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나트는 새하얀 카운터 앞에 섰다.
"자 그럼 오늘의 요리를 시작해 볼까!"
"..."
블랑쉐는 연갈색 튼튼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앞치마가 어색한지 연신 끈을 잡아 당기고 아랫자락을 매만졌다.
"누드 에이프런이 좋았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귀엽긴.
크나트는 손을 펴서 블랑쉐의 엉덩이를 팡 치고는 커다란 식칼을 들었다.
"칼 들고 있다고 해서 제가 복수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안 해."
크나트는 허허 웃으면서 블랑쉐의 쪽으로 채소를 밀어주었다.
"그것 좀 깍둑썰기 해줘."
"그게 뭔데요?"
깍둑썰기 몰라? 이렇게, 이렇게.
...라면서 당근 하나를 깍둑깍둑 썰어버린 크나트를 보다 블랑쉐는 다시 크나트에게 감자를 내밀었다.
"제 것도 부탁합니다."
"아니지, 아니야."
뭘 기대하는 겁니까? 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표정에서부터 알 것 같다.
"...그럼 계속해볼까? 나는 야채를 썰 테니까 블랑 달링은 계란을 깨서 그릇에다 풀어줄래?"
"몇 개나요?"
"세 개. 아니, 네 개."
뒤에서 들리는 달그락 소리를 들으며 크나트는 마저 야채를 썰었다.
예쁘고 고르게 썰린 것들을 한쪽에다 밀어놓고 돌아보자 블랑쉐는 잠깐만 기다리십시오!를 외친다.
잠깐이고 뭐고 무슨 일이냐고 봤더니 그 앞에 놓인 그릇이 네 개.
그리고 각기 들어있는 삶은 달걀들.
"그걸 깼어?"
"달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 간식인데.
크나트는 여기저기가 움푹 패이거나 손톱자국이 남았거나 계란 껍데기가 아직 묻어있는 계란을 보다가 냉장고에서 다른 계란을 꺼내왔다.
"날계란을 까줘."
삶은 달걀이라니 예상 외다.
심지어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눈치야.
블랑쉐가 깐 달걀을 물에 씻어서 한입에 넣고 블랑쉐의 입에도 하나 물려주자 계속 물고 있었는지 몇 초 안 있어서 툭 하고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더불어.
와장창
쨍그랑
철벅
뒤를 돌아보니 예상대로의 광경이 펼쳐져 있다.
"뭘 봅니까."
"...내가 치울게. 가만 둬."
"청소기랑 걸레 어딨습니까."
"아니 저기."
"손으로 치워야 하나..."
"내가 치울게. 치운다니까? 치우게 해주십시오."
결국 블랑쉐는 식탁을 닦고 숟가락과 포크를 놓는 일을 했다.
그동안 크나트는 커다란 접시에 야채와 쌀을 볶아 동그랗게 얹고 계란을 부쳐 얹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은 소스를 식혔다가 짤주머니에 부어 내밀자 블랑쉐는 흘리지 않게 조심조심 들어올렸다.
"초콜릿 정도는 만들어 봤지? 여기 끝을 잘라서 이렇게- 글을 쓰는 거야."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림그리기 정도는 할 수 있지.
블랑쉐는 하트 모양을 몇 개나 그린 크나트의 접시를 보다가 짤주머니의 끝을 덜걱 잘라서 슥슥 그림을 그렸다.
멋지게 하트 모양과 이름을 쓴 블랑쉐는 뿌듯하게 짤주머니를 내려놓았고 크나트는 박수를 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잘 했으니 상을 줘야지요."
"방금 머리 쓰다듬어 줬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걸 상이라고 하는 겁니까."
크나트는 한 번 웃고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가슴 만질래?"
"누드 에이프런 차림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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