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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수] 치트, 패치, 퍼블리와 다른 동료들

2020. 9. 30. 03:04 | Posted by 호랑이!!!

... 건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치트는 짐을 앞뒤로 주렁주렁 끌어안고 무게에 낑낑거리며 발을 옮겼다.

 

직급만 따지면 제가 제일 위라구요?”

 

그러자 앞에서 퍼블리가 돌아보았다.

 

짐 하나 없이 가뿐해서인지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업보라고 생각하세요.”

 

치트는 활짝 웃는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감당할 수 없어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패치랑 눈을 마주쳤지만 그 파란 눈은 별다른 말 없이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히잉...”

 

빨리 걷게. 주인공님의 다음 전투가 곧이다.”

 

다음 장소에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던 거 같으니 앞으로 세 번의 전투 동안 아이템을 잘 배분해서 써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제가 살짝 도와드리면-”

 

치트가 말하자 앞서가던 두 사람이 홱 뒤를 돌아보았다.

 

아 농담이에요 농담! 퍼블리씨 패치 선배님이랑 눈빛 똑같아진 거 알아요?!”

 

농담할 기운이 있다니 짐이 좀 늘어도 되겠군?”

 

예에? 여기서 더요?”

 

나빴어 나빴어! 심술쟁이!

 

퍼블리는 그 앙탈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전서구가 힘들다고 하던데 돌아오면 위에 얹어 볼까요?”

 

!?”

 

패치가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길이 오르막이 되자, 뒤를 힐끗힐끗 돌아보다가 돌길로 변하기까지 하자 퍼블리가 치트에게 다가왔다.

 

.”

 

퍼블리님...!”

 

이번만이에요.”

 

역시 제 깜찍한 애교가 먹혔던-”

 

치트는 퍼블리의 눈빛을 보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다, 원래 저런 분이 아니었는데.

 

선배님? 역시 선배님 때문인가?

 

주인공이 전투에 돌입하면서 그들의 전진에는 휴식이 생겼고 치트는 짐을 내려놓은 뒤 풀밭 위에 쭉 뻗었다.

 

퍼블리, 자네 저기 좀 보게.”

 

? 어떤 부분을요?”

 

주인공님이 한 패턴밖에 안 쓰시는데 이번 루트에서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는 걸 알려드렸나?”

 

, 알려드렸어요. 아마 원 패턴으로 깨는 주인공님 같아요.”

 

하긴 멀쩡한 총이랑 무기 다 두고 쇠파이프나 노루발로만 깨는 주인공님도 있지.

 

패치와 퍼블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치트는 어마어마한 짐을 발로 툭 건드렸다가 주인공이고 나발이고... 싶어졌다.

 

하늘은 오늘도 파랗구나... 각져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는데 무언가가 팔에 닿았다.

 

차가워서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병.

 

풀잎이 붙어 있는 수통.

 

병이 굴러온 방향은...

 

고개를 들었더니 패치가 가방 지퍼를 꽉 닫고 있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 말은 못 들은 것처럼 패치는 갑자기 퍼블리 쪽으로 고개를 팩 돌렸다.

 

전서구는 언제쯤 돌아온다고 했나? 지금쯤이면 연락이 와도 세 번은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제때제때 연락을 했어야지!”

 

그리고 들개들도! 곤충들 오는 건 돌려보냈나? ? 일처리를 따박따박 해야 할 것 아니야!

 

대리님, 들키겠어요...”

 

이게 무슨 소란이지~?라며 주인공이 돌아보자 슉 몸을 낮추며 퍼블리가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렇게나 못난 후배이건만 선배님은 저를 걱정해주셨군요.”

 

그리고 뒤에서 저런 소리나 하는 치트 옆구리를 콱 찔렀다.

 

“...에잇, 이러니까 아직도 내가 현장을 못 벗어나는 거 아닌가. 이제 쉴만큼 쉬었으면 다시 일어나게!”

 

아직 주인공님 전투 안 끝났는데-”

 

당신 승진해도 현장일 텐데 갑자기 남 때문에 못 가는 것처럼 말해봤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주인공은 전투를 끝냈으며 캠핑장에 모닥불을 피우고 잠드는 것까지 확인했다.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 일 없겠지.

 

퍼블리가 땅을 고르고 패치는 모닥불을 피웠다.

 

치트는 이제 익숙하게 커다란 텐트를 쳤지만 오늘도 이 텐트에는 퍼블리만 들어가서 잠들겠지.

 

저 아래에서 흑기사 투구가 올라오는 것이 보이자 치트는 그렇게 확신했다.

 

잘들 있었나?! 어때, 오늘은 좀 할만했나!”

 

흑기사가 우렁우렁하게 커다란 목소리로 웃으며 치트 옆으로 다가오자 치트는 자연스럽게 잔을 꺼냈다.

 

, 그건 아직 꺼내지 않아도 된다네! 오늘은 술이 없거든!”

 

만세!

 

치트는 자연스럽게 주먹을 꽉 쥐려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로 손을 내렸다.

 

그것 참 아쉽군요, 매일매일 파티라니 저는 즐거웠는데요.”

 

아무래도 술 궤짝을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말일세!”

 

너무 기쁘다.

 

이런 사소한 것을 기뻐하게 될 줄이야.

 

치트는 허물어지려는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빈 잔을 흔들면서 여유를 부렸다.

 

그동안 버릇이 되어버렸는지 오늘 술이 없다고 하니 너무너무 아쉬워서~”

 

쿠웅.

 

땅이 진동했다.

 

동시에 목덜미부터 온 몸을 가로지르는 섬찟함에 치트는 말을 멈추었다.

 

돌아보면 안돼.

 

하지만 돌아보고 싶다.

 

...역시 돌아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돌아보지 않는다고 그 결과가 미뤄지진 않아...

 

와핫핫! 전서구 이 친구 타이밍 딱 좋게 왔어! 마침 여기 이 친구가 술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뭔가!”

 

이보다 빨리 못 오니 그러려니 하쇼.”

 

전력으로 온 모양인데? 자네 매일 빼더니 역시 우리랑 술 마시는 게 좋았던 모양이지!”

 

치트는 돌아보았다.

 

천으로 덮은 커다란 상자.

 

자신이 예전에 퍼블리에게 술집에서 건넸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상자.

 

제발... 제발.....

 

마음 속으로 기도하며 살짝 천을 들추자.

 

상자 안 빼곡하게 찰랑이는 술병들이 달빛을 반사했다.

 

절망은... 기쁨만큼 쉽게 찾아오는군요...”

 

? 방금 뭐라고 했나?”

 

퍼블리의 접시에 안주 겸 먹을 것을 잔뜩 얹어주고 패치는 치트와 흑기사와 전서구의 잔을 채워주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잔을 채우는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급기야는 각기 병을 하나씩 들고 마신다.

 

무어라고 속삭인 건지 치트는 전서구에게 다가와 낑낑거리면서 들어보려고 애쓰고 몇 걸음 걷다 못해 전서구 밑에 깔려버렸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나고 패치와 흑기사는 어깨동무를 하고 주정을 부리고 있었으며... 아니, 들개 대장도 거기 끼었잖아?

 

들개 한 마리가 치트 위의 전서구 위로 올라오고 다른 들개가 치트 위의 전서구 위의 들개 위로 기어올라왔다.

 

... 아악...”

 

어휴! 다들 뭐 하는 거예요. 내려오지 못 해요!”

 

들개 한 마리 한 마리씩이 내려오고 전서구가 일어났음에도 치트는 그대로 쭉 뻗은 상태였다.

 

다들 취했으니까 이 김에 얼른 들어가요.”

 

퍼블리가 텐트 쪽으로 손짓했다.

 

뺨에 강아지 발자국이 생긴 치트가 빌빌대며 퍼블리가 벌린 안으로 기어들어갔고 깨끗한 바닥과 베개를 껴안으면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흐아아...”

 

하하, 오늘 힘드셨죠. 이런 때 잘 듣는 약이 있어요. 아니카가 혹시 모른다고 챙겨준 약인데 이런 때 쓰게 되네요.”

 

다리며 팔, 어깨, 허리에 고약을 치덕치덕 바르고 엎드리자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퍼블리도 그 옆에 드러누워 기지개를 쭉 폈다.

 

으드득 소리가 났다.

 

예전에 술집에서요.”

 

, 술집에서요.”

 

상사가 있으면 산통을 깬다는 게 뭔지 말했잖아요.”

 

아 그랬었지.

 

치트는 그 때를 떠올리며 허허 웃었다.

 

술자리를 보다 보니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패치의 웃음에서 더욱 힘이 없어졌다.

 

그 웃음소리를 듣다 퍼블리가 엎드렸다.

 

그래도, 대리님이 팀장님을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지요?”

 

자기 직전이라 벗은 두건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들이 어깨며 팔 위로 흘러내렸다.

 

예전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싫어한다는 말과는 다른 거니까.”

 

어두운 텐트 안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치트씨.”

 

 

 

 

 

 

 

“...방금 뭐였지?”

 

치트는 머리에 쓴 헬멧을 벗었다.

 

내장된 스피커에서 뭐라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지만 치트는 충격으로 다시 쓰지 못하고 있었다.

 

텐트처럼 어두운 방 안에서.

 

하지만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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