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호랑이!!!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차 비엘/판타지] 반짝이는 사람 4화

2017. 6. 23. 23:06 | Posted by 호랑이!!!

 

하늘도 땅도 기숙사에 돌아오는 학생들로 빼곡했다. 날개 없는 학생들은 걸어서 짐을 옮겼고 날개가 있는 학생들은 날아서 옮겼으며 어떤 학생들은 날개가 있음에도 날개 없는 친구와 함께 가기 위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는 유밀(세인트 외의 수인을 총칭)이 둘.

 

이봐요 왕자님, 알고 계시죠?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어제 학생이 보여주셨던 태도는 부적절했다는 거! 들어가자마자 그럴싸한 변명이라도 하면서 사과하지 않으면 자칫 교한테 불만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일 거라구요? 아니면 영 교수님한테나.”

 

나도 알고 있다!”

 

녹스는 소리를 질렀다가 아차하며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페드는 후욱 부풀었던 깃털을 부풀 때만큼이나 빠르게 가라앉혔다.

 

“...소리 질러서 미안합니다, 조교님.”

 

알면 됐어요, 녹스 학생.”

 

페드는 시무룩하게 꼬리를 늘어뜨린 녹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분의 차는 꽤나 있지만, 어쨌든 돌봐주어야 하는 후배 중 하나니까.

 

갑자기 배가 아팠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주전자를 불에 올려두고 나왔다던가...”

 

둘은 나란히 날개를 펼쳤다. 학교 안에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날개를 맡기고 몇 번 날갯짓하면 몇 층 위에 있는 베란다에 발이 닿는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밟은 탓에 둥글고 반질반질해진 대리석을 넘어서 계단을 총총 올라가다보니 어쩐지 발걸음이 급해졌다. 어제 그 일은 역시 넥투르 인이 짜증나서 그랬다. 그 약냄새 날 것 같은 새파란 머리며,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그 기분 나쁜 말투라던가... 교수님한테 꼭 사과하고, 수업 준비를 도와 드리겠다고 말해야지. 페드를 뒤에 남겨두고 녹스가 뛰었다.

 

계단이 앞으로 여덟 칸.

 

앞으로 여섯 칸.

 

다섯, , .

 

마지막 세 칸은 날개를 퍼득여 단번에 올라가고.

 

녹스는 문을 열었다.

 

교수님! 어제는 제가 배를 주전자에...!”

 

녹스는 말을 멈추었다. 뒤에서 페드가 건물 안에서 날개를 펴는 건 교칙 위반이예요!’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페드가 간신히 계단 위로 뛰어올라오자 보인 것은, 낯익은 녹색이 있었다.

 

어서 와아, 페드~”

 

교 네가 왜 여기 있어?”

 

어째서긴~”

 

페드는 문을 잡고 있는 녹스의 팔을 들어 치웠다.

 

어제 저 왕자님이 가고~ 너도 연구자료 본다고 가고~ 교수님이 할 일이 많으시다고 하시길래 말이야아~”

 

도와드리겠다고 했지 뭐어! 라면서 방긋 웃는다.

 

오 저런.

 

페드는 옆을 힐끗 보았다. 녹스는 놀랄 만큼이나 새하얗게 굳은 얼굴로 간신히 동공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을 따라가 보았더니 영 교수와 교의 손에 들린 서류를 오가고 있었다.

 

교수님.”

 

?”

 

가여운 왕자님을 나라도 도와야지 어쩌겠어. 저 교 놈은 자기가 알아서 잘 살아남을 놈이니까 내버려두고. 아니 애초에 교 저 놈은 왜 온 거야? 이런 일 절대 안 하는 놈인데. , 성적이 위태하기라도 한가?

 

녹스 학생도 도와드린대요.”

 

, 그래요? 그러면 고맙긴-”

 

야호!

 

죽어있던 녹스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페드의 귀도 쫑긋하게 섰다.

 

“-한데-”

 

더더욱 녹스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어라라, 어딘가 불안해서 페드의 귀가 더더욱 뾰족하게 일어섰다.

 

“-지금 교 학생이 너무 잘 도와주고 있어서-”

 

교수님!”

 

페드가 녹스를 떠밀었다. 녹스는 균형을 잃을 뻔 해서 날개를 퍼덕였다. 가까스로 날개를 접고 서자 페드가 방긋 웃었다.

 

일손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거야 그렇지만요.”

 

저 갑자기 고대 석판 해석이 갑자기! 잘 되어서요, 저 대신 여기 왕자님이 도와주신대요! 갑자기 바빠진 저 대신!”

 

그 갑자기는 대체 왜 세 번이나 튀어나오는 걸까. 영 교수는 날개까지 부풀리는 페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과 별개로 실내에서 날개를 폈다는 이유로 벌점은 주었지만.

 

 

 

 

 

 

 

그런 나날 속에 첫 수업이 다가왔다. 여러 곳에서 온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하기 몇 분 전에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교실에 미리 와 앉아있다가 교실의 문이 열리자 일제히 시선을 그 쪽으로 돌렸다. 먼저 들어온 것은 영 교수였는데 영 교수는 나름대로 좋은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입고 들어왔으나 유감스럽게도 유행이 3년쯤 전에 지난 옷이었다. 학생들은 천을 달아 늘어뜨린 모자를 쓴 영 교수를 보고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뒤로 자료와 책을 한아름 안고 들어오는 페드를 보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드는 왜 신입생들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펴다보다가 신입생들이 허리를 숙이려고 하자 그제야 알았다는 듯 평소보다 힘차게 인사했다.

 

영 필로이픈 교수님! 여기! 책 가져왔습니다!”

 

교수라는 단어 때문인지 여기저기에서 웅성임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페드와 영 교수가 미덥지 못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숙이고 앉았다. 페드는 깃털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휘둘러 영 교수의 책상에 약차를 내려놓으며 흘긋 시선을 돌렸다. 영 교수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줄마다 앉은 학생의 수를 헤아려 인쇄물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병이랑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차라리 웅성이는 학생들의 태도 평가에 낙제점이라도 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까만 날개, , 까만 머리. 녹스 왕자님인가.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네 말은 틀렸다! 하이어스에서는 노예제가 폐지된 지 벌써 30년은 되었어!”

 

그렇지, 이어진 전쟁과 업무의 전문화로 인해 법적으로 폐지되었지. 잘 기억하고 있군요... 라고, 영 교수는 때에 맞지 않는 감탄을 했다가 이어 보이는 모습에 경악해야 했다.

 

영 교수에 대해 노예 운운하던 학생을 붙들은 녹스 라이비는 작은 단검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찌르는 건가, 증거를 어떻게 인멸해야 하는지, 로 페드가 고민하는데 그 단검은 (페드, 혹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학생의 가슴이 아니라 녹스의 머리로 향했고, 윤기나고 아름답던 머리카락은 한순간에 헝클어진 실더미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영 교수의 모자를 두고 그랬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웅성임과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선두에 선 것은 페드의 외침이었다.

 

이 망할 왕자 새끼야!”

 

'오리지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차 비엘/판타지] 반짝이는 사람 5화  (0) 2017.08.21
알지 못하는 것  (0) 2017.06.24
이거  (0) 2017.06.21
[1차 비엘/판타지] 반짝이는 사람 3화  (0) 2017.06.06
용사랑 연금술사가 나오는 이야기  (0) 2017.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