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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용기사의 두 아들이 1.

 

황실의 기니피그님이 2.

 

황제 폐하는 3위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 최근 시장의 대세적인 의견이다.

 

미드가르드로 내려온 지 벌써 수 달이 지나고 이레네오는 인간도 부러워할 삶을 살고 있었다.

 

때가 되면 바쳐지는 과일과 채소.

 

부드러운 톱밥과 찢어진 서류로 만들어진 멋진 집.

 

원목을 깎아 만든 집과 장난감과 심지어는 기니피그용 수영장까지.

 

작은 강아지만하게 커진 이레네오가 궁이나 정원 안을 걸을 때면 곱게 옷을 차려입은 시종들이 기니피그님~ 기니피그님~ 하면서 웃는 낯을 보인다.

 

어쩌다 작은 손이라도 내밀어주면 기니피그님의 손! 손톱! 귀여워!를 외치기도 하니 마흔줄에 접어든 기사의 눈에는 오히려 그들이 아이 같아 귀여운데다 외출을 허락받아서 궁 앞의 작은 시장에 산책이라도 나가면 여기저기에서 황실의 기니피그님이라고 부르며 야채를 잔뜩 내미는 덕분에 요즘 밥값이 안 든다며 이야기 하는 것도 들었다.

 

우연히 예민한 후각으로 속이 곪은 과일 같은 것을 몇 개 집어냈을 뿐인데 기니피그님은 영험하시다 소리까지 들으니 인간 삶 따위 부질이 없지 않으냐.

 

기묘한 깨달음을 얻을락말락한 그 때.

 

문을 나선 이레네오의 앞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 즈음이면 사람으로 와글거릴 시간이건만 길에는 사람 하나 없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야채 가게는 한 곳에 모였으며 심지어 가게 앞마다 깨끗한 면보에 작은 접시를 올리고 그 위에 채소 조각을 올려두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뒷발로 일어섰더니 황실의 기니피그님을 위해 붙여준 고운 시종이 흐트러지는 비단옷을 고쳐 입혀주었다.

 

기니피그님이 어느 채소를 고를지가 요즘 시장의 최대 얘깃거리라 상인들끼리 자기네 것을 제일 많이 드셨다 하였습니다만... 그 이야기가 좀 과열되어 이렇게 자리를 만든 모양입니다. 상품은 평소보다 다섯 배는 더 벌 수 있는 제일 좋은 자리라고 하지요.”

 

?

 

다섯 배?

 

이레네오는 두 발로 선 채 생각하다가 천천히 네 발을 땅에 디뎠다.

 

그렇잖아도 자기가 당근을 잔뜩 먹은 탓에 당근값만 몇 배로 뛰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자리 싸움에까지 끼게 되었다.

 

사람이었다면 분명 원망 들을 일인데 기니피그라서 원망 들을 일은 없겠구나.

 

기니피그라서 참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좀 전까지 시종이 배를 만져주자 발라당 드러누워 짧고 통통한 네 다리를 허우적거린 사실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이레네오는 근엄하게.

 

우선은 가장 가까운 가게로 발을 옮겼다.

 

후일 시종이 이 날을 두고 이야기하기를, 뒤뚱뒤뚱 토도돗 달려가는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의 팔 할이 쓰러졌다나.

 

여하간 기니피그님이 가까이 오자 가게 주인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손수건을 쥐어짰다.

 

이레네오는 눈인사를 건네고는 접시 위에 작게 잘린 당근 조각을 냉큼 입에 넣었다.

 

오독 오독.

 

허어 이것은 달구나, 신선하고 단단하고 좋은 당근이로다.

 

작은 머리를 끄덕이고 다음 가게로 달려가니 이것 역시 나쁘지 않도다.

 

아니? 이것은 기름에 볶았구나! 그래 당근은 살짝 익혀 먹는 것이 몸에 좋다지, 훌륭한 향이야.

 

그렇게 하나하나 먹다보니 마지막 가게가 남았다.

 

슬슬 배가 부르니 이것은 어이해야할꼬.

 

심지어 마지막의 저 상인은 평소 행실이 나쁘다 소문이 나기까지 했는데 자신이 배까지 불러버렸으니 공정한 판결을 내리지 못하면 가여운 일이 벌어진다.

 

지금도 보아라, 긴장을 해서는 개를 옆에 두고 자기 양배추를 쓰다듬고 있지 않느냐.

 

어허 심지어 떨기까지 하는구나.

 

이레네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가까이 다가가 발등 위에 앞발을 척 얹었다.

 

그러자 상인은 화들짝 놀라 저 뒤로 도망가버렸다.

 

가여운 자로다.

 

이레네오는 총총 접시로 돌아갔다.

 

마지막 당근은 어째 주황색이 강하고 냄새도 좀 이상했으나 상한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어디어디, 앞발- 아니, 손에 들고.

 

그렇게 한 입 깨문 이레네오는 머릿속을 울리는 충격적인 맛에 당근을 툭 떨어드렸다.

 

아니, 이 맛은...!

 

왜 저러시지?”

 

저기 당근이 특출나게 맛있나?”

 

저 집은 싼 맛에 자주 갔었는데 맛도 다른데보다 나았던 모양이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이레네오가 한동안 그렇게 서 있자 시종이 조르르 따라와 옆에 쪼그려 앉았다.

 

어서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그것이 제일 맛있습니까?”

 

이레네오는 접시를 들었다.

 

가장자리를 야무지게 잡고 뒤로 돌자 사람들은 오오, 저것을 선택하셨나보다, 하고 감탄사를 여기저기서 내뱉었다.

 

그리고.

 

이레네오는.

 

틀었던 몸을 다시 돌리며 거대한 원반같은 접시를 상인의 머리에 던졌다.

 

"이놈! 먹는 걸로 장난질을 하다니 못된 놈이로다!"라는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였겠지만.

 

 

 

 

 

 

당근에서 났던 것은 마약의 씁쓸한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