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턱에 작은 절이 있었다.
겨울이면 산과 바위가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이면 대숲이 바람을 식혀주는 절.
문간의 붉은 칠은 바람과 흙에 벗겨지고 나무로 만든 마루는 많았던 방문객이 밟아 반들반들해진 곳.
안개가 자욱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느 날의 아침에 그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아이 울음소리였다.
처음에는 마당 쓸던 어린 스님 하나가, 그 다음에는 부엌에서 일하던 스님 하나가, 그 다음, 그 다음에는 다른 스님까지 우르르 문간으로 왔다.
마당에 있는 것은 예닐곱살 된 것 같은 어린아이 하나.
손에 든 것은 편지 한 통과 나무를 깎아 만든 팔찌 하나다.
무엇을 묻더라도 아이는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사람들은 아이 손에 들린 서신을 펼쳤다.
흥분한 듯 괴로운 듯 써갈긴 그 글씨는 읽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읽고 짜맞추어 내용을 알아냈다.
그 안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 아이는 마물의 아이로 태어난 지 고작 몇 달 만에 이만큼이나 자랐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없는 아이이니 부디 마음대로 처분해 주십시오.
먼 이국, 밀라비는 누이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고 있었다.
「…부탁이야 밀라, 그 사람에게는 아무런 설명을 못 했어. 그 아이를 찾아서 자립할 때까지 보호해줘. 오십년만이라도 좋아, 아니면 삼십년. 십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사랑하는 누나가」
편지는 급하게 쓴 것인지 마구 휘갈겨져 있었고 주소도 간신히 알아볼 정도였다.
상대가 인간인 것은 둘째 치고 외국인과 결혼까지 하겠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못하고 어린 핏덩이를 남겨둬? 그걸 또 저한테 맡아달라고?
하여간 이 누나는 예전하고 달라진 게 없다.
경계심이 없어 아무한테나 가는 것도 그렇고, 대책 없이 인간하고 사랑에 빠졌나 싶더니, 겁조차 많아서 정체도 밝히지 못하고, 꼼꼼하지도 못해서 아무데나 흔적을 남겨버리고, 그렇게 헌터한테 잡히고, 결혼한 그 인간놈을 물어 변환시키던가, 도망을 했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거진 삼십년만에 한 편지가 겨우 이거야?”
헌터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더라면.
일이 너무 늦기 전에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딱 한 줄만 전했어도.
한 마디만 전보로 보냈어도.
그러기만 했다면.
밀라비는 커다란 가방을 꺼냈다.
누나가 전해준 주소는 비행기를 타고도 또 버스를 타고 차를 타고 걸어서 한참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밀라비가 아이를 찾아냈을 때, 아이는 이미 성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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