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화장하는 곳 안으로 들어가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밝은 색 나무 상자는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계속 식을 도와주던 청년은 시계를 보더니 9시까지 모이라고 말을 했다.
“이 아빠는 지금 굉장히 후회한다. 너도 잘 해.”
평소에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었다. 너는 부모 다 죽어야 정신 차린다고. A는 마음속으로 대꾸했다. 가는 데는 순서 없어요.
바로 옆 칸에서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모였던 사람들은 여자끼리, 남자끼리,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흩어졌고 A는 이리 오라고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를 지나쳐 바깥으로 나왔다.
흡연 표시가 있는 공간은 산이 앞에 보였고 하나 있는 벤치는 비가 내리는 탓에 아무도 없었다. 그 옆으로는 벽돌로 포장된 작은 길이 있기는 했지만 원래 인적이 드문 것인지 무성하게 풀꽃이 자라 길의 군데군데를 덮고 있었다. 심지어는 낮은 울타리까지 하나 있어서 이 길을 갈 만한 사람은 적을 것 같다. 울타리 너머를 보는데 바람이 불어왔다. 예상했던 악취 대신 꽃나무가 흔들리는 상쾌한 바람에 의아해하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하는데 어떤 문이 눈에 띄었다.
A가 마악 나온 건물과 연결된 조그마한 건물에 달린 자그마한 문. 저 건물은 너무나도 작았다. 창고일까? 주위를 둘러보자 비가 오는 탓인지 사람들은 바깥에 나와 있기는커녕 밖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A는 울타리에 손을 얹고 훌쩍 뛰어넘었다.
문 가까이 가자 무언가 딱딱거리며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무를 태울 때 딱딱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이 건물에서 연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 곳 어디에도 연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는데 옆 벽에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거기다가 창고라면 있을 필요가 없는 커튼까지. 정말 뭐하는 곳일까. 창문을 밀자 끼이익-하는 소리는 났지만 매끄럽게 열렸다. 두꺼운 커튼을 손가락에 걸어 살짝 걷고 안을 들여다보았다가 A는.
커다랗고 새빨간 눈과 마주쳤다.
피.
시체냄새.
관 안에 넣는 꽃 냄새.
A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발아래에서 꽃이 마구 밟혔다. 넘어지다시피 하여 울타리를 넘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도망쳤다. 할아버지의 사진 앞에 모여 있는 고모들이 보였고,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 못했던 사촌들은 소파에 앉아 서로 기대어 자고 있었다.
맞아, 제대로 못 잤지. 너무 피곤해서 이상한 걸 본 거야. 이상한 냄새를 맡은 거야. 어쩌면 그 빨간 눈은 카메라 렌즈 같은 거였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 곳은 관을 보관하는 창고였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냄새가 났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 거다. A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사람 먹는 괴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알잖아. 이젠 어린애도 아닌데 그런 상상 하는 건 부끄럽지 않니?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나아졌다.
A는 시계를 보았다. 화장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일 때 까지는 아직 한 시간 가까이 남았다. 사촌들은 여전히 자고 있었고 남자 어른들은 영정사진 앞에, 여자 어른들은 상자를 열어 늘어놓았던 전이며 떡 따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A는 그 앞을 지나 바깥으로 향했다.
“A 어디 가니?”
"밖에 잠깐 나가려고요."
“피곤하지는 않고? 밤새 고생 많았으니까, 여기 이것 좀 가져가.”
A는 음식이 든 봉지를 받고 바깥으로 나왔다. 쇠 울타리를 뛰어넘고 건물 쪽으로 걸었다. 여전히 타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창문을 살짝 밀자 아까까지는 열려있던 창문이 잠겨 있었다. 이래서는 확인할 수도 없네. 역시 뭘 잘못 보았을 거다. 창문에 기대 있었더니 안에서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안에서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나왔다. 키가 훤칠하고 호리호리하고 아까 A가 본 것과 꼭 같은 새빨간 눈을 가진 사람이. A는 몸을 벽에서 떼고는 서둘러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여기 뭐가 있는 줄 알고...”
“뭐 보셨어요?”
“별 건 못 봤어요.”
그 사람은 A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웃음지었다.
“여긴 관리하는 곳이라서요. 보안상 보통은 사람이 잘 오지 않아요.”
“뭘 관리하는 곳인데요?”
“뭐 전력이라던가, 중요한 거요.”
“아아, 네에.”
그럼 아까 그 냄새는 뭐였지? A는 힐끗 창 쪽을 보았다. 다시 시선을 돌렸더니 그 사람은 A가 쳐다본 창 쪽을 보다가 시선을 느낀 것인지 다시 A쪽을 보았다.
“역시 화장터라서 그런가, 여기저기에서 냄새가 나네요. 그래도 바로 앞에 꽃이 이만큼이나 펴서 환기 걱정은 없으시겠어요.”
그 사람은 문 쪽으로 갔다. 보안상 중요한 곳이라고 들었지만 A도 따라갔다. 그 사람은 A가 왔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을 활짝 열었다. 꽃과 풀 향기로 가득했던 이 곳에서 마치 더럽고 위험한 것을 모아둔 통을 열어젖힌 것처럼 악취가 확 퍼졌다. 방 안에는 쇠로 된 받침이 있고 그 위에는 밝은 색 나무 상자가 있었고, 주위에는 엷은 비단과 천, 종이가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커다란 뼈가 있었다. 그 사람은 천천히 A를 돌아보았다. A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고, 다시 열었다. 그 입에서 가장 먼저 흘러나온 첫 마디는 이랬다.
“사람 먹는 괴물이세요?”
“네.”
“그렇구나.”
그 사람은 문을 닫았고, 흡연 표시가 있는 구역으로 와서 비로 젖은 벤치에 앉았다. 그 사람은 자신을 B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런 건 못 드세요?”
A는 아까 받았던 봉지를 내밀었다. 팥소가 든 떡, 삶은 돼지고기, 버섯을 넣어 만든 전. 그러자 그 사람은 ‘어떤 건지는 알아요’하고 대답했다.
“먹어 본 적은 없어요.”
A는 그 중에서 전을 집어 입에 넣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입 안에서부터 퍼지고 미끈미끈한 버섯이 씹히며 향긋한 향내를 풍겼다. A는 맛있다는 듯 전 하나를 다 먹고 B에게 재촉하듯 봉투를 내밀었다.
“한 번 드셔보세요. 입에 맞을지도 모르잖아요.”
“맛있을까요? 실제로 보는 것도 처음이라서 신기하네요.”
“뭐, 새로운 시도는 좋은 거죠. 입에 안 맞으면 뱉어도 되고, 속이 안 좋으면... 자판기에 가서 물 한 병 뽑아올게요.”
“새로운 시도라...”
B는 진지한 얼굴로 봉지를 든 A의 손을 빤히 보았다. 정 먹기 싫다면 강요하지 않겠다고 말해야겠다. A는 어쩌면 사람 먹는 괴물이라느니, 새로운 시도라고 말하는 자신이 이상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때 B가 입을 벌렸다. 유난히 송곳니가 길었다.
꿀꺽.
비가 내리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바깥에 나오기는커녕 밖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시 그 창고 같은 작은 방으로 돌아가며 B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