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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해리] 클리셰 범벅

2020. 2. 29. 00:26 | Posted by 호랑이!!!

해리는 눈을 떴다.

 

콧잔등에 익숙하게 얹히는 무게는 자신이 아직 안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무언가 어색한 감각이 들지만 어두운 것은 익숙한 일이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가 머리를 박아서 터무니없이 작은 곳에 갇혔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손을 휘저어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았더니 어마어마하게 좁은 공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좁고, 어두운 공간.

 

체념한 듯 눈을 감은 해리는 갑자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

 

버논 이모부일까? 해리는 여전히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모부가 할 만한 짓이라고 해 봐야 자신의 벽장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두들리가 계단 위에서 펄쩍펄쩍 뛰게 두는 정도일 거니까.

 

무언가 둔탁하고 큰 소리가 났다.

 

해리는 손에 걸리는 작은 막대를 달각달각 흔들었다.

 

할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었-

 

봄바르다!”

 

알 수 없는 고함과 함께 쾅,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밝아진 시야와 갑작스레 흩날리는 먼지에, 해리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깨끗하게 깎인 잔디밭.

 

새하얀 대리석 파편이 날리고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빛에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스카치테이프로 고정시킨 안경을 옷자락으로 문질러 닦자 너무나도 놀란 것 같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고 단정한 모습은 마치 버논 이모부를 떠올리게 했지만 무언가가 다르단 말이지.

 

그 사람은 구덩이 위에서 해리를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진 눈과 떨리는 눈.

 

저 사람도 저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군.

 

아마도 자신이 뭔가를 또 잘못했겠지.

 

이상한 마법을 썼다던가,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던가.

 

그렇기에 애써 일어설 생각도 안 했는데 그 사람은 손수 이 구덩이 안까지 내려와서 해리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뒤돌아 살펴보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듯... 그러니까 자신이 본 것 중에서는 드물게 긍정적인 의도처럼 살펴보더니 떨리는 손으로 들어올렸다.

 

포터.”

 

, 선생님(sir).”

 

해리 포터?”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버논 이모부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양복에 허연 먼지가 묻었다.

 

어색하게 안겨 있다가 고개를 든 해리는 이 사람의 얼굴이 원래 이렇게 창백한지 아니면 놀라서 이렇게 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꽉 잡으렴.”

 

해리는 그의 팔을 꽉 잡았다.

 

그 사람은 입술을 잘근 깨물다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널찍하게 잘 깎인 잔디밭.

 

꽃향기.

 

새하얗게 조각된 대리석.

 

그 모든 것이 있는 공동묘지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