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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더건/율리안] 크리스마스

2020. 12. 25. 02:24 | Posted by 호랑이!!!

“...”

 

이 사람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낭비가 심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건 또 새롭군.

 

율리안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느낌의 무표정을 지었다.

 

둘밖에 없는 집에 커다란 햄 같은 거야 예상범위 내였다.

 

마시는 건 한 사람밖에 없는데도 샴페인이니 와인이니 하는 걸 들여놓는 것도.

 

...잠깐, 물병 가득하게 담긴 이건 수제 에그노그잖아? 이 사람은 자신을 중독자로 만들 생각인가?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맛있게 만드는 거야.

 

여하간 노골적일 정도로 크리스마스 전용으로 만들어진 스웨터조차도 예상 범위 내였지만.

 

“이건 대체 왜 틀어둔 거지...?”

 

율리안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스피커에서는 경쾌하게 타닥타닥 소리가 났다.

 

어느 영화 회사 로고였나 N이 커다랗게 화면에 스치우길래 저 사람이 또 무슨 어울리지 않는 걸 틀었는가 기다리고 있었더니-

 

“앉아서 기다리지 그랬어.”

 

쟁반을 들고 크나트가 거실로 왔다.

 

“앉을 겁니다.”

 

커다란 전나무는 금색 공과 꼬마전구와 끈으로 장식되었다.

 

나뭇가지에는 또 이런저런 것들이 걸려있고, 아래에는 선물상자도 있어 제법 그럴싸하다.

 

작년에도... 그랬었지...

 

문득 떠오르는 종소리의 추억에 율리안은 크기가 들쭉날쭉한 선물상자를 노려보았다.

 

“빨리 선물부터 뜯어보고 싶어?”

 

“그런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또 수상쩍은 짓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태연하게 매시 포테이토와 두툼하게 자른 햄을 접시에 덜어놓을 뿐이다.

 

“잠깐, 립도 산 겁니까?”

 

“만들어두면 며칠 먹겠지 싶어서.”

 

다다익선 같은 소리나 하는 저 사람에게 검소의 미덕을 말하려다가 율리안은 오늘이 자애와 자비와 관대의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상기하고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고...

 

“역시 아깝습니다.”

 

뜯지도 않은 팩에 든 칠면조를 애써 무시하고, 율리안은 자기도 뭔가 준비했다며 부엌으로 가서 몇 시간이나 붙어 있었던 커다란 냄비를 가져왔다.

 

“뭔데?”

 

“이탈리아 전통 신년 음식입니다.”

 

이건 좀 잘난 체 하는 것 같았나? 율리안은 머뭇거리다가 냄비 뚜껑을 열었다.

 

훅, 더운 김이 얼굴에 끼쳤다.

 

습하고 따뜻한 수증기에서는 비릿하고 달짝지근한 바다 냄새가 났다.

 

슬쩍 냄비 안을 들여다본 크나트는 아, 그랬었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화이트 와인? 아니면 보드카?”

 

“괜찮습니다.”

 

이미 이 식탁 위에 나와있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역시 저 형제님은 나를 알코올 중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닐까?

 

율리안은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가위로 게를 썩둑 잘라 흰 살을 드러냈다.

 

“해산물 요리를 하는 건 처음 봤는데.”

 

“오랜만에 한 요리이기는 합니다.”

 

갑각류는 손이 많이 가지만 맛있지.

 

살을 들어내 접시에 담자 크나트는 즐겁게 게 접시를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손수 만든 절임 채소도 작은 그릇에 덜어 올려두자 제법 호사스러운 식탁이 되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오디오 스피커에서는 징글벨 노래가 흘러나오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화려하다.

 

깔끔하고 단정한 집 안이 초록과 빨강과 반짝이는 포장지로 발랄해진 것도, 조금 무리해서 좋은 게를 산 것도 기분을 명랑하게 만들어서 율리안은 얼른 게 다리를 뜯어냈다.

 

그야말로 가정적이고 완벽한 크리스-

 

“-마앗?!”

 

게를 입에 넣자마자 몸이 우뚝 굳었다.

 

“왜?”

 

팩, 소리가 날 정도로 재빠르게 움직인 율리안의 눈이 크나트의 접시를 향했다.

 

상대의 수상쩍음을 느낀 거의 동시에 의자를 쓰러뜨리며 율리안과 크나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나트는 율리안을, 율리안은 크나트의 손에 들린 접시에 눈길을 두고.

 

원하는 건 오직 당신뿐이라는 낭만적인 곡을 배경으로 둘 사이에 고요한 대치상황이 있었다.

 

“...”

 

“...”

 

잠시의 탐색전.

 

율리안은 눈을 굴려 싸움질로 다져진 팔과 근육으로 짜인 두툼한 가슴을 보았다.

 

“...그 접시를 이리로 주시기 바랍니다.”

 

신체적이고 경험적인 불리함을 인지한 율리안은 우선 대화를 청했다.

 

율리안은 건전한 현대인이었고,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며, 또한 훌륭한 청년이었기에.

 

“그런 것을 식탁에 올릴 수 없습니다.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분하게 말하며 접시를 달라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런 것이라니, 어째서?”

 

다행히 저 야만적인 남자도 대화를 해볼 모양이다.

 

약간의 희망을 느끼며 율리안은 접시를 이리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접시를 먼저 주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나트는 눈을 굴려 율리안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순순한 모습에 잠깐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율리안은 기대했던 단단한 접시가 아니라 무언가 말랑한 것이 닿자 펄쩍 뛰어올랐고, 그대로 크나트에게 잡혀 의자에 강제로 묶이고 말았다!

 

“이거 풀어주십시오!”

 

트리에 단 것과 같은 반짝이는 은색 금색 줄이 율리안의 몸을 칭칭 감았다.

 

이 남자가!!!

 

율리안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으로 크나트에게 소리쳤고, 크나트는 그런 율리안을 보다가 콧노래나 부르며 그의 몸에다 주섬주섬 오너먼트를 달았다.

 

“사, 사람을 뭘로 아는 겁니까!”

 

심지어 파티용 종이 모자까지 머리에 씌워주자 정신을 차리십시오 형제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외의 말은 간신히 목 뒤로 넘기는데 크나트는 율리안의 눈을 똑바로 보며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아, 설마.

 

포크가 껍질 안의 살을 긁어냈다.

 

안돼, 설마...! 안돼...!!!!

 

포크는 길쭉한 살을 과도하게 우아한 몸짓으로 운반하였고 그 수령지는 아직도 율리안을 빤히 쳐다보는 크나트의 입이었다.

 

“흐음, 이것 보게. 찔 때 물을 너무 적게 넣고 찐 거 아냐?”

 

“소금을 좀 많이 넣었을지도?”

 

“이 부분은 살이 졸아들었는걸.”

 

한 마리를 끝내면 다음 한 마리를, 또 다음 한 마리를, 또 다음 한 마리를.

 

크나트는 한 마리에 한 마디씩 밉살스러운 말이나 하면서 냄비 안의 게를 전부 끝장냈다.

 

짜면 먹지 마십시오! 로 시작한 율리안의 말은 결국 의자째로 펄떡이는 육체적 반항이 되었고 율리안의 괴로움을 향신료삼아 크나트는 마지막 게까지 박박 긁어 먹었다.

 

그 즈음에는 율리안도 지쳐버려서 축 늘어졌는데 싱글싱글 웃는 남자가 눈이 마주치자 찡긋, 윙크를 날렸다.

 

“...그래도, 잘 먹었어 달링.”

 

기척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뺨에 입술이 닿았다.

 

율리안은 펄쩍 뛰어 몸을 일으켰지만 크나트는 게 껍데기를 들고 부엌으로 가 버린 후였다.

 

하여간 이상한 사람이야.

 

율리안은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그 화면에는 타닥 타닥 타오르는 난로가 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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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수] 치트, 패치, 퍼블리와 다른 동료들

2020. 9. 30. 03:04 | Posted by 호랑이!!!

... 건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치트는 짐을 앞뒤로 주렁주렁 끌어안고 무게에 낑낑거리며 발을 옮겼다.

 

직급만 따지면 제가 제일 위라구요?”

 

그러자 앞에서 퍼블리가 돌아보았다.

 

짐 하나 없이 가뿐해서인지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업보라고 생각하세요.”

 

치트는 활짝 웃는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감당할 수 없어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패치랑 눈을 마주쳤지만 그 파란 눈은 별다른 말 없이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히잉...”

 

빨리 걷게. 주인공님의 다음 전투가 곧이다.”

 

다음 장소에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던 거 같으니 앞으로 세 번의 전투 동안 아이템을 잘 배분해서 써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제가 살짝 도와드리면-”

 

치트가 말하자 앞서가던 두 사람이 홱 뒤를 돌아보았다.

 

아 농담이에요 농담! 퍼블리씨 패치 선배님이랑 눈빛 똑같아진 거 알아요?!”

 

농담할 기운이 있다니 짐이 좀 늘어도 되겠군?”

 

예에? 여기서 더요?”

 

나빴어 나빴어! 심술쟁이!

 

퍼블리는 그 앙탈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전서구가 힘들다고 하던데 돌아오면 위에 얹어 볼까요?”

 

!?”

 

패치가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길이 오르막이 되자,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다가 돌길로 변하기까지 하자 퍼블리가 치트에게 다가왔다.

 

.”

 

퍼블리님...!”

 

이번만이에요.”

 

역시 제 깜찍한 애교가 먹혔던-”

 

치트는 퍼블리의 눈빛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다, 원래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

 

선배님? 역시 선배님 때문인가?

 

주인공이 전투에 돌입하면서 그들의 전진에는 휴식이 생겼고 치트는 짐을 내려놓은 뒤 풀밭 위에 쭉 뻗었다.

 

퍼블리, 자네 저기 좀 보게.”

 

? 어떤 부분을요?”

 

주인공님이 한 패턴밖에 안 쓰시는데 이번 루트에서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는 걸 알려드렸나?”

 

, 알려드렸어요. 아마 원 패턴으로 깨는 주인공님 같아요.”

 

하긴 멀쩡한 총이랑 무기 다 두고 쇠파이프나 노루발로만 깨는 주인공님도 있지.

 

패치와 퍼블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치트는 어마어마한 짐을 발로 툭 건드렸다가 주인공이고 나발이고... 싶어졌다.

 

하늘은 오늘도 파랗구나... 각져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데 무언가가 팔에 닿았다.

 

차가워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병.

 

풀잎이 붙어 있는 수통.

 

병이 굴러온 방향은...

 

고개를 들었더니 패치가 가방 지퍼를 꽉 닫고 있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 말은 못 들은 것처럼 패치는 갑자기 퍼블리 쪽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전서구는 언제쯤 돌아온다고 했나? 지금쯤이면 연락이 와도 세 번은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제때제때 연락을 했어야지!”

 

그리고 들개들도! 곤충들 오는 건 돌려보냈나? ? 일처리를 따박따박 해야 할 것 아니야!

 

대리님, 들키겠어요...”

 

이게 무슨 소란이지~?라며 주인공이 돌아보자 슉 몸을 낮추며 퍼블리가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렇게나 못난 후배이건만 선배님은 저를 걱정해주셨군요.”

 

그리고 뒤에서 저런 소리나 하는 치트 옆구리를 콱 찔렀다.

 

“...에잇, 이러니까 아직도 내가 현장을 못 벗어나는 거 아닌가. 이제 쉴만큼 쉬었으면 다시 일어나게!”

 

아직 주인공님 전투 안 끝났는데-”

 

당신 승진해도 현장일 텐데 갑자기 남 때문에 못 가는 것처럼 말해봤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주인공은 전투를 끝냈으며 캠핑장에 모닥불을 피우고 잠드는 것까지 확인했다.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 일 없겠지.

 

퍼블리가 땅을 고르고 패치는 모닥불을 피웠다.

 

치트는 이제 익숙하게 커다란 텐트를 쳤지만 오늘도 이 텐트에는 퍼블리만 들어가서 잠들겠지.

 

저 아래에서 흑기사 투구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자 치트는 그렇게 확신했다.

 

잘들 있었나?! 어때, 오늘은 좀 할만했나!”

 

흑기사가 우렁우렁하게 커다란 목소리로 웃으며 치트 옆으로 다가오자 치트는 자연스럽게 잔을 꺼냈다.

 

, 그건 아직 꺼내지 않아도 된다네! 오늘은 술이 없거든!”

 

만세!

 

치트는 자연스럽게 주먹을 꽉 쥐려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로 손을 내렸다.

 

그것 참 아쉽군요, 매일매일 파티라니 저는 즐거웠는데요.”

 

아무래도 술 궤짝을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말일세!”

 

너무 기쁘다.

 

이런 사소한 것을 기뻐하게 될 줄이야.

 

치트는 허물어지려는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빈 잔을 흔들면서 여유를 부렸다.

 

그동안 버릇이 되어버렸는지 오늘 술이 없다고 하니 너무너무 아쉬워서~”

 

쿠웅.

 

땅이 진동했다.

 

동시에 목덜미부터 온 몸을 가로지르는 섬찟함에 치트는 말을 멈추었다.

 

돌아보면 안돼.

 

하지만 돌아보고 싶다.

 

...역시 돌아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돌아보지 않는다고 그 결과가 미뤄지진 않아...

 

와핫핫! 전서구 이 친구 타이밍 딱 좋게 왔어! 마침 여기 이 친구가 술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뭔가!”

 

이보다 빨리 못 오니 그러려니 하쇼.”

 

전력으로 온 모양인데? 자네 매일 빼더니 역시 우리랑 술 마시는 게 좋았던 모양이지!”

 

치트는 돌아보았다.

 

천으로 덮은 커다란 상자.

 

자신이 예전에 퍼블리에게 술집에서 건넸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상자.

 

제발... 제발.....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살짝 천을 들추자.

 

상자 안 빼곡하게 찰랑이는 술병들이 달빛을 반사했다.

 

절망은... 기쁨만큼 쉽게 찾아오는군요...”

 

? 방금 뭐라고 했나?”

 

퍼블리의 접시에 안주 겸 먹을 것을 잔뜩 얹어주고 패치는 치트와 흑기사와 전서구의 잔을 채워주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잔을 채우는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급기야는 각기 병을 하나씩 들고 마신다.

 

무어라고 속삭인 건지 치트는 전서구에게 다가와 낑낑거리면서 들어보려고 애쓰고 몇 걸음 걷다 못해 전서구 밑에 깔려버렸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나고 패치와 흑기사는 어깨동무를 하고 주정을 부리고 있었으며... 아니, 들개 대장도 거기 끼었잖아?

 

들개 한 마리가 치트 위의 전서구 위로 올라오고 다른 들개가 치트 위의 전서구 위의 들개 위로 기어올라왔다.

 

... 아악...”

 

어휴! 다들 뭐 하는 거예요. 내려오지 못 해요!”

 

들개 한 마리 한 마리씩이 내려오고 전서구가 일어났음에도 치트는 그대로 쭉 뻗은 상태였다.

 

다들 취했으니까 이 김에 얼른 들어가요.”

 

퍼블리가 텐트 쪽으로 손짓했다.

 

뺨에 강아지 발자국이 생긴 치트가 빌빌대며 퍼블리가 벌린 안으로 기어들어갔고 깨끗한 바닥과 베개를 껴안으면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흐아아...”

 

하하, 오늘 힘드셨죠. 이런 때 잘 듣는 약이 있어요. 아니카가 혹시 모른다고 챙겨준 약인데 이런 때 쓰게 되네요.”

 

다리며 팔, 어깨, 허리에 고약을 치덕치덕 바르고 엎드리자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퍼블리도 그 옆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쭉 폈다.

 

으드득 소리가 났다.

 

예전에 술집에서요.”

 

, 술집에서요.”

 

상사가 있으면 산통을 깬다는 게 뭔지 말했잖아요.”

 

아 그랬었지.

 

치트는 그 때를 떠올리며 허허 웃었다.

 

술자리를 보다 보니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패치의 웃음에서 더욱 힘이 없어졌다.

 

그 웃음소리를 듣다 퍼블리가 엎드렸다.

 

그래도, 대리님이 팀장님을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지요?”

 

자기 직전이라 벗은 두건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들이 어깨며 팔 위로 흘러내렸다.

 

예전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싫어한다는 말과는 다른 거니까.”

 

어두운 텐트 안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치트씨.”

 

 

 

 

 

 

 

“...방금 뭐였지?”

 

치트는 머리에 쓴 헬멧을 벗었다.

 

내장된 스피커에서 뭐라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지만 치트는 충격으로 다시 쓰지 못하고 있었다.

 

텐트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하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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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2020. 9. 10. 01:43 | Posted by 호랑이!!!

 

 

이것 봐요!”

 

보송보송한 노란 머리카락에 사탕 같은 눈을 한 미코테가 손톱을 세워 페드의 옷소매를 긁었다.

 

가죽옷인데 괜찮은지 손을 잡아 이리저리 살피자 손은 그대로 맡겨놓고 라레타는 반지르르 예쁜 꼬리를 페드의 눈 앞에 흔들었다.

 

손톱이 어느 한 군데 까지거나 더럽혀지지 않고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 페드는 눈동자를 가운데로 움직여 제 코 앞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다가-

 

.

 

라레타의 손바닥에 이마를 막혔다.

 

동그랗게 뜬 눈에서는 보이지 않는 물음표가 보글거렸고 라레타는 페드를 막아냈다는 사실에 의기양양해져서 어깨를 쭈욱 폈다.

 

이거 봐! 또 물려고 했어!”

 

초록색과 파란색이 섞인 눈동자가 라레타의 모아진 눈썹으로 향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봐요, 여기! 매일 무니까 여기 털이 납작해졌어!”

 

“...그렇씁, 니까?”

 

페드는 라레타의 꼬리를 받았다.

 

미세하게, 꼬리털이 납작 누워 있었다.

 

자주 입에 물기는 하지만!

 

털이 조금 납작해진 것도 알지만!

 

그렇지만 그러니까 매일매일 빗질해줬는데? 털결에 좋다는 것도 발라 주고?

 

페드는 급하게 빗을 꺼내다가 털을 빗질했다.

 

털이 보소송 일어났다.

 

하지만 그 털은 라레타가 훅! 불자 다시 챡! 누워버린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페드는 꼬리를 내려다보았다.

 

라레타의 심기를 알려주듯 꼬리는 비늘 돋힌 손 안에서 바스락 바스락 꾸물거렸지만 아까 페드의 움직임을 막아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는 덕분에 그렇게 움직임이 크지 않았고.

 

그것은 달리 말해.

 

캬아앙!!!”

 

페드가 꼬리를 물 틈을 주었다는 말이 된다.

 

가만 안 둬!”

 

, 그러다 다칩니다.”

 

가만 안 둬!!!”

 

말랑말랑한 몸이 페드의 어깨 위로 훅 뛰어올랐다.

 

페드는 몸을 숙이며 보들보들한 피부가 비늘에 긁히거나 바닥에 넘어지지 않도록 허리를 껴안았고 라레타는 그것을 방해로 여겼는지 바둥거리면서 페드의 등에 거꾸로 엎어져서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기 위해 등을 긁었다.

 

장식 겸으로 붙인 가죽 조각이 바닥을 뒹굴고 등비늘에 손톱이 긁히자 페드는 냉큼 몸을 놓아주었다.

 

이때다! 하며 라레타는 그 특유의 유연함으로 거의 물구나무서다시피 다리로만 매달린 채 앞으로 손을 뻗었고, 비늘로 덮인 꼬리를 손에 넣었다!

 

페드는 라레타가 주저없이 그 꼬리를 입에 물자 화들짝 놀랐다.

 

라레타는 페드가 당황하자 더 신이 나서 꼬리를 물고 뜯고 온 몸으로 붙들었고 페드는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최대한 꼬리의 가시를 눕혀두려고 애쓰면서 고뇌했다.

 

꼬리.

 

전혀 아프지 않은데,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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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요란하게도 소리가 울렸다.

 

이만하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A는 항상 자리에서 일어나 이 맑은 날 어디에서 비가 오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날은 맑고, 바람이 불면 사철 푸른 활엽수가 솨- 소리를 내고.

 

다시 A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기는, 요즘 애들이 어디에서 이런 소리를 듣겠어?

 

A는 닳아 부드러워진 마룻바닥에 벌렁 누웠다.

 

어디에선가 스르륵 천 스치는 소리가 났다.

 

곧 시야에 하얀 사람이 들어온다.

 

긴 머리, 새하얗고.

 

눈은 노랑, 동공은 악보에 그려지는 무언가처럼 생겼음.

 

자나?”

 

일어났어.”

 

이 자는 B라고 한다.

 

이천년 가까이 묵은 이무기다.

 

천 년 도를 닦고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A의 조상이 뱀이라고 소리쳐 다시 천 년 도를 닦아서 조상의 업을 씻으라며 A를 끌고 왔다.

 

압도적인 무언가에 무서울 만도 하건만.

 

A가 이 집에 온 날 장장 30시간을 잤는데 오후에 눈을 떴더니 자기 때문에 놀라 죽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꼴을 봤더니 도무지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있잖아.”

 

A가 손을 내밀자 B는 그 손을 잡고 일으켜 앉혀주었다.

 

아무리 봐도 술잔처럼 보이는 도자기에 향긋한 차가 따라지고 종지처럼 생긴 작은 접시에 색색이 화려한 과자가 올랐다.

 

대체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네, 그치만 맛있다.

 

내가 용이다!’하면 어쩔 거야?”

 

집에 데려다주고 네 앞날에 행복을 빌어 주마.”

 

만약 뱀이다!’하면?”

 

내쫓을거다.”

 

A는 향만 달짝지근한 차를 마셨다가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나 사이다 마시고 싶어.”

 

B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런 인간의 천한 음식!이라고 말할 것만 같은 표정!

 

비늘도 안 보여주는 B의 인간 외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거렸더니 B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몸에도 나쁜 것이 뭐가 좋다고!”

 

“...어어?”

 

그거 다 설탕 덩어리다. 마셔서 몸에 하등 좋을 것 없는- 단 것이 마시고 싶으면 이따가 오미자차 타 주마.”

 

말에서 낯익은 사람이 느껴진다.

 

그게, 그러니까...

 

할머니...?”

 

“...아니다.”

 

이래놓고 나중에 마시고 싶으면 마셔야지하면서 한 캔 꺼내 줄 거야?”

 

B의 몸이 움찔했다.

 

그럴거야?”

 

결국 B는 대답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시선을 피하여서, A는 그와 시선을 맞출 거라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고 B는 휙 고개를 젖혀 뒤를 보았는데 A가 점점 더 가까이 고개를 불쑥불쑥 내밀었더니 점점점점점 뒤로 고개를 돌리다가 마침내는 균형을 잃은 A 아래 요란하게 깔려버렸다.

 

으아아!”

 

“...아이고... 이 망아지야.”

 

바람이 빗소리를 내며 나뭇잎을 흔들었다.

 

옷자락이 부풀었다가 가라앉고, A는 조심조심 B의 머리카락을 걷어낸 다음 그 옆에 다시 드러누웠다.

 

난 네 할머니가 아니다.”

 

, 조상님.”

 

“...조상님도 아니다, 이놈.”

 

이 쬐끄만 녀석이 참.

 

B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반짝이는 한 쌍의 눈동자와 마주쳐버렸다.

 

 

트친이 주는 한 문장으로 글쓰기

2020. 8. 1. 01:50 | Posted by 호랑이!!!

아주 먼 곳에서 A는 사람들을 보았다.

 

눈밭에, 흰 배경으로 선 것은 새까만 침엽수림.

 

하늘마저 흐린 무채색 사이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다채로웠다.

 

분홍색 옷에 녹색 허리띠, 진주 귀걸이, 금으로 만든 팔찌, 은으로 만든 목걸이.

 

풀쩍 뛰어오르는 사이에 드러난 맨 발목에는 파란 깃털이 붉은 끈에 매어 있고 장밋빛 발은 양말도 신발도 없이 눈을 밟는다.

 

화관이 흐트러지고 꽃잎이 휘날리는 사이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A는 그들 쪽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

 

사박, 눈이 발 아래 으스러지고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를 잔가지는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나무 위 눈을 A의 머리 위로 조금씩 떨구었다.

 

문득, A는 긴 갈색 머리를 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 여자?

 

그는 새하얗게 빛나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고, 그 태양같은 웃음에 A는 미묘한 훈기를 느꼈다.

 

이리 와요!’

 

빙글 돌면서 또 누군가가 A와 눈이 마주쳤다.

 

밀짚같은 머리카락을 꽃과 함께 틀어올린 사람이 즐겁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리 와!’

 

A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갔다.

 

열 명이나 될까 싶었던 그들은 어느샌가 A의 존재를 알았고, 그들의 비밀스러운 연회를 방해받았음에도 오히려 깔깔거리면서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A는 코까지 덮은 목도리를 내렸다.

 

머리에 눌러쓴 모자를 벗어 머리를 공기중에 헝클어뜨리자 누군가의 손이 머리 위에 커다란 화관을 씌워 주었다.

 

한겨울의 시린 공기처럼, 햇볕이 A의 몸에 내리쬐었다.

 

그 따뜻함이 폐를 채우고 서서히 서서히 피부에 스며들었다.

 

눈밭에 오래 있다 보면 추위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A는 어느 순간엔가 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어느 날.

 

나무를 베러 온 벌목꾼은 보았다.

 

눈밭 사이에서.

 

목도리가, 모자가, 장갑이, 외투가, 양말, 스웨터, 눈 신발까지 하나씩 떨어져 있는 것을.

 

 

[라반차 오라틸로] 친구가 집에 놀러왔어요

2020. 7. 24. 10:45 | Posted by 호랑이!!!

잘 있었어?”

 

빽빽한 침엽수림의 초입에서 흰 머리의 청년이 검은 늑대에게 말을 걸었다.

 

검은 늑대는 코를 씰룩, 움직이더니 알타이르의 주위를 빙빙 돌며 냄새를 맡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철썩.

 

으악!”

 

사람이 견디기에는 다소 세차게.

 

꼬리로 얻어맞은 알타이르는 반바지 아래의 다리를 쓱쓱 문지르다가 커다란 박스를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이거 다 갖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허리가 끊어질 거 같다고. 그런데 그렇게 무시무시한 걸 휘둘러서-”

 

아닌 게 아니라 허리가 정말 아팠다.

 

내 귀엽고 폭신폭신한 꼬리가 뭐? 어린이 늑대한테는 좀 거칠었던 모양이지?”

 

그런 걸 폭신폭신하다고 말하는 거야, 가슴?”

 

아니 이 어린이 늑대가?!”

 

라반차는 술과 음료수로 가득한 종이 박스를 들어 올리다가 알타이르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아아아 아파! 가슴! 가슴 늑대!”

 

아니 이 녀석이 아직도!?”

 

다른 쪽 귀도 쭈욱 잡아당겨졌다.

 

으어아아 아파! 아파! 이 가슴! 가슴! 가슴!”

 

심지어는 꼬리도 잡아당기고 있다!

 

! 못된!

 

알타이르는 분노를 담아 하울링을 했다.

 

가슴!!!!!!!!!!!!!!!!!!!!!!!!”

 

벌떡.

 

알타이르가 몸을 일으키자 머리에서 조그만 털뭉치가 데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워우우우.... 끼엥?”

 

정신을 차려보자 머리에서 굴러 떨어졌는데도 잠에서 깨지 않고 그대로 곯아떨어진 강아지들이 분홍색 입을 뻐끔거리면서 잠꼬대를 했다.

 

머리만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제 앞에는 방금 꿈속에 나왔던 검은 늑대가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자고 있고 그 옆으로는 부숭부숭한 털감자들이 발을 허우적거리거나 입에 닿는 것들을 물면서 잠에 빠져 있었다.

 

방금 제 머리에서 굴러 떨어진 감자... 아니, 아기 늑대 한 마리의 입가에 물린 흰 털을 조심스럽게 빼 주며 알타이르는 어쩐지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종일 뛰고, 엎치락 뒤치락 구르고, 오후에는 덥길래 다같이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간식 먹었고, 그러다 누가 누구의 고기를 뺏어 먹어서 싸우는 게 일이 커져서 한 마리씩 다 떼어 놓아야 했었지.

 

그리고 아이들이 들이받아서 넘어진 책장도 정리하고 낮잠 잘 이불도 털어주고 청소도 해야했고 또...

 

유달리 바빴던 일과를 떠올리자 멀미가 날 것 같다.

 

알타이르는 하얀 털 달린 귀를 퍼득였다.

 

눈을 반짝이면서 짤막한 다리로 뒤뚱뒤뚱 뛰는 것만 봤더니 그 행복한 표정이 마치 악몽 같았는데 이렇게 몽글몽글하게 모여 자는 모습을 보니 천사가 따로 없다.

 

솜털이 복슬복슬한 꼬마들이 제 몸에 몸이며 엉덩이를 붙이거나 주둥이 쪽 털이 빠진 청소년 꼬마들이 다리를 턱 얹고 자는 모습이 참.

 

푹신한 베개를 끌어다 턱 아래 괴고, 알타이르는 아이들을 말리기는커녕 장난질을 부추겨댔던 늑대 한 마리를 보았다.

 

편안하신지 배도 까고 이따끔 뒷발질을 하며 자는 모습이 얄밉기 짝이 없다.

 

하긴 실제로도 짝이 없구나.

 

라반차가 들었다면 이건 자발적인 독신생활이라고 펄펄 뛰었을 법한 말을 생각하며 알타이르는 뒷발로 그 새까만 등허리를 걷어찼다.

 

워어어엉!? ! !”

 

벌떡 일어난 라반차가 주위를 홱홱 둘러보았지만 이미 알타이르는 눈을 감은 뒤였다.

 

옆에서는 까만 늑대가 월월 짖고 있었지만, 어쩐지 아주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탈렌 O. 드라크와 후작

2020. 7. 22. 01:35 | Posted by 호랑이!!!

낮게 쉿쉿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메운다.

 

그 자만 없어지면 그 아가씨의 마음에 걸리는 게 없을 거야.

 

쉬이잇 쉿.

 

당장은 슬퍼할지도 모르지만, 아가씨는 너와 영원히 함께하며 기뻐하겠지.

 

다 꺼져가는 장작불을 조명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이 열려있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꽉 눌러 닫았다.

 

다시 낮은 쉿 소리가 들렸다.

 

영원히-

 

그 사람은 서성거렸다.

 

다시 서성거리고, 또 서성거리고.

 

그러다 창문을 벌컥 열고 한 손에는 도끼를 든 채 뛰쳐나갔다.

 

마지막 남은 불씨는 서서히 재 속으로 잠겨 사라지고 흘러나온 연기 사이로 얼핏 눈동자가 빛나는가 하더니 벽난로 뒤의 그림자에서 길쭉한 인영이 나타났다.

 

얼굴이며 목에는 꽃이 밝은 색으로 그려져 있고 손에는 뼈 모양이.

 

붉은 색이 섞인 복숭앗빛 눈동자는 가늘고 길게 열려서 즐거운 듯이 휘어졌다가 다시 스르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가느다랗고 길쭉한 꼬리가 부드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 드라크와 후작의 성에서는.

 

후작니이이이이임!!!!!!!!!!”

 

아이고오.”

 

탈렌은 손을 들어 귀를 꽉 막았다.

 

여기서 뭘 하시는 거예욧!? 또 일 하셨지요!!! 인간 유혹하는 거!!! 그런 일은 저희 같은 부하들에게 맡겨달라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수수한 검은 원피스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쬐끄만 악마가 저 멀리서부터 두다다닥 달려왔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하자 탈렌은 그 악마의 겨드랑이에 손을 들어 한 바퀴 비잉 돌려주었다.

 

으아아아-”

 

그래 그래.”

 

거대한 도마뱀 모습에 셔츠, 검은 조끼를 걸친 탈렌은 목에 감았던 검은 끈을 풀어 한 쪽 끝을 손에 쥐었다.

 

끈은 구불구불 뻗고 얽히더니 단단하게 늘어져 바닥을 딱 소리 나게 짚었다.

 

디쿤과 사비는?”

 

탈렌이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묻자 기둥 뒤 그림자에서 스르륵 작은 주둥이가 나와 대답했다.

 

아직 남아있습니다.”

 

얼마나?”

 

디쿤님의 몸통, 사비님의 다리와 꼬리가 남아있습니다만 조만간 상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 식사는 그걸로 하지. 남은 것은 고용인들 식사로도 만들어서 나눠줘.”

 

그러자 앞치마를 두른 악마는 가감 없이 활짝 웃었다.

 

야호! 후작님 만세! 만만세!”

 

많이 먹고 키 크렴, 데일라.”

 

후작님보다 더 커질 거예요!”

 

탈렌은 가슴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걸쳤다.

 

“...”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에도 이 키였다는 건 말하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이렇게 안 클까.

 

탈렌은 다시 안경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데일라는 자신이 청소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탈렌의 손을 꼭 잡고 집무실로 이끌었다.

 

 

 

 

전편: blog.naver.com/yesjawoon/220832152636

 

 

[스카이림]트친이 주는 한문장으로 글쓰기 해시

2020. 7. 20. 08:42 | Posted by 호랑이!!!

떠난 이들을 위해 건배!

 

음유시인의 북이 울렸다.

 

화이트런 여관의 주인 이솔다는 카운터에서 불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았다.

 

새로 보이는 얼굴은 없어진 사람들의 자리를 메우고, 마치 어제 보았고 그제 보았던 사람들처럼 누구는 노래하고 누구는 술을 마시고 누구들은 주먹다짐을-

 

잠깐, 가게 안에서 싸우지 말아요!”

 

여기저기에서 마을이며 성곽을 수리하느라 물자가 팽팽 돌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돌고 돈다.

 

제국은 떨어졌고 스톰클락이 일어서며 온 스카이림에 만연했던 차별도 한풀 꺾였다.

 

그러니 그동안 성곽 안으로 발도 들여놓을 수 없었던 카짓 상인들은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물건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댔고 화이트런에 이르러서는 그간 친분을 쌓았던 이솔다의 여관에서 제일 좋은 방을 예약해두고 다녔다.

 

이솔다.”

 

고양이를 닮은 인간, 카짓 상인인 사아드가 카운터 앞에 앉았다.

 

뭘 드릴까요, 사아드?”

 

우선 벌꿀주를 한 병 부탁합니다, 그리고 쇠고기 구이도.”

 

사아드는 희끗한 털을 가지고 있어서 이솔다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노인인 줄 알았었다.

 

그 말을 했더니 리사아드는 아주 크게 웃었었지.

 

술 마실 나이는 되었나요?”

 

이솔다.”

 

특유의 발음이 타박하는 듯 한 소리를 내놓고 이솔다는 깔깔 웃으면서 벌꿀주와 구운 쇠고기, 훈제한 물고기를 접시 위에 담았다.

 

물고기는 제가 사는 걸로 하죠.”

 

당신의 제안에서 따뜻한 모래 냄새가 납니다.”

 

사아드는 손짓하여 이솔다의 귀를 가까이 했다.

 

팔크리스에서는 마을의 피해가 적으니 목재를 좀 싸게 내놓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우리와 우호적인 친분을 나누어준 그대가 여관을 수리하겠다고 한다면 이 카짓은 기꺼이 목재를 날라오리라.”

 

이솔다는 여관을 둘러보았다.

 

루시아는 그의 재산을 가로챈 삼촌네가 전쟁통에 죽어서 농장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였다.

 

여관에서 일감을 찾던 용병들도 당분간은 트롤이나 늑대, 거인 토벌로 떠났다가 더 많은 돈을 들고 돌아오겠지.

 

일손을 좀 고용하면...”

 

은 파는 할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당분간은 병사들을 요역에 동원했다가 점차 수를 줄인다고 하였으니 돌아올 사람은 더 많아지겠지.

 

윈드헬름의 여관처럼 요리사를 따로 두고, 청소할 사람도 하나 두고.

 

이솔다는 더 넓은 여관을 떠올렸다.

 

커다란 벽난로가 공기를 덥히고 말끔하게 빛나는 바닥과 벽.

 

기둥에는 돋을새김, 문고리에는 오목새김.

 

해머펠에서 들여온 향긋한 술과 맛있는 음식.

 

지나간 날들이여.

 

음유시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람들은 잔을 들어올렸다.

 

다가올 날들을 위하여!”

 

이솔다는 맥주병을 들어 리사아드의 벌꿀주 병과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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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1년 사시사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지만 유독 겨울에는 뱃사람들조차도 나오는 것을 꺼려해서 벽 너머로 귀를 기울이면 오직 바람 소리만 들렸다.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바위를 깎아내며 세차게 내는 휘파람 소리.

 

파도 소리.

 

저들끼리 부딪치고 들이박아 나는 기괴한 소리.

 

그리고 금속 같은 소리가 난다.

 

바다에서 얼음이 솟아오르고 바람의 군단이 무시무시하게 휘두르는 칼날이 막힌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 이 땅의 인간을 사랑한 얼음의 신이 있었다.

 

그가 파도를 밟고 팔을 휘두르면 얼어버린 바닷물이 날카로운 바람을 쳐 낸다.

 

군단은 땅에게로, 신에게로 바람을 쏘고.

 

신은 바다를 얼려 막고 또 막는다.

 

겨울 내내 그 싸움은 그치지 않아서 혹여 그 바다로 가게 되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어버린 파도가 암초에 부딪혀 바스라지는 것을.

 

 

꼬마친구 냐쨩

2020. 7. 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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