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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그렁, 사슬이 흔들렸다.

 

잠에서 깨어난 이글은 제 손목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이 어떤 질 나쁜 장난인지 알아차리려는 듯 힘을 주어 당겨보았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이건 또 무슨 일 일까나?”

 

, 어제 일을 돌이켜 보자.

 

웬일로 벨져 형이 찾아와서, 휴가를 받았으니 형제끼리 꽃이나 보러 가자고 했지.

 

큰형이 감상에 젖은 모습을 보고 놀려나 줄까 싶어서 찬성했었고, 다이무스 형이 퇴근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납치하다시피 해서 한적한 곳으로 갔다.

 

처음에야 놀려줄 생각이었지만 이 감상적인 인간이 어릴적부터 한 번도 제가 원하는대로 고집 부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오늘의 야근도 그다지 본인이 원한 것은 아니리라 지레짐작하고 그만두기로 했었고.

 

한창 피었다가 지는 꽃을 보며 반은 강제적으로 형들이 제공한 고급 술을 부어라 마셔라 먹이고 또 먹고, 웬일로 싸움도 없고 서로 싫은 소리도 없이 실컷 즐겼는데... 역시 독한 술이었는지 잠이...

 

어째서 이상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지?

 

이글은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벨져 그 이기적인 인간이 큰형 위문이니 뭐니를 얘기할 때부터?

 

다이무스 그 고집불통이 빠져나가지 않고 납치되어 준 데부터?

 

우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은 작고,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난다.

 

방치된 지 몇 달은 되었을 것 같고... 나 때문에 급하게 치운 모양이네~?

 

작은 창문조차 없는데다 저 구석에 있는 문은 아마도 화장실이겠지.

 

방 안에는 이글이 누워있는 1인용 철제 침대와 침대 옆 협탁 외에는 가구조차 없었다.

 

철로 뼈대를 짠 위에 매트리스 한 장이라니, 튼튼함만 생각하느라 편안함은 생각하지 않았나 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지 협탁 위에는 등에 담긴 촛불이 하나 방을 밝히고.

 

몸을 살펴보면 술이 아니고 약이어서인지 속이 조금 울렁거렸으나 이 정도는 몇 분 있으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손에 채워진 수갑은 신체강화 능력자도 구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지만 사이의 사슬 길이는 짧지 않아서 일상생활이라면 할 수 있다.

 

심지어 짧은 도라면 어찌저찌 사용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발목에도 족갑이 채워져 있었는데 매달린 쇠사슬의 길이는 저만치에 보이는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2미터가 조금 넘었고 쇠로 만들어진 튼튼한 침대 다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침대 다리와 이걸 분리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침대 다리와 단단히 붙어 있고 침대 다리는 또 바닥에 고정되었다.

 

침대에 앉아 몸을 숙여 살펴보던 이글은 열쇠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다이무스 혀~~”

 

대상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이 무슨 중세시대야? 전기도 없고, 촛불이라니!”

 

깨어났군. 배가 고픈가? 아니면 목이 마른가?”

 

수갑 말인데~ 형한테 이런 취미가 있을 줄이야, 놀랐지 뭐야?”

 

다이무스는 문을 닫고 기대 섰다.

 

이렇게 묶어둘 거면 망사 스타킹에 빨간 힐이라도 신어 주라~”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군.”

 

할 거면 잘 조사했어야지, 이거 잘못 긁히면 상처가 난다고. 요즘에는 안에 천이나 털이 덧대인 것도 있구.”

 

조만간 오스트리아로 이송될 거다.”

 

일부러 서로 다른 소리만 하던 그 신경전은 다이무스의 승리였다.

 

“...형이 그걸 용납했다고?”

 

내가 잠시 눈감아 주었던 것은 네가 그 뒤로 이어지는 책임도 짊어지라는 의미였다. 이것은 네 방종에 따라온 책임 중 하나일 뿐이다.”

 

“‘-중 하나’? 그럼 다른 것은?”

 

네 목숨이다.”

 

다이무스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성큼성큼 이글 가까이로 걸어갔다.

 

언제까지 모르는 척 할 거냐. 매번 새로운 능력자들이 합류하는 이 국면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 보이지 않던가? 벨져의 기사단은 하나의 패고, 나는 오스트리아와 가문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 앉아 있지만 너는 지금의 방해물 자리에 앉아 있다.”

 

이글은 이를 사려물었다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에이 너무들 하시네~ 지금의 방해물은 언젠가의 패다, 그걸 고려하지 않을 리 없잖아? 강한 적은 강한 패가 된다, 그렇지?”

 

그러나 연합은 우리 쪽에 안겨주는 손실이 너무 크고, 너는 그 전력이 되는 사람이기에 가만 둘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우리’? 형의 그 우우리이가 누군데? 가문? 나라? 회사?”

 

기가 막히다는 듯 이글이 물었으나 다이무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둘 다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이글은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데?”

 

말해줄 수 없다.”

 

정말로?”

 

다이무스는 이글의 눈을 피했다.

 

그 순간, 이글은 덤벼들어 다이무스를 바닥에 찍어 눌렀다.

 

검과 육중한 몸뚱이가 바닥에 처박혀 울렸다.

 

이글은 그 위에 올라타 무릎으로 그의 팔을 누르고 양 손목에 감긴 사슬로 그의 목을 눌렀다.

 

열쇠 내놔.”

 

손목 사이의 사슬 길이를 더 짧게 해야겠군.”

 

목 대신 손목의 힘줄이 잘릴지도 모르는데 그 전에 쓸 수 있을 만큼 써야하지 않겠어?”

 

벨져가 오지 않는 것이 안타깝군, 너를 속인 것이 미안하다며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

 

이글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벨져 형도 한통속이었다 이거구만? 꼴에 양심이 있는 척이라니, 웃겨 죽을 것 같네.”

 

벨져도 나도 네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다.”

 

정말 그러면, 내가 협박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지금은 날 놔주지 않을래?”

 

이글이 한쪽 팔을 놓아주자 다이무스는 주머니의 열쇠를 꺼내는가 싶더니 이글의 얼굴을 잡고 몸을 뒤집었다.

 

재빨리 뒤로 뛰어 침대 너머로 넘어간 이글은 손목에 차고 다니는 머리끈을 꺼내 머리를 묶었다.

 

이 안에서 형이 칼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아?”

 

일반적인 검보다 몇 배는 길고 몇 배는 무거운 걸, 이 좁아터진 곳에서 휘둘렀다가는 짐밖에 되지 않는데!

 

묶였다지만 이쪽이 훨씬 유리해.

 

이글은 사슬 묶인 발을 휘둘렀다.

 

다이무스는 발을 피하고 이어 날아오는 사슬을 뒤로 물러서 피했다.

 

함께 공성에 참전한지도 꽤나 오래 되었고, 서로에 대해서라면 자신을 보듯이 샅샅이 알고 있다.

 

머리를 제대로 써서 덤빈다면 저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이글은 거의 쓰지 않는다.

 

이번에도 분명히...’

 

그 즈음, 이글은 침대 위를 뛰어넘어서 몸을 날렸다.

 

봐라, 일단 달려들고 보지.

 

다이무스는 허리춤의 검을 꺼내 제 앞에 꺼내들고 버티고 섰다.

 

이글은 칼등을 누르고 곡예라도 하듯이 짚었고 다이무스는 검에 힘을 주어 앞으로 밀어냈다.

 

내동댕이쳐진 이글은 뒤로 굴러 재빠르게 자세를 잡았다.

 

발에 묶어둔 사슬이 역시 너무 긴 건가.

 

다이무스는 혀를 차고는 사슬 아래에 발을 걸어 바닥에 힘주어 눌렀다.

 

이글은 사슬이 당겨지자 거기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날아와서는 다이무스를 다시 타고 눌렀다.

 

침대 옆이라 길이가 남는 사슬은 다이무스의 다리를 묶고 있었다.

 

“...하아, ... 두 번이나 나한테 위를 내줬네?”

 

즐거웠다며 이글은 다이무스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우선 제 발목을 죄는 것을 풀어놓고 손목의 수갑도 풀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능력자용 수갑이라 그런가 묵직하게 철그렁 소리가 났다.

 

, 이것 봐. 역시 상처가 났어.”

 

“...아직이다 이글.”

 

뭐어?”

 

정말 포기할 줄 모르네!

 

발목도 묶어 뒀고, 이제 유유히 탈출할 차례, 인데.

 

문이 벌컥 열렸다.

 

이글의 눈동자가 그 쪽으로 돌아갔다.

 

, 작은 형? 벨져?! 어떻게 여기...”

 

벨져는 예상했다는 듯 성큼성큼 들어왔다.

 

이글은 일어나려 했지만 다이무스의 손이 그의 다리를 잡고 있었다.

 

한번 더 의심했어야지.”

 

벨져는 주먹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