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장 탄야는 처음부터 루드빅이 싫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프로일라인.”
루드빅이 자신의 손을 끌어 입술 앞으로 가져가려고 하자 탄야는 냉랭하게 내려다보며 손을 빼었다.
“저런 경박함이라니 어이없어서 눈물이 날 것 같군. 이런 연구실보다는 어디 무대 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탄야의 미간이 찌푸려지려는 찰나, 다른 연구원이 와서 그녀에게 파일을 내밀었다.
어디 유명한 대학 교수의 추천을 받았음, 성적 우수, 수재, 등등.
이 파일은 루드비히 와일드에 대해 추천받았을 때에도 읽었던 것이다.
글을 읽으며 수식어만 놓고 보았을 때, 탄야가 기대했던 것은 백의가 잘 어울리며 단정한 차림에 수수한 인상의 남자였다.
약간의 취향을 곁들이자면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준수한 용모... 정도.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어떤가?
겉에 걸친 저것은 아무리 봐도 가죽옷이다.
그나마도 맨가슴이 훤히 드러난.
단정? 가슴이 드러났다니까!
심지어 몸에 저게 뭐야, 문신? 목에는 초커?
아무리 그런 것을 요새 젊은 애들(루드비히가 자신보다 나이 많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유행이라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눈두덩에 저건 노란 섀도우다.
자신도 진한 화장에 노출이 있는 옷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까다롭게 굴고 싶지 않았지만...
탄야의 눈이 위에서 아래로 루드빅을 훑어보았다.
아래로... 아래로...
세상에, 지금 속옷도 안 입은 거야!?
“어떻습니까?”
“뭐가 어때.”
“안경을 써 봤거든요. 이런 것이 취향이라고 하길래.”
탄야는 루드빅이 검은색 반-무테 안경을 치켜올리자 지나가던 라이샌더를 끌어당겼다.
“이쪽이 내 취향이거든?”
“탄야 선생님?”
사랑스럽게 구불거리는 금발, 동글동글 귀여운 파란 눈, 그리고 그 위에 걸친 것은 빨간색 뿔테 안경.
말랑말랑한 볼을 주물거리는 탄야에게 그만해달라고 말하려던 라이샌더는 그 커다란 신입 연구원이 일부러 허리를 숙여 자기에게 눈높이를 맞추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흐으으응...”
턱을 잡고 이쪽, 저쪽, 머리를 숙이게 했다가 들게 했다가...
루드빅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놓았고 라이샌더는 탄야가 서류를 받아주자마자 인사도 없이 도망쳤다.
“같은 금발에, 눈 색이야 뭐 그렇다 치고... 다른 거라면 이것밖에 없군요.”
루드빅은 라이샌더가 쓰고 있던 빨간 뿔테안경을 들어올렸다.
“그건 또 언제 낚아챈거야?”
“아까?”
루드빅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 빨간 뿔테 안경을 코에 걸쳐 보았다.
“아까 그 애도 그렇게 시력이 나쁘지는 않군요.”
유리에 흐릿하게 비치는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루드빅은 어떠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탄야를 돌아보았다.
“어떻습니까. 역시 본판이 괜찮으니 뭘 써도 그럴싸...”
“당장 돌려줘.”
루드빅은 어깨를 으쓱했다.
탄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한테, 서류 주고. 가서, 안경 돌려주고.”
“네 네, 여기 실험 보고서입니다.”
탄야는 보고서를 받자마자 표지부터 넘겨 보았다.
일부러 까다로운 실험을 넘겨주었는데, 과연 수재라는 말만은 진짜인지 실험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쓰인 보고서가 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때, 합격점입니까?”
탄야가 흘긋 쳐다보자, 루드빅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보고서군.”
“그러면...”
루드빅은 탄야의 손을 잡았다.
손이 천천히 입가로 가다가 멈추었다.
“상은?”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댔다가는 해고당할 줄 알아.”
“꼭 돈일 필요는 없는데.”
루드빅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탄야는 손을 홱 비틀어 뺐다.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글빅터/마피아 같은걸 끼얹나] 호와 생일 축하해 (1) | 2016.09.13 |
---|---|
[이글+다이무스]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0) | 2016.08.25 |
[루드라이화클] 서커스의 숙소에서 2 (0) | 2016.07.26 |
[다이글] 살인하는 새 조롱하기 (0) | 2016.06.22 |
[다이글] 한 가지만 남긴다면 (1) | 2016.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