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더워!”
하랑은 머리에 쓴 모자를 벗어 얼굴에 대고 부쳤다.
“이하랑, 성질 부리지 마라.”
“어차피 조선어로 떠들었으니 알아들었을 사람도 없지 않아.”
버릇없이 굴지 말라며 티엔은 하랑의 손에서 모자를 빼앗아 머리에 씌워 주었다.
“티엔 정, 가서 방 확인이나 해요.”
“또 하랑을 오냐오냐 하는군, 챌피.”
“더운 건 사실이잖아요.”
조금만 참아요, 라고 하랑에게 귓속말을 하고 마틴은 티엔 쪽으로 갔다.
“그러니까 재단의 이름으로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만. 침실 두 개가 딸린 방을 말이다.”
“죄송하지만 이 서류로는 손님이 재단에서 온 것을 확인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적어도 재단에 전화를 해서 확인받지 않으면 저희로서는 방을 드릴 수가 없군요.”
“전화를 해라.”
“지금 시간에는 전화를 사용하기 곤란합니다. 전화선에 문제가 있어서 말이지요.”
아까부터 억지나 부리고.
티엔은 울컥 올라오려는 화를 애써 가라앉혔다.
“마틴 형, 무슨 일 있대?”
“제가 보기에는 실수로 방을 준비하지 못한 것 같네요.”
그런데 온 일행에 동양인이 둘이나 있으니까 재단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는 핑계로 돌려보내려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 뭐야, 짜증나!”
바깥에 보니까 바다 있던데 바다 가고 싶다.
어차피 지금 상황도 이 모양 이 꼴인데 잠깐 놀다 와도 괜찮지 않을까.
“수리하려면 좀 걸릴 겁니다. 내일 아침에야 사람이 올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다른 호텔에 객실을 잡으시거나 다른 방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바꾸시겠습니까?”
“마틴 형, 나 잠깐만 밖에 나갔다 와도 돼?”
“이제 곧 해결될지도 모르는데 잠시만 기다렸다가 방에 짐 내려놓고 가요.”
와중에 마틴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던 티엔은 그래도 마틴이 가까이 오자 옆으로 한 발짝 비켜주었다.
아까까지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젓던 사람은 마틴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몇 마디 건네자 금방 울상이 되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티엔은 무언가가 느껴지는지 한 발짝, 더욱 멀리 마틴에게서 떨어졌다.
이야기를 마친 마틴은 열쇠를 두 개 받아서 돌아왔다.
“우선 1인용 객실 하나랑 2인용 객실 하나를 받았어요. 침실 두 개가 딸린 커다란 객실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방이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몇 가지 서비스에 대한 쿠폰을 받았으니 편한 때 써 주세요.”
“내 것도 있어?”
“자요.”
마사지권, 룸서비스, 세탁, 구두닦이 등의 쿠폰을 받은 티엔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나 이제 바다로 가도 돼?”
“바다는 무슨!”
또 놀 생각 뿐이구나, 그렇게 해서 언제 강해지려고, 주위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고생하는데 혼자서 그렇게...
티엔이 딱딱거리자 하랑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틴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탔다.
“지금까지 계속 단어도 외웠고! 어차피 오늘 더 이상 할 것도 없는데 좀 놀면 어때서?”
“멀리 와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방종하다니. 게다가 지금부터 할 게 없기는 왜 없나, 내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미리 보고서를 읽어보고 해야 할 거 아닌가.”
“그건 내가 단어 외우는 동안 형이랑 사부가 했잖아. 내일 가는 동안 설명해줄 거 아냐?”
“그런 건 남의 손에 목숨을 맡기는 행위나 다름없다. 너도 어린 나이가 아니니 책임감을 갖고 행동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자꾸 안된다고만 하고! 게다가 재단의 임무를 맡을 정도라면 혼자 바다에 가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그런 건 할 일을 다 끝낸 다음에 해라.
보고서나 조사서를 읽는 건 몇 시간이면 되는 일인데 그것까지 다 하고 나면 밖은 완전히 깜깜해질 거라고, 그게 더 위험하잖아.
“할 걸 다 한 다음에 이야기하면 내가 같이 가겠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이 고집불통, 합리적이지도 못하고! 계속 안된다는 소리만 하고!”
맨날 공부도 운동도 너무 많이 시키고! 다른 사람하고 말하는 것도 맨날 끼어들고! 옷도 답답하게 입히고! 기차 안에서 바깥 구경도 못 하게 했지!
“매일 게으름피울 생각이나 하고,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데려왔더니 힘은 고사하고 여기저기 놀 생각만 하는데다-”
“데리고 왔다니, 끌고 온 거지! 애당초 그런 거래를-”
“그만!”
마틴은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양 쪽으로 밀쳤다.
“둘 다 지금 너무 흥분했어요.”
티엔 정은 그렇다 치고 하랑도,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화내지 않잖아요.
“지금 피곤해서 그런 걸 거예요. 오늘은 이만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볼까요?”
티엔이 길게 한숨을 쉰 다음 문을 열었고 마틴은 하랑을 억지로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렇게 된다고 해도 바다로 외출해도 좋다는 허락은 하지 않았다. 얌전히 방 안에 있어.”
“웃기지 마, 누가 허락 같은 거 필요하대? 정티엔 진짜 싫어! 멍청이야!”
“하랑, 좋은 밤 되세요!”
마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하랑은 방 안에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테라스는 바람이 불 때마다 얇은 커튼이 커다랗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고 나무로 만든 티테이블에는 하얀 테이블보가 덮여 있었다.
침대는 네 개의 기둥과 두꺼운 캐노피가 달렸는데 하랑은 가방을 테이블 옆에 던져놓고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한 사람용이라는 침대는 커다랗고 푹신푹신한데 베개도 몇 개나 있다.
베개를 안아 보자 푹신한데 딱 안기 좋은 크기다.
잔뜩 치솟았던 짜증도 조금은 가라앉아서 하랑은 방 안을 살펴본답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가 차가운 물통을 발견하고 한 모금 마셨다.
어쩐지 덥네.
하랑은 아무렇게나 침대에 거꾸로 엎드렸다.
발을 베개에 묻고 물통을 이마에 대자 차가운 물방울이 이마를 따라 흘러내렸다.
“더워...”
조금 뛴 것 치고는 지나치도록.
열이 난다.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6.5 (0) | 2018.07.18 |
---|---|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6 (0) | 2018.07.04 |
[루이벨져] 하얀 눈 (0) | 2018.06.27 |
[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4 (2) | 2018.01.29 |
[티엔하랑마틴?/알파오메가] Mine 3.5 (0) | 2018.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