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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커튼 너머로 어느 뱀파이어는 밖을 내다보았다.

 

자야 할 시간이었으나 때로 그는 이렇게, 창가에 앉았다.

 

그가 앉기에는 조금 작고 지나치게 발랄한 의자 위에서.

 

가장자리에까지 조각이 더해진 화사한 빛깔의 테이블에 턱을 괴고.

 

제아무리 뱀파이어라도 이런 두꺼운 커튼 너머로는 제대로 밖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그는 따라놓은 차가 식어 차가워질 때까지 같은 자세로 있었다.

 

밤과는 달리 밖은 시끄럽다.

 

해를 받아 피어난 꽃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잘랑거리고, 새들은 그 사이를 누비며 지저귀고, 커다란 등교 버스가 도로 위에 나타나면 다시 보자는 인사가 재잘재잘 흘러간다.

 

한 차례 그렇게 소란스럽고 나면 그보다 조금 작은 아이들이 보호자와 함께 자전거를 타며 인도를 지나갔다.

 

벤치 몇 개가 놓인 작은 공원이 코앞에 있는 덕분에 아이들 노는 모습이 보였다.

 

제대로 던지지 못해 굴리다시피 하는 공이 이제 푸릇해지는 잔디 위에 이리저리 오가고 양동이로 만드는 모래성은 높아진다.

 

누군가는 싸워서 울음을 터뜨리고, 손에는 모래와 풀물이 들고, 고함 지르는 소리도 들리고.

 

작은 아이들이 가고 나면 이제 학교가 파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 아이들도 가고 나면 상급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십 대의 중반을 보내는 아이들은 때로 미끄럼틀이나 그네에 걸터앉아 나름대로의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공 하나를 가지고 차며 놀거나 튀기며 놀았다.

 

그러면 이제 해가 졌다.

 

마지막 아이 하나까지 돌아가자 메로스 오르바토스는 그 고요 속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달빛에 방 안이 비쳤다.

 

이 방에는 자기 전에 장난감을 정리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던 아이가 있었다.

 

분홍빛과 노란색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나무 블록이 내팽개쳐져 있었다.

 

테이블 맞은편 의자는 누군가 갓 일어난 것처럼 빠져나와 있었다.

 

먼지막이 천이 그 아이의 재에서처럼 이젤을 덮고 있었다.

 

어느 아이가 좋아했던 커다란 거울은 흐려졌고.

 

어떤 아이들이 손에서 떼놓지 않았던 장난감 칼은 이미 썩어 없어졌다.

 

금방 낡아버려서 표지를 몇 번이나 갈아야 했던 책은 이제 누구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뱀파이어는.

 

때로 잠들지 못하고 아이들의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낮은 소란스러웠다.

 

두꺼운 커튼 너머로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할 아이들의 실루엣이 즐겁게 뛰어놀 때면.

 

때로 그들이 탄성을 지르면, 그것이 비명으로 들릴 때면.

 

메로스는 창문을 열고 싶었다.

 

제 가슴이라도 쥐어뜯으며 소리지르고 싶었다.

 

해 아래는 위험해.

 

인간 가까이는 위험해.

 

집 안으로 돌아와.

 

돌아와.

 

내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