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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하랑마틴/오메가버스] Mine 9

2019. 8. 8. 16:04 | Posted by 호랑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티엔은 일주일 치의 방값을 더 지불했다.

 

재단에 연락했더니 당장 달려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마틴이 애써서 진정시켰고 하랑은 약에 적응했는지 약 전에 죽이라도 먼저 먹었다.

 

티엔과 마틴은 우편으로 받은 서류를 처리하거나 전화기에 매달렸고.

 

그렇게 첫 히트가 일어난 후 사흘이 지나고 하랑의 열이 가라앉았다.

 

하랑의 뱀, , , 호랑이는 며칠 아픈 하랑의 곁에 있는가 싶더니 몸이 나아진 것 같자 새로운 환경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티엔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방바닥에서 작은 동물의 뒷덜미를 집어 치우는 것 같은 행동을 간혹 했다.

 

하루이틀은 그러려니 했지만 그게 사흘이 되자 티엔은 하랑의 방문을 열어젖혔고 잘만 자던 하랑은 난데없는 방문에 억지로 눈을 비벼 떴다.

 

뭐요?”

 

나가라.”

 

남의 방에 와서 갑자기 축객령이라니?

 

뭘 잘못 들었나?

 

하랑은 다시 물었다.

 

뭐요?”

 

나가라고 했다.”

 

이 양반이 미쳤나, 뜬금없이 왜 와서 이런담.

 

자신이 마틴 형도 아니고, 아니, 마틴 형도 모르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안다고 이렇게 다짜고짜인지.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말도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뭐요.”

 

시비같은 어투에 티엔도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나가-”

 

정티엔, 그렇게 말하면 남이 어떻게 알아요?”

 

동년배라고 종종 홀든네 첫째를 만나더니 말투까지 옮았나, 하고 마틴이 운을 떼었다.

 

요즘 티엔이 허공에 손질을 해서...”

 

“...네 개나 쥐나 뱀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 때문이다. 바다 바다 했으니 나갔다 와라.”

 

... 혼자?”

 

그래.” “저랑?”

 

티엔과 마틴이 동시에 말하더니 힐끗 서로를 쳐다보았다.

 

나랑.” “혼자-”

 

또 동시에 말한다.

 

뭐냐.” “뭐예요.”

 

또 동시에.

 

이건 또 무슨 코미디인지 생각하다가 하랑은 작은 가방에 주섬주섬 노란 부적을 넣었다.

 

우리 애들이랑 갔다 올게.”

 

나도 같이 간다.”

 

, 저도!”

 

저 양반들 일이 급한 거 아니었나?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그야 저 사람들이 감당할 일이고.

 

좀 있자니 둘이 뭔가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하랑으로서는 굉장히 오랜만에 호텔 밖에 발을 디디자 쨍한 햇볕이 피부에 닿았고 방 안에서보다 강렬하게 바다 냄새가 난다.

 

이미 붉은 개들은 자기들끼리 뒤엉키고 장난치며 바다로 달려갔고 거대한 호랑이는 머리에 쥐를 얹고 발을 옮겼다.

 

은근슬쩍 다리에 감기는 청사도 모른척하며 하랑이 발을 옮기자 넓은 바다가 눈에 담겼다.

 

겨우 이런 것에 더는 설레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하랑은 달려가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하랑, 안된다!”

 

하랑 군, 준비운동! 준비운동!”

 

아라벨라 25

2019. 8. 7. 03:46 | Posted by 호랑이!!!

 

비욘 자작이 아라벨라의 가슴팍을 힐끗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여자들은 말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지요. 원래 백마가 더 까다롭습니다.”

 

아라벨라가 그 손을 보지도 않고 일어나자 비욘 자작은 이를 꽉 다물었다가 다시 히죽 웃으며 아라벨라의 허리를 쓸어내렸다.

 

제가 털어드리겠습니다.”

 

반사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지만 차마 때릴 수 없었다.

 

바이언드 백작이 이 쪽을 빤히 보고 있었기에.

 

그러자 신이 난 비욘 자작은 아라벨라의 허리를 잡고 엉덩이로 손을 가져가 밀어올리려고 했다.

 

그만.”

 

저는 아라벨라 아가씨를 도와주려는 것뿐입니다.”

 

미티우 영애가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나?”

 

, 저 백마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까다로운 말 보다는 성질 순한 밤색 말이 좋지 않겠습니까. 말 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백마가 갈색보다 성질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 아가씨가 지금 넘어지기도 했겠다, 백마 고삐를 이리 주십시오.”

 

저 아가씨라고?

 

아라벨라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가 자신의 신발 자국이 비욘 자작의 발등에 찍힌 것을 보았다.

 

말 정도는 탈 줄 압니다.”

 

지금 궁 안에 사람도 많은데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히죽히죽 웃는 얼굴에 자연스럽게 허리로 손이 갔지만 오늘 아라벨라는 검도 총도 무엇도 가져오지 않았기에 다시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백마가 성질이 좋지 못하다는 건 처음 알았군요.”

 

아 뭐 말 안 타는 사람들이야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자들은 책에 나오는 기사들이 하얀 말을 타고 있으니까 다 하얀 말을 보는 모양이지만 자고로 가장 순한 말은 대개 밤색이고 눈을 보면 눈도 둥글둥글 순한데 조용하고 사람을 보면...”

 

기르는 사람이 잘못 길러 놓고 말을 탓하다니.”

 

렐리악 영애. 모르면 잘 들어야 할 거 아닙니까.”

 

아라벨라는 비욘 자작을 힐끗 보다가 백마의 등에 손을 얹고 훌쩍 가볍게 올라탔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배를 차며 고삐를 들자 좁은 곳에서 백마는 번쩍 앞다리를 들어올렸다.

 

말발굽이 올라갔고.

 

비욘 자작은 팔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아아악! 아아아아악!!! !! 아아악!!!!”

 

“...푸핫.”

 

사나기 공주는 주먹 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비욘 자작은 악악 비명을 지르다 바이언드 백작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고 여전히 머리보다 높은 곳에 말발굽이 있자 움찔 움츠렸다.

 

이리로, 뒷걸음질로 나오거라.”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라벨라는 하얀 말이 두 발로 서 있게 하다가 폴짝 뛰어 방향을 틀게 했고 느긋하게 발을 옮겼다.

 

사나기 공주님, 시간이 지체되어 죄송합니다.”

 

재미있는 것을 보아 즐거웠네. 어서 갈까.”

 

킥킥거리는 웃음소리에 비욘 자작이 귀까지 빨개졌다.

 

“...너는 페데사 공작님의 소풍에 오지 말거라.”

 

바이언드 백작은 혀를 찼다.

 

왜요!”

 

사납게 돌아보는 조카는 나이가 저만큼이나 먹었는데도 아직 멍청했다.

 

그리고 아라벨라한테 잘 하고.”

 

내가 뭘. 여자란 자고로 웃는 얼굴로 예, , 하면 되지요.”

 

그분이 너한테 그 아가씨 마음을 얻어 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칵 퉤.

 

비욘 자작은 땅에 대고 침을 뱉었다.

 

말 걸어주지, 처음 봤을 때 산책도 가자고 해 줬지, 자기한테 맞고 나서 때리지도 않았지.

 

이만하면 상냥하고 다정하고 착한데.

 

게다가 잘생겼고, 허벅지도 탄탄하지.

 

비욘 자작은 제 허벅지를 툭 쳤다.

 

비싼 척 하는 거예요.”

 

바이언드 백작은 조카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가 등을 툭툭 두드렸다.

 

나중에 돈이랑 공연 티켓을 줄테니 노력 좀 해라. 여자란 자고로 오냐오냐 떠받들어주면 다 넘어오게 돼 있어. 칭찬도 좀 해 주고.”

 

, 비욘 자작이 다시 침을 뱉었다.

 

그러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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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24

2019. 7. 29. 21:09 | Posted by 호랑이!!!

 

사나기는 마굿간으로 갔다.

 

마구간지기가 의자 위에서 하품을 하다 벌떡 일어났다.

 

이를 어쩌지요, 지금 두 분께서 타실 말이 없습니다.”

 

없다고?”

 

델라 미티우 영애와 기드온 공작과 그 시중인들이 말을 먼저 빌려서요.”

 

그럼 저 말은?”

 

아라벨라가 갈기를 땋은 말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저 말은 안 돼. 얼마 전에 그림자 숲에서 사로잡아 온 야생마인데 사납기 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는 여기 있어야겠구나.”

 

그나마 나의 말은 있건만, 하고 사나기 공주가 손을 뻗자 연한 금색을 띠는 말이 다가와 코를 비빈다.

 

저 말이 다섯 마리는 되건만 미티우 영애나 기드온 공작이 오면 한 마리만 양보해 달라고 해야겠구나.”

 

아라벨라는 공주를 돌아보았다.

 

공주 정도 되면 신분을 내세워 말을 가져가도 될 텐데.

 

어쩌면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자나미 왕자를 보았을 때는 이 나라의 미래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둠 속에서 발광해파리라도 한 마리 본 기분이다.

 

희미한 녀석이지만.

 

그 때 문이 열리고 남자가 둘 들어왔다.

 

하나는 아라벨라가 아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아라벨라를 보자 눈가를 씰룩이더니 우스꽝스럽게 허리를 굽혔다.

 

공주 마마를 뵙습니다.”

 

준우승남.

 

사나기 공주 마마를 뵙습니다.”

 

아라벨라는 기억을 살렸다.

 

비욘 자작에게는 바이 뭐뭐라는 숙부가 있다고 들은 거 같기도 하고.

 

나이차도 있어 보이는데다 미묘하게 닮았으니 아마 그 사람 같다.

 

바이언드 백작이군.”

 

바이언드였구나.

 

렐리악 영애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신 것 같군요.”

 

아라벨라가 대꾸하자 비욘 자작은 어깨를 으쓱하며 우스운 표정을 지었다.

 

만남의 회포는 길게 풀고 싶지만 지금 좀 바빠서요. 기드온 임펄 루 페데사 공작님이 말을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바이언드 백작은 비욘 자작을 돌아보았지만 비욘 자작은 여전히 히죽이죽 웃고 있었다.

 

지금 공주님 앞에서 공작을 높여 부른 것입니까?”

 

아 뭐, 그렇게 되었네요. 마음 상하셨습니까?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사나기 공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다가 쯔쯔 혀를 찼다.

 

이 나라 왕권이 바람 앞 촛불과도 같구나. 한낱 촌의 자작이 왕의 딸을 우습게 보다니.”

 

네에? 저는 그럴 의도가 아니옵고..!”

 

자네 의도는 상관없어. 자네는 지금 나의 아바마마를 모욕하였네.”

 

아닙니다! 어쩌면 그렇게 곡해해서 듣습니까?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 내 앞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인가?”

 

아니 저는! 하고 자작이 입을 다물었다.

 

바이언드 백작이 앞으로 나섰다.

 

제 조카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벽지에서 말이나 타다 보니 예의에 무지합니다.”

 

그럼 왕궁에는 뭐하러 데리고 온 건가? 일곱 살 정도 되었나?”

 

“...사실은, 올해로 서른 셋이 된답니다.”

 

바이언드 백작이 한숨을 쉬었다.

 

아라벨라는 백작의 구두가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 자작의 발등을 밟는 것을 보았다.

 

용서를 내려 주지. 대신 이 말은 한 필 가져가겠다.”

 

사나기 공주는 금빛 말 위에 올라타고 새하얗게 반짝이는 백마의 고삐를 아라벨라에게 넘겼다.

 

아라벨라가 올라타려는 순간.

 

으악!”

 

아이구 저런, 괜찮습니까.”

 

분명 뭐가 걸렸는데!?

 

아라벨라는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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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23

2019. 7. 23. 18:19 | Posted by 호랑이!!!

 

어마마마를 뵙습니다.”

 

마마를 뵙습니다.”

 

방금 인상 쓴 거 같은데

 

아라벨라는 사나기 공주를 힐긋 눈짓하면서 왕비에게 무릎을 굽혔다.

 

올해로 마흔 되는 왕비는 살짝 희끗해진 갈색 머리를 길게 땋아 틀어 올리고 허리를 졸라맨 디자인의 녹색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가냘프고 우아해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허리가 얇지?

 

옆은 처음 보는 얼굴이구나, 사랑하는 공주.”

 

보이진 않았지만 공주가 인상을 더 깊게 썼다.

 

그러나 고개를 들 때 공주는 가면처럼 완벽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셰필라 렐리악의 딸, 아라벨라 렐리악입니다, 어머니.”

 

혼자 왕궁으로 온 것이더냐?”

 

아라벨라도 명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동생과 함께 왔습니다.”

 

이 몸은 쿠트 카 아메론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서로 어울릴 생각은 않고 여자 따로 남자 따로 행동을 한다지. 그런 행실은 결국 화합을 이루지 못해.”

 

그러하옵니다 마마, 하고 둘이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자 왕비가 아무것도 끼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렐리악 영애는 언제까지 수도에 있을 생각이지? 괜찮다면 내일이나 모레 나의 초대를 받아주겠나?”

 

어마마마, 렐리악 영애는 저와 내일 영애들의 모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있는 건 아니잖니.”

 

하루 종일 있을 것입니다.”

 

쿠트 왕비의 손에서 부채가 촤악 소리를 내며 펼쳐졌다.

 

그럼 모레를 내가 약속해야겠구나. 모레 점심 즈음 나에게 오거라. 그리고, 지낼 곳이 지금 좁다고 들었는데 황궁의 손님방이라도 좋다면 내어주겠다.”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하지만 저희의 분수에 맞지 않으니 부디-”

 

오게. 사나기, 방을 안내해주도록 하거라. 자나미 녀석을 시키고 싶다만 이 애는 또 어디선가 놀고만 있겠지.”

 

삼일 내내 불편한 옷을 입고 다니라고? 게다가 가져온 옷이 두 세 벌 밖에 없는데?

 

하지만 아라벨라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만족한 표정으로 왕비가 떠나자 사나기 공주가 혀를 찼다.

 

“...아무튼 내일 영애끼리 모임이 있으니 참가하게.”

 

, 공주마마.”

 

그놈의 마마 소리는 되었어. 사나기 공주님이 좋겠노라.”

 

사나기 공주는 왕궁 안을 구경시켜 주었다.

 

너른 정원이나 도서실이 있고 집무실이 있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쨍그랑쨍그랑 소리와 무언가 부서지고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한 방도 몇 개 있었다.

 

어린 왕족을 위한 놀이방이나 갑옷 따위를 전시해둔 방도 있고 어디를 가나 하늘과 천국을 테마로 꾸며진 방은 보석이나 금, 은으로 장식되었다.

 

사나기 공주는 자신의 별채로 데려가겠다며 마차를 불렀다가 지금은 결혼식 준비로 마차와 말을 꺼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민들에게도 공개되는 결혼이기 때문에 여기저기 설치된 마도구 때문이라나.

 

많이 멀다면 말을 타시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사나기가 홱 돌아보았다.

 

말을... 좋아, 그러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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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22

2019. 7. 19. 01:53 | Posted by 호랑이!!!

 

이어진 티타임은 서로를 살펴보는 시간에 가까웠다.

 

비록 자나미 왕자는 마르틴에게만 관심을 가졌지만.

 

왕자가 아라벨라에게 보이는 예의와 관심은 왕자가 먼 영지의 아가씨에게 보이는 무난한 것일 뿐.

 

얼굴은 잘생겼지만, 저 정도 잘생긴 건 렐리악 백작령에도 하나 있었다.

 

아라벨라는 고개를 돌리다 사나기 공주와 눈이 마주쳤다.

 

이 쪽은 너무 과해

 

이 사람에게 발광 마법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을 반짝이며 빤히 쳐다본다.

 

사람이 6초간 눈을 깜박이지 않고 보면 뭐랬는데.

 

아라벨라는 원래 다른 것을 보려고 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왕자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공주는 자신에게 관심이 너무한가.

 

중간이 없다, 살려주세요 할머니.

 

아라벨라는 마음속으로 바실리를 찾고는 공주에게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돌렸다.

 

, 공주님?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니, 지금 묻히는 중이라네.”

 

? 뭘요?”

 

내 사랑.”

 

그리고 윙크.

 

아라벨라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 감사합니다...”를 입에 올릴 수 있었다.

 

비록 마지막의 는 질문처럼 끝이 한없이 올랐지만.

 

그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똑똑 두드리는 소리는 절도 있었으나 꽤나 다급했고 요란해서 허락이 떨어지니 문이 홱 열렸다.

 

시종장이다.

 

자나미 왕자님, 사나기 공주님. 지금 결혼식장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왕족들은 편히 있으라며 아라벨라와 마르틴의 잔에 음료를 채워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방안에는 마르틴과 아라벨라만 남겨졌고 마르틴은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동그란 이마에 손을 붙이고 이리저리 멀리를 살펴보더니 쪼르륵, 마르틴은 자리로 돌아왔다.

 

마르틴이 알았다면 나 이제 애 아니거든!’이라고 했을 수많은 수식어를 붙이며 아라벨라가 미소를 지었다.

 

여긴 참 예쁘지? 뭔가 마음에 들어?”

 

마르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동의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조금 이상해.”

 

뭐가?”

 

그동안 역사서나 왕실 건물에 대한 용도를 읽어 보았는데, 왕궁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건 다음 대 후계자나 왕밖에 없어. 후계자가 아닌 왕족도 예외는 아니잖아.”

 

아라벨라는 마르틴이 본제를 꺼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왕궁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이상하고, 그걸 왕자랑 공주가 손수 처리하는 게 더 이상해. 여태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아무리 델라? 그 사람과 공작의 결혼이라고 해도.”

 

공작의 전적이 좀 많잖아. 왕이 아끼는 게 아닐까?”

 

벨라 누나. 우리 나라에 공작은 둘 뿐이야. 하나는 현재 임금님의 동생이고 다른 하나는 남작가 출신임에도 한 일이 많아 공작위에 올려준 페데사 공작이지.”

 

마르틴은 아라벨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나미 왕자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어. 페데사 공작을 이런 때 왕궁에서 결혼시키면 다음 후계자로 페데사 공작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려.”

 

마르틴은 머리가 좋다.

 

아라벨라는 별 생각 없이 굴었던 것을 반성하며 마르틴의 귀에 속삭였다.

 

그런데 자나미 왕자가 한 게 없어?”

 

방 밖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며 사나기 공주와 자나미 왕자가 들어왔고 마르틴과 아라벨라는 뒤에서 이야기하다 찔린 사람들처럼 과하게 웃는 얼굴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급한 일이 생겨 둘을 놔두어 버렸군.”

 

저희는 괜찮습니다. 덕분에 왕궁을 볼 수도 있었지요.”

 

아라벨라가 말하자 사나기가 손을 내밀었다.

 

왕궁이 비싼 돌들로 만들어지기는 했지. 좀 더 자세하게 구경하겠나?”

 

아라벨라가 거절할 틈도 없이 사나기 공주는 아라벨라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마르틴은 저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클 자나미를 올려다보았다.

 

자나미는 폭풍처럼 뛰쳐나가 채 닫히지도 않은 문을 보며 웃었다.

 

마르틴의 눈에 그것은 비웃음이다.

 

하여간 여자들이란. 반짝이는 것엔 사족을 못 써.”

 

그리고 마르틴은 굳었다.

 

할머니가 돌아온 후 그 백작저에서는 누구든 누구에게든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한 번도 못 들었는데.

 

저 말에 악의가 있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자나미가 아라벨라를 낮잡아보고 있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기에 마르틴은 손이 하얗게 질리도록 옷을 꽉 잡았다.

 

누나는.. 아라벨라 누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하지만 자나미 왕자는 마르틴의 침묵을 다른 것으로 해석했는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등을 툭 쳤다.

 

누나가 어릴 적에 겁을 많이 준 모양이지? 너무 무서워하지 말게. 어차피 이제 힘도 자네가 더 세졌을 거고, 여차하면 한미한 집에 시집보낸다고 하면 덜덜 떨면서 자네 말을 들을 거야.”

 

한미한 집에... 시집이요...?”

 

그래. 지참금도 없이 보낸다고 하면 더 효과가 있겠지. 아직 자넨 어리니 여자 다루는 걸 모르겠어? 내가 나이도 좀 있으니 알려줘야겠는걸?”

 

자나미가 마르틴의 어깨에 팔을 감았다.

 

아직 마르틴은 잘 몰랐지만, 느낀 것은 혐오였고.

 

당장 팔을 털어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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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14. 12:41 | Posted by 호랑이!!!

 

금과 은을 녹여 테두리를 만들고 은은한 푸른빛과 섞인 구름과 천사들이 천장에 그려져 있다.

 

붉은 색으로 칠한 벽지에 뜬 것은 금색 해이고, 푸른 색으로 칠한 벽지에 뜬 것은 은색 달이고.

 

창문에는 다채로운 색유리를 짜맞추고 등은 요정이나 해, 천사 모양이다.

 

마르틴은 벽에 박힌 금과 보석가루를 살짝 쓸어보다가 아라벨라가 툭 치자 손을 멈추었다.

 

렐리악의 두 분이 오셨습니다.”

 

안내하던 시종장이 문을 두드리며 방문을 알리고 문이 활짝 열렸다.

 

듭시랍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두 명의 사람이 넓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붉은 색으로 투명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은 아래의 진한 금색 눈과 더불어 빛났고 머리며 몸에 감은 보석들은 사람을 돋보이게 했다.

 

셰필라 드라고낙 렐리악의 장녀 아라벨라 샤틸리 렐리악입니다.”

 

셰필라 드라고낙 렐리악의 장남 마르틴 셰필라 렐리악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묘한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와 망토를 입은 쪽이 먼저였다.

 

자나미 블랙스캣 일로냐 알퀼레오 말리우 비 아메론.”

 

사나기 라즈켓 일로리오 알퀼레나 멜리테 수 아메론.”

 

일로리오 대공작이며 말리우 후계이며...”

 

다들 날 사나기 공주라고 부르네.”

 

그러자 자나미가 사나기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잖아!”

 

네 얘기는 재미 없어. 어디어디 대공작이고 후계자고 무슨 무슨 직위를 가지고 있으며 어디의 주인이고 하는 얘기만 한참이잖아. 어차피 잔이라고 불러달라고 할 거면서.”

 

맞아! 하지만 말을 끊다니 사나기는 바보야.”

 

자나미는 멍청이야.”

 

마르틴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라벨라보다 한두어살 많아 보이는 공주와 왕자는 마르틴과 아라벨라 사이에서도 안 하는 격의 없는(최대한 예의바르게 표현했을 때) 말과 행동을 보였다.

 

이 일에 익숙한지 시종장은 아라벨라와 마르틴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지요. 마실 것을 내오겠습니다.”

 

... , .....”

 

.”

 

시종장이 당겨주는 의자에 앉고 널찍한 방 안에 넷만 남자 공주와 왕자의 고개가 다시 이 쪽으로 돌아왔다.

 

아라벨라가 봤을 때는 공주가 이긴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사나기, 저 쪽은 잔. 공주나 왕자를 뒤에 붙여도 되네.”

 

아라벨라는 손가락을 살짝 들어 아직도 벌어진 마르틴의 턱을 닫아 주었다.

 

마르틴 셰필라 렐리악...입니다...”

 

들었네.”

 

음료와 과자가 나왔다.

 

레몬은 좋아하는가? 이번에 들어온 것이 향이 너무나 좋기에 주방장이 말리고 절여 놓았지.”

 

향신료 향이 나는 유리 저그는 얼음으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고 아래를 보니 보글거리는 탄산이 바닥에서 표면까지 연이어 상승한다.

 

송글송글 맺히는 물방울은 주르르 떨어져서 하얀 레이스를 적셨다.

 

네에, 좋아합니다.”

 

아라벨라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자나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영애 건 내가 따라주지. 파티에서도 차 모임에서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으니 궁금해 죽겠어.”

 

변방의 영지에서 지내느라 수도의 분들과는 연이 없었는데 이렇게 두 분을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은테를 두른 잔에 레모네이드가 찼다.

 

일어선 김에 자나미가 레모네이드를 나머지 잔에도 채웠다.

 

놀랍군요. 저는 왕자님이 따라주실 줄은 몰랐네요.”

 

영애한테 내가 다정하다는 것을 좀 어필하고 싶었어.”

 

자나미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둘은 지금 바실리 전 렐리악 백작령에 있었다고 들었네. 거기 산이 아주 멋지다지.”

 

사나기 공주가 입을 열었다.

 

그러합니다.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온갖 식물이 자라며 푸른 바람이 불지요.”

 

그러자 자나미 왕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른 바람이라니! 아주 시적이야. 렐리악 부인이 말하기를 영애는 활달하다고 하더니 역시 남의 말만으로는 알 수 없어.”

 

렐리악 부인이라면 사피야를 말함인가.

 

마르틴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활달하다는 말은 보통 여성 앞에는 안 붙이니까...

 

그러니까 어머니가 저 요란한 왕자한테 누나 뒷담을 했다는 이야기야?

 

어머니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힐끗 올려다본 아라벨라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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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20

2019. 7. 12. 00:15 | Posted by 호랑이!!!

 

말 다섯 마리가 수도를 향해 떠났다.

 

이전에도 호위 임무를 맡은 적 있던 스파크는 이번에도 밤색과 하얀색의 얼룩말을 타고 맨 뒤에서 달렸고 맨 앞에는 새까만 흑마를 탄 슈체른, 그 다음은 구름처럼 하얀 데일라와 아라벨라가, 그 뒤에 마르틴과 프루던스가 달렸다.

 

황실에서 온 편지는 우선 렐리악 백작 저택으로 갔다가 렐리악 전 백작 저택으로 왔기에 거기에 씌인 날짜는 마차로 가기에는 지나치게 빠듯했다.

 

슈체른이 그 이야기를 듣고 수도 근처의 적당한 곳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다고 사양하는 바람에 며칠이나 우직하게 말을 타게 되었다.

 

그 중에 신난 것은 삐(혹은 낙트) 뿐으로.

 

마르틴의 가방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풍경이 지나가는 것을 삑삑 즐거워했다.

 

그나마 야숙은 하지 않았지만 마차 여행에서 걸리는 시간의 절반으로 시간을 단축한 다섯은 마침내 수도로 들어서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장 왕실에서 지방의 귀족들에게 제공하는 저택에 들어섰다.

 

저택은 거대한 담장 안에 총 다섯 개 건물로 나뉘어져 있는데 대개는 한 가족이 한 건물을 사용하지만 신년회나 망년회, 그 외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건물에 비해 사람이 많아 한 건물에도 네다섯 가족은 들어간다고 한다.

 

아라벨라도 어릴 때에는 한두 번 와 보았지만 신년회에 왔다가 감기를 심하게 앓은 뒤에는 셰필라(아버지)가 수도행을 금지시켰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것은 못 보았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아라벨라와 마르틴 일행에게 겨우 문 하나로 작은 방과 이어진 방만 하나 제공되었다.

 

무슨 행사라도 있나요?”

 

제공하는 식사 표에서 과일 항목에 동그라미를 치며 마르틴이 묻자 저택의 고용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세기의 로맨스가 결실을 맺으려고 하고 있답니다! 델라 아드무엘 미티우 아가씨와 기드온 임펄 루 페데사 공작님의 결혼식이 모레 황궁에서 이루어진답니다.”

 

미티우?”

 

아가씨와 도련님은 못 들으셨을 겁니다. 조그만 동네의 자작 집안이거든요. 수도에도 거의 못 왔고 행사에도 참가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페데사라면 알고 있다.

 

특유의 수완과 비상한 머리, 천재적인 검술 실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시국을 읽는 눈까지 있다고 하는 유명한 사람.

 

남작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한 것이 여섯 살, 남작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 일곱 살, 자기만의 사업을 벌였는데 대성공 한 것이 열 살,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일들을 해냈으며 왕이 위험했을 때 구해냈고 이루어낸 업적들을 바탕으로 페데사를 공작 지위로 올린 것이 겨우 그의 나이 스물의 일이다.

 

델라 아가씨와 기드온 공작님의 사랑 이야기와 각자의 이야기는 지금 수도 어디를 가든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델라 아가씨는 노래도 잘 부르고 만들어낸 노래도 몇 가지나 되는데 그 노래도 어디서든 들을 수 있지요. 오르골로도 팔고 있으니 구입하시면 되겠습니다.”

 

미티우 영애에 대해서 아는 거 있나?”

 

그러자 그 고용인은 눈을 반짝이며 델라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무언가)을 늘어놓았다.

 

귀족이지만 아래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늘 베풀고 힘들었던 때를 잊지 않으며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두 딸을 데려온 계모가 델라를 못살게 굴었고 괴롭히고 노예처럼 대했는데 항상 밝은 미소를 지으며 꿋꿋하게 노력했고 어떻고, 그러다 기드온 공작을 만났는데 둘이 첫눈에 반했으나 델라는 스스로의 모습에 부끄러워 도망을 쳤고, 기드온 공작은 델라 영애가 신고 있던 마법의 금 신발을 주워... 지금은 예비 공작부인이라 기드온의 성에서 있었는데 못된 시녀들이 괴롭히고 지체 높은 영애들이 박대하고 산적을 만나고 하는 어마무시한 일들이 있었으나 정조를 지키며 현명하게 행동하여 기드온 공작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일들이다.

 

많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늘 자신을 꾸미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상냥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지요. 요즈음 수도의 아가씨들은 다 델라 아가씨를 본받으려고 한답니다. 얼마나 멋진지 몰라요.”

 

그러다 하인은 무언가 떠오른 듯 헛기침을 했다.

 

내일이 결혼식 날이라 지금 수도는 시끌벅적합니다. 다른 영지에서도 결혼식을 구경하러 많이들 왔거든요. 여기 묵으시는 다른 분들도 저녁에는 수도를 구경하러 가거나 외식을 즐긴다고 하시는데 혹 두 분도 그럴 계획이십니까?”

 

어쩔래?”

 

마르틴은 눈을 반짝였다.

 

갈래!”

 

그렇다는군. 우리 식사는 괜찮아.”

 

스파크와 슈체른, 프루던스도 함께 가겠다고 했으므로 우선 그들은 긴 여행에 지친 몸을 씻고 휴식을 취한 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을 즈음에야 적당한 외출복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하인들이 마차를 꺼내주어서 그들은 적당한 것을 타고 거리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들리는 악기 소리는 꽤 다양했는데 바이올린이나 아코디언 같은 소리도 있었고 하프나 피아노 같은 무거운 악기까지도 들렸다.

 

마르틴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까지 수백은 될 악기는 어느 순간부터 한 가지 소리로 노래했고 다채로운 가락은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술에 취한 남자가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마차 옆을 지나갔다.

 

나비는! 잠들면! 꽃이 되고오오옥!!!”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동전 한 닢으로 팁을 주자 마부는 모자를 들어 인사했고 마르틴은 아라벨라의 손을 꽉 잡았다.

 

마치 개선 장군을 위한 것처럼 집집마다 색종이나 색색 천을 이은 깃발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집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줄, 빨랫줄, 어디든 작은 방울이나 장식 같은 게 매달렸다.

 

마력으로 불을 켠 장식용 전구는 조그맣고 흐릿한 것인데도 다양한 것들이 여기저기 매달려 온 도시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힌다.

 

횃불을 켜 묘기부리는 사람이 있고 장사꾼들은 노란색을 칠한 구두며 책이며 오르골, 장난감, 모형까지 늘어놓고 소리를 질렀고 악기 연주하는 사람들은 춤추는 사람들을 위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은 또 춤을 춘다.

 

기묘하게도 여자는 여자끼리.

 

왜 여자들이 자기들끼리 춤을 추는 거지?”

 

몸을 밀어내는 것 같은 거대한 악기 소리 옆에서 거의 악쓰다시피 묻자 지나가는 사람이 대답했다.

 

이제 여자들은 정조를 위해 자기들끼리 춤을 춘다!”

 

얼마나 아름다워! 멋진 일이야!”

 

저 아가씨들은 훌륭한 부인이 될 거야!”

 

이 수도에 온 이후 이상하게도 무언가가 아라벨라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마르틴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스파크는 질린 표정이고 슈체른과 프루던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슈체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부인 말고는 뭐가 되는데!?”

 

하지만 그 말에는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

이거 10편 내외로 끝내고 싶었는데 어느새 20이 되었습니다

왜 끝이 안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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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19

2019. 7. 7. 16:20 | Posted by 호랑이!!!

 

첫 번째로 바실리는 무기를 다루는 법을 익힐 것을 명령했다.

 

다행히 아라벨라는 말을 타고는 했기에 또래의 아가씨들보다는 근육이 있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성격에 맞았다.

 

창술, 검술, 사격.

 

바실리는 거기에 활까지 추가하고 싶어 했지만 아라벨라가 유리창을 다섯 개쯤 깨자 활은 되었다며 빼 주었다.

 

사격은 마탄을 이용한 총으로 하는 것인데 이 총이라는 물건은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왕의 허가 없이는 한 영지에 셋 이상 얻을 수도 없었다.

 

하나는 내 거고, 다른 하나는 네 거다. 원래 에멜라에게 주려고 했지만 네게 주게 되는구나.”

 

아라벨라는 바실리가 시키는 대로 자세를 잡고는 손을 쭉 뻗고 방아쇠를 당겼다.

 

길쭉한 몸체의 것은 시위를 세게 당기지도 않았는데 작은 방아쇠를 누르는 것만으로 멀리 있는 허수아비를 맞혔다.

 

이건 그래도 활보단 낫군.”

 

바실리는 며칠간 계속 갈아댔던 유리창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저쪽으로 조준을 했는데 어떻게 위로 갔는지 원...”

 

이건 못 들은 척 하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마르틴은 자신이 배우고 싶어하는 몇 가지를 제외하면 수업이 적어졌고 아라벨라는 몇 가지 늘어났다.

 

듣기로는 셰필라가 마르틴도 경제나 경영 등의 수업을 듣게 해 달라고 사람을 보낸 모양이었지만 바실리는 어린아이에게 그렇게 많은 수업이 필요 없다며 딱 잘랐다나.

 

그 대신 마르틴은 사피야에게 편지를 받았다.

 

오가는데 며칠씩 걸리는 편지에는 며칠 전의 날씨와 중요한 일이 적혀 있었고 가끔은 지친 채 적은 것인지 꽤 사무적이었으나 일주일에 한 통이 꼬박꼬박 인편으로 전달되었고 아라벨라도 마르틴과 함께 편지를 받았다.

 

셰필라가 아니라 사피야의 편지였으나 언제나 맨 끝에는 네 아버지도 너를 많이 보고싶어 하신다는 문장이 있었다.

 

아라벨라는 한숨을 쉬었다.

 

사피야는 내가 아버지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편지를 물에 담가 씻는 아라벨라에게 프루던스가 종이를 가져왔다.

 

말린 꽃을 붙이시겠습니까?”

 

아니.”

 

향수는 어떻습니까?”

 

가는 동안 다 날아가겠지. 됐어.”

 

리본이나 인장은 어떤 것으로 할까요?”

 

“...리본은 됐어. 인장은 적당한 걸로.”

 

, 이건 도련님 것입니다.”

 

프루던스는 아직 작은 마르틴을 위해 허리를 숙여 종이를 내밀었다.

 

도련님께서는 어떤 것을 하시겠습니까? 리본이나 향수를 가져올까요?”

 

저는, 아니... 나는, 그거 다 할래요. ...할래!”

 

말린 꽃이 여럿 있는데 어떤 것으로 가져올까요?”

 

파란 거 있어?”

 

가서 좀 찾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프루던스가 허리를 펴자 마르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갈래.”

 

그 때 현관에서 종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실례하겠습니다. 꽃을 말려둔 곳에는 이 아이가 안내해줄 것입니다.”

 

빨간머리 집사는 지나가던 고용인을 불러 지시를 내렸고 마르틴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하얀 에이프런 뒤를 따라갔다.

 

아라벨라는 마르틴의 낯선 모습에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가 깃펜을 잉크에 푹 담갔다.

 

사피야님에게

 

거기까지 쓰고 더 무슨 말을 쓸지 잠시 생각하는데 옆에서 종이 뭉치가 펄럭였다.

 

옛날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종이는 꽤 귀한데 아무렇게나 두다니.

 

아라벨라는 마르틴의 종이 뭉치를 들어올렸다.

 

그 뭉치에는 마르틴이 배우는 지식이 적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맨 윗장은 역사 이야기다.

 

정권이 뒤바뀌면서 케이가 가문의 마크시툰 백작은(마크시툰 케이가가가) 루일라 공작과 손을 잡았고 둘은 화폐를 나라에서 제조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냈다

 

예전에 배웠었지.

 

눈으로 죽 읽다보면 마르틴의 메모도 군데군데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제조를 누가 하느냐를 두고 마크시툰 케이가 백작과 루일라 공작은(이름은?) 내분이 일어나게 되는데

 

갑자기 손이 공책을 덮었다.

 

보지 마아!”

 

왜애, 보면 안돼? ?”

 

안돼!”

 

마르틴이 공책을 홱 뺏어가는데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도련님, 편지가 왔습니다.”

 

마르틴과 아라벨라는 불과 어제 받은 사피야의 편지를 돌아보았다.

 

누구한테서 왔는데?”

 

금색 봉인이 찍힌 두루마리 한 장이 내밀어졌다.

 

왕실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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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 3. 16:41 | Posted by 호랑이!!!

 

바실리를 데려온 후 사흘째 되는 날 오후, 프루던스가 아라벨라를 찾아왔다.

 

아라벨라 아가씨, 바실리님께서 찾으십니다.”

 

아라벨라는 품이 넉넉한 옷에 굽이 없는 슬리퍼 차림이었는데 프루던스의 말에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옷장으로 갔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이 가운만 하나 걸치시고 와주십시오.”

 

프루던스는 금색 술이 달린 짙은 녹색 가운을 아라벨라의 어깨에 걸치고는 앞장섰다.

 

계단을 오르고, 프루던스는 언젠가 그가 무릎을 꿇고 있었던 방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도록 해.”

 

놀랄 만큼 명확한 발음에 깨끗한 목소리는 어릴 적 아라벨라가 들은 그대로였다.

 

딱 한번이었지만.’

 

아라벨라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환자를 위한 방이 되어서인지 방 안은 빈틈없이 하얀 카펫이 깔려 있었고 책상 가장자리에는 푹신한 천을 대 놓았다.

 

침대 옆 작은 탁자에는 촛대가 있었고 사용하기 위해 꺼내놓은 초가 몇 개 나와서 책 옆을 뒹굴었다.

 

아라벨라는 한쪽 발을 뒤로 빼어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아라벨라 샤틸리 렐리악입니다.”

 

어릴 때 보고 처음 보는구나. 네가 나를 구했다지.”

 

고압적인 말투와 눈빛이 쏟아졌지만 아라벨라는 눈 하나 깜짝 않았다.

 

할머님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더 일찍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바실리는 아라벨라 옆에 선 프루던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라벨라에게 의자를. 그리고 마실 것도.”

 

하얀 천을 댄 나무 의자를 밀어 주고 프루던스는 방에서 나갔다.

 

바실리는 베개를 등 뒤에 하나 더 넣어 꼿꼿한 자세로 아라벨라를 마주했다.

 

아라벨라, 영지는 어떻게 하고 온 것이냐.”

 

영지는 아버지께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 ...셰필라를 말하는 모양이군. 그 녀석은 영 변변찮아.”

 

그 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에멜라가 죽었다지.”

 

아라벨라는 고개를 들어 바실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뒤로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그렇더군. 듣기로는 셰필라가 새 부인을 들였다고 하더구나.”

 

그렇습니다.”

 

둘 사이에서 난 것이 그 까만머리 꼬마고. 내가 십 년쯤 누워있었던 모양이다.”

 

농담도.

 

아라벨라는 재미있지도 않고 유쾌하지도 않은 농담에 뚱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유언장은 있었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이제 너는 서른 즈음 되었고?”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습니다만.”

 

뭐라고.”

 

바실리의 입 끝이 아래를 향한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고 허락이 떨어지면 프루던스가 차와 과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프루던스. 내가 사라진지 얼마나 되었지?”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한 달! 한 달이라니, 그럼 저 밖에 커다란 애는 누구 애냔 말이야!”

 

셰필라님과 새 부인 사피야님의 자식입니다.”

 

그 한 달 새 저만큼 커지지는 않았을 거고!”

 

아라벨라는 찻잔을 받았다.

 

오래 되었습니다. 장부에 빈 곳이 있는 것으로 보아 주기적으로 후원한 것 같습니다.”

 

누가!”

 

“...아버지가요.”

 

망할 창부 같으니! 감언이설로 살살 꼬드겨서...!”

 

프루던스가 헛기침을 했다.

 

주인님, 아가씨께서 보고 계십니다.”

 

“......후우...”

 

바실리는 약차를 벌컥 마셨다.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에 이어 과자까지 입에 툭 던져 넣었다.

 

아라벨라.”

 

, 할머님.”

 

그동안 많이 배웠나?”

 

, 할머님. 그간 프루던스가 가정교사를 붙여 주어서 예법도 배웠고 자수도 놓고 외국어도...”

 

“....그럼 에멜라는 뭘 가르쳤지?”

 

승마술과 경제에 관한 것, 정치 과목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꽃꽂이나...”

 

리본 고르는 일 따위를 배웠다는 거군. 네게 필요한 건 하나도 안 가르쳤어.”

 

아라벨라의 시선에 힘이 실렸다.

 

바실리는 그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며 고개를 들어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에멜라가 네 출생에 대해 특별히 한 이야기는 없더냐.”

 

렐리악은 오래 이어져 온 백작가였고 특별한 일이 있어도, 혹은 없어도 더 낮아지거나 더 높아지는 일 없이 이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런지는 들었나.”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라벨라는 프루던스를 힐끗 쳐다보았다.

 

세 가지를 약속하면 너에게 모든 것을 말하여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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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벨라 17

2019. 6. 27. 17:35 | Posted by 호랑이!!!

 

그렇게 수색은 종료되었다.

 

슈체른이 마르틴과 아라벨라를 데려다 주었고 삐는 마르틴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렐리악 저택으로 돌아왔다.

 

옥상에 내려서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집사, 프루던스가 달려와서 아라벨라나 마르틴, 심지어 슈체른까지 본체만체하고 바실리를 안고 뛰어갔다.

 

저 녀석 하여간 침착하지 못하고.”

 

슈체른이 뒷머리를 벅벅 긁는데 마르틴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씀을.”

 

어린 인간이 예의바르게 군다고 어색해하는 것이 여실하다.

 

아라벨라는 항상 느긋하게 굴던 슈체른이 말을 주저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가 눈이 마주치자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슈체른.”

 

뭡니까.”

 

할머니 찾는데 도움도 주셨고 삐도 걱정될 텐데 며칠 여기 묵는 건 어때?”

 

무사한 거 봤으니까 됐...”

 

마르틴이 슈체른을 쳐다보았다.

 

나는...”

 

아주 기대어린 눈으로.

 

그러니까...”

 

머리에는 삐를 얹고.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마르틴의 표정이 화악 밝아지더니 슈체른의 손을 잡고 끌었다.

 

여기 아래쪽에 손님방이 있어요. 저택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손님방이 네 개나 있더라구요.”

 

네 개나?”

 

슈체른이 손을 잡고 내려왔다.

 

잠깐, 저런 옷 괜찮은가?

 

현재 주로 입는 옷들은 풍성하거나 살갗을 최대한 많이 가리는 종류의 옷들이다.

 

그러나 슈체른의 옷은 팔다리가 거의 그대로 드러났고 색도 하얀색 한 가지 뿐인데다 헐렁하고 현재 기준으로는 수수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슈체른을 마당에서 데려오는 것도 아니고 널찍한 옥상에서 데려가는 건데 누구라고 말하지? 사용인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내 손님이라고 해야 하나?

 

아라벨라는 마르틴을 툭툭 쳤다.

 

누가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 으으음... 그냥... 할머니 찾는데 도움을 준 손님이라고 하면...”

 

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귀한 몸이기는 하니까 귀족이라고 말해야 하나?

 

아 그런데 마차도 없고 어떻게 왔다고 하지? 순간이동? 시종도 없이?

 

복잡해지는 머리에 아라벨라는 이마를 짚고 슈체른에게도 지혜를 좀 빌려달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마르틴이 벌컥 문을 열더니 계단을 내려갔다.

 

!? 잠까-”

 

옥상 아래는 3층이고, 바실리의 방과 가까웠는데 평소라면 아무도 없었던 그 복도에 지금은 사람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뜨거운 물을 들고 뛰어다니고 누군가는 깨끗한 수건을 몇 개나 쌓아서 전달하고 말을 전하러 뛰어내려가는 사람이나 약, , 꽃 같은 것들이 쉴새없이 날라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 이 쪽을 한 번씩 보고 지나갔다.

 

아라벨라는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게...”

 

다녀오셨어요 아라벨라 아가씨!”

 

“-마르틴 도련님!”

 

지금은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

 

주인님께 약과 여러 처치를 한 후-”

 

오랜만입니다 슈체른님.”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죄송한데 급해서요-”

 

차와 과자를-”

 

“-준비해 드릴까요?”

 

사람들이 기차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줄줄이 들어갔다 줄줄이 나오면서 한 마디씩을 한다.

 

마르틴은 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복도 가장자리로 걸어서 2층으로 빠져나갔다.

 

그 다음은 슈체른과 삐, 다음은 아라벨라.

 

겨우 한 층 차이인데 2층은 퍽 조용하다.

 

아라벨라는 자신의 방으로 슈체른을 질질 끌고 갔다.

 

이 집 사람들이랑 아는 사이였어?!”

 

가끔 바실리를 데려다줄 때 오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할대로 취해 걸음을 걷지 못한다던가.”

 

할머니가?”

 

5-60년 쯤 전에? 이후로도 자주 왔고...”

 

얼마 전 일처럼 이야기하더니 오륙십년 전이란다.

 

저 자주는 얼마나 자주일까, 아마 자신이 생각하는 자주는 아닐 것이다.

 

얼마나요?”

 

슈체른의 어깨에서 마르틴의 머리 위로 삐가 퍼덕퍼덕 내려앉았다.

 

열흘에 한 번?”

 

자주 왔네.”

 

셋은 아라벨라의 방 옆의 빈 방 문을 열었다.

 

이 방을 쓰면 되겠네. 빈 거니까.”

 

비었군요.”

 

슈체른은 방 문을 열더니 무언가 귀한 것을 본다는 듯 한 걸음 물러나 방안을 훑어보았다.

 

그래, 이젠 비었군요...”

 

슈체른은 마르틴의 손을 잡더니 방 안으로 이끌었다.

 

춤은 출 줄 압니까?”

 

, 니요!?”

 

잠깐 번쩍하는가 싶더니 슈체른은 마르틴과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로 변했다.

 

마르틴의 발을 제 발 위에 얹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도는 것은 자세가 완벽한 왈츠다.

 

그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에 아라벨라는 문에 등을 기댔다.

 

예전에, 바실리가 마르틴과 비슷한 키였을 때 자주 추고는 했었습니다. 아바트는 언제나 춤을 약속한 상대가 있었고 그게 나는 아니었으니... 대신 아바트의 아이나 손주들과는 자주 추었습니다.”

 

한 명이 지치면 다음 아이가 오고, 그 아이가 지치면 다시 다음 아이가 오고.

 

끝없이 춤을 추다 보면 마침내 아바트가 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리고 슈체른의 입이 다물렸다.

 

천천히 춤이 멈추자 마르틴이 뒷걸음질로 슈체른의 발 위에서 내려왔다.

 

“...역시 머물지는 못하겠습니다. 바실리가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 돌아가지요.”

 

슈체른은 몇 번이나 방 안을 돌아보면서도 결국 밖으로 발을 옮겼다.

 

마르틴이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았다.

 

차 드실래요? 삐는 뭘 먹이면 돼요? 그동안은 있지요, 소시지나 햄이나 달걀 같은 거 먹였는데 그러면 돼요?”

 

슈체른은 마르틴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를 걷어낸 듯 보다 밝아진 표정으로 과장스럽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라고요? 낙트가 그런 걸 먹었다고? 그런 걸 먹이다니, 이제 큰일이 났습니다!”

 

네에!? 큰일?!”

 

슈체른의 행동이나 목소리는 평소보다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마르틴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채소도 먹이고 과일도 가끔 먹였어요! 그리고... 그리고 사탕도 조금-”

 

뭐어어? 그거 정말 큰일입니다. 더 큰일이 났어요!”

 

어린 용들은 대개 신선한 날고기와 우유를 먹고 자란다.

 

요리가 아닌 그런 식재료를 먹이는 것은 어린 용들의 건강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음식을 구하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용들이 탐내는 유일한 사치품인(물론 금과 보석류나 기타 귀한 것들은 제외하고) 음식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달려들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 농담같은 일의 선례를 계속 들어왔던 터라 아라벨라는 그들의 뒤에서 슈체른이 마르틴에게 겁을 주는 모습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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