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숲속. 한 줄기 달빛이 눈에 반사된 것만이 유일한 빛인 어두운 오두막.
방 안에는 비쩍 마른 아이들이 서로에게 기대 있었다.
갓 온 아이 주변에는 더 많이.
아이들의 체온은 낮아서 서로 기대 있어도 서늘한 살갗만이 느껴질 뿐 온기라고는 한줌도 더 생기지 않았지만 더 움직일 힘도 없다는 듯 아이들은 미동도 없었다.
갓 온 아이는 마침내 눈을 떴다.
바닥이며 아이들에게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 보이는 알록달록한 옷이 휘감겼고 그 사이에서 유독 거칠어 보이는 천이 벽까지 이어졌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 같은 장난감이며 갖기 어려워 보이는 인형까지도 방에는 가득했고 심지어는 책까지.
도서관이라는 곳에 가 본적은 없지만 이 곳도 그 곳 못지않게 책이 많아 보였다.
아이라면 천국이 분명할 텐데.
갓 온 아이, 윰보는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독한 냄새와 힘없이 벽에 기대앉거나 바닥에 누워있는 깡마른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잘 사는 집은 아니었기에 윰보 자신도 통통하다던가,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은 없었지만 여기 있는 아이들과 비교하자면 혈색이 좋고 건강한 편이다.
윰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른 나뭇가지 같은 팔이 후두둑 떨어졌다.
힘없는 눈동자 몇 개가 등에 달라붙는다.
윰보는 책을 보기도 했고 인형 더미를 뒤지기도 했다.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외국에서 만들어진 인형.
위로 형제만 여럿이나 있어서 손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 나무칼이나 구부러진 숟가락 따위로 만든 장난감 총, 지저분한 목마 정도였기에 이런 부드러운 소재의 인형은 만져보기도 처음이다.
건넛집 아이가 인형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인형은 플라스틱에 천 조각을 걸쳐놓은 것이 다였는데.
그 아이도 이런 인형을 보지는 못했겠지.
윰보가 곰인형을 꼭 끌어안자 방 안의 아이들은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자 건너편으로 하얗게 쌓인 눈이 보였다.
더러운 창문은 닫힌 채 몇 년이나 열리지 않은 것 같았지만 몇 번 힘을 주자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혔다.
윰보는 돌아섰다.
아까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는 아이들이 서로의 팔다리를 얽으며 사라져 있었다.
“여기는 어디야?”
윰보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박이면서 천천히 촛점을 맞추었고 윰보는 재촉하듯이 다시 물었다.
“여기는 도서관이야?”
“캠프 같은 곳이야?”
“유치원이라는 곳이야?”
“여기는 학교야?”
“병원이야?”
그 아이는 물론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밀랍인형처럼 하얗게 굳어서 어울리지 않는 색색깔 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만지지도 못한 채 앉아있는 아이들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공포가 저 아래에서 고개를 들었다.
방이 조용할수록, 윰보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엄마는, 아빠는? 오빠들은? 혹시 여기 왔어? 본 적 있어? 아빠는 항상 노란색 앞치마를 매고 있고, 엄마는 하얀색 모자를 쓰고 있는데 항상...”
뭐라고 말 좀 해봐.
누가 말 좀 해봐.
그 때, 윰보의 앞에 있는 아이가 입을 달싹였다.
드디어 말을 하려는 거지.
그 앞에 붙어 앉았지만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입을 달싹이고 있을 뿐.
말소리는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쉬잇.”
“너는 말할 수 있어?”
“우리는 다 말할 수 있어.”
아주 작은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윰보가 그 소리를 따라 갔더니 헝클어진 머리에 파란 리본을 맨 아이가 앉아있었다.
“우리는 그냥, 다 지쳤어. 힘이 없을 뿐이야.”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쟤는 왜 입만 열고 있는 거야?”
윰보는 그렇게 말하다가, 주위의 많은 아이들이 아까의 아이처럼 입을 달싹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는 거야.”
모르겠다.
눈물이 없는데 왜 저게 우는 걸까.
그러다 윰보는 자신의 발목에도 거친 천이 감겨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장난이라면 오빠들하고 많이 해 보았지.
잘 살펴서 약한 부분을 찾은 다음 있는 힘껏 문지르다보면 끊어진다.
아주 작지만 윰보는 갈라진 부분을 찾았고 뾰족한 나무인형에 열심히 문질러 끊었다.
그 때 처음 말 걸었던 아이가 색색거리는 소리를 냈다.
“쟤는 아파?”
“응, 아픈 애야.”
아프고 오래 있어서 죽는 거야.
죽는 거야?
윰보는 그 아이 곁으로 갔다.
자신 또래일 아이는 힘겹다는 듯 숨을 색색 내쉬고 있었다.
호기심 같은 아이다운 빛이 사라진 눈은 하얗게 바랜 것처럼 보였고 퍼석퍼석한 머리카락에, 제대로 먹지 못해 쭈글쭈글한 피부는 손만 대도 바스러질 것 같다.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책에서는, 혹은 아빠가 말하기로 죽음은 엄숙하고, 무겁고, 슬픈 것이라고 했는데.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윰보는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매일 저녁 아빠가 불러주는 부드럽고 나직한 자장가.
“바유...”
순식간에.
거의 즉각적으로.
윰보의 입에 손이 덮였다.
몇 개인지 셀 수 없는 손이 입을 덮고 팔을 잡고 더 부르지 못하게 틀어막았다.
아프도록 꽉 잡힌 팔을 뿌리치자 빨갛게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윰보는 뒷걸음질을 쳤다.
아까까지 바닥에 힘없이 누워있던 아이들, 벽에 기대있던 깡마른 아이들 전부가 이 쪽을 형형하게 노려보았기에.
새액 새액 힘없이 숨을 쉬던 아이도 반쯤 열린 눈으로 이 곳을 보고 있었다.
무서워서.
윰보는 뛰었다.
너무 서둘렀던 탓에 뻥 뚫린 바닥을 보지 못하고 굴러 지하실로 떨어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비릿한 냄새와, 이상한 기름기가 잡혔고 오래되어 얼고 굳은 무언가가 손 아래 잡혔다.
나무 기둥 같은 것이 있었고 그걸 두드리자 위에서 철그렁거리는 사슬 소리가 났다.
흥미롭긴 했지만 지금은 호기심을 발휘할 때가 아니었기에 어두운 벽을 더듬다 계단을 발견했다.
위로 올라올수록 나지막한 자장가 소리가 들렸다.
아까 아이들은 자신은 자장가를 부르지 못하게 했는데.
내가 신참이어서 그럴 거야.
다들 나를 내쫓고 죽어가는 아이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나 보지.
먹을 거라도 찾아서 가면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왠지 자신만 따돌리는 느낌이다.
집에나 가야지.
여긴 숲이지만 걷다 보면 집에 갈 수 있겠지.
윰보는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거기에 문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어두운 걸까?
고개를 든 그 곳에는, 토끼 가면을 쓴 사람이 달빛을 막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