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었어?”
빽빽한 침엽수림의 초입에서 흰 머리의 청년이 검은 늑대에게 말을 걸었다.
검은 늑대는 코를 씰룩, 움직이더니 알타이르의 주위를 빙빙 돌며 냄새를 맡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철썩.
“으악!”
사람이 견디기에는 다소 세차게.
꼬리로 얻어맞은 알타이르는 반바지 아래의 다리를 쓱쓱 문지르다가 커다란 박스를 바닥에 쿵 내려놓았다.
“이거 다 갖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허리가 끊어질 거 같다고. 그런데 그렇게 무시무시한 걸 휘둘러서-”
아닌 게 아니라 허리가 정말 아팠다.
“내 귀엽고 폭신폭신한 꼬리가 뭐? 어린이 늑대한테는 좀 거칠었던 모양이지?”
“그런 걸 폭신폭신하다고 말하는 거야, 가슴?”
“아니 이 어린이 늑대가?!”
라반차는 술과 음료수로 가득한 종이 박스를 들어 올리다가 알타이르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아아아 아파! 가슴! 가슴 늑대!”
“아니 이 녀석이 아직도!?”
다른 쪽 귀도 쭈욱 잡아당겨졌다.
“으어아아 아파! 아파! 이 가슴! 가슴! 가슴!”
심지어는 꼬리도 잡아당기고 있다!
이! 못된!
알타이르는 분노를 담아 하울링을 했다.
“가슴!!!!!!!!!!!!!!!!!!!!!!!!”
벌떡.
알타이르가 몸을 일으키자 머리에서 조그만 털뭉치가 데구르르 굴러 떨어졌다.
“워우우우.... 끼엥?”
정신을 차려보자 머리에서 굴러 떨어졌는데도 잠에서 깨지 않고 그대로 곯아떨어진 강아지들이 분홍색 입을 뻐끔거리면서 잠꼬대를 했다.
머리만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제 앞에는 방금 꿈속에 나왔던 검은 늑대가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자고 있고 그 옆으로는 부숭부숭한 털감자들이 발을 허우적거리거나 입에 닿는 것들을 물면서 잠에 빠져 있었다.
방금 제 머리에서 굴러 떨어진 감자... 아니, 아기 늑대 한 마리의 입가에 물린 흰 털을 조심스럽게 빼 주며 알타이르는 어쩐지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종일 뛰고, 엎치락 뒤치락 구르고, 오후에는 덥길래 다같이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간식 먹었고, 그러다 누가 누구의 고기를 뺏어 먹어서 싸우는 게 일이 커져서 한 마리씩 다 떼어 놓아야 했었지.
그리고 아이들이 들이받아서 넘어진 책장도 정리하고 낮잠 잘 이불도 털어주고 청소도 해야했고 또...
유달리 바빴던 일과를 떠올리자 멀미가 날 것 같다.
알타이르는 하얀 털 달린 귀를 퍼득였다.
눈을 반짝이면서 짤막한 다리로 뒤뚱뒤뚱 뛰는 것만 봤더니 그 행복한 표정이 마치 악몽 같았는데 이렇게 몽글몽글하게 모여 자는 모습을 보니 천사가 따로 없다.
솜털이 복슬복슬한 꼬마들이 제 몸에 몸이며 엉덩이를 붙이거나 주둥이 쪽 털이 빠진 청소년 꼬마들이 다리를 턱 얹고 자는 모습이 참.
푹신한 베개를 끌어다 턱 아래 괴고, 알타이르는 아이들을 말리기는커녕 장난질을 부추겨댔던 늑대 한 마리를 보았다.
편안하신지 배도 까고 이따끔 뒷발질을 하며 자는 모습이 얄밉기 짝이 없다.
하긴 실제로도 짝이 없구나.
라반차가 들었다면 이건 자발적인 독신생활이라고 펄펄 뛰었을 법한 말을 생각하며 알타이르는 뒷발로 그 새까만 등허리를 걷어찼다.
“워어어엉!? 웝! 웍!”
벌떡 일어난 라반차가 주위를 홱홱 둘러보았지만 이미 알타이르는 눈을 감은 뒤였다.
옆에서는 까만 늑대가 월월 짖고 있었지만, 어쩐지 아주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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