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눈을 뜬 하랑은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갈히 씻고 머리를 땋아 댕기를 매었다.
시차 때문에 정신이 들지 않아 간신히 세수를 하고 옷장 앞에 서니 여러 옷들이 나왔다.
아버지가 색목인은 이런 옷을 입는다고 구해준 파란색 셔츠와 조끼와 벨트와 이러저러한 것들.
하랑은 우선 짧은 바지 같은 하얀 속옷을 들었다.
양인 속옷은 참 작기도 하지.
이런 손바닥만한거 하나만 입다니 말이야, 민망한 기분인걸.
속옷 위에 바지와 허리띠와 셔츠를 입고 위에 조끼를 입으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준 옷 중에서는 넥타이도 있었는데 목을 죄는 목줄을 장식이랍시고 하다니 정말 양인의 문화란 아직 배워야 할 것 투성이다.
목을 조이는 것이 불편하여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방을 나섰더니 문 앞에는 어제 보았던 마틴이라는 사람과 사부, 티엔이 있었다.
“어... 굿모닝?”
“옷이 칠칠찮다.”
“좋은 아침이예요 하랑. 사부라는 사람이 아침부터 살가운 말 한마디도 안 해주네요.”
마틴이 흥, 소리를 내자 티엔은 하랑을 끌어당겨 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어주고는 넥타이도 바짝 조여 매주었다.
“므, 뭐야! 애도 아니고! 어디에 손 넣는거야!”
“귓가에 대고 소리 지르지 마라.”
티엔은 보다 말끔해진 복장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결 낫군.”
“애당초 말이야, 티엔... 사부가 옷차림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해?”
하랑이 툴툴거리며 허리에 손을 얹었지만 티엔은 못 들은 척, 앞서 걸음을 옮겼다.
“식당은 이쪽이다.”
못 들은척 하기는.
삐죽 입술을 내밀며 넥타이의 매듭 안쪽에 손을 넣자 마틴은 작게 웃었다.
“답답하면 하지 말아요.”
“엉? 그치만, 이것도 의복의 하나 아냐?”
“여기에는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사람이 없을테니까요.”
손을 뻗어 마틴은 하랑의 넥타이를 당겨 풀어냈다.
그가 내미는 넥타이를 받아들며 정말 이래도 되는가 싶은 눈으로 올려다보는데 티엔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하랑, 안 오고 뭐하나?”
마틴은 괜찮다,며 배시시 웃음을 짓고는 손을 내 보라는 시늉을 하더니 하랑의 손바닥 위로 투명한 셀로판지에 싸인 둥그런 것을 여럿 떨어뜨렸다.
“오늘은 하랑이 처음으로 영국에서 아침을 맞는 날이니까 와 봤어요. 좋은 하루 보내요.”
“나 이거 알아, 사탕이지? 고마워 형씨!”
“별말씀을.”
마틴과 하랑 사이로 티엔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하랑, 빨리 오라고 했다.”
“아, 알았다고. 간다 가!”
티엔은 하랑이 마틴에게 손을 흔들고 헤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눈길이 풀어진 넥타이로 가더니 미간이 찌푸려졌다.
“넥타이는 그새 어쨌나.”
“마틴 형씨가 풀어도 괜찮다길래. 답답해서 풀었어.”
“그 차림에 넥타이를 빼다니.”
이야 이거 지금 화내는 건가?
정티엔이? 넥타이 매준 거 풀었다고?
하랑의 눈이 샐쭉 휘더니 툭 툭 가슴팍의 단추를 풀어내었다.
조끼에 매달린 단추도 아예 풀어버리고 티엔이 손수 집어넣어준 셔츠 자락도 빼내려 손을 내렸다.
“...빼낼 테냐?”
목소리가 낮아졌다.
혹시, 나름대로 신경써준 것을 내가 다 빼내니까 서운한 건가?
“아니, 그냥...”
왠지 자신이 망나니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가 괜스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
“빼냈다간.”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누가 보던 상관않고 손수 네 차림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쳐 주지. 손수 말이다.”
“아 알았다고!”
하랑은 소리를 빽 지르며 셔츠에서 손을 떼었다.
안 귀여워, 하나도 안 귀여워!
'사이퍼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벨루벨] 벨져 생일 축하해 (0) | 2016.01.12 |
---|---|
[제키벨져릭] 안타리우스 벨져/벨져 생일 축하해 (0) | 2016.01.12 |
[릭벨?] 조각글/이기적인 (0) | 2016.01.10 |
[다이글] 독 (2) | 2016.01.04 |
[불쌍빙/쓰다 만 거] (0) | 2015.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