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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풍/황제공 도망수

2021. 3. 16. 00:31 | Posted by 호랑이!!!

“폐하!”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폐하!!!”

 

높고도 높은 황제의 집무실, 여느 때라면 이 근처로는 다가오지도 못할 시종들이 밧줄에 묶여 끌려왔다.

 

두려움으로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흙먼지가 묻고 찢어진 옷은 이 아름다운 건물에는 지나치게 이질적인데다 채 빗지 못하여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시종들의 짧은 앞날을 짐작케 했다.

 

그들이 질질 끌려들어오는 모습에 영영은 주먹을 꽉 쥐다 바닥에 털퍽 엎어져 불경하게도 황제의 옷깃에 매달렸다.

 

“폐하! 도망한 것은 이 다리이고 저들을 속인 것은 이 몸이오니 제발 저만 벌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저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영영이 검은 비단 자락을 쥐고 빌고 또 빌자 소름끼치도록 우아한 손가락이 영영의 턱을 들었다.

 

“내 어찌 너를 벌하겠느냐.”

 

흑단같은 머리카락은 금과 귀한 홍옥, 진주로 틀어올려 화려하지만 그 아래 눈은 빛 드는 일 없이 새까맣다.

 

사랑하는 영영의 울음을 감상하는 내도록 모양 변하는 일이 없던 그 눈.

 

그 눈은 이번에도, 다정한 모양으로 일그러진 입과 달리 매캐하기만 했다.

 

차마 고개는 떨구지 못하고, 영영은 시선을 내렸다.

 

저에게서 달아나는 시선에 황제는 기분이 나빠진 듯 끌려 들어온 이들 중 하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금을 받아 자리를 비켜주었다지. 그 좋아하는 금을 펄펄 끓여줄 테니 마음껏 손에 쥐도록 하라.”

 

영영은 소스라치게 놀라 시선을 들었다.

 

“폐하, 초하 형은 무인입니다! 그 전대, 전전대부터 황실을 섬긴 가문의-!!!”

 

그리고 당신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있었던!

 

“...너는 어쩌면 울음소리까지도 새 지저귐 같구나.”

 

웃는 황제는 커다란 무쇠솥과 열 관의 금을 가져오라 명하였다.

 

금편이 절그럭 절그럭 솥에 담기고 아래 장작을 때자 그 불길이 거세짐에 따라 모양이 천천히 허물어졌다.

 

영영은 필사적으로 황제의 옷깃에 매달렸으나 황제는 냉정해서, 그가 볼 것이 못 되니 병사들에게 영영을 방 밖으로 내보낼 것을 명했다.

 

“폐하! 다시 생각을, 폐하, 폐-”

 

문이 닫혔다.

 

둔중하고 화려하지만 차가운 문 너머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황제가 몸을 돌리자, 붉은 관에서 검은 신발까지를 장식한 온갖 옥 장식과 보석이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의 빛을 퍼뜨렸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일을 시작해야지.”

 

검은 비단에 붉은 빛이 어른거려 핏빛으로 보인다.

 

빛 드는 일 없는 그 눈도 불빛이 일렁여서.

 

마치 저 황제가 어릴 적부터의 친우였던 충실한 신하를 고문하며 즐거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이 없다고 일컬어지는 하늘의 자손은 열둘에 왕의 이름을 얻었고 열다섯에 빼어남을 보이고 태자가 되어 마침내는 황제가 되었지.

 

그저 명석하고 빼어난 자질을 지녔을 뿐, 한때는 저 눈에도 어린 자다운 순진한 기쁨과 희망으로 빛이 어리었건만, 이제 그 텅 빈 눈에는 잔인함만이 무저갱으로 남고 굳은 얼굴에는 위엄과 무자비함만이 어린다.

 

초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금편 들어간 솥이 끓으며 기포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아.

 

이 손.

 

4세에 검을 잡고 6세에 말고삐를 잡았던 이 손은 이제 다시는 쓰지 못하겠구나.

 

황제는 손수 그의 완갑을 벗기고 양 금군에게 명하여 잡아 눌렀다.

 

“용금군대장 초하여. 네 죄를 네가 알고 있으렷다.”

 

그들의 우두머리를 잡은 두 군인은 처참한 얼굴로 손에 힘을 주었다.

 

부드러운 입술로 황제가 속삭였다.

 

“아주 크게, 비명을 질러라.”

 

“죄인 초하, 명을 받듭니다.”

 

초하는 부글부글 끓는 솥을 보았다.

 

좀 멀리 있었다.

 
언제 옮길까?

그 솥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비명을 지르래도.”

 

“...예에?”

 

“이 몸에게 세 번이나 말하게 할 참이냐.”

 

귀를 기울이면 문 밖에서는 아직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하!

 

곧 명령을 이해한 초하는 다소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숨을 훅 들이쉬고.

 

전방을 향해 5초간 함성을 발사했다!

 

...이렇게요?

 

...라는 눈으로 돌아보자 황제는 울화통이 터졌다.

 

“비명을 지르라고 하지 않았느냐! 더 고통스러워해라, 더 아파해라! 더 크고! 괴롭게! 비명을 지르란 말이다!!!”

 

“크아아아아악!!!!!!!!!!”

 

그리고 문 너머에서 귀를 대고 듣고 있던 영영은 문에 기대 주르르 쓰러졌다.

 

“죽강 영영, 얼굴이 창백합니다!”

 

“죽강 마마, 궁으로 드시지요.”

 

“화, 황제가... 폐하께서...”

 

미치셨어.

 

차마 불경죄로 입에 못 올릴 생각을 하며 영영은 안에서 흘러나오는 비명 소리에 입술을 덜덜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