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한가운데의 커다란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러다간 늦을 것 같은데.
빅터는 조금 더 바람을 재촉했다. 그렇다고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각까지 앞으로 3분.
얼마 안 있어 넓은 공터가 눈에 보였다.
공터에는 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빅터의 파란 점퍼를 보고 아래에서 손을 흔들었다.
“빅- 터-”
한 번 바람을 걷어차고 쾅, 내려가자 바로 앞에 헬레나가 서 있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웃음을 머금고.
“어휴, 이 말썽꾸러기. 그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엄마 놀라잖니.”
“나도 벌써... 아니, 저도, 벌써 열 넷이예요.”
다 컸다구요, 라면서 가슴을 내미는 빅터를 웃으면서 내려다보던 헬레나는 가볍게 그의 볼을 꼬집었다.
“그래, 벌써 열 넷이네.”
벌써 이만큼이나 컸어.
헬레나는 빅터의 머리를 넘겨주고는 이제 가자며 앞장서 걸었다.
향한 곳은 유원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터질 것 같은 분홍색, 레몬 같은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유원지 안에서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유쾌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오늘 말이야, 빅터랑 만날 거라고 했더니 그 검은 머리 아가씨가 티켓을 주더라. 좋은 친구를 사귀었나 보구나.”
빅터는 티켓을 흔들며 앞장서는 헬레나를 좇아 가볍게 발을 공중에 띄웠다.
티켓을 내고 들어가자 마스코트 인형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친구야! 사진 한 장 찍지 않을래?”
“나는 됐...”
“빅터, 여기, 찍자!”
헬레나가 눈을 반짝였다.
빅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마스코트와 헬레나 사이에 섰다.
“자아 찍습니다~”
직원이 장난감같이 생긴 카메라를 들고 요란스럽게 손가락을 폈다.
“하나~ 둘~”
빅터는 헬레나의 손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조금만 위로 손을 올리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쪽으로 손을 올렸다가.
“셋~”
내렸다.
헬레나는 그 자리에서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받고는 이리 오라며 빅터에게 손짓했다.
“이것 봐~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단다. 나중에 한 장 더 찍어 달라고 해서 한 장씩 나눠가지자.”
웃지도 않는 얼굴이 뭐가 좋다고.
빅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원지 지도를 들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도 먹고, 언제부터인가 빅터와 헬레나는 색색깔이 화려한 풍선을 들고 이상한 머리띠와 선글라스를 했다.
빅터가 이런 것은 낭비라고 말리려고 했지만 헬레나는 ‘그 까만 머리 친구’가 유원지 쿠폰을 주었다고 했다.
마를렌 그 녀석, 괜히 오지랖은.
마지막으로는 저 끝의 놀이기구로 날아가려고 했다가 안전요원에게 잡혀서 설교를 들어야 했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놀이기구가 여럿 있으니 날아다니다가 부딪히면 위험하다나.
그러고 다른 놀이기구로 도망쳤다가 타고 내려올 즈음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고 있었고 마지막이라며 관람차를 타러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돌아가느냐, 아니면 관람차를 타러 가느냐,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다가.
빅터는 입구 쪽을 가리켰다.
노을을 등지고 마스코트 인형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둘은 마스코트 옆에 나란히 섰다.
“자아 찍습니다~”
마스코트는 양 팔을 뻗어 포즈를 취했다.
“하나~”
빅터는 손을 올렸다.
아까처럼, 조금만 손을 올리면 잡을 수 있는 그 위치에 있는 헬레나의 손을...
“둘~”
조심스럽게, 빅터의 손이 헬레나의 손에 닿았다.
“셋!”
그리고 빼려는 찰나, 헬레나가 빅터를 와락 끌어안았다.
두 번째로 찍은 사진은 빅터가 놀라 움직인 바람에 완전히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두 번째 사진을 가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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