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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AU] 짧게짧게

2019. 1. 15. 06:45 | Posted by 호랑이!!!

바닷가 한적한 곳, 한밤중에 물가로 가면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돌았다.

 

그러나 어른들은 밤중에도 잘 다녔으며, 늦게까지 놀아도 마을의 아이들은 매일 다시 만나 놀 수 있었기에 말 안 듣는 아이를 겁주기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장난이나 하고 놀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누군가 그 소문의 진상을 파악해 보자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제비뽑기로 뽑힌 것은 귀한 집 도련님인 라레타였는데 뽑힌 것이 누구인지 확인하자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라레타는 굳이 자기가 가보겠다고 나섰고 어른들 눈을 피해 작은 등불 하나만 들고 바닷가로 나왔다.

 

뭐야, 역시 별 거 없잖아!”

 

등불이 없어도 물결이 얇게 밀려와 부서지는 것이 훤히 보였다.

 

짭짤한 바다 내음에, 발가락 사이로 닿는 하얀 모래는 부드럽게 눌려 자국을 남기고 미끄러운 해초는 달빛에 반들거린다.

 

따뜻한 공기 사이로 이따끔 바닷바람이 귓가를 스쳐 서늘하게 만들어서 라레타는 살짝 발을 물에 담갔다.

 

수영 하고 싶다!”

 

그리고 이어 들리는 소리에 파드드드득 놀랐다.

 

하면 되잖아요?”

 

누구야?! 어디 있어!”

 

라레타는 팔짝 뛰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을 아이들 중에 자기가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확인하는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마을 아이일 줄 알았다.

 

그러나 바위 뒤에서 나온 손은 매일 놀아서 부드러운 아이들의 것과는 전혀 달라서 라레타는 그리로 갔다.

 

바위 뒤에는 머리를 종종 땋은, 라레타 나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허리 아래로는 회색 지느러미가 쭉 뻗어 있는 정도.

 

너는 누구야?”

 

인어예요.”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 모를 애매한 빛깔의 눈이 깜박였다.

 

라레타가 조금이라도 덜 흥분했다면 여기서 이상한 점을 느꼈을 것이다.

 

바다가 반짝이는 것은 보이지만 어떤 색인지 알 수 없는 이 곳에서 초록색 눈이라니.

 

그러나 라레타는 책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인어를 만나고 있었고, 인어는 나쁜 사람들을 피해 도망쳤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있어 주어서 나쁜 사람들이 도망갔어요.”

 

정말로? 내가 다 쫓아 보냈어?”

 

그러니까 보답을 하고 싶어요. 내일도 여기 와 주지 않겠어요?”

 

그럴래! 그럴래!”

 

여기서 있었던 일은 정말정말 비밀이라고 하고 라레타는 인어와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마을 아이들한테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라레타는 매일 밤마다 바다로 갔다.

 

인어가 산다는 멋진 동굴도 보고 진주조개를 받기도 하고 어른들은 위험하니까 안된다고 했던 밤바다에서 수영도 즐겼다.

 

 

 

 

 

 

매일같이 낮에 졸고,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는 놀지도 못 하던 라레타였지만 어느 날엔가는 낮에 나와야 했다.

 

성대하게 결혼식이 열리는 것 때문이었고 신부는 이웃 마을에서 온 사람이다.

 

신부는 하얗게 옷을 입고 꽃에 둘러싸여서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어른들은 신부가 곱다느니 이야기를 했고 아이들도 몰래몰래 다가가서 꽃잎이나 하얀 옷을 살금 만지고 나왔다.

 

신기하니?”

 

!”

 

아이들은 신부가 손짓하자 조르르 모여들었다.

 

손을 깨끗하게 닦기로 약속하고 과자를 하나씩 쥔 아이들은 모여앉아서 아이 돌보는 일을 하다 왔다는 신부와 이야기를 했다.

 

누구네 양이 제일 털이 많이 나온다던가, 누가 사냥했는데 이만한 뱀이 나왔다던가, 그런 이야기들은 어느샌가 누가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경쟁이 되었다.

 

그래서 그 때 할머니가 말했는데, 밤중에 몰래 부두로 나간 애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 했다고!”

 

그거 저번에 라레타가 보러 간 거잖아, 그 땐 아무것도 없었거든?”

 

달라, 이건 부둣가로 간 거니까!”

 

그러자 신부는 갑자기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밤에 나가면 안 돼.”

 

계속 듣기만 하던 신부가 입을 열자 아이들이 다 쳐다보았다.

 

정말로 봤어. 밤에 끌고 가는 건 무서운 사람들이야. 쾅 하고 기절시키면 그대로 끌려 간다.”

 

보았는데, 금발이 해초처럼 흔들려서 질질 끌려 간다.

 

듣고 있던 라레타는 금발이라는 말에 신부의 옷자락을 당겼다.

 

그럼 인어는?”

 

인어?”

 

인어도 사람을 끌고 가?”

 

신부는 아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라서 애매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어...는 사람을 안 끌고 가지 않을까?”

 

그리고 어젯밤에도 밤새 놀았던 라레타는 꾸벅꾸벅 졸다가 신부 의상에 요리 그릇을 엎질렀고 아주 크게 혼이 나, 며칠이나 일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날 밤 라레타는 바닷가로 갔다.

 

인어는 얼굴에 남은 소금물 자국을 가리켰고 라레타는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신부며, 있었던 이야기며, 요리를 조금 엎질렀다던가, 그래서 내일부터는 무서운 어른들이랑 있어야 한다던가.

 

그 말을 들은 인어는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나랑 같이 물 속으로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물 속으로?”

 

인어로 만들어 줄게요.”

 

인어로 만들어 주고, 매일 예쁜 것을 보러 다니고, 그러다 어른들 화가 풀리면 몰래 올라오는 일.

 

라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바위 위에서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면 손이 꼭 붙들렸다.

 

꽃잎이 빽빽하게 라레타의 지느러미에서 돋아나고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말한 인어는.

 

퀸타페드는.

 

라레타의 손을 잡고 아주 먼 곳으로 헤엄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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