러야지.”
마틴은 투덜거리는 하랑을 내려다보았다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악 뭐야 형, 나 애 같다고 생각한 거지!”
“네. 가서 약 먹고 사탕 하나 먹고 양치질 하세요.”
“약 먹으면 졸립단 말야!”
“그럼 좀 자요. 재단에는 형이 말해둘게요.”
싫다고 칭얼거리는 하랑을 어르고 달래 마틴은 약과 물을 손에 쥐여주었다.
하랑은 약을 꿀꺽 삼키고 마틴이 가져다준 초콜릿을 하나 물고는 꿍얼거리면서 마틴의 가슴에 머리를 툭 기댔고 동시에 티엔의 눈썹 한 쪽이 불만스럽게 올라갔다.
“이하랑, 나랑 마틴은 먼저 재단으로 갈테니까 너는 몸을 좀 추스르고-”
“뭐어? 정티엔 지금 제정신입니까?”
“왜!? 왜!?”
“성인 알파가 둘이나 붙어 수발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나? 베타가 직원인 호텔에 와 있으니 여기 맡겨두고 우리는 돌아가야지.”
“당신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하랑의 보호자 아닙니까, 책임지고 괜찮아질 때까지 돌볼 의무가 있어요.”
티엔의 눈가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알파가 오메가에게 가까이 갔다가 한순간의 충동으로 어그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 있는 것 같나.”
하랑은 휙 티엔에게 시선을 옮겼다.
티엔은 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마틴을 보는 것도 아니고, 하랑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분노하고 있다.
“...우웩....”
“정티엔 냄새나요.”
마틴은 입을 뻐끔거려서 하랑에게는 들리지 않게 무어라고 말했고 티엔은 푹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하랑의 붉은 개가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고 환기가 되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티엔에게서 흘러나온 페로몬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하랑은 입에 문 초콜릿을 마저 씹어 삼켰다.
이전이라고 알파의 냄새를 안 맡아본 것은 아니었고, 재단 내에서도 알파 냄새 같은 건 벽에 배길 정도로 많이 나지만 티엔이 감정상의 실수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페로몬(이라고 부르는)을 내보낸 적이 없었기에 낯설다.
냄새 뿐만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하지만 저 티엔이 저런 반응이라.
“충동으로 뭘 어그러뜨리는데?”
티엔이 딱 잘라 말했다.
“넌 알 거 없다.”
참 다정하기도 하지.
하랑은 마틴을 돌아보았지만 마틴도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몰라요.”
“알았으면?”
“말했겠죠.”
티엔이 돌아보았지만 마틴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하랑이 무서워하잖아요. 뭐든 말했을 걸요.”
“...”
뭐 든, 하고 마틴이 입을 벙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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