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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님께

2017. 7. 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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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 Pet?] 케니스에게 주는 통장

2017. 7. 1. 16:53 | Posted by 호랑이!!!

렉터는 통장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겼다.

 

매달 꼬박꼬박, 5년 동안, 보너스와 명절 상여금 등등을 합하여 꽤나 높은 금액이 적혀있는 통장은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자신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명의 자리에 적힌 이름은 케니스(드라보프).

 

케니스, 케니스, 케니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눈에 확 띄던 작은 강아지.

 

스스로 낸 상처투성이에 불안을 끌어안은 주제에 남을 더 챙기려고 했던.

 

케니스는 첫 번째 행사가 끝나고 죽으려고 했지만 자신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괴로워하는 다른 실험체들을 네가 케어해주라고 특별히 직책을 주고, 실험체보다 더 많은 권한을 주고, 더 오래 살려두고.

 

자신의 독단으로 케니스가 할 수 없는 일을 주었거나, 혹은 저 아이가 도망치지나 않을지 오래 지켜봐왔지만 자신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작은 강아지는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아이들을 안정시켰고 도망을 치기는커녕 제법 헌신적인 태도로 일했으니까.

 

렉터는 통장을 다시 비닐 케이스에 밀어 넣었다.

 

본디 머리가 좋고 성격이 상냥한데다 연구원들과도 두루 좋은 관계를 쌓았고, 일을 잘 한다고 보고서에 적기도 하였고, 거기에 이만한 금액이라면 아무리 돈의 가치가 전쟁 전보다 떨어진 요즈음이라도 불편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만약의 한 가지에 미리 대비하는 것뿐이지만.

 

굳이 이래라 저래라 케니스에게 자신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리한 아이라니까? 자신이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마 모든 일이 끝나고 실험체 중에서는 가장 번듯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통장 하나는 렉터의 마음에 제법 안정감을 주었다.

 

나의 일이 아니고, 심지어 에디의 일도 아닌데.

 

겨우 이 얄팍한 통장 하나가 골든 티켓이라도 된 마냥 기뻐하게 되다니.

 

렉터는 웃었다.

 

 

[다무바레] 서재

2017. 6. 29. 02:29 | Posted by 호랑이!!!

히카르도는 다이무스의 서재에 들어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재라기보다는 사무실의 역할을 더 충실하게 수행함에도 값에 상관없이 책이 가득했기에 히카르도의 눈에는 이 곳이 도서관 같았다.

 

여느 때와 같이 다이무스는 서류를 붙들고 있고, 히카르도는 다이무스가 어서 서류작업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책을 대강대강 훑어보다가 적당히 얇은 책을 골랐다.

 

바닥에 주저앉고 책장에 기대 책을 펼치면 페이지 너머로 다이무스가 보인다.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나는 육중한 책상과 딱딱한 의자에 앉아 다른 곳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펜으로는 바쁘게 무언가를 쓰는 모습은, 정말...

 

‘-를 갑니다, 사과, 오렌지-’

 

바깥에서 갑자기 메가폰 소리가 났다.

 

책을 떨어뜨릴 뻔한 것을 아무렇지 않은 척 들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보니 다이무스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완전히 서류 속에 빠진 것 같지만.

 

히카르도는 입을 열었다.

 

“everlasting”

 

"영원한, 변함없는."

 

“grave”

 

무덤.”

 

언제든 영어가 아직 어설프다는 구실로 말을 걸면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듣고 답을 한다.

 

다음 장을 넘기다가 히카르도는 알아차렸다.

 

이 책은 이 서재의 여느 책과는 다르게 그림이 많고, 거기 더해 새 책이다.

 

책은 아이들의 나라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지만 히카르도는 더 이상 책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홀든.”

 

펜촉이 종이를 스치우는 소리가 이어졌다.

 

“love.”

 

"사랑."

 

사각사각, 부드러운 손길만이 낼 수 있는 소리지.

 

“love.”

 

사랑.”

 

다시 한 번 더.

 

“love.”

 

다이무스는 고개를 들었다가 이 쪽을 보며 웃고 있는 히카르도와 눈이 마주쳤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내가 네게 느끼는 감정.”

 

다시 사각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히카르도도 다시 책으로 눈길을 내렸다.

 

 

알지 못하는 것

2017. 6. 24. 22:59 | Posted by 호랑이!!!

AB가 만난 것은 도서실에서였다.

 

AB를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유명한 사람이니까. B가 지나갈 적이면 모두가 돌아보았다. 돌아본 자리에는 수군거림과 손가락질, 웃음소리를 남기고.

 

AB가 마주친 도서실, B는 구석진 자리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A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AB는 남들 입에는 친구 관계로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자주 했으나 A의 우려와는 달리 B는 언어를 이해했고 제법 대화다운 대화도 나눌 줄 알았다.

 

오히려 가끔은 B가 자신들을 답답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도 받았고.

 

“B, 뭐 봐?”

 

-.”

 

A도 창틀에 턱을 괴었다.

 

등굣길을 따라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꽃구경하기에는 좋은 나날이지.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아름답지?”

 

. 나중에 치우느라 고생은 하겠지만.”

 

꽃 말고.”

 

꽃 말고?

 

A는 다시 바깥을 내다보았다.

 

B가 보는 것이 무엇인지 시선을 따라갔지만 그 시선의 끝은 꽃나무에 박혀 있었다.

 

꽃이 아름답지 않아?”

 

아니, 전혀.”

 

사람이 예쁜가?”

 

사람?”

 

B는 그 말에 A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사람이 아름답냐고, 기가 막혀하는 눈빛이었다.

 

그럼 뭘 보고 있었느냐고 물으려는 찰나 수업종이 울렸다.

 

B는 창가에서 일어나더니 교실 뒷문으로 나갔다.

 

나중에 들어온 선생님이 B를 찾을 때 바깥을 내다보던 AB를 발견했다.

 

마치 물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한껏 옷자락을 휘날리며.

 

B의 눈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비록 BA를 보고 있지 않았지만.

 

어느날엔가 A는 알게 되었다.

 

AB를 보았을 뿐, B는 단 한번도 A를 본 적 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아직껏 한 가지만은 알지 못했다.

 

달을 좋아하는 시인은 달에 뛰어들었다는데 B는 무엇에 뛰어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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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비엘/판타지] 반짝이는 사람 4화

2017. 6. 23. 23:06 | Posted by 호랑이!!!

 

하늘도 땅도 기숙사에 돌아오는 학생들로 빼곡했다. 날개 없는 학생들은 걸어서 짐을 옮겼고 날개가 있는 학생들은 날아서 옮겼으며 어떤 학생들은 날개가 있음에도 날개 없는 친구와 함께 가기 위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는 유밀(세인트 외의 수인을 총칭)이 둘.

 

이봐요 왕자님, 알고 계시죠?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어제 학생이 보여주셨던 태도는 부적절했다는 거! 들어가자마자 그럴싸한 변명이라도 하면서 사과하지 않으면 자칫 교한테 불만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일 거라구요? 아니면 영 교수님한테나.”

 

나도 알고 있다!”

 

녹스는 소리를 질렀다가 아차하며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페드는 후욱 부풀었던 깃털을 부풀 때만큼이나 빠르게 가라앉혔다.

 

“...소리 질러서 미안합니다, 조교님.”

 

알면 됐어요, 녹스 학생.”

 

페드는 시무룩하게 꼬리를 늘어뜨린 녹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분의 차는 꽤나 있지만, 어쨌든 돌봐주어야 하는 후배 중 하나니까.

 

갑자기 배가 아팠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주전자를 불에 올려두고 나왔다던가...”

 

둘은 나란히 날개를 펼쳤다. 학교 안에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날개를 맡기고 몇 번 날갯짓하면 몇 층 위에 있는 베란다에 발이 닿는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밟은 탓에 둥글고 반질반질해진 대리석을 넘어서 계단을 총총 올라가다보니 어쩐지 발걸음이 급해졌다. 어제 그 일은 역시 넥투르 인이 짜증나서 그랬다. 그 약냄새 날 것 같은 새파란 머리며,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그 기분 나쁜 말투라던가... 교수님한테 꼭 사과하고, 수업 준비를 도와 드리겠다고 말해야지. 페드를 뒤에 남겨두고 녹스가 뛰었다.

 

계단이 앞으로 여덟 칸.

 

앞으로 여섯 칸.

 

다섯, , .

 

마지막 세 칸은 날개를 퍼득여 단번에 올라가고.

 

녹스는 문을 열었다.

 

교수님! 어제는 제가 배를 주전자에...!”

 

녹스는 말을 멈추었다. 뒤에서 페드가 건물 안에서 날개를 펴는 건 교칙 위반이예요!’라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페드가 간신히 계단 위로 뛰어올라오자 보인 것은, 낯익은 녹색이 있었다.

 

어서 와아, 페드~”

 

교 네가 왜 여기 있어?”

 

어째서긴~”

 

페드는 문을 잡고 있는 녹스의 팔을 들어 치웠다.

 

어제 저 왕자님이 가고~ 너도 연구자료 본다고 가고~ 교수님이 할 일이 많으시다고 하시길래 말이야아~”

 

도와드리겠다고 했지 뭐어! 라면서 방긋 웃는다.

 

오 저런.

 

페드는 옆을 힐끗 보았다. 녹스는 놀랄 만큼이나 새하얗게 굳은 얼굴로 간신히 동공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을 따라가 보았더니 영 교수와 교의 손에 들린 서류를 오가고 있었다.

 

교수님.”

 

?”

 

가여운 왕자님을 나라도 도와야지 어쩌겠어. 저 교 놈은 자기가 알아서 잘 살아남을 놈이니까 내버려두고. 아니 애초에 교 저 놈은 왜 온 거야? 이런 일 절대 안 하는 놈인데. , 성적이 위태하기라도 한가?

 

녹스 학생도 도와드린대요.”

 

, 그래요? 그러면 고맙긴-”

 

야호!

 

죽어있던 녹스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페드의 귀도 쫑긋하게 섰다.

 

“-한데-”

 

더더욱 녹스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어라라, 어딘가 불안해서 페드의 귀가 더더욱 뾰족하게 일어섰다.

 

“-지금 교 학생이 너무 잘 도와주고 있어서-”

 

교수님!”

 

페드가 녹스를 떠밀었다. 녹스는 균형을 잃을 뻔 해서 날개를 퍼덕였다. 가까스로 날개를 접고 서자 페드가 방긋 웃었다.

 

일손은 많을수록 좋잖아요!”

 

거야 그렇지만요.”

 

저 갑자기 고대 석판 해석이 갑자기! 잘 되어서요, 저 대신 여기 왕자님이 도와주신대요! 갑자기 바빠진 저 대신!”

 

그 갑자기는 대체 왜 세 번이나 튀어나오는 걸까. 영 교수는 날개까지 부풀리는 페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과 별개로 실내에서 날개를 폈다는 이유로 벌점은 주었지만.

 

 

 

 

 

 

 

그런 나날 속에 첫 수업이 다가왔다. 여러 곳에서 온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하기 몇 분 전에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교실에 미리 와 앉아있다가 교실의 문이 열리자 일제히 시선을 그 쪽으로 돌렸다. 먼저 들어온 것은 영 교수였는데 영 교수는 나름대로 좋은 옷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입고 들어왔으나 유감스럽게도 유행이 3년쯤 전에 지난 옷이었다. 학생들은 천을 달아 늘어뜨린 모자를 쓴 영 교수를 보고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뒤로 자료와 책을 한아름 안고 들어오는 페드를 보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드는 왜 신입생들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펴다보다가 신입생들이 허리를 숙이려고 하자 그제야 알았다는 듯 평소보다 힘차게 인사했다.

 

영 필로이픈 교수님! 여기! 책 가져왔습니다!”

 

교수라는 단어 때문인지 여기저기에서 웅성임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은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페드와 영 교수가 미덥지 못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만 숙이고 앉았다. 페드는 깃털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휘둘러 영 교수의 책상에 약차를 내려놓으며 흘긋 시선을 돌렸다. 영 교수는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덤덤한 표정으로 줄마다 앉은 학생의 수를 헤아려 인쇄물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병이랑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차라리 웅성이는 학생들의 태도 평가에 낙제점이라도 줬으면 좋겠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까만 날개, , 까만 머리. 녹스 왕자님인가.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네 말은 틀렸다! 하이어스에서는 노예제가 폐지된 지 벌써 30년은 되었어!”

 

그렇지, 이어진 전쟁과 업무의 전문화로 인해 법적으로 폐지되었지. 잘 기억하고 있군요... 라고, 영 교수는 때에 맞지 않는 감탄을 했다가 이어 보이는 모습에 경악해야 했다.

 

영 교수에 대해 노예 운운하던 학생을 붙들은 녹스 라이비는 작은 단검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찌르는 건가, 증거를 어떻게 인멸해야 하는지, 로 페드가 고민하는데 그 단검은 (페드, 혹은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학생의 가슴이 아니라 녹스의 머리로 향했고, 윤기나고 아름답던 머리카락은 한순간에 헝클어진 실더미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영 교수의 모자를 두고 그랬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웅성임과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선두에 선 것은 페드의 외침이었다.

 

이 망할 왕자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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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2017. 6. 2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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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둘이 다 있어? 아니, 셋이네.”


샘은 모텔 룸으로 들어왔다가 카스티엘, 딘, 크라울리가 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기함했다.


“...”


“...딘, 나한테 ‘또’ 뭐 숨긴 거 있지?”


“별 건 아닌데 말이야.”


그렇게 운을 떼는 동시에 크라울리가 그 말을 가로챘다.


"오, 어찌나 별 일 아닌지 현기증이 나고, 혈관 속에서 뭐가 기어다니는 것 같고, 거울을 볼 때 가끔 눈이 까맣고?"


그러자 이어 카스티엘이 진지한 눈으로 샘을 돌아보았다.


"단지 한 때 미카엘의 성배였던 그 몸이 잠시 악마로 변했던 것 때문이다. 다 괜찮아질 것이다."


그래, 괜찮게 하려고 저 크라울리와 이 카스티엘이 한 자리에 모였겠지.


인간 한 사람을 통한 천국과 지옥의 일시 화합이라니 기분 참 이상하다.


"그래, 어떻게 괜찮아지게 할 건데?"


"마침 이야기 중이었다. 나와 저... 지옥의 왕이 딘의 몸에 손을 대어서 미세하게 세부 조정을 하는 거다."


샘은 그 말에 꽤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마디씩 할 때마다 팔을 들어올리며 벌렸다.


"필요한 조건은 뭔데? 장소는?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 아니면 천사와 악마가 손을 잡는 날?"


"무스가 제법 다람쥐처럼 말하게 되었군."


카스티엘은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조건은 없다. 다만, 내 은총이 잠시 몸을 떠나 있었던 것 때문에 인간의 육체를 빌려 힘을 주어야 한다."


"인간의 육체?"


"쉽게 말하자면, 섹스하는거야."


그 말에 딘은 듣고싶지 않았던 것을 들었다는 듯 얼굴을 감쌌고 카스티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위에 천사들이 더 있으면 세부조정이 더 수월할테니 몇 명 더 부를까 하고 있었다."


"...섹스라며?"


내가 아는 섹스는 보통 두 명이서... 아니면 가끔 셋이서 하는 그런 건데.


"인간의 성인용 비디오를 참고삼아 본 적 있다. 사람 여럿이서 나오는..."


"그래, 이런 애들 때문에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아이가 폭력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고들 하지."


버진을 난교로 떼겠다니 와우 굉장해라.


크라울리가 고개를 저었다.


"캐스, 그 사람 여럿이서 어쩌구 저쩌구 한다는 그런 건 다 픽션이야. 사실이 아니라고."


"전에 피자 배달부가 여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엉덩이를 때리는 영상을 보았다고 했더니 크라울리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너네 천사한테 야동 보여줬다며?"


히죽 웃는 그 얼굴이 얄밉기도 얄밉다.


천사가 마냥 순수하지 않고 예전에 대천사 한 명이 야동에 출연하는것도 봤다고 쏘아주고 싶었으나 그 천사랑 카스티엘은 너무 다르니까 차마 뭐라고 말하지도 않았, 아니, 못했다.


샘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까, 집중에 방해되면 안되니까 자리라도 비켜줄까? 아니면... 나도 참가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 있는데, 주위에 이상한 게 꼬이면 안되니까 방호벽이라도 쳐 줘. 그 뒤에야 네 마음대로지. 저기 소파에서 보면서 자위라도 하던가."


심술궂은 크라울리의 말이 끝나자 딘이 손을 내저었다.


한쪽 손은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다른 손을 흔들면서.


"...아냐, 새미. 그냥... 나가줘, 나가서 당구라도 한 판 치던가 술집에서 예쁜 아가씨랑 놀던가... 하다못해 어디 도서관에서 시간이라도 보내라고."


"왜, 또 무슨 일 있으면 숨기게?"


불쑥, 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현기증이 나고, 혈관 안에서 뭐가 기어다니는 것 같고, 눈이 가끔 검은색으로 변하는 걸 숨기는 것처럼?"


"...난 그게 별 일..."


"가족이잖아! 형이 그랬어, 가족이라고! 가족인데 그런 걱정도 하면 안 돼? 세번째 거야 잘못 봤겠거니, 혹은 뭐 부작용이려니 한다고 해도... 아니, 세 번째 것도 숨기면 안돼!"


형은 늘 이런 식이야!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다 싶으면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내가 죽을까봐 세 번째 시험을 받지 못하게 막고! 그러면서도 막상 자기는 이것도 비밀, 저것도 비밀, 자기가 뭐든지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즐거운 대화 중에 미안한데, 얘들아?"


크라울리는 딘의 뒤에 앉아서, 셔츠 자락을 들었다.


오늘은 어두운 남색 셔츠였는데 아래 보이는 하얀 허리가 모텔의 싸구려 불빛 아래에서 연한 주황색으로 드러났다.


"슬슬 그 짓 해야 하지 않겠어?"


샘은 거기 한 마디 더하려고 했지만 카스티엘이 입을 열자 그만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하다."


샘은 딘을 노려보다가 일부러 쿵쿵 발소리를 내며 성수와 성유, 소금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빅터와 헬레나의 한때 (알티이벤: 아드님)

2017. 6. 17. 21:36 | Posted by 호랑이!!!

마을 한가운데의 커다란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러다간 늦을 것 같은데.

 

빅터는 조금 더 바람을 재촉했다. 그렇다고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각까지 앞으로 3.

 

얼마 안 있어 넓은 공터가 눈에 보였다.

 

공터에는 하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빅터의 파란 점퍼를 보고 아래에서 손을 흔들었다.

 

- -”

 

한 번 바람을 걷어차고 쾅, 내려가자 바로 앞에 헬레나가 서 있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웃음을 머금고.

 

어휴, 이 말썽꾸러기. 그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엄마 놀라잖니.”

 

나도 벌써... 아니, 저도, 벌써 열 넷이예요.”

 

다 컸다구요, 라면서 가슴을 내미는 빅터를 웃으면서 내려다보던 헬레나는 가볍게 그의 볼을 꼬집었다.

 

그래, 벌써 열 넷이네.”

 

벌써 이만큼이나 컸어.

 

헬레나는 빅터의 머리를 넘겨주고는 이제 가자며 앞장서 걸었다.

 

향한 곳은 유원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터질 것 같은 분홍색, 레몬 같은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유원지 안에서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유쾌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오늘 말이야, 빅터랑 만날 거라고 했더니 그 검은 머리 아가씨가 티켓을 주더라. 좋은 친구를 사귀었나 보구나.”

 

빅터는 티켓을 흔들며 앞장서는 헬레나를 좇아 가볍게 발을 공중에 띄웠다.

 

티켓을 내고 들어가자 마스코트 인형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친구야! 사진 한 장 찍지 않을래?”

 

나는 됐...”

 

빅터, 여기, 찍자!”

 

헬레나가 눈을 반짝였다.

 

빅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마스코트와 헬레나 사이에 섰다.

 

자아 찍습니다~”

 

직원이 장난감같이 생긴 카메라를 들고 요란스럽게 손가락을 폈다.

 

하나~ ~”

 

빅터는 헬레나의 손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조금만 위로 손을 올리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쪽으로 손을 올렸다가.

 

~”

 

내렸다.

 

헬레나는 그 자리에서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받고는 이리 오라며 빅터에게 손짓했다.

 

이것 봐~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단다. 나중에 한 장 더 찍어 달라고 해서 한 장씩 나눠가지자.”

 

웃지도 않는 얼굴이 뭐가 좋다고.

 

빅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원지 지도를 들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도 먹고, 언제부터인가 빅터와 헬레나는 색색깔이 화려한 풍선을 들고 이상한 머리띠와 선글라스를 했다.

 

빅터가 이런 것은 낭비라고 말리려고 했지만 헬레나는 그 까만 머리 친구가 유원지 쿠폰을 주었다고 했다.

 

마를렌 그 녀석, 괜히 오지랖은.

 

마지막으로는 저 끝의 놀이기구로 날아가려고 했다가 안전요원에게 잡혀서 설교를 들어야 했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놀이기구가 여럿 있으니 날아다니다가 부딪히면 위험하다나.

 

그러고 다른 놀이기구로 도망쳤다가 타고 내려올 즈음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돌아가고 있었고 마지막이라며 관람차를 타러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돌아가느냐, 아니면 관람차를 타러 가느냐,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다가.

 

빅터는 입구 쪽을 가리켰다.

 

노을을 등지고 마스코트 인형이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둘은 마스코트 옆에 나란히 섰다.

 

자아 찍습니다~”

 

마스코트는 양 팔을 뻗어 포즈를 취했다.

 

하나~”

 

빅터는 손을 올렸다.

 

아까처럼, 조금만 손을 올리면 잡을 수 있는 그 위치에 있는 헬레나의 손을...

 

~”

 

조심스럽게, 빅터의 손이 헬레나의 손에 닿았다.

 

!”

 

그리고 빼려는 찰나, 헬레나가 빅터를 와락 끌어안았다.

 

 

 

 

 

 

 

 

두 번째로 찍은 사진은 빅터가 놀라 움직인 바람에 완전히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두 번째 사진을 가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1차 비엘/판타지] 반짝이는 사람 3화

2017. 6. 6. 22:40 | Posted by 호랑이!!!

 

두 분 다 제정신이세요?”

 

학교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페드였다. 흉흉하게 노란 눈을 번뜩이는 페드의 뒤로는 갈색 날개가 위협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어쩐지 야단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둘은 페드의 책상 앞에 얌전히 가서 섰다.

 

학생이! 교수님을 데리고 나가고 싶어 한다고 해도! 교수님이! 안된다고 하셨어야죠! 누구랑 세게 부딪히기라도 했으면 교수님은 다쳐요! 박살난다고!”

 

교수님은 지금 툭 치면 파스스 날아가는 상태!라는 주제의 잔소리를 한참이나 퍼붓는 페드에게 조심스럽게 녹스가 손을 들었다.

 

“...저기, 제가 싫어하는 분을 납치한...”

 

그래도 왕자님인데 제가 왕자님한테 잔소리를 하겠어요!? 왕자님은 거기에서 듣고 계세요!”

 

아니, 그렇지만...”

 

입 다물고 조용히 앉아있어욧!”

 

왕자에게 소리를 빽 지른 페드는 이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교장 선생님이 교수님한테 가끔은 밖으로 나가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 은 학교 뜰이나 도서관이라구요. 그나마도 안 나가던 분이 어쩌자고! 어쩌다가!”

 

“...잘못했어요.”

 

똑똑,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 교실의 주인은 영 교수임에도, 페드의 머리가 180도 돌아갔다.

 

들어오세요!”

 

페드의 외침에 영은 모자를 손으로 더듬어 눌렀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소위 엘프라고 부르는 넥투르 인이었는데 흔히 넥투르인이 그렇듯 큰 키에 몸은 버드나무처럼 우아하게 유연하고 금색 귀걸이가 여러개나 귀는 뾰족하다. 피부는 어린 나무 같은 연초록에 길게 길러 땋은 머리카락은. 염색으로 새파랗다.

 

아안녕하세요-?”

 

늘어지는 목소리에는 짧은 휘파람 같은 넥투르인 특유의 억양이 묻어났다. 그는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와서는 페드와 영, 녹스를 번갈아가며 재미있다는 눈길로 보더니 천을 파는 상인처럼 손가락 끝으로만 가지고 온 목록을 집어 영에게 살랑살랑 흔들며 내밀었다.

 

! 루 란 교! 이 미친 녀석, 머리를 물들였어!”

 

안녕 페드, 오늘도 예쁘네.”

 

너네 어머니한테 다 이를거야! 머리를 온통 시퍼렇게 물들였다고!”

 

예쁘지?”

 

검은 머리를 파랗게 물들이려면 탈색도 했어야 했을 텐데, 너 머리카락 다 상했겠다!”

 

페드의 친구인가보다. 영은 교에게서 목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록에는 다음 학기 수업을 들을 학생들의 이름과 국적이 적혀 있었다. 하이어스, 라이비, 넥투르, 세인트... 역시나 비율은 하이어스가 제일 높다. 그럼 커리큘럼은 기존에 하던 것과 같이 하면 되고... 그러는데 손이 잡혔다. 녹스 쪽을 돌아보았지만 녹스는 얼굴이 새하얗게 굳어 있을 뿐이었다.

 

영 교수님 안녕하세요오! 듣던 만큼 예쁘시네-.”

 

고개를 돌렸다가 영은 새까맣게 반짝이는 교의 눈과 마주쳤다. 교는 영의 손을 꼬옥 잡고 입술을 꾹 눌렀다.

 

하이어스에서는 이렇게 인사한다면서요?”

 

교수님, 교 말 듣지 마세요, 쟤 엄청 유명하니까요.”

 

페드는 얘가 바로 기숙사에 넥투르 식 주사위놀이를 유행시킨 장본인이라니, 밤중에 학생들을 데리고 술을 마시러 나간다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학교 연못에 마수를 풀어놓은 일도 말해야지.”

 

뭐어? 네가 했었냐!?”

 

영은 둘이 티격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둘이 친구는 맞죠?”

 

아뇨!”

 

맞는 것 같다. 씩씩거리던 페드는 잠시 후 진정하고는 소개를 해 주었다.

 

, 이 분은 영 필로이픈 교수님. 그리고 저 분은 녹스 라이비 왕자님. 교수님, 왕자님, 얘는 아까 들으셨다시피, 온갖 말썽과 사고를 다 일으키고 다니는 루 부족의 아들 교입니다.”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반가워- 요오,”

 

인사를 마치고 교는 영이 든 목록을 가리켰다.

 

교장 선생님이 3일 후에 개교인데 준비는 다 되었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3일 후라니.”

 

세월 참 빠르죠?”

 

당장 3일 후가 개교면 어떻게 해! 지금 수업준비가 아무리 커리큘럼을 그대로 쓴다고 해도 자료라던가 얼마나 해야 할 게 많은데! 영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본체만체하고 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수업 말이예요, 아 교수님 손이 참 고우시네, 저는 장갑에 싸인 손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래의 미를 읽어낼 수... 수업 내용 중에 석판이 필요하다면 가져다 주시겠다고 교장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어쩌면, 눈도 참 맑은 색이시네... 최근에 영역을 다니시다가 우연히 몇 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 같은 동굴을 하나 찾으셨대요. ...안경 때문인가 부드럽고 가냘파서 교수님이 마치 아기새의 솜털 같네요, 머리카락 색을 보고 싶은데 혹시.

 

녹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녹스는 누가 무어라 할 틈도 주지 않고 걸어나갔다. 남은 세 사람은 쾅 닫힌 문을 보다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만 으쓱했다.

 

우리 엘리야, 키만 컸지 저렇게 가늘고, 말랐고, 바람만 불면 휘청휘청할 것 같은데...’

 

나단은 소파에 엎드려서 턱을 괴었다.

 

앞에서 엘리야는 비술서를 읽고 있었는데 조그마한 요정이 장난스럽게 엘리야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책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요정이 방해하는 것에도 꾸준히 비술서를 읽는 모습에 나단도 왠지 장난기가 돌아 살금살금 엘리야의 등 뒤로 돌아갔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톡톡 잡아당기고, 밑으로 늘어진 옷자락도 들추고...

 

역시나일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단은 바닥에 엎드리는 척 하며 엘리야의 발목을 잡아 보았다.

 

, 한 손에 쏙 들어오네, 가늘어! 뼈하고 가죽밖에 없는 거 아냐?

 

어디어디, 다른 곳은 어떨까... 하며 나단은 엘리야의 어깨를 잡았다.

 

역시나 가녀린데다가 입은 옷도 겨우 얇은 천이라 더 가냘프게 느껴진다.

 

거의 매일같이 가죽이나 금속재로 된 옷을 입는 자신하고도 달라.

 

어깨를 만지작거리는데 손 위에 요정이 와 섰다.

 

뭐야 너, 저리 가.

 

입모양으로 벙긋거리는데 요정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나단의 손 위에 발을 탕탕 굴렀다.

 

저리 가, 저리 가라니까.

 

이 어깨는 내 거야, 하고 손을 휘저었지만 요정은 다시 화르르 날아와서 손가락을 잡아당기고 깨물려고 덤빈다.

 

한참이나 파닥거리려는 때, 엘리야가 몸을 확 돌렸다.

 

너희 둘.”

 

우당탕, 요란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넘어진 나단, 그리고 그 위에 나단과 똑같은 자세로 넘어진 요정.

 

이 작고 귀여운 두 명을 어쩌면 좋을까.

 

엘리야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