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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X가루다]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모 분에게

2017. 4. 23. 05:55 | Posted by 호랑이!!!

이크살 족이 불러낸 야만신 가루다는 거대한 태풍의 눈 속에서 반대편 끝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언제나 아이들에게 소환당해 이 자리에 불려오면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저 맞은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여럿 데려와서 나타나고는 했다.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올 테니까 나타나고는 한다라고 말해야 할까. 그리고 이런 감상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인간의 배 앞머리가 태풍을 뚫고 나타났다. 나는 또 저 인간들을 죽여야겠구나. 나는 신이라지만 결국 내 아이들의 소원에 매어 있는 존재이니까.

 

가루다의 눈은 자리를 잡는 그 인간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이크살 족과 달리 인간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생김이 조금씩 구분되었다. 이것은 큰 것, 저것은 작은 것, 이것은 물고기도 아닌데 비늘이 달린 것, 저것은 짐승처럼 털이 달린 귀와 꼬리를 가진 것. 그리고 저것은...

 

가루다!!!!!!”

 

그것이다.

 

---하자!!!!!!!”

 

등에 거대한 도끼를 맨 거대한 루가딘 족 인간은 못잖게 커다란 목소리로 이 폭풍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것 외에 찾아온 인간 중에 몇 명인가는 낯익은 얼굴이었고, 이제는 표정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가루다가 인식하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질린 표정이다.

 

하찮은 인간이여, 두 번 다시는 올 엄두가 나지 않도록 갈기갈기 찢어 주마!

 

폭풍 안에 있던 돌탑이 날아가고, 두 명의 분신이 나타나고, 날카로운 깃털이 사람을 베고 찌르고 몸에 박히고. 처음에 찾아온 것은 인간 여덟이었지만 이제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 인간이 반수가 넘었다. 몇 명을 더 죽이면 되는지 헤아려보던 가루다의 시선이 도끼를 든 루가딘에게 향했다. 그 루가딘은 피가 나고, 베이고, 바람 때문에 살이 갈라진 지금에도 처음처럼 눈을 번뜩이며 이 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루다아아아!!!! 나를 봐라!!!!!!”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적었고, 가냘펐다. 저 루가딘이 얼마나 사납게 도끼를 휘두르던 그렇게까지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가루다는 땅으로 내려왔다. 발굽이 땅을 딛어 따각 소리를 내었다. 땅으로 내려와 무릎까지 꿇어앉았는데도 자신에 비하면 이 루가딘은 아직 작았다.

 

모험가여, 어째서 매번 찾아오느냐

 

네가 날 죽이면 나의 아이들이 염원을 담아 다시 나를 불러온다

 

죽여 나를 없애더라도 그것은 잠시 뿐, 더 강한 내가 돌아오는데도

 

말하라, 어째서 매번 찾아오는 것이냐

 

잠시 무기를 내려놓았던 루가딘은 가루다의 뒤를 보더니 다시 도끼를 들어올렸다. 가루다는 불러 두었던 분신과 깃털을 돌아보았다. 없다.

 

일어나는 게 좋을 거야.”

 

인간

 

하늘에 날아오르는 네 모습은 아름다우니까.”

 

가루다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는 숨이 미약했던 검은 털꼬리를 가진 인간 하나만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인간들이 일어서서 이 쪽을 보고 있었다.

 

이제 죽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가루다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개를 여느 때보다 활짝 펴고 발은 땅에서 떨어져 더 높은 곳에 둔다.

 

버러지 주제에!

 

죽어도 죽어도, 혹은 죽여도 끝없이 찾아오는 성가신 버러지 같으니. 지긋지긋하고 귀찮고 짜증나는 인간.

 

마지막 순간 가루다는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익숙해질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던 에테르로 변해 흩어지는 감각은 이제 퍽이나 자연스럽다. 거대한 에테르의 순환 속으로 삼켜지기 전에, 가루다는 루가딘을 노려보았다.

 

나는 돌아올 것이다

 

더욱 강한 힘을 지니고, 너희를 갈가리 찢어버릴 것이다

 

아무에게나 언약을 외치는 엉덩이 가벼운 인간아. 그렇게 가루다가 노려보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은 그 루가딘은 사라지는 바람의 벽 너머로 보이는 비공정으로 향하다 멈췄다. 너한테 맞설 더 커다란 힘을 가지고.

 

또 올거야!”

 

성가시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이제는 인간 사이에서 집어낼 수 있는, 눈에 익은 인간.

 

가루다는 눈을 감았다. 무어라 할 말이 있었던 것도 같았지만. 어차피 다음에도 볼 테니까.