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뭐 해?”
“오빠한테 보내는 편지 쓰고 있어! 마침 잘 왔다, 나 제대로 썼는지 봐줄래?”
“나, 나도 철자법은 잘... 아, 데샹! 이것 좀 봐줄 수 있어?”
미쉘은 지나치려던 데샹의 가운을 잡았다.
“나 바빠.”
“잠깐이면 돼.”
까미유는 미쉘을 내려다보다가 미아가 쓰는 편지를 받아 철자를 고쳐 주었다.
“여기서 ai가 아니고 y, 여기도... 여기는...”
그 때 문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바빠, 너 바빠, 서로 바쁜 사람인데 불러놓고 한가하게 굴기는.”
“잠깐이면 돼.”
“내가 너한테 내줄 수 있는 시간은 30분까지야.”
문가 그늘에 몸을 숨긴 채 탄야는 마치 유치원 선생님 같다고 킥킥 웃었다.
낮고 신경질적인 웃음소리가 분명 기분이 좋아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까미유는 마저 여기, 여기라고 급하게 짚어준 뒤 저만치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웃기지, 그 애는 더 이상 편지를 받아 볼 상태가 아닌데 여동생이 열심히 편지를 쓰고 있다니까.”
까미유는 책상 너머에서 서랍을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일 얘기나 할까?”
“만인의 자상한 의사 선생님, 까미유 데샹이 감동받아 손수 편지를 봐줄 만큼.”
“네가 의뢰한 건 이미 했어. 그 애 오빠를 죽지 못하게, 그러나 살지도 않게. 그러니까 네가 맡은 일을 할 차례잖아?”
까미유가 아무렇지 않게 평소의 매끄러운 목소리로 점잔을 빼며 탄야 앞으로 종이를 내밀자 탄야는 후후 웃더니 갑자기 힘을 주어 책상을 쾅 내리쳤다.
책상이 덜컹였고 탄야의 주위에서는 눈에 보일 정도의 어두운 보라색 독기가 물결을 이루어 위협적으로 물씬 피어올랐다가 스르르 가라앉았다.
“까불지 마, 긴 경고는 필요없겠지.”
“흐름을 바꿀 힘을 찾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비용에 대비해서 결과 산출이 나쁠까봐 쓰지 않는 방법일 뿐이지.”
“그래, 네가 너의 그 작은 친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까미유의 입매가 불쾌하다는 듯 끝이 내려갔다.
“네 충직한 ‘그’ 친구가 날 찾아왔었지, 불과 며칠 전에 말이야.”
“그건 그냥 내 불량품 중 하나에 불과해.”
“나한테 딱 한 마디 하더군. ‘물러서’라고.”
“내 알 바 아냐.”
탄야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내가 기른 어둠의 능력자 군대를 써서 널 괴롭히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야.”
저 말은 협박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었다.
그것은 까미유의 눈에 꽤나 명백했다.
그리고 능력자들이 괴롭힐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탄야는 까미유가 내민 종이를 받아서는 부채라도 되는 것처럼 제 입가에 대고 웃었다.
“난 항상 그렇게 충직한 도베르만이 갖고 싶었어. 어린것들보다야 물들이는 것이 힘들겠지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느긋하게 한다면... 후후후.”
“...할 일부터 빨리 하는게 어떨까, 시뇨라?”
“그래, 이만 가볼게.”
탄야는 소리없이 문을 열고는 한 발을 밖으로 뺐다.
“내가 없는 동안, 그 애를 잘 보살펴 두라고. 이래봬도 꽤나 아끼고 있거든.”
흘끗, 시선이 밖에서 편지에 꽃이며 나비를 그려넣는 소녀에게 닿았다.
“그리고 네 강아지 말인데, 교육을 좀 시켜놓는게 쓰기 편할거야.”
“히카르도를 사용할 일은 없어.”
“어떨까.”
디딘 곳마다 검게 반짝이는 보라색 액체가 머물렀다가 이내 수증기로 변하여 사라졌다.
까미유는 눈가에 걸친 색유리 너머로 여유롭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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