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쉿쉿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메운다.
그 자만 없어지면 그 아가씨의 마음에 걸리는 게 없을 거야.
쉬이잇 쉿.
당장은 슬퍼할지도 모르지만, 아가씨는 너와 영원히 함께하며 기뻐하겠지.
다 꺼져가는 장작불을 조명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이 열려있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꽉 눌러 닫았다.
다시 낮은 쉿 소리가 들렸다.
영원히-
그 사람은 서성거렸다.
다시 서성거리고, 또 서성거리고.
그러다 창문을 벌컥 열고 한 손에는 도끼를 든 채 뛰쳐나갔다.
마지막 남은 불씨는 서서히 재 속으로 잠겨 사라지고 흘러나온 연기 사이로 얼핏 눈동자가 빛나는가 하더니 벽난로 뒤의 그림자에서 길쭉한 인영이 나타났다.
얼굴이며 목에는 꽃이 밝은 색으로 그려져 있고 손에는 뼈 모양이.
붉은 색이 섞인 복숭앗빛 눈동자는 가늘고 길게 열려서 즐거운 듯이 휘어졌다가 다시 스르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가느다랗고 길쭉한 꼬리가 부드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거의 같은 순간, 드라크와 후작의 성에서는.
“후작니이이이이임!!!!!!!!!!”
“아이고오.”
탈렌은 손을 들어 귀를 꽉 막았다.
“여기서 뭘 하시는 거예욧!? 또 일 하셨지요!!! 인간 유혹하는 거!!! 그런 일은 저희 같은 부하들에게 맡겨달라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수수한 검은 원피스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쬐끄만 악마가 저 멀리서부터 두다다닥 달려왔다.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하자 탈렌은 그 악마의 겨드랑이에 손을 들어 한 바퀴 비잉 돌려주었다.
“으아아아-”
“그래 그래.”
거대한 도마뱀 모습에 셔츠, 검은 조끼를 걸친 탈렌은 목에 감았던 검은 끈을 풀어 한 쪽 끝을 손에 쥐었다.
끈은 구불구불 뻗고 얽히더니 단단하게 늘어져 바닥을 딱 소리 나게 짚었다.
“디쿤과 사비는?”
탈렌이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묻자 기둥 뒤 그림자에서 스르륵 작은 주둥이가 나와 대답했다.
“아직 남아있습니다.”
“얼마나?”
“디쿤님의 몸통, 사비님의 다리와 꼬리가 남아있습니다만 조만간 상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 식사는 그걸로 하지. 남은 것은 고용인들 식사로도 만들어서 나눠줘.”
그러자 앞치마를 두른 악마는 가감 없이 활짝 웃었다.
“야호! 후작님 만세! 만만세!”
“많이 먹고 키 크렴, 데일라.”
“후작님보다 더 커질 거예요!”
탈렌은 가슴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걸쳤다.
“...”
어제도 그제도 한 달 전에도 이 키였다는 건 말하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이렇게 안 클까.
탈렌은 다시 안경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데일라는 자신이 청소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탈렌의 손을 꼭 잡고 집무실로 이끌었다.
전편: blog.naver.com/yesjawoon/220832152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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