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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2019. 6. 6. 19:10 | Posted by 호랑이!!!

에췻!”

 

따뜻한 울다하에 집이 있기는 하지만 페드와 라레타는 종종 커르다스에 방문하고는 했고, 급격한 온도차를 겪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페드 역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불과 이틀 전까지 기침을 하고 열이 올라 있던 라레타를 간호한 것 때문에 옮은 모양.

 

라레타가 아프다고 했을 때는 어렵잖게 했던 각종 죽이나 수프에서부터 사탕, 초콜릿, 약을 만드는 것은 물론 청소를 하거나 환기를 하거나 하는 일조차도 다 귀찮다.

 

하지만 페드는 몸을 일으켰다.

 

아픈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자신의 재채기에 귀가 쫑긋한 라레타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지어 주고 저녁으로 먹을 양배추말이 소스에 시선을 고정했다.

 

방금 기침 한 거야?”

 

재채기입니다.”

 

이 작은 미코테가 나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얼굴 빨간데.”

 

사막의 독뿔 도마뱀도, 바다의 해적도, 숲의 멧돼지도, 사람도 위험한데.

 

“...요리 불이 세서.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데일 수도 있습니다.”

 

아닌데, 아닌 거 같은데, 라고 하면서도 라레타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서 페드를 지켜보았는데 꼬리가 바닥에 부딪히는 것을 보아하니 영 수상쩍게 여기는 모양이다.

 

얼굴을 씻고 온다는 핑계로 화장실로 빠져 거울을 보니 정말로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원래 피부색이 진하니까 별로 티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다보니 알 수 있는가.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라레타에게 먹이고 남았던 약병을 꺼냈다.

 

쓴 약을 마시고 물을 몇 모금 마신 뒤 약 냄새를 없애기 위해 양치질을 한 번 더.

 

찬물로 몸을 식히고 나갔더니 요리는 마악 완성되었다.

 

“...역시 얼굴이 빨간데.”

 

, 접시 좀 꺼내주겠습니까? 예쁜 걸로. 수저도 좀 놓아 주고. 꽃도 꽂을까요? 무슨 꽃이 좋습니까?”

 

! ...숟가락 먼저? 접시...”

 

어느 걸 먼저 하느냐 안절부절 하다가 라레타는 접시부터 꺼내러 우다다 달려갔다.

 

휴우.

 

식사 도중에 또 기침을 하기는 했지만 사레 들린 것 뿐이라며 훌륭하게 넘긴 페드는 뿌듯한 마음으로 디저트를 듬뿍 꺼냈다.

 

타닥타닥 백색 소음처럼 타오르는 벽난로는 따뜻한 온기를 집 안에 퍼뜨렸고 장작과 함께 넣은 라벤더 줄기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향기를 뿜어냈다.

 

다녀왔습니다-”

 

문이 벌컥 열렸다.

 

평소라면 조심히 다니라고 벌컥 성을 냈겠지만, 자칫했으면 잠에 빠졌을 뻔 한 페드로서는 반갑기가 그지없었다.

 

.”

 

거대한 집사 바리톤은 페드와 눈이 마주치자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는 시늉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 덩치가 작아지거나, 정말로 조용해지지는 않을 거 아닌가.

 

“...되었으니 문만 좀 열어놓으십시오. 환기를 하게.”

 

저 주인이 웬일로 유하게 굴지?

 

어리둥절해진 바리톤은 보송보송 건강한 모습으로 과자를 입에 문 라레타를 보자 오늘은 기분이 좀 좋은가보다- 정도로 납득하며 페드 앞에 오늘의 획득물을 꺼냈다.

 

이거는 바다초롱이고-”

 

그렇군.”

 

이거는 알라그 금화고-”

 

그렇군.”

 

주인님은 아프고-”

 

그렇지. ...?”

 

감기 걸린 거 아닙니까? 얼굴도 빨갛고 숨소리도 다르고-”

 

페드는 집사 급료로 바리톤을 걷어차 쫓아냈다.

 

역시 아픈 거지!”

 

“...아닙니다.”

 

축 늘어진 눈가로 라레타를 올려다보자 라레타는 페드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걱정 마, 내가 끝내주게 보살펴 줄테니까!”

 

“...라가요...?”

 

라레타는 페드를 침대에 밀쳐 눕혔다.

 

아니, 잠깐. 아프지 않습-”

 

그리고 요란하게 재채기 한 번.

 

마실 거 가지고 올게! 약은? 밥은? 맞아, 밥은 먹었지?”

 

그러니까 수프 끓여 올게! 이거 먼저 먹어!

 

라며 입에 꽂아 준 것은 감기약이었다.

 

뭣도 모르고 삼켜버린 덕분에 머리가 핑 돌았다.

 

“...이런 것은 괜찮으니까, 신경을...”

 

옮기면 안되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급격하게 잠이 온다.

 

밀어내는 것인지 이리 오라는 것인지, 허우적거리던 손에 옷깃이 잡혔다.

 

정신을 차려야...

 

...차려야 하는데...

 

라가 나가지 않게 하려면.

 

“...정신을...”

 

차려야, 까지 생각하자 불이 꺼지듯 의식이 사라졌다.

 

 

 

 

 

 

 

꿈을 꾸었다면 악몽이었겠지만, 페드는 눈을 떴다.

 

희미한 의식이 잡히는 순간 벌떡 몸을 일으키자 방금 전까지 잠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의식이 또렷했다.

 

몸을 침대 밖으로 꺼내자 고용했던 상인들이 허리를 숙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눈에 익은 금발은 보이지 않았기에 페드는 자신의 차림도, 표정도 가다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난간을 넘어 한 번에 두세칸씩 훌쩍 뛰어넘으면서.

 

그리고 위층은 아주 조용했다.

 

넓은 옷자락에 걸린 촛대가 쓰러지거나 꼬리가 바닥을 건드리거나, 나무나 천에 걸린 귀가 퍼득퍼득 움직이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리톤이 열어둔 그대로 문이 열려있어서.

 

....!”

 

페드는 당장에 문을 박차고 나갈 뻔 했다.

 

등 뒤에서 아주 작게 바스락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정말로 뛰쳐나갈 뻔 했지만.

 

부스럭 소리에 발이 멈추었고 페드의 몸이 마법서만 뒤적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홱 돌았다.

 

몇 권인가 고른 책 더미 옆에 하얗고 동그란 천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올리자 그 아래에서는 눈에 익은 금색 머리카락이 정전기로 천에 붙어 흔들거렸다.

 

“...”

 

손을 내리자 다시 얇은 이불이 라레타를 덮었다.

 

페드는 자신의 손이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언제부터 쥐고 있었던 걸까.

 

얇은 가운이 구겨질 정도로 손에 꽉 쥐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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