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것나?’
올해 신입생인 퀸타페드는 호수 산책을 하다 며칠째 같은 자리, 같은 시간, 같은 책을 얼굴에 덮고 누운, 같은 사람을 보았다.
혹시 이 사람, 처음부터 여기 시체로 방치되었던 건 아닐까?
까만 교복망토 아래로 살랑거리는 꼬리를 보다 페드는 손수건을 깔고 그 옆 벤치에 앉았다.
과제를 위해 가지고 나온 버섯 백과만 팔랑팔랑 넘어갔다.
‘역시 주근거다’
손수건을 깔고 앉아 버섯 백과를 폈다.
과제는 어제 다 끝냈지만 래번클로의 고질병인지 도무지 한 번 시작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옆 벤치는 바람이 불면 툭 튀어나온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지만 그 외 미동도 기척도 없어 집중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호그와트에서 누가 죽을 수도 있나?’
수십년 전인가 한 명 죽었다고 선배들이 알음알음 말해주기는 했고, 기숙사 유령들도 다 죽은 사람이니까 호그와트에서도 누가 죽을 수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누가 죽었다더라 사고가 있었다더라 하고 듣는 것과, 화창한 날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서 몇 날 며칠 미동도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 건 또 달랐다.
결국 퀸타페드는 래번클로의 정체성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살아있다면 보이는 징후로는 호흡, 맥박, 심박... 그리고 또 기타등등.
아직 짤막한 꼬리가 망토를 들어올렸다.
얼굴을 덮은 책 위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던 손은 바랜 밀짚 같은 머리를 뜯어놓았다가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버섯 백과를 쥐고 원래 자리에 앉았다.
희멀겋고 때로는 모래같기도 한 자신의 비늘과는 달리 색이 아주 진한 꼬리가 바로 앞에서 흔들렸다.
퀸타페드는 그 꼬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한참이나 보았다.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역시, 그는 래번클로지 그리핀도르가 아니었다.
‘주것슬지도 몰라’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조용히 와서 책을 읽고 갈 때까지 안 일어나는 건 그럴 수도 있다.
바스락 바스락 걸어와서 책을 읽고 갈 때까지 안 일어나는 것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제는 머리맡에서 바스락 바스락 했고 벤치에 돌아와 앉았을 때 털썩도 했는데 안 일어나는 건 그럴 수 없다.
퀸타페드는 책갈피를 꽂고 책을 밀어놓았다.
오늘은 반드시 맥이라도 짚어 보리라.
이걸 위해서 어제 동양의 머글 의술에 관한 책도 빌려왔다고!
퀸타페드는 잘 보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 같은 책을 비장하게 노려보았다.
이제는 책 제목도 외웠다.
애머릭 스위치의 입문자를 위한 변환 마법.
그렇다는 건 이 사람도 나랑 같은 신입생이라는 거겠지?
비록 거의 일 년 내내 어느 수업에서도 못 본 것 같지만 애당초 퀸타페드는 남의 얼굴을 기억할 필요성을 거의 못 느꼈다.
어찌되었든 동학년이면 의도하지 않아도 이름과 얼굴 정도는 외우게 될 터.
퀸타페드는 하얗고 말랑한 사람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뭐 해?”
“쉬잇.”
5학년 O.W.L. 책을 끌어안은 아우라가 입 앞에 손가락을 대었다.
덤불 뒤로 숨을 수 있는 키였기에 휴런인 친구를 잡아 억지로 바닥에 앉혔다.
“저기, 래번클로 신입생이 우리 기숙사 애 자는 데에 매일매일 오더라고.”
“자는 데에? 뭐하러?”
“글쎄... 깨우고 싶은 모양인데?”
둘은 덤불 틈의 사이를 슬쩍 벌렸다.
파란 색 깃을 단 아우라가 교재를 얼굴에 덮은 미코테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손을 건드리고 싶은 듯 가까이 다가갔다가 멈추고, 책을 치우고 싶은 듯 손을 뻗었지만 거기에서 더 가까워지지는 못 했다.
“제길, 가까이 가란 말이야.”
“...모두가 그리핀도르 같지는 않아.”
모래색 비늘이 돋은 꼬리가 불만스럽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저기에 뭔가 물건이 있었다면 탁탁 소리가 날 터였다.
한참이나 꼬리를 움직이던 아우라가 마음을 정했는지, 가까이 다가갔다.
목표는 늘어진 손(목)!
발이 쪼끔쪼끔씩 다가간다.
팔이 바들바들 떨리며 가까워진다!
좋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하면...... 조금... 조금만 더..........
“흐-”
“야, 잠깐...!”
“흐윗취이이이!!!!!”
그리핀도르 아우라는 급히 휴런 친구의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결국 후플푸프 휴런은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고, 아우라는 그의 입을 막으려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덤불 너머에서 흔들리던 꼬리는 밤송이처럼 비늘이 뻗쳤기에!
그리핀도르 아우라와 후플푸프 휴런은 슬금슬금 일어나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퀸타페드는 삐죽삐죽하게 비늘이 솟은 꼬리를 꽉 잡아 강제로 비늘을 눕혔다.
“...”
“...? 신입생?”
마악 잠에서 깼는데도 눈이 동그란 미코테의 귀가 삐죽 섰다.
“그... 쪽도, 신입생이 아닙니까?”
“네가 냐 잘 때 잎 떼준거야?”
“...”
끄덕끄덕.
라레타는 어느 순간 안락해진 자신의 낮잠 장소를 돌아보았다.
얇은 담요가 생겼고 작은 베개도 있다.
나무 그늘은 적절하고 때로 옷 위에 떨어지던 잎은 흔적도 없다.
쾌적하다.
또 올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에 아우라가 도망쳐버렸다.
라레타는 부를까 생각했다가 길게 하품을 했다.
아무래도 한잠 더 자야겠다.
그리하여 이 미코테는 솜사탕 같은 꼬리를 갈무리한 뒤, 1~2학년 공통교재 『입문자를 위한 변환 마법서』를 얼굴 위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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