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번에도 잘 다녀와.”
거대한 키에 검은 피부와 검은 뿔은 날카롭고 얼굴에 돋아난 비늘 아래 눈빛은 중후하다.
그 눈빛만큼이나 날카로운 바늘이 달린 길쭉한 막대를 등에 지고.
“그럼, 다녀오도록 하지.”
어부 집사 바리톤은 배웅을 받으며 길에 올랐다.
한 번 꺾고, 다시 쭉 직진, 아래로, 천천히 걸어내려오다가 바리톤은 누군가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는 전력질주로 달려왔다.
“치즈! 메기! 연어야! 아니 이건 또 처음보는 얼굴!”
‘하악-’
그러니까, 바리톤한테만 반가운 얼굴.
햇볕 아래서 낮잠을 자던 고양이들은 바리톤이 달려오던 말던 앞발을 핥아댔고 그나마 반응을 보여준 한 마리는 냅다 일어나 털을 세웠다.
“저기요 바리톤, 그 커다란 덩치로 달려들면 애들이 겁먹는 다구요.”
비술서를 들고 있는 테너는 고양이들 사이에 앉더니 하악질을 하던 작은 녀석의 목덜미를 긁어주었다.
“내가 고양이들한테 얼마나 인기 많은 줄 알아? 네가 아무리 같은 고양이라고 해도 나한테까지 하악질을 하는 그 녀석이...”
‘고르르륵~’
“그래그래, 여기가 좋아? 내가 더 좋다고? 응, 응, 그래~”
테너는 보란 듯이 현란한 손짓으로 얼룩무늬 고양이의 턱을 긁어주었다.
고양이는 배를 보이고 뒤집어져서는 발을 바둥거렸다.
“고양이들이란.”
테너는 제 거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바리톤이 입술을 삐쭉이자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보이고 뒤집어져 있던 고양이는 테너가 손을 떼자 몇 번 앞발질을 하다가 다시 해 잘 드는 곳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렇게 투덜거려 봤자-거든요, 아저씨?”
“악! 어딜 때리는 거냐!”
“내가 작아서 손을 올려봐야 아저씨 엉덩이인데 어쩔 수 없잖아?”
바리톤은 건방지게 살랑거리는 검은 꼬리를 잡아당기고는 냅다 비공정으로 뛰어갔다.
“어- 춥구먼-.”
비공정에서 내리면 성도다.
요즈음은 다른 제도인가 뭔가가 발견되었다고 해서인지 그 곳으로 떠나는 모험가들이 사람 수를 맞춰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성도에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모험가님 집사 수행하러 왔습니다.”
바리톤이 신분증명서를 내밀자 안내원은 신분증을 거의 보지도 않고 돌려주었다.
“자주 보네.”
“우리 집 모험가도 매일 일하는데 나도 일해야지.”
문을 지나 눈밭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걸어가고 다리도 하나 건너서 또 내려가다 보면 인간을 보고 좋아라 쫓아오는 거대한 마물들이 있다.
“다음부터는 좀 안전한데만 골라서 다니던가 해야지.”
한참 쫓겨다니다 눈 쌓인 바위 뒤에서 숨을 고르자 저절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나온다.
얼마간이나 더 걷다 보면 조그맣게 얼지 않은 샘이 보이고 그 주위에는 또 옹기종기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운 집사들이 보인다.
그 중 하나가 바리톤을 알아보았는지 손을 흔들었다.
“어이- 바 씨 왔어?”
“루 씨도 여기 왔구만-”
“아 조용히 좀 하라냐! 물고기 도망간다냥!”
“미 씨도 잘 지냈는가?”
미 씨라고 불린 집사는 투덜거리면서도 낚싯대를 접었다.
그 발치에 있는 들통에는 물고기가 몇 마리나 잡혀 있었다.
“오늘은 미씨가 좀 잡았는데?”
“오늘 왠지 잘 잡혀!”
바리톤은 미코테와 루가딘 사이에 앉아서 커다란 병에 든 차를 한 잔씩 돌렸다.
숨만 쉬어도 하얗게 입김이 나오는 곳에서 따뜻한 차는 굴뚝처럼 모락모락 김이 뿜어져 나왔고 뜨거운 것을 잘 못 마신다는 미 씨도 불지 않고 홀짝 마셨다.
“과자 먹을래? 우리 집 모험가가 만들어줬는데.”
루가딘 집사인 루 씨는 그 커다란 손에는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는 마도사 모양 쿠키를 꺼냈다.
그러자 질세라 미 씨도 주머니에서 말린 물고기를 꺼냈다.
“미 씨네 모험가는 요리 못 하잖아? 웬 물고기야?”
“매일매일 낚는 물고기를 조금씩 모아서 만들었다냐! 오늘 낚은 것 중에서도 산천어랑 빙어는 말릴 거다냐.”
들통을 힐끗 보자 그 안에는 산천어와 빙어만 바글바글했다.
“그러면 모험가가 실망하지 않는가.”
“저번에 물고기 낚았는데 다 먹어버렸다고 말하니까 잘 했다고 말했다냐.”
“미 씨는 가끔이지만 비싸고 좋은 걸 잡아가니까.”
“행운이 붙는 겨 행운이.”
“바 씨, 나 차 한 잔만 더.”
그렇게 수다를 떨면서 낚시를 하다 보니 들통도 제법 찼다.
산천어, 빙어, 그리고 달그락거리는 게와 움직이는지 마는지 모를 성게.
미 씨와 루 씨는 먼저 가버렸고 바리톤만 털레털레 들통을 들고 비공정을 타러 왔다.
“바 씨, 어때 오늘 많이 낚였어?”
“이만하면 제법 낚였지.”
바리톤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산천어 한 마리를 꺼내 내밀었다.
“날 추운데 기사단 사람들이랑 끓여먹던가.”
“이슈가르드 사람이 춥다고 불평할 수는 없지! 늘 고마워.”
가장 바람이 덜 치는 자리에 앉아 비공정을 탔다가 내리자 뜨뜻한 다날란의 바람이 몸을 휘감았다.
이렇게 뜨거운 곳에서는 살 수 없다는 듯 들통 안이 요란해졌고, 바리톤은 비늘 돋은 손으로 들통을 토닥거리면서 걸었다.
많이 낚았겠다,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있는데 누군가 바지에 확 매달렸다.
“악! 치즈야!”
“연, 연어 너까지! 비늘, 비늘 조심...!”
“메기! 아아악! 메기! 아야야 발톱!”
바리톤은 자그마한 생선을 들통에서 꺼냈으나 고양이들의 가차 없는 발길질만 거세어졌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큰 산천어.
여전히 발길질은 가차 없다.
고양이들의 발톱은 바리톤이 가장 커다란 빙어를 꺼내고서야 사라졌다.
바리톤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빙어를 그 자리에서 해체해서 뼈를 발라주었다.
‘애옹’
‘냐아’
‘우우웅’
“......그래, 이제 만족하냐.”
‘애앵!’
분명 처음에는 세 마리 뿐이었는데.
그 다음 한 마리를 꺼낼 때는 다섯 마리가 되었다가.
그 다음 다음으로 산천어를 꺼낼 때에는 열 마리가 되어 있었다.
다날란 고양이들은 다 여기 모여 있나.
바리톤은 통통한 살점에 제일 먼저 달려든 고양이를 알아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너 나한테 하악질 한 그 녀석이지!”
‘므냐아-’
얼룩고양이는 바리톤의 다리에 몸을 한껏 부비면서 그릉그릉 소리를 냈다.
거기에 마음이 풀린 바리톤은 조금 더 큰 살점을 떼어서 그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그걸 덥썩 받아무는 녀석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하악!!!’
그리고 한 대 얻어맞았다.
그렇게 물고기를 나눠주고 오는 길, 가벼워진 들통에는 달그락 달그락 게 소리만 난다.
검은 뿔인 자신과는 다르게 하얀 뿔을 가지고 있는 주인의 눈이 가벼운 들통을 한 번 보았다가 자신을 본다.
어쩐지,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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