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왔군.’
탈론은 나뭇잎 밟는 소리에 인상을 썼다.
후배 중 뛰어나 후기지수에 몸 담은 길은 암살이니 경공이야 미약하더라도 원한다면 기척 정도는 지울 만한 인물임에도 굳이 가까운 곳에서 발소리를 낸다.
저것이 예의인지 놀림인지는 모르겠으나, 성정을 생각해보면 후자가 가까우리라.
같은 문파가 아니면 어느 밤 조용히 명줄을 끊었어도 진작 끊었을 것인데.
어지간한 일로는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저 어린 후생이 자신에게 들러붙는 이유가 첫 만남 때 닿는 손길을 피해 뒤로 굴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좀 참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문파장인 주제에 무인보다는 상인이라고 했으면 더 믿음이 갔을 이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을 때를 떠올리면....
녹색 비단도포에 빨간 머리통으로 반질반질 웃는 낯을 생각했더니 머리에 열이 오른다.
“대협! 여기서 뭐 해요? 일 해요? 왜 기척을 숨기고 있어요?”
“저리 가.”
그나마 한 가지 좋은 점을 짚으라면 처음에는 오라버니! 했다가 대협이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꼬박꼬박 부른다는 점이다.
그나마 한 가지 꼽으라면 말이다.
“헉, 정말 일하고 있어요? 왜? 탈론 대협 일 중독이예요?”
“저리 가.”
“문파장 오라버니가 준 일이에요? 아니면 개인적인 일? 왜 항상 볼 때마다 일하고 있어요? 새암이가 도와줄까요?”
“저리 가.”
심지어 노란빛에 꽃빛에 화려한 옷이다.
어느 제정신 아닌 암살자가 저런 걸 입나.
심지어 머리에는 꽃까지 꽂았군.
쟤네 문파는 대체 뭘 가르친 거야.
“쫓아 보내려고 해도 소용 없어요! 다른 분들은 다 바빠서 탈론 대협을 쫓아다니기로 했거든요.”
기세가 자못 당당하다.
저게 문파에 오고 몇 명이랑 인사를 나눴더라? 흑막이랑 인사를 했더라고 문파장이 그랬지.
빨간 머리 린족이랑은 인사를 했나? 비슷한 연배이니 말도 통하련만 혹시 둘이 친구가 되면 날 그만 쫓아다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탈론은 바삐 발을 움직였다.
노골적인 기척을 내며 끈덕지게 쫓아오는 것에 걸음은 점점 더 빨라진다.
그러고 보니 저 꼬마는 경공이 달리지.
탈론은 뿌듯한 마음으로 여간해서는 오르기 힘들 나무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 흐뭇함은 어린 암살자가 쫓아오기 전까지 탈론의 마음을 만족으로 채웠으나 커다란 나무기둥을 착착 오르는 발소리가 들리기 전까지였다.
“대협은 높이까지도 잘 올라가네요!”
그리고 들리는 높은 목소리에 탈론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납게 말했다.
“저리 가!”
그리고.
탈론은 또 후회했다.
자신이 뒤로 몸을 날렸을 때처럼 반짝 빛이 나는 새빨간 눈이.
그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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