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아.
요란하게도 소리가 울렸다.
이만하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A는 항상 자리에서 일어나 이 맑은 날 어디에서 비가 오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날은 맑고, 바람이 불면 사철 푸른 활엽수가 솨- 소리를 내고.
다시 A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기는, 요즘 애들이 어디에서 이런 소리를 듣겠어?
A는 닳아 부드러워진 마룻바닥에 벌렁 누웠다.
어디에선가 스르륵 천 스치는 소리가 났다.
곧 시야에 하얀 사람이 들어온다.
긴 머리, 새하얗고.
눈은 노랑, 동공은 악보에 그려지는 무언가처럼 생겼음.
“자나?”
“일어났어.”
이 자는 B라고 한다.
이천년 가까이 묵은 이무기다.
천 년 도를 닦고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A의 조상이 뱀이라고 소리쳐 다시 천 년 도를 닦아서 조상의 업을 씻으라며 A를 끌고 왔다.
압도적인 무언가에 무서울 만도 하건만.
A가 이 집에 온 날 장장 30시간을 잤는데 오후에 눈을 떴더니 자기 때문에 놀라 죽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꼴을 봤더니 도무지 경계심이 들지 않았다.
“있잖아.”
A가 손을 내밀자 B는 그 손을 잡고 일으켜 앉혀주었다.
아무리 봐도 술잔처럼 보이는 도자기에 향긋한 차가 따라지고 종지처럼 생긴 작은 접시에 색색이 화려한 과자가 올랐다.
대체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네, 그치만 맛있다.
“내가 ‘용이다!’하면 어쩔 거야?”
“집에 데려다주고 네 앞날에 행복을 빌어 주마.”
“만약 ‘뱀이다!’하면?”
“내쫓을거다.”
A는 향만 달짝지근한 차를 마셨다가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나 사이다 마시고 싶어.”
B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런 인간의 천한 음식!이라고 말할 것만 같은 표정!
비늘도 안 보여주는 B의 인간 외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거렸더니 B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몸에도 나쁜 것이 뭐가 좋다고!”
“...어어?”
“그거 다 설탕 덩어리다. 마셔서 몸에 하등 좋을 것 없는- 단 것이 마시고 싶으면 이따가 오미자차 타 주마.”
말에서 낯익은 사람이 느껴진다.
그게, 그러니까...
“할머니...?”
“...아니다.”
“이래놓고 나중에 ‘마시고 싶으면 마셔야지’하면서 한 캔 꺼내 줄 거야?”
B의 몸이 움찔했다.
“그럴거야?”
결국 B는 대답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시선을 피하여서, A는 그와 시선을 맞출 거라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고 B는 휙 고개를 젖혀 뒤를 보았는데 A가 점점 더 가까이 고개를 불쑥불쑥 내밀었더니 점점점점점 뒤로 고개를 돌리다가 마침내는 균형을 잃은 A 아래 요란하게 깔려버렸다.
“으아아!”
“...아이고... 이 망아지야.”
바람이 빗소리를 내며 나뭇잎을 흔들었다.
옷자락이 부풀었다가 가라앉고, A는 조심조심 B의 머리카락을 걷어낸 다음 그 옆에 다시 드러누웠다.
“난 네 할머니가 아니다.”
“응, 조상님.”
“...조상님도 아니다, 이놈.”
이 쬐끄만 녀석이 참.
B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반짝이는 한 쌍의 눈동자와 마주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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