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이런 활동사진 같은 것이 아주 유행입니다! 한 번 보세요!”
...라며 집사가 건네준 것에는 손으로 쓴 듯한 라벨이 붙어 있었다.
“...활동사진이라.”
“요즘에는 그거, 영화라고 한다?”
지나가는 다른 집사가 말하는 것을 보니 이걸 활동사진이라고 부르는 건 이 집에서는 저 집사, 바리톤밖에 없나보다.
퀸타페드는 ‘더치스’라고 쓰여진 것을 내려다보다가 어쨌든 재생을 해 보았다.
벽 한 면에 가득 차는 영상은 귀족의 로맨스 영화인 것 같았다.
주인공인 듯 한 귀족 아가씨는 삼십분 동안 어떤 못된 망나니에게 빠져서 사랑도 맹세하고 결혼도 맹세하고 귀한 보석도 주어버리는 일을 하고 마침내는 결혼도 하기 전인데 침대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에 빨간색 표시가 있었던 것 같기도.
재료가 남았다며 대량으로 만든 마도사 모양 쿠키에서 모자만 떼어 먹던 라는 얌전히 있던 꼬리를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흔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아무리 전체이용가래도! 저렇게 대충 하다니,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페드는 화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끓여놓은 향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매일 애정을 담뿍 담은 일들을 하다보니 저 정도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어쨌거나, 나중에 다 보면 테이프에 달려있던 빨간 스티커는 떼 둬야지.
이 집에서는 라가 생각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드디어 말!"
"축하합니다."
잘했으니까 오늘 저녁에 칵테일을 살짝 얼려 드리지요.
안주는 미코테식 고기산적이랑 버섯산적이랑... 단 것으로는 무화과 바바루아를...
재료목록을 생각하느라고 입으로 중얼중얼 말하고 있는데 손이 꼬옥 잡혔다.
페드의 손이 아니고 라의 손이.
마치 자기 손이 잡힌 것마냥 펄쩍 뛰고 페드는 라의 손을 불타는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라의 손을 잡은 것은 림사 로민사의 작은 꼬마아이.
어디서 구르다가 왔는지 바짓단에는 풀물이 들어 있고 넘어져 구른 상처 따위가 있고 손바닥에는 꽃이 있다.
꽃.
하얀색, 급하게 왔는지 꽃잎이 몇 장 떨어져 있고 손에 너무 꽉 쥐였던 탓에 줄기가 곧 구부러질 것 같은, 꽃.
꼬마는 그 꽃을 내밀고 있었다.
"라!...씨!"
"..."
이 꼬마는 뭘 하려고 하는 걸까.
내려다보는 눈빛이 흉흉해지는데도 꼬마는 여전히 라만 쳐다보고 있다.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예쁘고, 천사같아! 요! 결혼! 해주세요!"
뭐라고.
노려보는 눈빛이 더 살벌해지더니, 페드는 어디론가 성큼성큼 가서 꽃다발 커다란 것을 가지고 왔다.
똑같은 하얀 꽃이지만 훨씬 송이도 크고, 급하게 다듬어온 가지를 직접 짠 베로 한 바퀴 묶은 것을.
"그거, 숨은 자원 아닌가요?"
"나는 전부, 다 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얼핏 점잔 빼는 듯한 목소리로 꽃을 내밀자 라는 꼬마 앞에 허리를 숙였다.
"나는 이미 저 사람이랑 살고 있거든, 그러니까 결혼은 할 수 없어."
페드는 그것 보라는 듯한 표정을 아이 쪽으로 한껏 지었다가 라 쪽으로 돌아서며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지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라의 꼬리는 기분좋게 살랑였다.
"기분 좋아 보이네요."
"역시 나는 예쁘고 섹시해"
그런 말이라면 이미 하루에 다섯 번씩 해주고 있는데.
역시 좀 더 자주 해야겠지.
'그리고 역시'
페드는 마악 아파트 문을 열려고 하는 라 쪽으로 허리를 숙여서 안아들었다.
"새벽 쪽으로 말 해두십시오. 내일부터 당분간은 또 못 나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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